순탄치 않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022-10-31     아크람 벨카이드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2010년 12월 2일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의 투표에서,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카타르가 선정됐다.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항구에서는 배들이 기적을 울리고,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려 그에 화답했으며, 현지 언론은 중동 최초로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하게 된 것을 연이어 축하했다. 2013년부터 카타르를 통치하고 있는 현 국왕의 아버지인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는 특히 크게 기뻐했다. 그의 왕국이 드디어 전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것이었다.

 

개막전에 앞서 비난 거세져

그러나 곧 회의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포츠계는, 사방이 사막이고 폭염이 일상인데다 국민들이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는 국가에서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당연히 이길 것으로 믿고 있다가 카타르에 8대14로 패한 미국은, FIFA 내부의 부정부패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NGO들이 정당과 노조 활동이 금지된 이 부유한 석유 대국의 독재주의 정권을 지적하고 나섰다. 

카타르의 인권 현황에 관한 연간 보고서에서 국제앰네스티는 다음과 같이 썼다(2011년 3월 19일). “여성은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에서 온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며, 법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 수백 명의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국적을 빼앗겼다. 여전히 태형이 시행된다. 사형은 집행하지는 않지만, 폐지되지는 않았다.” 사실 이 중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다. 

그 후 12년 동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는 갈수록 내용이 풍부해졌다. FIFA의 말 많은 투표 과정과 몇몇 주요 인물의 배임 행위에 관해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수사가 진행됐고, 아시아(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와 아프리카(케냐, 소말리아, 수단) 출신 노동자들의 끔찍한 노동환경을 고발한 르포르타주가 공개됐다. 냉난방 시설이 완비된 경기장 7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환경오염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줄줄이 소송이 이어졌지만,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개최된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가 군부 독재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카타르 월드컵의 보이콧을 주장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동안 카타르는 납작 엎드려서 국가 이미지 쇄신을 위한 홍보 활동에 수천만 달러를 지출했으며, 각종 인프라(경기장, 지하철 등) 형성에 투자한 2천억 달러의 예산은 서구권, 중국, 일본 기업 수백 곳의 배를 불려줬다.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개막전 불참 선언

11월 21일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의 킥오프가 다가올수록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모두가 카타르 월드컵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이 행사의 진행 과정, 극심한 더위, 건설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물론 나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나는 카타르에 가지 않을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도 이렇게 선언했다(9월 22일). 

대통령 재임 시의 올랑드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2013년 6월 23일 도하를 공식 방문했을 때, “카타르가 아주 아름다운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도록 프랑스가 돕겠다”라고 했었다. 사실 당시에도, 카타르 및 주변 중동 국가의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아시아 노동자들이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해 있다는 논란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라팔 전투기의 판매가 급했던 올랑드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파리 시, 갑자기 카타르 비난대열에 합류

파리 시는 돌연 카타르를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월드컵 기간에 ‘팬 존(Fan zone)’을 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기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기후 문제, 사회적 규칙, 법적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에 협력하지 않겠다.” 다비드 벨리야르 파리 부시장은 카타르 월드컵의 보이콧을 무모하게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유명 축구팀 파리 생제르망 FC(PSG)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PSG는 2011년부터 사실상 카타르의 소유이고, PSG의 회장이자 타밈 알타니 카타르 국왕의 측근인 나세르 알 켈라이피는 PSG 홈 경기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 VIP석에 파리 시장인 안 이달고를 정기적으로 초청해왔다. <TF1> 채널의 경우에도 월드컵 관련 예고편에서 ‘카타르’라는 단어를 없애기로 결정했지만, 월드컵 경기 방송권은 포기하지 않았다.

