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적 자본가 볼로레가 돈 버는 법
2021년 말, <CNews> 채널의 극우파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가 볼로레 그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지배층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기둥 격인 거대 언론 기업이 공개적으로 반동적인 의견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에리크 제무르와 뱅상 볼로레 2인조가 경제 지도층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의 항의와 반대를 자아냈던 옛 극우파와는 달리, 이 2인조는 세련되면서도 직선적인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다. 물론 부르주아 계급은 대개, 거침없이 정치 성향을 드러내 자본가들의 반감을 산 이 2인보다는 잠잠하다. 제무르-볼로레를 비판하되 피해를 보지 않기라는 쉬이 풀 수 없는 문제가 2022년 시작과 함께 프랑스 지도층에게 주어졌다.
1980~1990년대에는 ‘현금 유동성의 어린왕자’, 2000년대에는 ‘선견지명이 있는 대담한’ 기업가, 저명한 기업 인수가, ‘아프리카 정복자’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언론과 동료로부터 찬사를 받은 억만장자 뱅상 볼로레는 에리크 제무르처럼 오랜 시간 경제・정치・언론계를 맴돌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권좌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주변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바스, 에디티스, 카날 플뤼스, 프리스마, 라가르데르아셰트 등 미디어・출판 기업을 인수해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미디어 거물 뱅상 볼로레는, 공공서비스는 줄이고 출판기업을 늘리면서 세계화에 적응하려는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리크 제무르는 20년 전부터 권위주의적인 우파성향과 여성 혐오 경향을 드러내온 인물로, 파리 정치대학 출신의 <피가로 마가진> 기자였다. 그는 토요일 저녁 <프랑스 2채널> 방송, 볼로레가 인수하기 전의 <i-텔레 채널> 스튜디오, <M6>가 인수하기 전 <RTL> 방송 등 이미 여러 매스컴에 출연해 난민들을 ‘침략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폐쇄적이고 전통과 배타주의를 지지하는 그들로서는, ‘대규모 대체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토착 인구가 이주민들로 대체돼 소멸한다는 이론 말이다. 한데, 볼로레는 여러 시대를 거쳐 번성해온 가족 자본주의의 상징이 아니던가? 아셰트 그룹의 그라세 출판사에서 저서를 펴낸 수필가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억만장자 사업가인 볼로레가 사실은 엄청나게 관대하다며, 그 증거로 볼로레 소유의 출판사 에디티스에서 “오늘날까지도 극좌파의 가장 급진적인 창작물의 표본 일부를 출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레비는 이렇게 주장한다. “볼로레는 기독교 보수주의자다. 비난 전문가들은 이 두 단어의 결합만으로 그에게 지탄을 가한다. 하지만 볼로레는 극단주의자는 아니다.”(1)
그렇다면 볼로레는 어떤 인물일까? 볼로레 가문은 사실 브르타뉴가 아닌 파리 서부 출신의 가톨릭 부르주아 계급으로, 로스차일드 은행 총지배인을 거쳐 프랑스 대통령이 됐던 조르주 퐁피두, 리보 은행장을 역임한 에두아르 드리브, 거대 항공 그룹 다소(Dassault)를 소유한 다소 일가와 친분을 나눴다. 볼로레는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가족의 지인인 에드몽 드로스차일드, 앙투안 베른하임 등의 지원을 받아 기업 인수에 나서며 두각을 나타냈다. 볼로레의 일대기를 저술한 이들은 책에서(2) 볼로레의 출세비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돈도 지불하지 않고 주식 공개 매입하기, 기업을 분할하되 최대수익을 위해 최대주주 자격 유지하기, 자본 없이 자기 그룹 지휘하기 등이 볼로레의 출세의 비법이다.” 그렇다! 고작 27%의 지분으로 볼로레가 미디어 그룹 <비방디>를 차지한 적도 있지 않은가?
