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애매한 ‘잡초 뽑기’ 기준

2022-11-30     에리크 뒤세르 | 문학 비평가

‘Désherber’는 ‘잡초를 뽑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다. 동의어로 ‘Sarcler’가 있다. 『라루스 사전』에 의하면, 이 단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뜻도 있다. “도서관에서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장서를 제적하다”가 그것이다. 도서관 장서 제적은 항상 존재했던 관행이다. 1908년, 작가이자 도서관 전문가인 외젠 모렐(1869~1934)는 효율성 제고와 비용 감소라는 외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장서 제적을 장려했다. “장서량이 늘수록 책을 찾는 이동거리도 늘고, 필요한 서가와 건물도 늘어난다. 또한 건물 관리 및 청소, 도서의 분류 및 색인화, 서가 재구성 등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비용도 늘어난다.”(1)

 

부족한 건 책이 아니라 ‘빈 공간’

최근 도서관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장서 제적은 이제 공식적으로 수립된 계획 및 기준에 근거해 진행된다. 과거에는 주로 객관적으로 시대에 뒤처진 책들을 폐지로 팔거나, 열람 빈도가 낮은 책들을 보존 서고로 옮기는 것이 장서 제적의 주된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서가 비우기’는 공공재 분산의 성격을 지닌다. 공공 도서관의 경우 특히 그렇다.

도서관과 미디어도서관이 출판물과 시청각 자료의 무분별한 과잉생산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출판물 범람으로 출판계와 도서관은 집단 질식사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이 덕분에 출판계는 2019년 매출액 9% 상승을 기록했다. 오래전부터 매년 문학 시즌(프랑스에서 신규 문학작품을 대량 발표하는 8월말~11월초를 가리킴-역주)마다 약 600편의 신규 소설이 출판됐다. 최근 종잇값 인상 등으로 출판 ‘절제’ 현상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가을 498편의 소설(에세이는 78편)이 출판됐다. 놀랍게도 이것이 20년 만에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문학 시즌 외에 출판되는 다른 분야의 책들도 출판물 범람에 합세한다.

도서관은 최신 자료 확보를 원한다. 그러려면, 빈 공간이 더 필요하다. ‘제3의 공간’(2) 개념이 널리 확산되고 더 나아가 제도화되면서 도서관은 이제 새로운 주문을 받고 있다. ‘단골 이용자’와 더 가까워지고, 이용자의 필요와 기대에 더욱 부응하려는 노력을 통해 격식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고등 정보과학 도서관학 학교(ENSSIB)는 이처럼 도서관이 독서를 통한 지식 습득을 강요하는 대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개방된 환대의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에서 도입된 프랑스의 장서 제적 시스템

이런 주문에 부응하고자, 도서관은 열심히 도서를 제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책, 즉 ‘잡초’를 서가에서 뽑는 것이다. 그런데 제적할 도서를 선별하는 정당한 기준은 무엇인가? 2020년 개정된 도서관 사서 직업윤리 강령은 “모든 도서관 이용자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고 “자원, 장서, 서비스의 시의성 보장”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3) 접근이 쉽고, 독자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서는 베스트셀러나 실용서다. 

프랑스에서 상용되는 장서 제적 체계는 미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프랑스어로 ‘IOUPI’라고 불리는 이 방법론은 자기 직업의 새로운 의미를 찾던 도서관 사서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IOUPI는 부정확한(Incorrect) 또는 허위 정보, 통상적인(Ordinaire) 또는 피상적인, 훼손된(Usé), 시대에 뒤떨어진(Périmé), 부적절한(Inadéquat) 자료를 뜻하는 약어다. 이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도서관 장서 제적. 실용적인 장서 점검 가이드』(4)는 도서관 사서의 새로운 직업 신조를 제시했다. 주로 통계자료에 의존해 공공 재정으로 확보한 도서들을 공공 도서관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서관 사서의 고전적인 역할은,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책을 읽을 기회를 제공해, 독자들의 ‘비판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설립된 시립 도서관의 목표도 ‘대중 교육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시장이 선동하는 요구에 순응하는 것은 도서관 사서의 본래 임무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제 도서관 사서의 임무는 ‘진화’했다. 도서관 사서 직업윤리 강령 중 “비판 정신 발달”을 장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도서관 이용자 응대에 관한 문단의 끝에서 두 번째 목록, “자기 개발” 장려와 같은 문장에 등장하는 것이 그 증거다. 시립 및 도립 도서관은 다른 많은 기관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이라는 필수적인 요구를 피해갈 수 없다. 수익성을 보장하려면 이용자와 도서대출 수가 늘고 도서관이 전반적으로 활발히 운영돼야 한다.