만약 카타르를 보이콧한다면, 중동의 다른 모든 군주국도 함께 보이콧의 대상이 돼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부터 오만까지 모두들 오래전부터 같은 비난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카타르의 월드컵 시설 건설 현장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것처럼, 200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중 하나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가 희생됐다. 오늘날 이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전망대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수만 명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과거의 비극을 이유로 이 공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오만에서는 두큼 신도시 건설을 위해 수많은 해외 노동자가 동원됐고 그들에 대한 처우도 카타르의 그것보다 결코 낫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이클 경주 대회인 ‘투어 오브 오만(Tour of Oman)’을 색안경 끼고 보지는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은 인권 의식의 부재, 예멘 전쟁에서의 역할, 독재 정권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중동에서 개최되는 포뮬러 1 그랑프리를 보이콧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투르 드 프랑스에도 아랍에미리트의 후원을 받은 팀과 바레인의 후원을 받은 팀이 출전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의 환경오염 문제는 또 어떤가?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진 월드컵 경기장은? 모두 환경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다. 3월부터 10월까지 에어컨 없이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카타르에서, 에어컨을 통해 배출되는 수천 톤의 플루오르화탄소(HFC)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016년 키갈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관련 국제회의에서는 중동 군주국들이 맹렬한 로비 활동 끝에 배기가스 배출 금지 기한을 2047년까지로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국가들에 적용되는 기한은 2036년이다. 게다가, 이 연장된 기한조차 지켜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부다비의 대형 호텔 수영장들은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두바이에서는 한 프랑스 기업이 설계한 실내 스키장에서 일 년 내내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에너지 낭비는 녹색 기술을 약속하는 교묘한 홍보 활동들로 감춰진다. 석유 대국인 아랍에미리트에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본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쿠웨이트의 실수가 불편한 카타르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카타르는 국제무대에 대해 야심을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동안 지역 차원의 스포츠 경기를 유치하거나 (2001년에 그랬던 것처럼) WTO 각료회의를 개최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999년 시애틀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WTO 반대 시위 정도가 아마도 예상할 수 있는 최대 위기일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월드컵은 다르다. 아무것도 감출 수 없고, 각종 비판, 불신, 질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카타르는 쿠웨이트의 경험으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쿠웨이트는 1980년대 말에 유리 천장에 부딪히고 폭풍같이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쿠웨이트는 군자금으로 모아둔 2천억 달러를 가지고 월스트리트와 런던증권거래소에 진출했다. 주식 시장이 폭락한 1987년 10월 19일(검은 월요일)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던 때라,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주식을 저렴하게 살 수 있던 시기였다. 마거릿 대처 내각이 이제 막 민영화한 BP(British Petroleum)도 그중 하나였다. 

1988년 상반기에 쿠웨이트의 국부펀드인 KIO(Kuwait Investment Office)는 20억 달러를 들여 BP의 지분 22%를 획득했고, 곧 BP의 전략적 경영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은 곧 분노에 휩싸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요 회원국이 오랜 전통의 영국 회사를 소유한다고? 대처 총리는 쿠웨이트가 BP의 지분을 또다시 늘릴 경우에는 보복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고, 노동당 당수인 닐 키노크는 “국익이 위험에 처했다”라며 한탄했다. 결국 KIO는 BP 내 지분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일본 투자자들에 대해 이미 적대감이 높았던 미국에서, 일부 의원들은 KIO가 뉴욕의 고가 부동산을 매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같은 ‘반(反)쿠웨이트 정서(Koweit bashing)’는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프랑스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당시 쿠웨이트 국왕의 남동생이었던 파하드 알 아흐메드 알 자베르 알 사바가 왕족 지위를 이용해 발라돌리드 경기장에 난입한 뒤 심판에게 프랑스 팀이 넣은 골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한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는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에 만연한 쿠웨이트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렇게 부유하고 콧대 높았던 쿠웨이트는 1990년 8월 사담 후세인이 걸프전을 일으켰을 때, “쿠웨이트가 이라크에 이대로 복속될 수는 없다”고 서구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홍보와 정치적 로비 활동에 쏟아 부어야만 했다.

이 시기의 쓰디쓴 경험 때문인지 쿠웨이트의 왕들은 그 뒤로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국제무대에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카타르는 과연 쿠웨이트의 전철을 밟게 될까? 그것은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와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혹은 전 세계를 무대로 영향력을 넓히기를 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의 빌런 역할을 이어받을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8년 뒤인 2030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이집트, 그리스, 모로코와 경합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의 개최지로도 이미 선정된 상태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i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