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지가 베르사유를 재접수하다

자전거 탄 자유주의자들과 전통주의 가톨릭교도들

2022-11-30     다비드 가르시아 | 언론인

프랑스 우파의 중심세력은 베르사유에서 항상 승리를 거뒀다. 현재 그들은 베르사유 시장을 닮은 에마뉘엘 마크롱과 대결 중이다. 베르사유의 한쪽에는 이슬람교에 집착하는 가톨릭 극우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녹색공간과 자전거도로, 몰리에르의 극 작품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이 있다. 이 둘 사이에서, 부르주아 진영의 화신인 베르사유 시장은 우아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2008년부터 베르사유 시장을 맡고 있는 프랑수아 드 마지에르는 자전거와 건축을 사랑한다. 모범생 이미지의 이 60대 신사는 도시화로 인한 문제점들과 베르사유가 보수적이라는 인식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극우 측 후보 에릭 제무르가 18%의 득표율로 전국 평균보다 1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부자 동네에서 우파 정당인 공화당 쪽 표를 몰아왔는데, 이는 두 진영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사회적 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제무르는 에마뉘엘 마크롱(득표율 33%)에게 큰 표차로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이 지역의 주도 세력인 부르주아지가 마크롱이 자신들의 이익을 더 잘 지켜줄 거라고 판단했고, 일부 새 주민들이 반동적 전통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교구 부주교인 브뤼노 발랑탱은 “이 도시는 인구학적 중요성에 비해 독특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런 분위기만으로도 생제르맹앙레까지 아우르는 이블린 동부 외곽 전체 인구 집단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무게를 지닌다”고 지적한다. 부르주아이면서 가톨릭 신자라는 “동일한 사회학적 배타주의”인 것이다.

베르사유는 17세기에 루이 14세가 부친의 작업을 이어받아 공사 명령을 내린 베르사유 궁전으로 인기가 높다. 매년 약 800만 명의 방문객이 베르사유 궁전과 공원을 방문하는데, 그중 81%가 외국인이다. 베르사유는 1682년부터 프랑스혁명이 시작된 1789년까지 내각의 청사였으며 또한 혁명의 무대이기도 했다. 1871년에 선출된 왕당파의 국민의회는 베르사유로 피신해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협상을 맺고, 제3공화국의 대통령 아돌프 티에르에게 공화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운 파리코뮌을 처단할 권한을 부여했다.

 

궁전 근처의 정원 딸린 집에 사는 사람들

시장과 만나기 전, 시청 관계자들은 베르사유에 항상 극단적인 인물들이 있었다는 점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도시의 역동성이 그런 것에 가려지면 곤란하다. 더 부유하면서 덜 보수적인 베르사유의 새로운 인구집단이 이미지를 바꾸는 중이므로,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베르사유는 ‘집값을 제외하고’ 일 드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로 인기 있는 도시다.(1) 사실 부동산 가격은 안전, 교육, 일자리, 건강, 세금 등의 기준에 비해 비싼 편이다. 

지난 5년간 아파트와 단독주택 가격은 5~10% 올랐는데, 이런 상승세는 파리 근교의 여러 코뮌에서도 나타난다. 전국부동산협회에 따르면, 테라스가 딸린 아파트나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가격도 10~15%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집 안의 야외공간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환경에 더 많은 녹색공간 확보가 요구된다.

그러나 ㎡당 평균 시세가 9,000유로에 달하는 번화가의 고급 아파트나 주택을 살 수 있는 이들은 부유층에 한정된다. 인구 8만 5,000명의 베르사유는 프랑스에서 재산세 납세 의무자(IFI)가 가장 많은 도시에 속한다. 2019년 납세자는 1,096명이었고, 평균 재산 신고액은 223만 유로였다.(2)

