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들의 새로운 궤변

경제위기속 '항복' 대신 반격에 나서는 자유주의자들의 뻔뻔스러움

2009-02-01     에릭 뒤팽 | 언론인 겸 경제학자

 

경제위기 책임론으로 한때 의기소침했던 신자유주의자들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기를 촉발시킨 자유방임자들이 반성은 커녕 금융규제와 정부의 철학부재를 비난하면서 이데올로기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궤변과 허구를 진단한다.
 "자유주의자들을 이번 위기와 결부시키지 말아 달라. 이번 위기는 자유주의 이론의 실패도 아니고 자유주의 메커니즘의 실패도 아니다."1)  -정치인 알렝 마들렝
  "자유주의가 이런 집단적 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며, 21세기의 자본주의가 지향해야 할 최선의 방향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다."2)  -경제학자 겸 역사학자 니콜라 바브레

금융위기로 주가만 하락한 게 아니다.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도 큰 위협을 받게 됐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옹호자들에게 던지던 작은 눈송이가 산사태로 변했다.  어제만 하더라도 시장의 자율 규제를 부르짖던 경제학자와 정치인 및 전문가와 언론인이 갑자기 돌변해, 사태가 '너무 복잡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유방임을 외치던 학자들조차 은행이 주주에게 나눠주는 배당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시장이란 이데올로기가 난파된 가운데서도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의 정도는 현실 세계에서 닥치는 비난과 공격을 견디는 힘에 비례한다. 고유한 사고 체계를 지닌 자유주의자들은 위기를 맞아서도 흔히 생각될 만큼  당황하지 않는 듯하다. 이들 자유주의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궤변으로 무장한 이들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믿는다

파렴치한 '네 탓'...'철저한 자유주의 없어 경제실패' 강변

자본주의.국제무역둘러 싼 '새로운 이념 전쟁' 불붙을듯

유럽에서 드물게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정치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경제 활성화 장관 파트릭 드브지앙은 "시장이 뒤집어졌다"고 인정했다.3) 그는 현재 프랑스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 및 금융 위기의 규모를 추정하는 위치에 있기는 하다. 경제 침체가 시작되고 불신이 확산되면서, 정부에게 도와달라는 주문이 사방에서 빗발친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주의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지 않는다. 심지어 현재의 위기에서 그들이 앞으로 당면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올바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싱크탱크인 몽테뉴 연구소의 필립 마니에르는 "위기는 언제나 있었다"고 철학적인 자세를 고수하며, "위기의 중첩은 먼 옛날부터 있었다"고 덧붙였다. 자본주의는 주기적 위기를 통해 불균형을 해소해가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 위기, 자유주의의 한 증거' 강변
 현재의 위기가 시장의 효율성을 입증해주는 것이라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대중운동연합(UMP)의 제라르 롱게 상원의원은 "모든 자유주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며 "이자율의 변동으로 통화의 흐름이나, 재화와 용역 가격의 흐름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조절'되는 현상이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런 흐름이 '감정적인 시장'과 동조하는 경향을 띤다고 지적하면서, 당분간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극단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군소 정당인 '자유주의 대안연합'의 총재, 사빈 에롤드도 "현재의 위기는 시장이 자율조정 기능을 가졌다는 증거"라며 "시장이 지나친 위험 감수를 경계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학자 장 자크 로자도 극단적으로 추론하며, 주가 하락에 대해 "단순한 경제적 계산에 따라 소유가 개인 주주에서 정부로 이동하는 것이며, 자유시장이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4) 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정부의 갑작스런 개입을 전혀 당혹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로자는 "은행의 부분적인 재 국유화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국가 사회주의의 부활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소유의 (일시적인) 새 균형점을 찾으려는 다양한 유형의 투자자들이 보여주는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이라고 덧붙였다.
 
