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적(敵)이 되지 않으려면
언론의 좌파 길들이기
대형 언론사에 굴복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세상을 바꾸기를 원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딜레마를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언론을 잘 활용하면 투쟁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인지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언론이 정한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론의 정치 쇼에 이용당하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한다.
이제껏 방송에서 그보다 더 말을 많이 한 사람이 있었던가? 대학생 시절 활동가였던 루이 보야르는 방송에 출연해 상대편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대중에 확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보야르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토크쇼 <Touche pas à mon poste(내 자리 건드리지 마시오)>에 고정 패널로 발탁됐다. 방송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보야르는 극좌파에 속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정당의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 그리고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22세의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의원이 된 보야르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 준 토크쇼에 다시 출연했다.
“기자는 엘리트층임을 기억해라”
보야르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이 토크쇼의 진행자 시릴 아누나는, 보야르가 프랑스 10위 부호이자 토크쇼 채널의 소유주인 뱅상 볼로레를 비판하자 보야르를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 “형편없는 자식.”, “바보”, “멍청한 족속”, “너 따위가 의원이든 아니든 내 알 바 아니다” 같은 말들이 그대로 방송으로 나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오늘날 정계와 언론 간 힘의 관계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스캔들이 터지자, 일부 시청자들은 보야르를 두고 ‘동지 아누나를 배신한 배은망덕한 애송이’라며 비난했다. 한 방송 출연자는 “솔직히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는 평가를, 욕을 한 아누나가 아니라 욕을 먹은 보야르에게 내렸다. 그렇게 덫이 만들어졌다. 청년층에 어필하고 대중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일부 LFI 의원들은 아누나의 토크쇼에 앞다퉈 출연을 신청했다. “발언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사건 이후에 LFI의 당수 장뤽 멜랑숑은 말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어땠을까?
오늘날 정당, 협회, 노조와 이들을 홍보해주는 역할을 하는 언론 간의 힘의 관계는 온갖 모순으로 점철돼 있다. 언론의 간섭과 뇌물 수수는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고, 극좌파의 언론 비판은 그 어느 때보다 기회주의적이다.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조직들이 오히려 언론과 권력이 얼마나 굳건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지를 가장 잘 안다.
“기자는 자신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혼란 상황에서 국가를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엘리트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1) 사회운동에 적대적인 두 교수가 경고했다. 당연히 반체제 인사들도 언론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24시간 뉴스 채널에 출연하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든, 그들은 언론에 어느 정도는 복종한다. 그러나 언론의 달콤한 혜택은 누리면서 언론의 노예는 거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언론을 대변’하기로 한다면 과연 무엇을 타협해야 할까?
언론을 대변한다는 것은, 언론 대기업들이 사회에 전파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사실 어떤 활동을 기사화해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지, 어떤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을지, 어떤 대변인을 선택할지는 기자의 손끝에 달려있다. 이제 막 시작된 이슈의 경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유리 천장’을 통과해야만 대중의 이목을 끌고 논쟁거리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쇼’를 찾는 언론
그러나 언론의 관심거리는 ‘쇼’가 될 만한 콘텐츠다. 실제 나이보다 젊게 보이기, 웃기고 즐거운 일, 짧은 영상, 상징적인 주제, 찬반이 나뉘는 문제 등이다. 거리에서 나체 시위를 벌인다든가, 광대 분장을 한다든가, 미술 작품의 보호용 유리에 수프를 끼얹는다든가 하는 파격적인 이미지가 따라오는 활동들을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퍼포먼스’에 따라오는 ‘냉소적이다’, ‘독특하다’, ‘재기발랄하다’ 등의 표현은 ‘권리 요구’와 같은 지루하고 틀에 박힌 표현과 달리, 광고 문구나 헤드라인에 준하는 막강한 홍보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이런 언론 개입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에이즈 환자를 위한 국제단체 액트업(ActUp)이 1990년대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이 그 예다. 최근에는 환경활동가들의 시위 덕분에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모든 활동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독특한’ 활동의 주인공이자 수혜자는, 주로 도시에 거주하며 고등 교육 이상을 받은 사회적 계층 또는 중산층 출신의 급여생활자다. 2004년에 프랑스 연구원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는 언론으로부터 특혜에 가까운 지원을 받았다. 일간지
<르몽드>는 3월 3일부터 11일 동안 6번이나 그들의 소식을 1면에 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개월 뒤 프랑스전력공사(EDF) 직원들의 파업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을 때는, 이들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미국인 고문자의 모습으로 그린 플랑튀(Plantu)의 시사만화가 <르몽드>의 1면을 장식했다(2004년 6월 9일). 사실 이 두 경우 모두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도 말이다.