TV 미식 프로그램의 진행자, 쥘리 앙드리외는 베르사유의 행복한 새 주민이다. <프랑스 3>에서 <쥘리의 노트(Les carnets de Julie)>를, <프랑스 5>에서 <포크 들고 배낭 메고(Fourchette et sac à dos)>)를 진행하는 그녀는 유명 외과의사 스테판 들라주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앙드리외는 “4년 전 파리의 소음과 스트레스를 떠나왔다”고 말한다. 그녀는 전원생활에 매료돼 파리에서 20km 떨어진 넓은 공간과 평온함이라는 ‘타협’의 길을 택했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전과 가까운 정원 딸린 집으로 이사하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망사르 부동산회사의 필리프 고드네슈는 “베르사유는 파리의 편리함과 지방 도시의 여유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길(폭 93m) 중 하나인 파리 에비뉴(avenue de Paris)에 위치한 시청광장에서 드 마지에르 시장을 만났다. 왼편에는 루이 14세 기마상이 베르사유 궁전 입구에 펼쳐진 연병장에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 드 마지에르 시장은 “파리 에비뉴처럼 소(Sceaux)와 생클루(Saint-Cloud) 에비뉴는 웅장한 베르사유 궁전 방향으로 모여듭니다. 키 큰 나무가 늘어선 이 드넓은 도로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세요”라고 말한다. 드 마지에르 시장은 우파의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2020년 3선에 성공했다. 그가 연출한 건축물들을 따라 베르사유를 방문해보자. 우리는 그를 따라 시에서 운영하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완공됐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주요 도시계획 현장을 유유히 돌아봤다.

 

여전히 베르사유를 지배하고 있는 ‘태양왕’

첫 번째 장소는 시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다. 작은 숲에 몰리에르 청동상이 들어앉아 있다. 최근에 제막식을 한 이 동상은 극작가 몰리에르 탄생 400주년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드 마지에르 시장은 “이 동상은 몰리에르가 르노트르 정원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베르사유 궁전 숲에서 자신의 희곡 작품을 즐기던 그 역사적 순간을 엿보게 해줍니다”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몰리에르의 후원자 ‘태양왕’은 베르사유의 도시 공간을 가득 채운다. 1996년부터 ‘몰리에르의 달’로 지정된 6월에는 도시 전역에서 수십 회의 공연을 통해 예술가 몰리에르를 찬양한다.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자 전직 금융 감독관인 시장은 예술 지상주의를 고집하는 순수 탐미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도시계획에 대한 “철학과 일관성” 부족으로 “우리 도시들이 점점 추악해질 위험”을 강조한다. 베르사유시 홍보 책자에는 “도시가 추해지면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 것이고, 긴장감도 높아진다. 미학적인 면을 고려해 창조를 장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적 행동이다”라고 쓰여 있다.

‘추함’을 혐오하는 드 마지에르 시장은 베르사유를 디테일과 도시적 역동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으로 아름답게 꾸미려고 노력한다. ‘흉측하다’고 판단된 전기통신 단자함은 라퐁텐의 우화를 묘사한 눈속임용 그림들로 덮여 있다. 시장광장의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길과 쓰레기통에는 1662년의 한 공연 속 등장인물들을 재현한 모습들이 ‘입혀져 있다.’ 프랑스 민주주의의 첫 이정표인 ‘죄 드 폼’ 회관 주변으로는 예술가 르 시클롭(Le CyKlop)이 꾸민 51개의 주차금지봉이 서 있다. 스프레이와 스텐실로 제작한 이 레고 모형은 지역의 역사적 인물들을 나타낸다. 눈속임용 그림, 레고 주차금지봉, ‘스페이스 인베이더’(1980년대 비디오게임에서 착안한 캐릭터)는 베르사유 궁전 부근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고상한 구역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인구 7,000명이 거주하는 베르사유 외곽 도시 베르나르 드 주시외는 구매력이 높은 베르사유의 새로운 거주자들에게는 인기가 낮아 공공주택들이 몰려 있다. 대선 1차 투표에서 장뤽 멜랑숑은 바로 이곳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이 지역 출신인 공화당 후보 발레리 페크레스가 드 마지에르 시장의 지지까지 받았지만, 베르나르 드 주시외는 멜랑숑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득표율 46%라는 가장 인기 높은 투표소에서 프랑스앵수미즈(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의 후보 멜랑숑은 거의 30점 차로 마크롱까지 앞섰다.(3) 

