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노니머스’, 가면의 저항

Dossier 소통의 정치사회학

2012-02-13     펠릭스 스탈더

사이버 액티비즘, 키치적 급진성

지난 1월 18일,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다수의 미국 웹사이트들이 ‘온라인저작권침해금지법안’(SOPA)에 반대해 하루 동안 사이트를 폐쇄했다. 문화산업계의 로비에 따라 SOPA는 온라인 자료 불법 공유를 제재한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온라인 검열을 시행하려고 한다. 이튿날 미국연방수사국(FBI)이 ‘메가업로드’라는 파일 공유 사이트를 폐쇄하자 익명의 집단들이 응징에 나섰다. 백악관 홈페이지와 미국 사법부, 유니버설뮤직 홈페이지가 해킹 공격을 받았다. 미국 뉴욕, 이집트 카이로, 튀니지 등 온라인상으로 엮인 네트워크가 거리집회를 열며 새로운 형태의 시위문화가 등장했다. 새로운 시위문화를 탄생시킨 이들은 자신이 일궈낸 힘의 한계와 위력을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한 해 동안 ‘어노니머스’(Anonymous·익명)라는 이름을 내세워 정부와 다국적기업들을 상대로 고도의 효율적인 디지털 공격이 연달아 발생했다. 모두 ‘표현의 자유’와 ‘사회정의’라는 명목하에 행해졌다. 대표적으로 아르셀로르미탈 벨기에가 제철소 2곳을 폐쇄함에 따라 이에 대한 항의로 지난 1월 발생한 해킹, 미국 민간 정보분석기업 스트래퍼에 대한 해킹으로 수만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사건, 지난해 8월 시리아 국방부 사이트 해킹, 그보다 앞선 6월 어노니머스 소속이라는 혐의를 받는 용의자 3명 검거에 대한 스페인 경찰 사이트 해킹 등이 있다.

어노니머스가 엘리트 해커 집단이라는 음모론부터 무지한 십대들로 이루어진 어중이떠중이 무리라는 말도 나왔다. 이들이 심각한 사이버테러 위협을 초래한다는 의견부터 미숙한 장난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모두 틀렸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런 의견들이 하나같이 놓친 부분이 있다. 바로 어노니머스가 하나의 조직이나 네트워트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먹고 사는 여러 무리라는 점이다.

어노니머스는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나, 2011년부터 중동 지역과 유럽, 미국에서 확산되는 광범위한 시위운동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일반적인 정치제도와 이런 시위운동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상반된 조직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정치제도 아래 조직은 계급으로 나뉘고, 선거라는 유권자의 위임 절차를 통해 정치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부정부패와 편파성, 정경유착은 정당성을 약화했다. 반면 시위운동들은 의도적으로 뚜렷한 지도자를 배제한 조직으로, 대의제를 거부하고 구체적인 사안들에 직접 참여한다. 이렇게 다양성이 풍부한 조직 안에서는 공식화된 다수제에 의한 것이 아닌, 그때그때 개략적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미 뿌리를 내린 정치제도 측면에서는, 새로운 조직들이 내세운 이런 형식은 거의 이해할 수가 없다.

이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대응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 기존 정치 체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 당혹시키는 형식

‘사회적 무리’란 규범과 수단을 통해 수평적 조직화를 이루며, 공동의 노력을 추구하는 독립적인 개인들로 구성된다.(1) 스웨덴 해적당 창립자 리크 팔크빈게는 이렇게 강조했다. “모든 사람은 자발적 의지를 지녔기 때문에 그들을 이끄는 방법은 그들에게 소속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무리에 속한 개개인은 모두 자발적 참가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중시하는 사안에 대해 해당 집단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합류한다. 그 안에서 그룹을 이끄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2) 따라서 무리의 원동력은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와 여기저기 산재된 독립적인 힘을 끌어모으기 위해 얼마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무리가 형성되는 과정은 항상 동일하다. 행동 개시에 대한 요구가 있은 뒤 즉각적인 행동 개시가 가능하도록 뒷받침하는 자원들이 있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 전문가 클레이 셔키는 조직화되지 않은 이런 운동이 형성되기 위해 동시에 충족돼야 하는 세 가지 요건을 내세웠다. △요구의 가능성 △수단 △타협이다. 가능성이란 행동 개시에 대한 요구다. 이런 요구는 일정한 수의 대중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히 달성 가능한 것으로 보여야 한다.(3) 예를 들어 정부의 검열 조처에 항의해 정부기관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것이 있다. 온라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들, 그중에서도 ‘스타워즈’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LOIC(Low Orbit Ion Cannon)라는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산발적 행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타협이란 한 개인이 무리의 공동 공간에 참가할 때 수용해야 하는 조건들을 가리킨다.