일반 회사에 소속된 일반 직원들이 언론의 관심을 끌려면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한다. 2000년 7월에 아르덴 지베에 위치한 셀라텍스 공장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했을 때나, 2017년에 크뢰즈의 GMS 소속 직원들이 회사 경영진을 인질로 붙잡고 군청을 약탈했을 때가 그랬다. 2018년에 ‘노란 조끼’ 시위대가 엘리제궁을 점령하려 했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정도도 집단마다 달랐다. 연구원들이 흰색 셔츠를 입고 도로 위에 누워 시위를 벌였을 때는 기껏해야 후두염에 걸릴 위험에 노출됐을 뿐이다. 그러나 노란 조끼 시위대 중 2,300여 명은 유죄 선고를 받았고 400여 명은 부상을 당했으며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다.
이와 같은 언론의 선택적인 관심은 각종 활동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카메라의 존재가 장기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더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로, 언론의 관심을 즉각적으로 끌 수 있는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TV 뉴스에서 언급되는 일은 회사 경영진이나 정부로부터 원하는 바를 이끌어 내는 일보다 더 쉽다. 그러나 언론에 등장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돼버리면, 활동전략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게릴라 키트, 활동가를 위한 새로운 안내서(Guerilla kit, Nouveau guide militant)』(La Découverte, 2008)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등장한다. “기자들은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 “다음 목록에서 해당 항목이 많을수록 언론이 당신의 활동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그 항목들로는 새로운 것, 극적인 것,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것, 충격적인 것, VIP, 상징적인 것, 엉뚱한 것, 스캔들, 논쟁적인 것 등이 있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은 활동의 방향을 바꿀 뿐만 아니라 모집원들의 프로필을 바꾸기도 한다. 1960년대에 미국의 민주사회를위한학생연합(SDS)에 몸담았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사회학자인 토드 기틀린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SDS는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해 상징적인 활동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SDS의 신입회원들은 TV에서 봤던 SDS의 이미지를 조직 내에서 찾으려 했다. 그들은 마약을 하고 독서를 즐기지 않았으며 무언가를 파괴하고 싶어 했다.”(2) 그로부터 60년 후, 베르나르 드 라 비야르디에르가 노트르담데랑드 공항 건설 반대 시위대를 ‘특별 취재’한 결과도 기틀린의 결론과 다르지 않았다. ‘환경론자, 극단주의자 또는 소외계층 :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이 ’자디스트‘들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르포르타주에는 휘발유를 마실 수 있다고 허풍을 떠는 남자, 도끼를 휘두르는 남자 등 과격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어떻게 화제성을 길게 유지할 것인가?”