 

노벨상 작품 대신 최신 소설이 살아남을 가능성

도서관의 대대적인 장서 제적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 번째는 장서가 (영속성이 가장 낮은) 베스트셀러와 일시적으로 소소하게나마 성공을 거둔 책들에 국한되는 현상이다. 최근 출판된 이류 작가의 작품이 십 년 전에 출판된 된 ‘노벨상’ 수상 작품보다 서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일례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작품들은, 여전히 서가 한 편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 아르노 슈미트와 같은 문학 거장들과, 장르는 다르지만 바바라 핌과 같은 뛰어난 작가의 작품들은 일시적인 인기 도서들보다 서고에서 추방당할 위험이 더 높다. 결국 잘 팔리고, 쉽고, 주류 이데올로기를 담은 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결과는 ‘고전’에 대한 배척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고전이 지루하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IOUPI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난해한 책들을 제적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웅장한 문학적 묘사가 돋보이는 조르주 뒤아멜(『La Chronique des Pasquier, 파스키에 가(家) 연대기』), 로제 마르탱 뒤 가르(『Les Thibaults, 티보 가(家) 사람들』)의 전간기 소설도 서가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장서 제적에 새롭게 적용된 조치들은 도서관에 이로운 점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조치들로 명백한 혜택을 누리는 주체도 있다. 이제 장서 제적은 관련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2006년 제정된 공공법인 소유물에 관한 법(2006년 4월 21일자 행정명령 n° 2006-460)은 진부한 현대 출판물을 “양도 가능한 일반 장서”로 간주하고 판매를 허용한다. 반면 “희귀하고 값진 고서”는 공유재산으로 규정해(L2112-1조) 양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법은 2006년 이후 다양한 조정과 수정을 거쳤지만 주요 골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중고서적 전문 민간 기업들은 사람들이 여전히 찾는 책들을 도서관으로부터 구매 혹은 인수한다. ‘용도변경’법에 따르면 이런 도서들을 판매할 경우 도서관 제적 도서임을 표시해야 한다. 

 

‘영감을 주는 모델’ 르시클리브르

하지만 민간 기업들은 도서관 직인이 찍힌 그대로 서적을 판매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제적된 도서를 판매하는 주체가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일부 중고서적 판매 민간 기업은 도서관 관리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인정에 호소하고 친환경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이다. 중고책 사이트 ‘르시클리브르(Recyclivre)’가 대표적인 예다. ‘가정방문 도서수거 무료 서비스’를 표방하며 2008년 설립된 르시클리브르는 상속받은 집과 아파트에 쌓인 책들을 처분하고 싶은 상속인들과 도서관의 장서 제적 담당자들을 겨냥했다. 