 '책임은 정부 탓' 역습도
 하지만 세계 금융시스템을 단숨에 날려버릴 뻔했던 이번의 위기가 닥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UMP의 장 미셸 푸르구 하원의원 등은 자유주의를 원흉으로 지목하는 분위기에 반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위기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자유주의에서 찾으려는 반자유주의적 문화"를 비난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 생각하며, 그들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경제학자 파스칼 살렝은 '충분히 자유주의적이지 않았던 정부의 실패'라고 거침없이 주장했다.5) 자유주의자의 선봉장으로 손꼽히는 살렝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난 수 년 동안 계속된 미국의 불안정한 금융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했다.
 "그 기간 내내 이자율이 낮아지고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세계가 유동성의 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은 건전성이 떨어지는 채무자에게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금융 거품'이 나타날 조건이 갖춰졌으며, 급기야 그 거품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이 자유주의 경제학자는 "자본주의를 해치는 현재의 조치를 중단하고, 금융시장을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자유주의 신봉자들은 금융위기가 규제를 완전히 풀지 않은 분야에서 먼저 터졌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예컨대 브뤼셀의 '하이에크 연구소'의 벵상 베나르 소장은 "미국에서 부동산 금융시장 만큼 연방정부의 간섭으로 왜곡된 시장은 없다"며6) "패니 메이는 연방정부가 보증한다는 이유로 낮은 이자율의 채권을 발행해서, 저소득층 가정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부동산 담보대출 이자율을 낮춰, 유동성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루스벨트 행정부가 1938년에 설립한 정부기관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패니 메이가 1968년에 민영화됐고 1970년부터는 프레디맥과 경쟁을 벌이게 됐지만, 베나르는 "두 금융기관은 겉으로는 민영화됐지만 정부의 보조를 받고 사회보장적 역할을 띤 까닭에, 미국 재무부의 암묵적인 보증기관으로 줄곧 여겨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베나르는 "저소득층, 특히 소수민족의 주택 보유율"을 높이려던 공공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그런 정책으로 말미암아 패니 메이와 프레디맥이 감당하기 힘든 위험을 떠안게 됐다"면서, "자유경제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면서, 규제자인 동시에 입법자인 정부가 신용거래에서 관련자들의 책임 의식을 무디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중대한 금융위기를 불러 일으켰으며, 지원하겠다던 많은 가정을 오히려 파산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결론지었다.
 
 투기거품 '유약한 인간 본성 탓' 희석
 하지만 이런 가정으로는 투기거품을 교묘하게 이용해 돈을 벌려다 된서리를 맞은 민간 부분 행위자들의 행동이 해명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은 유약한 인간의 본성을 거론하며 대충 얼버무린다. 인간은 워낙에 어리석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무는 결코 하늘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법이지만, 인간은 그런 실망스런 진리를 의식적으로 잊어오지 않았냐고 변명한다.
 게다가 푸르구는 "남을 모방하는 인간의 습성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며 "모두가 똑같은 쪽을 쳐다보았다"고 푸념했다. 마니에르가 "모두가 투기거품이 언젠가 터질 걸 예상했었다. 그러나 모두가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고 진단했듯이, 결국 이기주의가 만연되면서 잔치가 끝났다는 경고를 누구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월 5일 몽테뉴 연구소를 떠나 투자자문회사를 창립한 마니에르의 지적에 따르면, 앨런 그리스펀 연방준비은행 이사장은 '시장의 이상 과열'을 분명히 감지했지만 과열을 달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마니에르의 지적을 기폭제로 자유주의자들은 위기의 기술적 원인을 찾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신에 찬 자유주의자인 대외무역 및 중소기업담당 정무장관 에르베 노벨리는 "위기의 원인은 탈규제가 아니라 규제의 실패에 있다"고 단언했고, 마들렝도 "정책 당국과 금융당국의 어설픈 규제에서 위기가 시작됐다"고 맞장구쳤다.7)
 