언론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에 현혹되는 만큼, 언론에 목을 매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어떻게 화제성을 몇 개월 이상 유지할 것인가?’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언론은 ‘새롭다’고 판단되는 활동을 가장 중요시한다. 1970년대의 페미니스트 운동부터 최근에 환경론자들이 미술 작품에 각종 이물질을 끼얹은 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새로운 활동은 그 방법과 도구와 함께 쉽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만큼 또 빠르게 사라진다. 2011년 아랍의 봄을 둘러싸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치열한 설전은, 마치 그 사태가 거리가 아닌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그로부터 12년 뒤에도 활동가들이 SNS를 무대로 삼아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1996년 파리에서 일어난 노숙자 시위,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실업자 시위가 그랬고, Jeudi Noir(검은 목요일), l’Appel et la Pioche(소환과 곡괭이), Génération précaire(불확실한 세대), Enfants de Don Quichotte(돈키호테의 자녀들), Osez le féminisme(페미니즘을 실행하라)과 같은 단체와 ‘불필요한 대규모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 등 10여 개 단체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진보주의적인 명분을 내걸고 SNS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곧 잊혔으며, 종국에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00년대 초반에 반짝 주목을 받았던 Agir Ensemble contre le chômage(AC! 함께 실업에 맞서 싸우자) 단체의 한 책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사 측에서 전화가 올 때는, 어떤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노숙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정도 연령의 노숙자를 찾는데요’와 같은 식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캐스팅이지요. 언론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2000년 셀라텍스 공장에서 시위가 일어났을 때 노동총연맹(CGT)의 대표였던 모라 라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갈등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럴듯한 명분도 있지요, 하지만 조명이 꺼지고 나면 고독하고 소외된 그늘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3)
언론의 관심을 쫓아다니는 행동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단체의 운명이 대형 언론사의 입김에 좌우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대형 언론사가 이 단체를 매장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LCR(반자본주의신당NPA의 전신)의 대변인이었던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필리프 부바르가 진행하는 ‘Grosses têtes(잘난척하는 사람들)’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 LCR의 대표였던 알랭 크리빈은 이렇게 말했다. “올리비에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장 정당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방송 출연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언론에 덜 노출되기를 선택할 것”
방송에 출연해 농담 따먹기를 하느냐, 아니면 조용히 사라지느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원주민 반란 13년을 되돌아보면서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2007년 12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한물간 상태입니다. 후회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단 하나, 언론에 덜 노출되기를 선택하고 싶습니다.”(4) 언론의 ‘호의’를 계속 누리려면,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자들이 정해 놓은 ‘옐로우 라인’을 넘지 말아야 한다. 그 암묵적인 선을 넘는 순간 ‘여론’은 등을 돌린다.
파업 시위, 시험 중단, 축제 취소, 도로 점거, 건물 점유 등의 금지된 행위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기자들은 극단주의자, 인질범, 포퓰리스트,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2001년 G8 제노바 회담 반대 시위대, 2009년 4월 21일 클레루아의 콩티낭탈 공장 폐쇄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CGT 대표, 자디스트, 노란 조끼, 지난 10월 31일에 일어난 대규모 저수지 조성 반대 시위대에게 언론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폭력에 찬성하십니까?”
그러나 민주적인 방식으로든 아니든 사회운동이 당대의 합법적 범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과 같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조 투쟁도, 미국의 흑인 운동도, 낙태 합법화를 위한 시위도, LGBT 차별 금지를 위한 단체도 그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형 언론사의 기자들은 비주류 문화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사회 질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존재다. 대형 신문사의 시청각 도구나 토론을 위한 지면은, 반체제주의자에게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를 마음껏 외칠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토론 주제’, 24시간 뉴스 채널에서 다루어질 만한 문장 몇 개, 트위터에서 화제가 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을 싣기 위해서다.
1960년대 초부터 여러 시민운동 단체들은 언론의 홍보 효과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프랑스 외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에 관한 비판적인 시각은 아직 등장하기 전이었다.(5)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과 관련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한 측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대형 언론사의 매스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우선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의견을 따라야 했고, 우리의 메시지는 결국 그들이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6) 자발적이든 아니든 이와 같은 비판적인 고민을 망각할 때, 일부 개인은 언론의 위력에 도취하고 그 결과 역풍을 맞기도 한다.