직원 수 30명의 르시클리브르는 ‘아마존에 대한 연대적 대안’을 자처한다. 홈페이지를 보면 ‘나무 6만 425그루 보존’(파쇄를 면한 도서 권수를 신규 인쇄 권수와 동일하게 간주한 수치)을 자찬하고 도서 판매액의 10%를 문맹퇴치 단체에 기부한다고 강조한다. 설립자에 따르면 르시클리브르는 2020년 9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우리는 도서를 분류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알고리즘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판매가능성이 높은 책과 절대 팔리지 않을 책 그리고 팔리긴 하겠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책으로 분류한다.”(5) 아마존과 모목스(Momox, 독일 온라인 중고용품 판매 대행 사이트-역주) 역시 판매가능성이 낮을수록 노출도를 줄이는 상품 분류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공동체가 창출한 부의 활용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연대경제의 시각에서 보면 르시클리브르는 매력적인 기업이다. 르시클리브르는 친환경 기업으로 글로벌 환경 이니셔티브 ‘지구를 위한 1% 기부(1% for the Planet, 일명 지구세)’에 동참하며 탄소 배출량 감소를 추구한다. ‘프랑스 최초 온라인 중고서적 판매 전문 기업’을 자처하는 르시클리브르는 또한 약 150만 권의 도서가 보관된 창고를 관리하는 직원으로 장애인을 고용해 장애인의 사회편입에도 기여한다. 르시클리브르 설립자가 블로그 ‘e-Recycle’에서 밝힌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인간과 지구를 위해 기여한다”라는 모토는 분명 ‘영감을 주는’ 모델이다.

 

“도서관은 우리의 마지막 이글루”

중고서적들은, 책의 상태를 고려하면 판매가가 저렴하지는 않다.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인 온라인 서점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이 극도로 경쟁적인 시장에서 르시클리브르는 승자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르시클리브르의 “비즈니스 모델”은 ‘비즈니스 어워드’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참고 수 90만회, 7곳의 지역 대리점과 스페인 지사는 ‘지식을 공유’(르시클리브르의 슬로건)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 존재함을 입증했다. 특히 이 ‘공유’를 통해 숲을 보존하고 문맹자도 도울 수 있다고 말이다. 위대한 원칙은 항상 기업가들을 미화했다. 

하지만 납세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는 “이 광기어린 세상에서 도서관은 세상의 냉기어린 무관심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이글루다”(6)라는 글을 남겼다. 이제 도서관의 포화상태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찾을 때가 온 듯하다. 교도소, 초·중·고등학교, 프랑스어사용 개도국, 프랑스어 학습 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공평한 해결책과 완벽한 순환 경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공 독서 관계자들이 범람하는 출판물 속에서 도서들을 선별해야 하고 또 선별된 도서들을 운송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 비용은 누가 지불할 것인가? 

플라톤과 키케로의 책을 번역해 출판했다가 1546년 8월 3일 모베르 광장에서 자신의 책들과 함께 화형당한 인본주의자 에티엔 돌레에서 철학자 겸 작가로 책을 소중히 여겼던 움베르토 에코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식 전수자들은 잘못된 이유로 정당화되고 잘못된 방식으로 시행중인 현행 도서관 장서 제적 체계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글·에리크 뒤세르 Éric Dussert
문학 비평가. 대표적인 저서로 『Cachées par la forêt, 138 femmes de lettres oubliées, 숲에 가려져 잊혀진 138인의 여성 문학가』(La table ronde, Paris, 2018)가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Eugène Morel, 『Bibliothèques. Essai sur le développement des bibliothèques publiques et de la librairie dans les deux mondes, 도서관. 두 세계의 공공 도서관과 서점 발전에 대한 에세이』, Paris, Mercure de France, 1908-1909, 2 vol.
(2) Éric Dussert & Cristina Ion, ‘Bonne sieste à la bibliothèque, 도서관에서의 달콤한 휴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6월.
(3) 프랑스도서관협회(ABF) 홈페이지 참조, abf.asso.fr
(4) Claudine Lieber 외 Françoise Gaudet, 『Désherber en bibliothèques. Manuel pratique de révision des collections, 도서관 장서 제적. 실용적인 장서 점검 가이드』, Éditions du Cercle de la librairie, Paris, 2013 (제3판).
(5) Dirigeant.fr에 게재된 인터뷰, 2021년 5월 24일.
(6) Sandor Maraï, 『Journal. Les années d’exil : 1949-1967, 1949~1967년 추방시절의 일기』, Albin Michel, Pari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