 '잘못된 금융 규제' 화살
 일부 은행 규제가 역효과를 낳으면서 위기를 악화시켰다는 의견도 있었다. 1986년 자크 시라크 정부에서 산업부 장관을 지낸 마들렝은 "새로운 회계 기준이 제정되면서 은행과 기업은 매각해야 할 경우 받을 수 있는 가격과 언제든 일치하는 주가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야 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따라서 주가가 상승할 때는 대차대조표가 건전하게 나타나지만, 위기가 닥치면 대차대조표의 건전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신바젤 협약도 큰 역효과를 낳았다. 2004년에 확정된 신바젤 협약으로 인해 은행은 보유자산의 일부를 자기자본으로 반드시 보유해야만 했다. 따라서 마니에르의 말대로 "위기가 닥치고 주가가 폭락하자 은행들은 대출할 여력을 상실했다."것이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이 위기를 적절히 관리할 수 있었다면 이런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쯤에서 자유주의자들도 새로운 금융상품이 잘못 사용된 사실을 인정한다. '증권화'라는 첨단 금융기법으로 은행은 채권을 유가증권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근거로 만들어진 까닭에 이런 증권들의 출처가 점점 불투명해졌다. 위험을 분산하기는 커녕 위험을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마니에르는 이런 현상을 "피자에 얹혀진 상한 토핑이 피자 전부를 상하게 했다"고 요약했고, 드 즈비앙은 "불량 상품을 거래한 셈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브레는 "'증권화'에서 상품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 상품을 잘못 사용한데 문제가 있었다. 신용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신용을 낳는 순간부터, 또 은행이 돈을 빌려줄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나선 때부터 그 상품은 궤도에서 일탈하기 시작했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롱게는 "거기에는 자유주의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자유주의는 통제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금융시장에서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인 증권화 상품은 정상적인 규범에서 벗어났다"고 인정했다. 마들렝도 "목표로 하는 성과가 장기적으로 성장을 훨씬 웃돌 때 증권화는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
 
 일부 인사, 마지못해 '미안…'
 그러나 경제적 현실을 무시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던 그런 성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유주의자들은 이 부분에선 은근히 책임을 회피하면서 금융권의 터무니없는 보상제도를 비난한다. 마니에르는 "트레이더는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해야 이익이 크다. 또한 이익을 보면 큰 몫을 차지하지만 손해를 보면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만이다"고 지적했고, 로자는 "트레이더는 개인적으로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지만, 이익에서 일정한 몫을 차지한다. 트레이더에 대한 제재는 해고가 전부"라고 분석했다.9)
 또한 로자는 은행계와 금융계를 다르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며 "은행과 금융기관이 큰 위험을 감수했던 동기는 트레이더의 동기와 비슷하다. 특히 파산하도록 놓아둘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위험한 상품에는 더욱 그랬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들과 그 밖의 규제기관들이 모든 위험을 담보하는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셈이다.

 

정실에 얽힌 평가를 남발하는 신용평가기관의 무능력이 여기에 더해지면서, 현재와 같은 위기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금융 불안이 과도한 유동성을 낳으면서 위험이 훨씬 더 커졌다. 아시아의 흑자가 곧 미국의 적자였다. 하지만 이런 메커니즘은 예전부터 알려졌던 것이다.
 그럼 현재의 위기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던 사람들에게 '내 잘못'이란 사과라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금융계의 진정한 스승으로 추앙받던 앨런 그리스펀은 2008년 10월 23일 의회 청문회에서 "나를 포함해서 많은 금융 전문가가 주주의 자산을 보호하는 것이 금융기관에도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연방준비은행의 수장을 지낸 그린스펀은 금융시스템에 '결함'이 있는 걸 이제야 확인해서 '무척 유감'이라고 인정하기는 했다.
 프랑스의 자유주의자들도 이런 식으로 넘어갔다. 잡지 <코망테르(Commentaire)>의 발행인, 장 클로드 카사노바는 '경제 주체와 현대 금융기법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문제였다고 유감을 표하는데 그쳤고, 노벨리는 "위기의 시스템적인 면에서 내 확신이 약간 흔들린 건 사실이다"라고 약간 자기비판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내 생각엔 현재의 경제 시스템 덕분에 파산의 위험을 벗어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바브레는 "시장의 자율규제를 믿은 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했지만 "그 자율규제는 자유주의의 원리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원리일 뿐이다"고 은근히 책임을 딴 데로 돌렸다. 드브지앙도 "현재의 위기가 닥친 원인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무질서다"라 고 지적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서브프라임 사태는 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야만적인 영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팔고 사던 노예제도 지지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진단했다.
 
