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불태우는 불꽃들
<7분> - 마엘 포에지
철제 구조물, 팔레트, 다양한 색상의 실을 감는 실패들은 한 섬유공장의 휴게실을 묘사한다. 무대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관객석을 배치한 이런 연출은, 비외 콜롱비에(Vieux Colombier) 극장의 아늑한 분위기를 파괴한다. 그곳에 1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 중 가장 나이 어린 노동자는 아직 10대로 보인다. 그들은 그들의 대표인 블랑슈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들이 일하는 회사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섬유기업 피카르&로슈. 30년을 근무한 최고 연장자가 있는 회사다. 피카르&로슈는 건재했고, 이 회사의 노동자들도 회사를 신뢰했다.
노동자들의 대표 블랑슈는 회사의 신임 사장단인 ‘넥타이 부대들’과 벌써 4시간째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공장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현재 섬유산업은 인도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이곳에서 인건비는 턱없이 낮고 이윤도 마찬가지다. 벽에 고정된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인다. 그 시간에 협상의 윤곽도 드러날 것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블랑슈가 대표 역할을 잘 해낼까? 걱정과 의구심이 앞선다. 그녀가 혼자만 살겠다고 했다면? 드디어 갑자기 블랑슈가 등장하고 협상안을 발표하는데, 투표가 필요한 사안이다. 협상안의 내용은, 7분의 휴식시간을 포기하는 대신 노동자 250명 전원이 일자리와 급여를 지키는 것이다. 환호가 터져 나온다. 노동자들은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한 데 만족해 협상안을 받아들인다. 단 한 사람, 블랑슈만 제외하고…
이탈리아의 작가 스테파노 마시니는 요즘 작품이 가장 많이 번역되고 무대에 가장 많이 올라가는 작가들 중 하나로(2015년에 쓴 희곡인 <리먼 트릴로지>도 큰 성공을 거뒀다), 그의 작품 <7분>은 작은 보석처럼 빛난다. 2019년 2월 낭시에서 미셸 디딤은 이 작품을 걸출한 여성 성악가들과 함께 오페라로 제작했다. 최근 디종-부르고뉴-CDN 극장 감독으로 임명된 마엘 포에지의 연출은 이 작품에 굉장한 타격감을 불어넣었다. 사회 투쟁, 특히 여성의 투쟁을 다루는 레퍼토리는 매우 빈약한데, <7분>은 이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마시니는 르자비(Lejaby)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착안해 작품을 구상했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구성방식도 참조했다.
이 영화에서도 단 한 명이 내는 반대의 목소리가 합의를 깨뜨린다. ‘다르게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블랑슈가 250명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하루 7분씩 휴식시간을 늘려주면, 신임 사장단이 챙기게 될 수백 시간을 동료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관점의 변화다. <7분>은 구체적 상황에서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서로의 생각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은 모두 위태롭다. 터키를 떠나온 마타브, 여러 차례 해고당한 적이 있는 로렌… 그들이 순응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착취의 과정이 전개되자,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녀들은 불안에 떤다. 마엘 포에지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투쟁 자체가 아니다. 투쟁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긴 시간을 함께하는 여정에는 투쟁을 실현하느냐 마느냐라는 조건이 붙는 것이다. 이 작품은 모든 형태의 내면화된 복종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운다.
<불!> - 나데주 프뤼냐르
<불!>(‘이것은 파이프도 아니고 카를 마르크스 강독 입문도 아니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에서 나데주 프뤼냐르는 불복종과 저항에 대한 성찰을 게릴라와 무장투쟁까지 밀고 나간다. 작가이자 배우이며 행위예술가인 프뤼냐르의 최신작은 일레 극장, 몽뤼송 국립연극센터, 파리 야생고원(Plateaux sauvages à Paris)이 ‘불바다(Grand brasier)’라는 주제로 의뢰한 것이다. 여기에 초청받은 예술가들은 작은 형상들로 현대사회의 마녀 형상을 그려냈다.
나데주 프뤼냐르가 형상화한 마녀는 서독의 극좌파 무장단체 적군파(RAF)를 이끈 울리케 마인호프다. 독일 당국은 1976년 5월 9일 경비가 삼엄한 슈투트가르트 스탐하임 형무소에서 그녀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지지자들(과 장례 행렬을 이룬 4,000명의 사람들)은 그녀가 ‘살해당했다’고 봤다. 마녀의 형상에는 울리케 마인호프를 비롯해 ‘1970~1980년대 서유럽에서 혁명 무장 단체에 가담한 여성 인물들’이 모두 들어 있다. 프랑스 여성들로는 비밀 테러리스트 단체 악시옹 디렉트(Action Directe, 직접 행동)의 일원이었던 나탈리 메니공과 조엘 오브롱이 있다.
이 여배우의 퍼포먼스는 기관단총 위에 올린 철제 피아노에 프로젝터를 놓고 시작된다. 기관단총은 극단 제네릭 바푀르 소속 피에르 베르텔로와 캐시 아브람의 아이디어로, 영화 <바더 마인호프(La bande à Baader)>(<인공위성 –TF1>, 1975, 피에르 앙드레 부탕 & 장 아셀메이에)에서 인용한 것이며, 무대장식과 공연의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됐다. 이 총들은 역사를 재구성하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구체적인 요소다. 이외에도 나데주 프뤼냐르는 무장 세력의 문제 제기와 혁명에의 호소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끈다. 즉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전혀 관심이 없고, 언어와 시의 숨결을 조탁하는 극히 개인적이고 강인한 하나의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군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지배 체제와, 민중을 지배하는 모든 국가 및 비국가적 권력 기구를 쳐부숴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혁명이고 무장 투쟁이기 때문이다.” 울리케 마인호프의 이 지령에 따라 그녀는 이 상황을 악마화하는 대신 맥락을 새롭게 살펴보라고 권유하며, 혁명을 생각하는 새로운 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추구하는 것으로 응답한다. 그녀는 분노와 불복종의 노래(르노 그레미용의 피아노 악보)로 응답한다.
이 노래는 “세상의 폭력을 좌절시키는 언어의 위력과 무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주를 겨누는 유일한 무기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마녀의 시”다. 또한 그녀는 평온하지 않은 사랑을 고문한다. “내 사랑, 그대는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원하는가? 내가 그대를 불가능한 문장들로 태워버리길 원하는가? 내가 야수의 심리 상태로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외치길 바라는가?”
자신을 태우고 불사르며 그녀는 이 구절들을 외친다. “침대가 불타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마인호프가 완전히 고립돼 있을 때 쓴 유명한 시 <죽음의 통로에서 쓴 편지>(1972)의 한 구절 “그대의 뇌가 터지는 것을 느껴라”에서 영감을 얻어 쓴 다음의 시로 대답한다.
그대는 안에서부터 다 타버린 것처럼 느낀다
출구 없는 분노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지 더위에 떨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왜 떨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고
단어의 뜻을 기억할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첫 번째 줄의 시작을 기억할 수 없고
시공간이 서로 뒤얽힌 것처럼 느낀다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뒤틀린 얼음의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다
밤을 느낀다
혼자다. 낮이 도망치고 밤이 내리는 것을 연기하고 불꽃과 별이 따닥따닥 소리를 내게 한다. 나데주 프뤼냐르 자신이 사랑의 노래다. 날카롭고 불안한 이 시는 공공장소와 거리에서 공연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으로, 이 시를 통해 여배우는 자신을 불태우고 또 우리를 불태운다.
글·마리나 다 실바 Marina Da Silva
연극평론가
번역·조민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