도시 북동쪽에 자리한 임대아파트(HLM)의 스카이라인은 역사 중심지의 낮은 건물들과 대조를 이룬다. 1950~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 22동은 단열이 잘 되지 않아 최근 리모델링을 마쳤다. 드 마지에르 시장은 한 건물 앞에 멈춰 서서,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박공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것을 막는 일곱 개의 손을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다른 아홉 곳의 벽에도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주민의 1/3이 기업 간부, 고위전문직

 

주민들 생각은 어떨까? 한 행인은 인사를 건네며 “보기 좋아요. 분위기가 변했죠”라고 말한다. 구의원 코린 포르비스는 다소 신중하게 만족감을 표한다. “벽화들은 정말 훌륭하지만 여기만의 것은 아니죠.” 또한 그녀는 공공주택의 70%를 분양받는 지역 인구의 특정 집단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베르나르 드 주시외에는 어쩌면 애초에 베르사유를 택하지 않았을 달로법(la loi Dalo, 집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2007년 시행된 주거법) 수혜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민들은 자신이 진짜 베르사유 주민이라고 느껴보지도 못한 채 지역에 대해 배타적이기까지 한 첫 소속감을 갖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노트르담, 생루이, 클라니-글라티니구의 주거지역에서 기업 간부들이나 자산이 상당한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사회계층을 형성한다. 

전국 평균 기준, 베르사유의 빈곤율은 절반에 불과하며, 중위 소득은 훨씬 높다. 육체노동자는 3.7%에 불과하고 사무직 노동자는 14.9%인 반면, 기업 간부 및 고위 전문직은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다(33.1%). 베르사유의 공공주택 보유율은 22%로, 이 정도 규모의 코뮌은 공공주택을 법적으로 최대 25%까지 보유할 수 있다. 반면 뇌이쉬르센은 7%에 불과하다. 1995~2008년 베르사유 시장을 지낸 에티엔 팽트(소속 정당을 공화국연합에서 대중운동연합으로 바꿈)는 정치적으로는 희귀한 부류(사회주의 우파)로, 주거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역 식량원조협회 책임자인 필리프 도메르그에 따르면, 이후 “(현재의) 시의회는 최빈곤층(통합지원 임대 대출)을 희생시켜 학생용 주택, 고소득 가구가 접근할 수 있는 주택(사회 임대 대출)에 특혜를 줬다.”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무렵, 팽트 전 시장은 콘크리트 부지에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쇼핑센터를 세운다는 계획을 채택했다. 드 마지에르 시장은 그보다는 예술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 팽트의 계획을 폐기했다. 팽트는 “이 멀티플렉스는 폐관 예정인 시내의 르 시라노 극장을 대신했을 겁니다. 하지만 트라프 등 인근 동네에서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9년에 새로 조성된 베르사유 샹티에 구역은 웰빙과 녹색운동을 추구하는 새로운 도시인구에 발맞춘 계획이다. 옛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 부지는 주거지와 업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하철역, 자전거 주차장, 옛 고베르 연못의 정원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도로도 새로 생겼다. 역 앞 광장에는 ‘자전거와 바이커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 숍’인 ‘앙 셀 마르셀(En selle Marcel)’이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삼륜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트랜디한 고객들에게 손짓한다.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경제’라는 라벨이 붙은 모퉁이의 바이오쿱 상점에서는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한다. 언뜻 보기에 자연요법으로 인기를 끄는 공방이나 정원 가꾸기 수업에 트라프 주민들이 서둘러 등록하러 오는 것 같지는 않다.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뜻의 ‘퍼머컬처(Permaculture)’를 표방한 한 도시형 농장은 드 마지에르 시장의 자랑거리다.

 

후작 부인의 오두막은 ‘생태 공간’으로 변신할까?

