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 그 잉여의 매력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사람들은 항구 쪽 대로에서 약속을 잡으면 으레 ‘푸시킨로’ 쪽인지, ‘공작’로 쪽인지 되묻는다. 공작로의 ‘공작’이 어느 공작을 말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공작이란 오데사시 총독(1798∼1811 )이고, 오늘날 유명한 포템킨 계단 꼭대기에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 아르망 장 뒤 플레시 리슐리외를 말한다. 리슐리외는 오데사시에 많은 공헌을 했다.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가로등을 처음 설치했으며, 베수비오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암으로 도로를 포장했다. 이탈리아산 흰 아카시아나무를 심은 것도 그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천 명의 유럽인을 오데사에 오게 함으로써, 오데사가 국제도시로 거듭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도시 내 대부분의 건물을 세웠고, 영국인들은 수도관을 건설했다. 트램로는 벨기에인이 건설했고, 그 유명한 오데사 오페라극장은 오스트리아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선박 소유주들은 대부분 그리스인이었다.
유럽이 만든 우크라이나의 도시
리슐리외 동상은 결혼사진을 찍는 인기 장소가 되었다. 여기서 결혼사진을 찍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리슐리외는 평소에는 무관심의 대상이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평온을 주는 할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항구 쪽 대로변 푸시킨 동상 방향 왼쪽 두 번째 벤치가 열흘간 내 자리였다. 리슐리외 동상을 지나칠 때마다 동상에 인사를 했다. 나는 ‘돈은 없지만, 대신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오직 세상에서 당신만이 이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적힌 팻말을 옆에 두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 바람은 거셌고, 롤러스케이트를 탄 학생들이 빠르게 지나쳐갔다. 선장 복장을 한 남자가 자신의 시집을 팔려고도 했다.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내 팻말에 관심을 보인 첫 번째 행인은 누구였을까?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보리스는 확실히 기억한다. 30대의 보리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친구들조차 기다리게 만들었다.
나는 보리스에게 “단어 하나만 줘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범선.”
항구 쪽 벤치로 오기 전에 어느 자리가 좋을지 물색하느라 오데사를 한 바퀴 돌았다. 사람이 많이 지나가고, 접근하기 쉬운 자리를 찾아다녔다. 마다가스카르와 폴란드에서 나는 주로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시장이야말로 역동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장에 자리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오데사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시장인 프리보즈 시장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집산지’라는 의미의 프리보즈 시장은 1828년쯤 상인들이 상품을 들여오던 곳이다. 벽으로 둘러싸여, 내부에는 돌로 된 탁자들과 옛날식 배수관이 남아 있는 프리보즈 시장은 중국산 제품이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예전 모습을 지키고 있다. 실내에서 가운 위에 해진 스웨터를 걸친 나이 든 한 여자가 어깨 위에 새를 앉힌 채 점을 봐주고 있었다. 다른 이는 자신이 만든 치즈가 얼마나 맛있는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옷을 파는 구역으로 들어가자, 여기서는 술에 취한 채 지나가는 사람에게 바퀴벌레 퇴치 가루를 파는 이도 있었다. 프리보즈 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국적인 얼굴들이다. 석류주스 가게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고, 아시아계 여성들은 주로 반찬을 파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오데사의 특산품인 흑포도주는 술통에서 직접 따라주는 것을 살 수 있다. 말린 생선, 훈제 생선, 소금에 절인 생선 등 그 자리에서 직접 사먹을 수 있는 맛난 음식이 풍부하다. 살짝 소금에 절인 정어리도 아주 맛있다.
생동감 넘치는 프리보즈 시장에 감명을 받았건만, 시장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2시간가량 채소 코너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나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행인들을 보며 씁쓸한 실패를 맛보았다. 결국 나는 ‘이야기 하나 들으실라우?’, ‘무일푼’, ‘제발!’이라고 쓴 팻말까지 보여주며 구걸하기에 이르렀다. 나를 불쌍히 여긴 감자 판매대 상인인 스비에타가 ‘아가씨’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스비에타는 이야기를 얻어가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큰 성공은 아니었다. “여기는 오직 가격만이 사람들의 관심 대상일 뿐이에요. 돈도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니, 시내로 가보세요. 거기 가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트롤리버스 안에서 재채기를 했다.
“시원하시겠네!” 한 남자가 말을 건넸다. “햇빛 알레르기라오. 나도 똑같은 알레르기가 있어 안다오.”
