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을
강제이주를 거부하는 중국 농민들
폐허가 된 낡은 집들 사이, 구불구불한 흙길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인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보리스 스바츠만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발을 옮길 때마다 나는 벽돌과 기와가 부서지는 소리뿐이다. 무성히 자란 풀들이 무너져 내린 벽체와 지붕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마을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자연이 돌아오고 있다.
2008년 지역 당국의 명령에 따라 광저우 주민들은 쫓겨났고 그들의 집은 철거됐다. 사회학자이자 중국학자이며 사진작가인 보리스 스바츠만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화 정책 때문에 토지수용 대상이 된 지역 주민들을 만나왔다.(1) 여러 섬들로 이뤄진 광저우는 농지를 흡수하며 확장하고 있다. 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기면서 갑자기 도시인이 된다. 그들이 땅을 떠난 것이 아니라, 도시가 그들을 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시는 원주민인 농민들을 밀어낸다.
무분별한 도시화사업, 부자들의 주머니만 불려
보리스 스바츠만은 30년 전부터 매년 약 500만 명의 농민들이 토지 강제수용으로 피해를 입고 있으며, 이들은 결국 고향에서 쫓겨난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에는 농민이 중국인의 85%였으나, 오늘날에는 40%도 되지 않는다. 도시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도 도로, 공장단지, 주택사업 등 각종 도시화 사업을 무분별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2) 토지 면적이 프랑스의 약 18배에 달하는 중국 전역에 불고 있는 개발 광풍은 기득권층의 부만 늘려주고 있다. 광저우의 한 주민은 “광저우뿐만이 아니다. 중국 전 지역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보리스 스바츠만은 고향마을로 되돌아와 불법거주 중인 몇몇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수많은 참상에 대한 증언을 직접 들었다. 그는 2011~2017년 5번에 걸쳐 중국을 방문해 폭력배나 공안의 감시를 피해 주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자기검열 없는 허심탄회한 심정을 기록하려 애썼다. 인터뷰는 꽤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뷰 중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격분이 섞인 거친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스바츠만은 150시간에 달하는 총 촬영분 중 71분을 편집한 후 상영해, 공사장 소음에 묻혀가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줬다.(3)
광저우는 두 개의 물줄기 사이에 놓인 작은 섬 같다. 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 환상을 품은 투자가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개발업자들은 광저우를 ‘생태공원’으로 만들려 한다. 주민들은 이 멋진 계획에서 장애물일 뿐이다. 그러니 이들을 먼저 퇴거시켜야 한다. 물론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강제이주를 시킬 다양한 수단이 있지만, 이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무려 13대에 걸쳐 살아온 집이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뿌리는 깊다. 상황이 이런데도 토지수용을 당한 주민들이 이주비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역 당국은 철거민들에게 할당된 아파트를 시공 원가, 시세의 약 1/5에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금 없이는 입주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행복과 기쁨을 가득 안고 새 보금자리로’라는 희망찬 선전문구가 걸려있지만, 마을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거대한 아파트 두 채는 주민들의 사회관계망을 파괴하고 있다.
주민들이 죽고 다쳤음에도, ‘불법은 없었다’
결국 퇴거 명령이 떨어졌다. 한 주민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제 물러나야 합니다!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수천 명의 경찰과 경찰차들까지 들어와 쫓아내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어요?”라고 소리쳤다. 여러 증언들을 조합해보면, 주민들이 강제이주를 당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주민들은 공손한 ‘이주 요청’을 받는다.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겁박, 욕설, 위협, 폭력이 이어진다. 그다음에는 단수, 단전을 당한다. 그리고 결국 무지막지한 굴삭기가 들이닥친다. ‘처형’의 날이 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말 북경에서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무지막지한 부동산 개발 사업들이 대거 진행됐다.(4) 학교와 집들이 속속 철거되고 주민들은 ‘이삿짐 보관. 10동 1004호’라는 식의 통보를 받는다. 시달림 끝에, 대부분 이 통보에 굴복한다. 가족들이 흩어지는 경우도 있다. 남편은 고향에 남고, 아내는 자녀들의 취학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하는 경우다.