무소속 환경주의자로 시의원에 당선된 르노 앙지외는 “시장이 자전거 도로 개발에는 앞서 간다”라고 인정하는 한편, “그는 그린워싱에 휩쓸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의 소통 활동이나 운영적 측면은 물론이고, ‘친환경 시민’이라는 이니셔티브가 이 도시에서 번성하고 있다. 영농인 농업유지협회(AMAP)가 12개, 자원센터가 12개에 비영리 협동 슈퍼마켓까지 있다. 베르사유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주민들만 이런 환경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베르사유 가톨릭교회의 변방에서 활동하는 진보 세력에서 시작된 이런 인식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에서 영감을 받아 환경보호와 최빈곤층에 대한 배려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통합적’ 생태학 개념을 담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라 메종 드 레르미타주(Maison de l’Ermitage)는 ‘인간과 지구를 위한 제3의 장소’가 되고자 한다. 길옆으로는 벽을 따라 정원이 이어진다. 맞은편 공원 쪽에는 퇴비 통이 있다. 이 호화로운 사유지는 루이 15세가 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 부인에게 하사한 사냥용 오두막으로, 종교단체인 조력자 수녀회 소유다. 자기계발 교육, 기업 세미나, 이주민을 위한 숙박 및 지원, 영적 동행. 레르미타주는 이 모든 활동들을 지원한다. 최근 유로스포츠 TV 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날을 조직했다. “우리는 레르미타주가 사회적·환경적 정의(正義)의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폰다시오 지역 공동 대표인 브누아 비뇽은 말한다. 폰다시오(Fondacio)는 국제 기독교 평신도회로, 레르미타주를 운영한다.

레르미타주의 호스트이자 고객인 유로스포츠, 르로이 메를랭(홈인테리어 기업), 다논, 크렘 몽블랑은 왜 ‘사회와 환경의 정의’를 위해 애쓰는가? 비뇽은 “나는 개인적으로 반자본주의자이지만, 폰다시오는 반자본주의적 방식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생각은 레르미타주를 투쟁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에게는 동료들을 설득할 일이 남아 있다. 동료들은 각 개인의 행동을 모두 합하면 세상을 다시 녹색으로 칠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4) 이런 점에서 이들의 철학은 생태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급진주의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베르사유 주민들의 의견에 잘 들어맞는 듯하다.

 

난민수용소 설치를 막은 ‘베르사유의 미래’

폰다시오는 10년 전부터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우편함 역할을 해왔다. 우편물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수합한다. 비뇽은 “처음에는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 인도인, 티베트인과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이 레르미타주 거리에서 행진을 벌이자 다들 싫어하는 눈치였다. 인근 주민들은 불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르사유의 그랑 부르주아는 통계적으로 리비아 난민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2016년, 베르사유 인근의 부유한 동네인 루브시엔과 로켕쿠르에 수용소 두 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특수한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번지기 시작했다고 필리프 도메르그는 기억했다.(5) 

우파 중의 우파로 분류되는 정치단체 ‘베르사유의 미래’는 당시 수용소 설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했다. 반대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베르사유의 미래’는 기독교 혐오 관측소(l’Observatoire de la christianophobie) 웹사이트에 자료를 올렸는데, 거기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문을 열면, 파리 주변과 지방에 이민자 수천 명을 들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그 수가 수십만, 수백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우리는 이민자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며, 그들이 프랑스뿐 아니라 모든 서구 문명국가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6) 

도지사는 압박에 못 이겨 루브시엔에 수용소 설치를 거부했다. 이런 결정에 탄력을 받은 ‘베르사유의 미래’는 베르사유 궁전 앞에서 또 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했다. “여기서 우리는 와인을 마시고 돼지고기를 먹을 것이며, 우리 여성들은 베일을 두르지도 강간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베르사유의 미래’ 대표인 파비앵 부글레는 말한다. 2020년 그는 시의원에 재선됐다.

IS의 대학살과 붕괴된 국가로부터 도망친 시리아와 이라크의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유럽으로 넘어오려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의 각 교구에 난민 가족을 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량한 가톨릭교도인 베르사유 교구 신자들은 박해받는 아랍 난민들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기독교도일 경우에만 받아들인다. 교구 보좌신부 피에르 아마르는 생-생포리앵(Saint-Symphorien) 교회에서 보수적이지만 상냥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하며 “어려운 형제를 먼저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슬람교도의 경우는 ‘재량으로’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베르사유의 모스크는 거의 철교에 붙어 있는 수수한 공간에 마련됐다. 현판 외에는 건물 외부에 어떤 종교적 표식도 없다. 이 모스크는 첨탑을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998년에 지어졌다. 