체계 없이 모여 항의를 조직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 가지 요건은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집단들도 확대되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아니면 흩어져 무너질 수도 있다. 이런 무리들이 일시적이고 방향성도 없는 어중이떠중이가 되지 않으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요건이 더 충족돼야 한다. 바로 ‘공동의 지향점’이다. 문화평론가 브라이언 홈스는 이를 “산재된 단체나 조직의 참가자들이 서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공유하고, 그 안에서 서로가 상대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것”이라 설명했다.(4) ‘어노니머스’야말로 이에 들어맞는 것이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단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먹고 살며, 포괄적 형태의 슬로건과 시각적 요소, 문화적 특징을 포함한다.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누구나 어노니머스에 합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노니머스라는 역사가 쌓아온, 뒤틀린 유머와 반권위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 대변되는 특수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진정 어노니머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교화’를 위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5월에 열린 파리 주요 8개국(G8) 회담 중에 재차 강조했듯, 무분별함이 넘치는 인터넷의 이면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중 어노니머스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2003년에 만들어진 ‘4chan.org’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인데, 기술적으로는 간단하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포럼이다.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으므로, 온라인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어노니머스인 것이다. 이 사이트는 익명 게시물 작성을 권장할 뿐 아니라 가장 활성화된 포럼 ‘/b/’는 어떤 규칙이나 제재도 없다. 이 사이트는 메모리가 없는데, 즉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게시물은 자동으로 뒤로 밀려 삭제되고, 이에 걸리는 시간은 채 몇 분이 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다. 유일한 메모리는 바로 방문자의 기억이며, 따라서 쉽게 기억에 남지 않거나 반복적이지 못한 것들은 바로 사라진다.

뒤틀린 유머, 반권위, 표현의 자유

게시물이 묻히지 않도록, 행동을 촉구하는 수많이 게시물이 매일같이 올라온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의 한 게시물을 훼손시키자는 촉구안이 올라오고 일정 수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면 무리지어 목표물을 공격한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반복과 적극적인 참여가 개인성, 출처나 원인 따위는 중요치 않게 여기는 하나의 문화를 형성했다. 컴퓨터광 문화연구 인류학자인 가브리엘라 콜만이 한 해커에게 들은 표현을 인용하면, “치밀하게 조직화된 조롱”의 문화라는 것이다.(5) 익명의 인물들은 5년 만에 ‘어노니머스’라는 집단적 이름을 얻었다. 익명성을 토대로 한 이들의 극단적인 행태는, 아동 포르노 제재와 같이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모든 권력에 대한 불신과 맥을 같이한다.

2008년 겨울 사이언톨로지교를 공격한 인터넷 사용자들이 어노니머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해커들이 이 종파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이미 10여 년 전이다. 해커들은 사이언톨로지교의 탈세와 조작을 고발했고, 사이언톨로지교는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불리한 정보를 은폐하고 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했다. 어노니머스들이 개입한 것은 사이언톨로지교가 내부 고위 관계자인 배우 톰 크루즈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담은 비디오의 인터넷 유포를 막으려 했을 때이다. 사이언톨로지교의 소송에 직면한 어노니머스들은 진지한 분위기를 담은 비디오를 통해 이 종파의 파괴를 예고했다.
뒤이은 토론이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고, 그 결과 실현 가능한 목표와 수단, 타협이 갖춰진 움직임이 형성됐다. 인터넷상의 행동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집회도 조직됐다. 2008년 2월 18일 북미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90개 도시에서 시위가 있었다. 사이언톨로지교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16세기 영국 가톨릭교 음모에 가담했던 가이 포크스의 유명한 가면을 착용했는데, 이는 독재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앨런 무어의 만화 <브이포벤데타>(V for Vendetta)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최초로 어노니머스의 주도자들이 인터넷이 아닌 실제 공간에서 대면했고, 기존 시위운동가들과도 연계하게 되었다.