 '공권력 개입 타당' 뒤늦게 인정
 에롤드 여사는 정부가 위험에 빠진 은행들을 구원하러 나선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 유일한 정치인인 듯하다.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지금까지 이익을 독차지한 기업들의 손실을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에롤드는 "올리비에 브장스노와 똑같은 생각"이라며 "은행들은 도박판에 뛰어들어 큰 돈을 잃었다. 은행들이 파산하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누구나 미래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은행들도 미래를 대비해 더 신중해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는 국가가 구원자로 개입하는 것을 환영했다. 푸르구는 "정부만이 자연 재앙을 해결할 수 있다. 이번의 위기도 그런 재앙 중 하나다"고 솔직히 말했고, 카사노바도 "정부를 제외하면 누구도 신뢰성을 담보해줄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이 그것이다"고 지적했다. 마니에르는 "은행을 지원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했고, 롱게는 "정부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뭔지 이번에 재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마들렝은 "2007년 여름부터 서브프라임의 손실분을 정부가 떠안으며 불량자산을 털어내야 했다"며 공권력의 뒤늦은 개입을 비난하기까지 했다.10)
 하지만 조건이 있다. 정부가 이번 위기를 이용해 경제체제를 좌우하는 주체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니에르는 "정부는 화재가 나면 불을 끄고 소방서로 돌아가는 소방수와 같다"고 규정지었다. 구원자로서의 역할이 끝나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다시 보편적 질서를 꾸려갈 수 있도록 정부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야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도 모든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안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어 은행을 지원하면서 정치적 입장이 혼란스런 지경에 빠졌다. 베나르는 "은행에게는 큰 돈을 지원하면서 실업자나 농민에게는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고,11) 카사노바는 "정부에게 실업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고 신중하게 분석했다.
 
 '정부의 과도한 역할은 금물'
 알렝 제라르 슬라마는 "위기가 닥치면서 국민이 채권자가 됐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익공화주의자로 '경제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슬라마는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사회보장 요구도 많아진다"고 강조했다. 위기로 인해 사회안전망에 대한 욕구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벨리는 앞으로 닥칠 쟁점을 충분히 의식하고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뻔했던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시장 간의 역할 분담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 예측하며 "죄의식을 가질 때 균형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벨리는 "정부에 많은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가 사회보장을 떠맡더라도 경제체제를 상시적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아져야 한다"며 "사태가 1945년이나 1981년으로 되돌아갈 위험성"을 지적했다.
 새로운 뉴딜정책이란 망령도 일부에서 거론된다. 극단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자크 가렐로는 버락 오마바의 취임으로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이라 예측했다. "단기적으로 기업과 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연방 정부기관의 간섭이 심해질 것이다. 또한 인플레이션과 증세로 자금을 확보해 대대적인 공공투자로 경제를 부양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겠지만 대량 실업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1930년대에 그랬듯이 사회적 안전망이 확대되고, 빌 클린턴도  못했던 프랑스식 사회보장제도라는 원대한 꿈이 결국에는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12)
 반면에 온건한 자유주의자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바브레는 워싱턴의 상황과 파리의 상황이 다르다며, "미국은 기반 시설을 현대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뉴딜정책을 반드시 추진하고, 34%의 원천징수율을 감안할 때 부자에 대한 세금을 증액시켜야 한다. 그러나 공공지출과 원천징수율이 각각 국내총생산의 54%와 44.4%에 이르는 프랑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고 진단했다.13) 드 브지앙도 정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상실한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적절한 균형점이 찾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자유주의적 개혁 열차가 속도를 크게 늦추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슬라마는 "보호주의를 거론하면서 자유주의적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개탄했고, 에롤드 여사로 "자유주의적 개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만 실행하기 불가능한 지경에 빠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관점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탄력적인 실용주의 노선은 지극히 평균적으로만 자유주의적 성향을 띤다. 극단적인 자유의자들은 지금까지도 사르코지를 그들의 편이라 생각지 않았지만, 최근의 연두교서를 듣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렐로는 "뉴딜과 정부 역할의 확대가 대세인 까닭에 사르코지가 케인스와 사회주의 정책을 선택했다. 우리 대통령은 유행에 민감하고 유행을 따르는 천재적 재주를 지닌 듯하다"고 빈정거렸다.14)
 자유주의적 성향을 띤 주간지, <에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유럽의회의 사회주의자 동맹 회장에게 자신도 사회주의자가 된 듯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에코노미스트>는 "경제 위기를 빌미로 사르코지가 간섭주의라는 프랑스의 전통에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15)
 