대부분이 정교회 신자인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연대하는 데는 별 반대가 없다. 6월 18일, 성심수녀회는 러시아 전쟁의 생존자 12명을 맞이하기 위한 축하 행사를 마련했다. 서아프리카에서 온 수녀 10여 명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2월 베르사유 교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 가족들은 전에 다운증후군 청년들이 살았던 빈집에서 생활하게 됐다”고 마리베아트리스 수녀가 설명했다. 그녀는 파리 거리의 부유한 단지에 위치한 수녀원에서 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베르사유의 학교와 교회를 찾는 사람들

베르사유 종교단체들의 부유한 자산은 이 도시 주민들의 구매력에서 나온다. 이 도시의 기독교에 대한 열정은 프랑스 전체에 비할 만큼 대단하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2%가 스스로 가톨릭 신자라 말하고 매주 미사에 나간다. 베르사유에서는 그런 사람이 10%이며, 일부 구에서는 25%에 달한다. 우안(Rive-droite) 역 옆에 위치한 잔다르크에서는 주민 4명 중 1명이 주일미사에 참석한다”며 보좌신부 아마르는 흐뭇해한다.

베르사유는 교구가 7개인데 반해, 인구 5만 5,000명의 사르트루빌은 2개, 인구 4만 3,000명의 망트라졸리는 교구가 1개다. 발랑탱 부주교는 “이런 집중 현상은 인구 재편으로 강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젊은 사제들도 베르사유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베르사유의 사제 연령은 평균 53세로, 전국 평균 75세에 비해 매우 젊다. 입회자가 1만 5,000명인 이블린도 스카우트 수로는 프랑스에서 첫 번째 도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와 협약을 맺었거나 그렇지 않은 우수한 가톨릭 학교들이 많다.

그러나, 베르사유도 종교활동(세례 신자 수, 교리 수업에 참여하는 아동 수)의 감소추세를 피하지는 못했다. 보좌주교는 “프랑스 교회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베르사유에서 밀려난 세련된 계층과 중상류층에 뿌리를 내렸다”고 우려했다. 장 카스텍스 총리 집권 당시 국무위원이자 비서관을 지낸 카미유 파스칼은 “생활수준이 낮아진 많은 가구들이 뉴타운 생캉탱엉이블린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가 꾸준히 베르사유의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일요일에 미사를 드리러 베르사유에 온다”고 분석했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자인 베르사유의 전통적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가치에 무심한 부유층으로 대체됐다고 본다. 

6명의 자녀를 둔 로랑스 트로슈는 보수 운동(‘상식(Sens commun)’이라는 단체의 전신으로 동성 결혼 허용법 반대에 앞장섰다) 대표를 맡고 있으며, 생루이 구를 떠나 형편에 맞춰 이웃 도시 기양쿠르로 이주해야 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기가 힘들어졌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기준에 따라 부르주아지로 분류되는 가구는 대체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간다”고 실망스럽게 이야기한다.

“많은 가정을 밀어내는 우파 ‘보보(BoBo, Bourgeois Bohèmes)’는 베르사유의 삶의 질과 문화적·교육적 욕망을 추구한다.” ‘가톨릭’보다 ‘보보’가 많아지면 그들은 점점 세속적인 것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녀를 교구 내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고, “아이들이 명문 학교에 들어갈 기회를 늘리기 위해 더 많은 해외여행을 요구한다. 주일은 이 대중들의 관심을 점점 잃게 될 것”이라고 발랑탱 주교는 확신하는 것 같다. 10개 가톨릭 사립학교는 유치원생부터 bac+5(로스쿨)까지 약 9,500명을 수용한다. 베르사유 중학생의 31%, 고등학생 45%가 교구 시설에서 교육을 받는다.

사회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드 마지에르 시장의 당선이 마크롱의 당선을 예고했을까? 한 사람은 선량한 보수주의, 다른 사람은 부르주아 진보주의의 색채를 띤다. 이것은 카미유 파스칼의 견해다. 2013년 2월 2일 베르사유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귀류적으로 ‘동시에’ 마크롱의 말도 안 되는 미래를 예견했을 것이다. 이날 베르사유 궁전 앞에서 1만~5만 명이 모여 동성결혼 허용법안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만인을 위한 시위(Manif pour tous, 동성 결혼법에 반대하는 프랑스 최대 단체)’였다.