주민들은 ‘안에서부터 곯은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호소한다. 단지 정부의 독단적인 명령에 따라, 사원과 유적지를 ‘불법건축물’로 치부해 부수고, 그 자리에 고층건물을 세우는 것이 합법인 나라에서 말이다. 이미 미래의 ‘국제생태공원’을 내려다보는 오성급 호텔이 당당하게 들어섰다. 한 노인은 “정부는 우리의 뿌리를 뽑아내고, 우리의 기억을 삭제해 혈통을 끊으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라고 한탄한다. 그는 철거과정에서 심각한 상해를 입어 8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중국 당국은 주민 ‘입단속’에 혈안
그의 말처럼, 마을도 원래 없었던 것 같다. 존재한 적이 없는 마을은 사라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없었던 마을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 어떤 보상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건전한 조화, 효과적인 실용주의’를 외치는 슬로건이 뻔뻔하게 걸려있다. 중국 지역 당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입단속’이다. 토지 수용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철저히 억압하고 통제하고 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수십억 중국 인민이 봉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민이 연대한다고 해도, 그 매듭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마을에서 멸족의 위기를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보금자리가 파괴되는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뿌리가 뽑히고 결국 쫓겨나지 않았던가.
당국은 권력 행사를 합법화하는 계략들을 세우고, 도시개발 명령을 준수하려면 퇴거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시진핑 주석은 “가장 중요한 인권은 바로 개발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보리스 스바츠만의 다큐멘터리는 농민이 겪는 부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할당받은 토지에서 집을 짓거나 농사를 할 권리만 가지고 있다. 즉, 토지의 소유권이 없어서, 당연히 그 토지를 팔 수도 없다.
토지의 법적 소유자는 정부 당국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은 ‘토지수용’ 절차 없이도 합법적으로 토지를 몰수할 수 있다. 이렇게 토지를 몰수 당한 피해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상부 기관에 청원서를 제출한다.(5) 하지만 이런 시도조차 하기 전에 진압과정에서 폭력을 당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광저우시 청원 판결소에 탄원서를 제출한 한 주민은 다음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
‘이주를 거부한 광저우 주민들이 수차례 탄원서를 제출한 바, 광저우 토지 수용의 적법성을 검토했다. 그 결과 보상과 이주 절차는 합법적이었으며 이 내용은 국토 자원부에서 확인했다.
주민 7명이 현장에서 난동을 일으켜 업무방해죄로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사망한 주민이 있었는데, 부검 결과 사인이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즉, 토지수용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다.
여전히 61가구가 토지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 이 불법 행위는 광저우의 ‘국제 생태 섬’ 건설을 심각하게 지연시키고 있다. 7일 이내에 이주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수순에 따라 철거를 진행할 것이다.’
이제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야만 한다. 설혹 보상금을 받고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면, 감옥처럼 획일적으로 뚫린 그곳 창문을 통해, 생태공원을 훤히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글·필리프 파토 셀레리에 Philippe Pataud Célérier
저널리스트 겸 작가, 현대예술 전문가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Boris Svartzman, ‘Le bond en ville : résistance et transition d’un village chinois face à lurbanisation 도시의 부상 : 도시화에 대한 중국 마을의 저항과 변화’ <Perspective chinoises>, 2013/1, 홍콩, 2013년.
(2) ‘Shanghaï sans toits ni lois 집도 법도 없는 상하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04년 3월호. Ren Wianowen, 『Sur le balcon 발코니에서』 Brigitte Duzwn 번역, L’Asiathèque, Paris, 2021년.
(3) Boris Zvartman, ‘Guanzhou, une nouvelle ère, 71 minutes 광저우, 새 시대, 71분’, 2022년 1월 5일 상영.
(4) Philippe Rochot, Sylcain Giaume, ‘Destruction du Vieux Pékin 베이징 구도심의 파괴’, <France 2>, Ina, 2002년 7월 22일.
(5) Isabelle Thireau, ‘Les cahiers de doléances du peuple chinois 중국 인민의 탄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