물론 농담이었다. 여러 가지 뜻을 담은. 그중 하나는 비가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활기 넘치는 다국적 재래시장
버스 안의 승객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게 농담을 건넸다. 대화가 사회생활의 일부를 차지하는 오데사에서 이런 장면은 흔하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오데사의 거리는 마치 연극 무대와 같다. 치와와를 팔에 안은 한 아주머니가 미용실로 뛰어들어간다. 야외에 임시로 뷔페를 차려 만남을 축하하는 어부들이며, 딸에게 장대발 위에서 걷는 법을 가르치는 아버지며, 마치 샹송가수 조르주 브라상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거리 벤치에서 입맞춤하는 젊은이들이며…. 이곳의 일상은 즉흥적이며 정겹다. 오스만 양식의 건물은 그다지 고풍적이지 못한, 무질서 자체인 거리를 감춰버린다. 하지만 창의성이 엿보이는 무질서함이다. 정원을 손질하는 사람도 있고, 오래된 의자를 모으는 사람도 보인다. 작은 목재 창고를 타고 덩굴이 자라고, 햇빛 아래 널린 빨래는 춤을 춘다. 시내는 고양이 천국이다. 고양이는 팔팔하면서도 애교가 넘치는 무리다. 건물들이 4층을 넘어가지 않기에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길고양이들은 오히려 발코니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있다. 집고양이와 길고양이 간의 경계가 희미하다.
나는 마침내 ‘오데사의 정신’이라 부를 만한 것을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도시 건립설은 1800년께 일어난 사건과 관련됐는데, 이 사건은 도시 수립 6년 뒤에 일어났다. 예카테리나 대제 서거 뒤 지원이 끊긴 오데사 시민들은 항구 건설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차르인 파울 1세는 어머니의 업적을 없애버리기로 한 듯했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파울 1세는 오렌지를 매우 좋아했다. 이를 알게 된 오데사 시민들은 오렌지 3천 개가 담긴 수레를 차르에게 보냈다. 오렌지를 선물하며 오데사는 차르에게 항구가 건설되면 오렌지를 정기적으로 바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차르에게 파견된 친선대사들은 금화 25만 루블을 안고 돌아왔고, 이에 항구도 계속 건설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전략에 자부심을 느낀 오데사 시민들은 이 사건을 기리려고 ‘뇌물의 추억’이라는 이름의 동상을 세웠다. 말들이 오렌지처럼 생긴 둥근 수레를 힘차게 끌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다.
연극 같은 일상, 창의적인 무질서
도시 건립설이 의미하는 바는 권력에 대항하기보다 현명하게 꾀를 내어 응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데사는 권력자들의 의심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1세는 오데사가 반동분자와 도둑, 밀고자가 득실거리는 도시라고 비난했다. 건축 면에서 도시는 변한 게 거의 없다. 오데사는 거대한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의 재앙도 모면했다. 오데사는 ‘상상력이 넘치는 사기꾼들’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도시는 여전히 이런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프와 페트로프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인 말주변 좋은 사기꾼 오스타프 벤더는 소시지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간절한지 개들마저 그를 졸졸 따라다니기에 이른다. 아이작 바벨은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며, 따뜻함과 유머가 담긴 시선으로 최하층 유대인들을 묘사해낸다.
오데사의 정신은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해왔다. 오늘날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이지만, 여전히 모스크바와 비교 대상이다. 지질학자이자 대학교수인 나타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저는 모스크바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제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을 진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평면적이라는 말을 하는 대신, 나타샤는 모스크바식의 진지함과 무료한 시선에 맞서 농담과 아이러니, 유머, 과장됨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랑하는 이들
거리가 하나의 연극 무대인 오데사에서는 나와 같은 이야기꾼도 어디서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물론 철저히 셈이 우선되고, 일반적인 오데사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벽으로 둘러싸인 프리보즈 시장을 제외하고 말이다. 푸시킨로 방향 왼쪽 두 번째인 내 자리에서 나는 30개가 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범선’, ‘바다’, ‘보바’(Vova), ‘산책’, ‘불’, ‘고양이’, ‘우표 수집가’,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로. ‘사랑’은 무려 4명의 여성이 선택한 단어였다. 이런 강한 욕구는 마다가스카르를 생각나게 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사랑에 대한 욕구에서 남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폴란드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사람이 1명도 없었다. 성취 욕구가 강한 나라에서는 직접적 감정 표현이 터부시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데사 사람들도 마다가스카르나 폴란드 사람들처럼 내가 이야기꾼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고,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무슨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효용성과 효율성만 따지는 이 세상에서 목적 없이 무언가 하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내 대답에 오데사 사람들은 폴란드인들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순간의 즐거움과 대가 없는 행위가 그들에게 마치 익숙한 듯 말이다.
내게 이야기를 물어온 사람들 중 일부는 그들의 향후 계획에 대한 확신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떠나기를 꿈꾸고 있다던 보리스가 ‘범선’이라는 단어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듣고자 했듯 말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마치 내가 사랑이나 미래의 행복에 대해 예언하는 점쟁이인 듯 대했다. 내게 꽃을 주거나, 조언을 구하거나, 내 이야기가 굉장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오데사 사람들은 잉여가 주는 매력을 즐길 줄 안다. ‘121학교’를 추천하며 이야기 예술을 위한 러시아어 수업을 들으라고 조언해준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 조언도 또 하나의 이야기이기는 하다.
글 / 이레나 비스즈니에우스카 Irena Wiszniewska
언론인. 마렉 위르와의 공저로 <해방된 이야기들>(칼망레비·파리·1994)이 있다.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