동시에 대다수 의원들은 법률 제1조를 채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유권자들과 거리로 나가 이 법안에 반대했던 국회의원이자 시장인 드 마지에르가 이 법률 제1조에 ‘실수로’ 찬성표를 던진 일이 벌어졌다. 전통가족을 강경하게 옹호하는 파비앵 부글레는 이 엉뚱한 행동을 재미있게 회상했다. 그는 예술 유산 자문 사무실에서 우리를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베르사유에서 ‘만인을 위한 시위’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드 마지에르는 이 운동을 지지했고, 그런 뒤에는 뜻하게 않게 법안에 투표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승리했다. 예술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민족 신화에 빠진 수필가와 왕실 도시의 만남

2008년 드 마지에르 시장은 베르사유 보수주의의 떠오르는 스타 프랑수아 자비에 벨라미를 부시장으로 임명했다. 2020년 그는 자신이 이끄는 공화당 리스트(liste LR)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패배한 후, 드 마지에르 시장과 결별했다. 베르사유에서조차 공화당 리스트는 마크롱을 내세운 리스트에 뒤지고 말았다. 2022년 시장은 대선에서 우파 후보 발레리 페크레스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페크레스는 마크롱, 제무르, 심지어 멜랑숑에 뒤진 4위였다. 그러자 드 마지에르 시장은 젊은 부시장 샤를 로드웰의 국회위원 출마를 지지하며, 이번에는 ‘대통령 여당’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결국 그가 지지하는 신예 후보가 프랑스앵수미즈의 후보를 제치고 승리했다. 사회문제가 베르사유 우파를 분열시켰으나, 비틀거리며 소리를 내는 가치들이 다시 떠오르자, 곧 베르사유 우파는 단결했다. 

생명윤리법이 여성 부부와 미혼여성들에까지 인공수정(PMA)을 확대하면서 일부 유권자들이 제무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법안 외에도 낙태를 시행할 수 있는 법적 시한을 2주 연장한 것이 변방에 있던 가장 보수적인 베르사유 유권자들을 제무르 쪽으로 밀어붙인 결정적 계기였다”고 팽트는 평가한다. 가톨릭 신자들과 부르주아 유권자들은 제무르의 반이슬람 발언에는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다. <르피가로(Le Figaro)>와 <CNews>의 전 칼럼니스트 제무르는 노트르담과 생루이에서 최고 득표율을 얻었다. 

민족신화에 흠뻑 빠진 수필가와 옛 왕실 도시 사이에서 벌어진 이 돌발사건은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부글레는 “에릭 제무르는 ‘만인을 위한 시위’의 지지자들을 한데 모은 반면, 문화를 강조하는 베르사유는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베르사유에서는 ‘레제베이외르(깨우는 자)’라는 싱크탱크가 ‘68년 5월 키드가 이끈 사회혁명’에 반대한다. 지난 6년 동안 이 싱크탱크는 제무르를 세 번 초청했다. 베르사유에서 <르 피가로>와 <현재의 가치(Valeurs actuelles)>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베르사유의 전통적인 노트르담 데자르메(Notre-Dame des armées) 성당에서 사제는 신자들을 등지고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한다.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아기를 안고 통로까지 무릎을 꿇은 신자들로 신자석이 꽉 차는 시간에는 미사가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가톨릭 르네상스 협회는 성당 안에 안내서를 한가득 쌓아놓았다. 제30회 하계대학을 알리는 안내서들이다. 하계대학의 주제는 ‘거대 대체 이론의 신화와 현실’, ‘문명에 반대하는 워키즘(Wokism, 서구나 백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인종 및 성평등을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강사로 예정된 두 인물은 제무르의 자문인 장이브 르 갈루와 인민전선(FN)의 전 부대표인 브뤼노 골니슈이다.