볼로레는 일찍이 정치・스포츠・연예계에서 활약한 사업가 베르나르 타피의 성공 신화를 재현했고, 1987년 TV 진행자 티에리 아르디송이 평가한 것처럼, ‘사회주의 가톨릭’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볼로레는 TV 화면 속에서는 마치 자신이 노조원들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척 시청자를 홀렸지만, 실상 가족 기업의 노조원 임금 삭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볼레로 그룹은 1993년, 베르나르 에상베르(로스차일드), 조르주 페브로(마르소), 클로드 베베아르(악사)의 개입으로 파산을 면했다. 화룡점정으로, 볼로레는 극우 학생운동 ‘옥시당’ 파벌의 옛 구성원이자 프랑스 경제인연합회(CNPF)의 옛 홍보국장인 미셸 칼자로니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칼자로니는 고객인 볼로레를 위해 자신의 기업 ‘DGM 콩세이’를 통해 파테, 부이그, 라자르, 아지스, 발루렉 등의 기업들의 주가 상승을 주도했다. 주식시장의 전설적 인물은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공포를 조장했을 것이다.
1998년 부이그 그룹의 지분을 차지하려 하면서, 볼로레는 마르탱 부이그와는 적대적인 관계가 됐다. 그러나 볼로레의 곁에는 지분 획득으로 시세차익의 1%를 얻은 알랭 밍크가 남아 있었다. 1997년 볼로레의 참모가 된 밍크는, 마르탱 부이그에 대한 주가 작전을 펼치도록 볼로레를 설득하는 등, 모든 재정 결정에 관여해왔다.
<르몽드> 운영 감독 위원회의 회장이기도 한 밍크는 볼로레에게 언론기업에 대한 관심을 불어넣었다. 미디어 기업 소유주는 정・재계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밍크는 <디렉트 8(현재 C8)> 채널 설립이라는 임무를 완수한 뒤, 2007년 무료 일간지 <마탱 플뤼스>를 발간해 빠르게 볼로레의 소유로 만들며 볼로레와 <르몽드> 사이의 결속을 다졌다.
사람들은 1980년대에 카날 플뤼스가 영화 지원정책을 유지한 것을 두고, “볼로레가 프랑스 영화계를 구원했다”라고 공로를 치하하기도 한다. 볼로레는 이 정책으로 예술가들의 마음을 얻었고, 기업가는 편집 개입권을 얻었다. 그가 우익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뉴스 채널 <i-텔레>를 다시 일으켜 세웠을 때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2016년, 진행자 장마크 모랑디니의 영입을 두고 긴 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랑디니는 현재 제무르, 조르당 바르델라(국민연합, RN)가 진행하는 <CNews>의 ‘파스 알라뤼’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또 다른 지원군인 TV 진행자 시릴 아누나는 지난 12월 자신의 첫 정치 방송 프로그램 ‘파스 아바바’를 제무르에 할애했는데, 상대측 출연자로는 볼로레 그룹 직원들이 출연했다. 덕분에 아누나는 황금 계약서를 얻었다. 그러나 볼로레를 비판하려면, <i-텔레> 기자 100여 명처럼 사직하거나, 비판적인 보도를 철저하게 배척하는 사장의 검열을 견뎌야 한다.
대통령에게 요트 빌려주기, 그 이상의 관계
전기 배터리 생산에서, 아프리카의 물류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한 볼로레 그룹은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장관의 주도로 설립된 프랑스 경영인 로비 그룹 ‘세르클 드 랭뒤스트리’에 소액의 기부금을 내며 알랭 마들랭 전 장관과 친분을 쌓았다.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볼로레가 사르코지에게 요트를 빌려줬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볼로레 그룹과 정계의 연결고리는 훨씬 더 촘촘하다. 우선, 에두아르 발라뒤르 내각에서 협력부 장관을 지낸 뒤 2000년도에 볼로레 그룹의 부회장으로 임명된 미셸 루생이 있고, 밍크가 ‘잘 관리되는’ 서브 프라임 경제에 대해 이야기했던 <디렉트 8> 채널의 프로그램 ‘아프리카의 소리’ 진행자도 있다.