 '그래도 자유주의…' 미련 못버려
 사르코지가 위기를 맞아 신속히 대처했다는 건 많은 자유주의자가 인정하지만, 그의 행동은 많은 의혹을 낳았다. 마니에르는 "사람들은 흔히 건설 지향적이기 때문에 경제부양책을 생각하기 십상"이라고 한탄했고, 에롤드 여사는 "정치인이라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 섣부른 행동을 취하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통 자유주의자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일하는 사르코지를 가까운 시일 내에 꺾어놓기란 사실상 힘들 것이다.
 자유무역의 미래도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적잖은 걱정거리다. 바브레는 세계 경제계가 불안정한 상태에 접어들었고, "세계화라는 황금시대의 주기가 끝나는 시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슬라마는 향후 수 년 동안은 보호주의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 전망했고, 카사노바는 "침체기에는 보호주의가 득세하기 마련"이라면서도, 신흥국가의 생산자들과 부유한 국가의 소비자들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저항'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는 이번 위기가 사고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기는 커녕 어차피 겪어야 할 고약한 순간으로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마니에르는 '좋아서 날뛰는 반자유주의자'들에게 "멈춘 시계는 하루에 시간을 정확히 두 번 맞춘다. 너희는 그 기회를 제대로 살려야 할 것이다!"고 빈정댔다. 바브레는 "자본주의가 이번의 위기에서 무사히 벗어나지 못하면 새로운 규제를 고안해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드 브지앙은 "내 생각에 정부는 브레튼 우즈 협정이 무너진 이후로 빼앗긴 역할을 되찾으려 하면서 금융계를 다시 통제하려 하겠지만, 복지국가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로자는 "우리는 정보화 시대와 탈중심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가 권력을 독점해 넓은 전선을 관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주의로의 회귀도 여전히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다. 한 번의 위기만으로 이미 깊이 뿌리내린 변화의 물결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며 자유주의자답게 유감없이 낙관론을 펼쳤다.16)
 반자유주의자들도 이제 역사의 바람이 바뀌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잠잠하던 이데올로기의 균형상태가 이번 위기를 계기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이념 전쟁은 아직 어디에서도 본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여하튼 자유주의자들은 아직 항복할 의향이 조금도 없는 듯하다. 

    번역 | 강주헌 2nabbi@ilemonde.com *


 

1) 알렝 마들렝, 오랑주-르 피가로의 대담, 2008년 10월 21일.
2) 니콜라 바브레, '자유주의, 위기의 해법', <르 몽드>, 2008년 10월 15일.
3) 2008년 12월 16일 저자와의 인터뷰. 이 기사에서 특별히 언급되지 않은 모든 인용글은 이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다.
4) 장 자크 로자, '그들이 틀린 게 아니다 …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른다',
http://jjrosa.blogsopt.com, 2008년 11월 2일.
5) 파스칼 살렝, '충분히 자유주의적이지 않았던 정부의 실패',
<레 제코>, 파리, 2008년 10월 1일.
6) 벵상 베나르, '서브프라임 : 비난받는 시장, 잘못을 저지른 정부',
 <르 피가로>, 파리, 2008년 9월 9일.
7) 알렝 마들렝과 카롤 바르종의 인터뷰, '규제의 실패다',
<라 누벨 옵세르바퇴르>, 파리, 2008년 10월 2일.
8) 알렝 마들렝, '금융 자본주의에 취해진 잘못된 조치',
웹사이트 페이스북(Facebook), 2008년 10월 17일.
9) 장 자크 로자, '금융위기의 반성', 장 자크 로사의 웹사이트, 2008년 10월 1일,
http://pagesperos-ornage.fr/jeanjacques.rosa/
10) 알렝 마들렝과 카롤 바르종의 인터뷰, '규제의 실패다', <라 누벨 옵세르바퇴르>, 파리, 2008년 10월 2일.
11) 벵상 베나르, '위기 : 우리 앞에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경제의 운영방식이 필연적으로 바뀔 거라는 것이다'. 하이에트 연구소, 브뤼셀, 2008년 11월 4일.
12) 자크 가렐로, '루스벨트 2세', <라 누벨 옵세르바퇴르>, 파리, 2008년 10월 20일.
www.libres.org/francais/nvlettre/nv;ettre.htm
13) 니콜라 바브레, '자유주의, 위기의 해법', <르 몽드>, 2008년 10월 15일
14) 자크 가렐로, '경기부양을 위한 자유주의자의 계획', <라 누벨 레트르>, 2008년 12월 5일.
15) '사르코지는 속내를 감춘 사회주의자인가?', <이코노미스트>, 런던, 2008년 11월 13일.
16) 장 자크 로자, '금융위기의 반성', 장 자크 로사의 웹사이트, 2008년 10월 1일,
http://pagesperos-ornage.fr/jeanjacques.ro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