그러나 인민전선을 계승한 국민연합(RN)은 베르사유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이 지역 부르주아지의 눈에 너무 ‘대중적’으로 보였던 걸까? 2022년 시장광장에 있던 베르사유의 한 여성 시민은 한 르펜 지지자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익명을 원한 한 국민연합 지지자는 “어쨌든 나는 우리 집 가정부처럼 투표하지는 않겠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베르사유는 보수 우파의 유력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에게 43%의 표를 줬다. 마크롱 대통령보다 15점 이상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최대 헌병 병영인 사토리 고원은 베르사유 부르주아지에게 있는 편견이 없다. 대선 1차 투표에서 르펜은 제무르를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선두를 차지했다. 그들의 총 득표율은 55%에 달했다. 

 

“베르사유는 역사적인 피신처”

1981년 5월 10일, 프랑수아 미테랑이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베르사유는 경악했다. 그러나 3년 뒤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1984년 3월 4일 60만~80만 명이 주로 가톨릭 계열인 사립학교 수호를 외치며 도시를 행진했다. 정부 법안에 반대하는 이 전국적 시위로 피에르 모루아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실각했다. 그러나 훗날 ‘만인을 위한 시위’가 그랬던 것처럼 ‘사립학교’를 위한 이 운동은 지지자들의 기대만큼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은 프랑스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정치세력이 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한 적이 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역사학자 이브 쉬롱은 지적했다.(7)

베르사유 상공공예연맹 의장으로 자신의 이름에 ‘드(de)’를 붙이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캉탱 위드는, 오늘날 “전통주의적 측면은 내가 속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전보다 중요성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예수회 신부들의 ‘성공을 위해 피어나라’라는 격언을 믿는 그는 베르사유의 가톨릭 고등학교 노트르담 뒤 그랑샹 출신의 엘리트지만, 직업적인 성공은 다른 곳에서 추구한다. 그는 생루이 구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한편 귀족도 근본주의자도 아닌 베르사유의 젊은 예술가들은 ‘프렌치 터치…베르사유’라는 이름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을 정도로 1990년대에 일렉트로팝 음악의 혁명을 일으켰다. 에어, 피닉스, 알렉스 고페르, 에티엔 크레시 등의 음악 천재들은 모두 베르사유의 쥘 페리 직업고등학교에서 탄생했다. 같은 세대에 속한 프로듀서 마르크 콜랭은 ‘왜 베르사유인가?’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쥘 페리 고등학교에 헌정했다. 감독은 “사회 특권 계층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랩과, 그 랩의 공격적인 사회적·정치적 담론에 대한 반대 경향으로 조직됐다”라고 분석하며, “우리는 베르사유 출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용될 수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베르사유 출신으로, 현재 보탱 몽댕 출판사 회장인 앙투안 에브라르는 “예전에는 베르사유 출신들은 무시당했다. 나도 촌뜨기 취급을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그리고는 “그런데 30여 년 전부터, 베르사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라고 덧붙였다. 그룹 에어의 멤버인 니콜라 고댕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뮤지션은 “우리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베르사유를 루이 14세와 그의 마차가 있는 동화 속 도시로 봤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베르사유로 돌아온다. “공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마법과도 같은 곳, 내 음악에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장소다.”

마크롱은 이런 영감 어린 묘사에 동의할 것이다. 그 역시 일요일마다 대통령 관저가 있는 랑테른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언젠가, “베르사유는 프랑스 역사에서 공화국이 위협받을 때 피신할 수 있는 장소”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마크롱이 베르사유에서 발견한 평온함이란, 그런 점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언론인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전국부동산연합, 2022년 6월 22일.
(2) ‘IFI, où vivent ceux qui paient l’impôt sur la fortune ? 재산새 납세자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Le Figaro>, Paris, 2020년 1월 13일.
(3) 31번 투표소, 라 수르스(La Source) 초등학교.
(4) Jean-Baptiste Malet, ‘Le système Pierre Rabhi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구세주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8월호, 한국어판 2018년 9월호.
(5) ‘Versailles, des collectifs de bénévoles citoyens pour les migrants 베르사유, 이주민들을 위한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집합소’, Institut Tribune socialiste, Paris, 2017년 6월.
(6) ‘Pourquoi, chrétiens, nous nous opposons à l’installation de camps de migrants 기독교도인 우리는 왜 난민수용소 설치에 반대하는가’, www.christianophobie.fr, 2016년 10월 12일.
(7) Yves Chiron, 『Histoire des traditionalistes 전통주의자들의 역사』, Tallandier, Pari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