또 다른 측근으로는 사회부 장관을 지냈다가 2003년 볼로레 그룹의 전략 위원으로 임명된 장 글라바니가 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미셸 바르니에, 장루이 보르로는 뱅상 볼로레의 아들이자 하바스 그룹의 대표인 야니크 볼로레의 결혼식에 초대받기도 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발레리 페크레스 역시 볼로레 그룹을 잘 안다. 부친인 도미니크 루가 과거, 계열사 볼로레 텔레콤을 경영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경우, 캥페르 전 시장이자 뱅상 볼로레의 30년 지기 친구인 사회당의 베르나르 푸아냥이 참모로 일하며 가교 역할을 했다. 2013년에는 푸아냥이 볼로레에게 ‘그랜드 골드’ 공로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다양한 정권 구성원들이 친분을 나누는 이 군단에서 하바스 그룹은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광고주들이 맡긴 돈을 카날 플뤼스나 <C8>, <CNews>에 투자하며 끝없는 이해관계 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다. 하바스 그룹의 부대표인 스테판 푹스는 사회당 소속의 전 장관들, 스트로스칸과 제롬 카위자크의 홍보 고문을 맡았다. 또한 그는 사회당 소속으로 얼마 전 <CNews>에 나와 “이민을 중단하라”고 주장한 마뉘엘 발스 전 총리와의 친분도 유지하고 있다. 정권의 비밀에 개입한 하바스 그룹은, 그룹 홍보 고문인 이스마엘 에믈리앙과 마야다 불로를 대통령실과 총리실에 보낸 것을 비롯해 다른 장관실에도 열댓 명의 그룹 구성원들을 배치했다. 하바스 월드와이드의 연구 책임자인 질 핑켈슈타인은 사회당의 싱크 탱크인 장조레스 재단의 사무국장을 맡아 좌파 정책을 업데이트한다.
수많은 측근 가운데서도 이달고 파리 시장은 뱅상 볼로레의 ‘사회주의’ 헌신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인물이다. 파리의 공유 자동차 서비스 ‘오토리브’에 볼로레 그룹의 전기차 ‘블루카’를 선택한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에게 경의를 표한 뱅상 볼로레는 2013년 “나는 반드시 안 이달고에게 투표하겠다”고 선언했다.(3) 하지만 가족 내부에서 정치 노선은 혼란스럽게 분열되고 있다. 야니크 볼로레가 2021년 5월 “게임은 시작됐다. 마크롱에 맞설 좌파 후보가 필요하다”(4)라며 파리 시장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의 아버지는 제무르를 지지하고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때로는 장관들의 대립을 이용하며(‘전진하는 공화국!’당 소속 마를렌 시아파 시민권 담당 장관과 엘리자베트 모레노 양성평등・다양성・기회평등 담당 장관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설전을 벌였다), 때때로 엘리제궁의 참모가, 자칭 “100% 볼로레 사람”이라는 파스칼 프로드의 방송에 생방송 문자 메시지로 참여하는 것을 거짓으로 묵인하면서, ‘볼로레-제무르주의’에 훨씬 잘 적응하고 있다.
언론이라는 무대는 마련됐다. 시청자-유권자들은 다음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마크롱 후보 아니면 반동적 자본가 볼로레와 외국인 혐오주의 언론인 제무르가 연합한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모두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시대에 최적화된 후보다.
글·마리 베닐드 Marie Bénilde
기자. 저서로 『On achète bien les cerveaux. La publicité et les médias 두뇌를 사다. 광고와 미디어』(Raisons d’agir, Paris, 2007)가 있다.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Le Point>, Paris, 2021년 9월 23일.
(2) Nicolas Cori, Muriel Gremillet, 『Vincent Bolloré, ange ou démon 뱅상 볼로레, 천사인가 악마인가?』, Hugo Doc, Paris, 2008.
(3) <Le Figaro>, Paris, 2013년 9월 14~15일.
(4) <Paris Match>, Paris, 2021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