브이포벤데타, 마침내 거리로

그 뒤 2년 동안 이 집회시위가 어노니머스의 주요 정치 목표로 자리잡았고, 2010년 9월에는 ‘보복작전’(Operation Payback)이라는 또 다른 무리가 형성됐다. 보복작전은 파일 공유 사이트 ‘더파이럿베이’(The Pirate Bay)를 공격하는 활동을 하는 인도기업 에어플렉스소프트웨어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됐다. 곧 미국영화협회(MPAA) 사이트를 비롯해 ‘불법 파일 공유’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규제에 찬성하는 기관들도 공격을 당했다. 보복작전의 슬로건은 ‘불법 복제를 논하느냐? 우리는 자유를 논한다’였다.

이런 일련의 행동을 통해 어노니머스의 정치적 정체성은 더욱 분명해졌고, 기술적 수단이나 전략도 더욱 치밀해졌다. 2010년 12월 외교문서 공개 뒤 문제가 되었던 위키리크스가 재원 모금에 방해를 받자,(6) 보복작전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마스터카드·페이팔·비자·뱅크오브아메리카의 웹사이트가 공격받았다. 지난해 1월에는 치밀하게 조직화된 모습으로 튀니지 정부 웹사이트들을 공격했다. 튀니지 블로거들은 이런 행위를 통해 국제적 연대가 형성돼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제도화엔 무관심, 다만 성채에 균열

2011년 한 해 내내 어노니머스를 이루는 집단 수가 크게 늘어났고, 행동 개시 촉구도 무수했다. 물론 그중에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거나 대중매체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이도 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집단체로 연합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는 못했다. 지난해 8월 23일, 어노니머스는 그보다 몇 주 앞서 캐나다의 반소비자단체 애드버스터(Adbuster)가 주장했던, 월가 점거를 외치는 비디오를 유포했다. 어노니머스의 극단적이고 대담한 성격은 ‘해킹은 자유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이어졌다. 어노니머스의 이런 극단성 때문에, 일반적인 정치활동가들은 자칫 체면만 잃을 것을 우려해 감히 여기에 뛰어들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단성은 기존의 일반적인 사회정치운동에 미적지근한 관심밖에 보이지 않던 잠재된 에너지를 깨우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어노니머스가 가진 힘이 무엇이든, ‘대규모의 즉흥성은 파괴적’이라는 측면을 제외하고는 기존 사회제도들과 맞물릴 수 없다. 어노니머스 같은 집단은 대안적 제도 수립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집단은 다음 행동안을 위한 공동의 지향점을 도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미 끄떡없을 것 같던 벽에 균열을 내지 않았는가. 차후 다른 시위의 물결이 어노니머스가 만든 균열을 더욱 건설적인 통로로 만들어갈 것이다.


/ 펠릭스 스탈더 Felix Stalder
스위스 취리히예술대학 교수. 빈문화신기술연구소 연구원.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프란시스 피사니, ‘산재된 적들에 대한 네트워트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6월호.
(2) 리크 팔크빈게, ‘스웜와이즈’(Swarmwise), 2001년 1월 8일, http://falkvinge.net.
(3) 클레이 셔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펭귄출판사, 뉴욕, 2008.
(4) 브라이언 홈스, ‘스워머신’(Swarmachine), 2007년 7월 21일, http://brianholmes.wordpress.com.
(5) 가브리엘라 콜만, ‘과학이 어노니머스를 해부하다’, Owni.fr, 2011년 12월 12일. ‘컴퓨터광(geek)’이란 컴퓨터에만 집중적으로 매진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6) 필리프 리비에르, ‘마법의 거울, 그리고 빅브러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