기자들은 어떤 시민운동을 기사화할지를 선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하고 그들의 요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 같은 ‘대변인’도 선택한다. 말을 잘하고, 간단한 문구를 수정할 능력이 있고, 특정 신분과 직업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노동자는 다혈질이고 감성적인 동시에 불쌍하게 보여야 하며,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교육자에 가깝게 보여야 하고 불평등에 관한 최근 자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설교하듯이 말해야 하고, 영토 보존을 주장하는 사람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어야 한다. 해커는 후드 티셔츠를 입고 가이 포크스 가면(저항의 상징)을 쓰고 있어야 한다. 기후 변화 활동가는 현장에서 무언가를 작업 중에 있으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발언을 해야 한다.
새벽 5시 기자들 전화에도 응해야 하는 이유
이런 판에 박힌 기준에 따라 선택된 대변인은 기자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전 대변인이었던 라켈 가리도는 자신의 경험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저녁 6시에 전화를 걸어 밤 10시, 11시, 자정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도 언제나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정에 전화를 걸어 다음날 새벽 5시에 라디오로 방송될 짧은 인터뷰를 하자고 했을 때도, 무조건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TV에서 봤다며 반가워하는 사람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화를 몇 번이나 나눴는지 모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발언 중에 특히 어떤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드셨나요?”
“아, 음, 저, 잘 모르겠어요. 그때 TV를 보면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했던 말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래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 멋졌어요!”(7)
언론의 부름에 만사를 제쳐두고 응하다 보면, 단체의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또는 방송 출연 조건을 협상하지 못한 채로 종종 대중 앞에 서게 된다. 언론계에서 통용되는 시간의 개념은 여타 민주적인 조직의 그것과 다르다. 기자가 급하게 휴대폰으로 노조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이슈에 대해 발언해줄 것을 요청하면, 노조는 방송 전에 회의를 소집해 공통된 노선을 정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들 때문에 조직이 위기에 처할 것이 우려돼 대변인이 출연을 거절한다면, 기자는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노조나 자기보다 덜 빡빡한 사람에게 곧장 전화를 돌릴 것이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의 대부분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개인 홍보와 당대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순간, 그 원심력은 조직을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반체제 조직은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몇몇 유명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정치 기자들은 조직의 투쟁을 개인화시켜 방송을 통해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한다. <리베라시옹(Libération)>의 맨 마지막 장에 실리는 ‘Portrait(초상화)’ 면의 주인공이 되든, M6 채널의 방송 프로그램 ‘Une ambition intime(내밀한 야망)’에 출연하든, France Inter 채널의 레아 살라메 대담에서 사생활을 털어놓든, 결국 대중의 관심은 시민운동의 목표, 투쟁, 사상보다는 개인의 가족사, 취향, 경력으로 모아진다.
2001년에 프랑스 농민연맹의 대변인 조제 보베가 미셸 드뤼케르의 ‘Vivement Dimanche(신나는 일요일)’에 출연했다. 이후 여러 극좌파 인사들이 각종 잡지와 방송 매체에 사생활을 공개했고, 보여주기식 설정과 조작을 하기도 했다.(8) 이런 상황은 수많은 활동가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그런 활동가 중 한 명이 20년 전 브장스노와 주간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바보 같은 TV 방송에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실 건가요?” 그러자 브장스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광범위한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따라서 모든 대중 매체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9)
LFI 소속의 보야르가 아누나의 토크쇼에 출연했던 것처럼, 오늘날 정치적 책임자들은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 지지를 얻고자 하는 사회적 계층에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조를 수용하다 보면,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특정 이슈에서 정치성을 제거해버리고 개인 간 논쟁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반자본주의 성향의 의원 보야르가 자본주의의 극단에 서 있는 볼로레를 비판한 사건도, 곧바로 언론에 의해 ‘보야르-아누나 갈등’으로 재코드화됐다.
미디어 게릴라의 안내서, 이를 거부한 사람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공동의 명분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Libération>에서 20년 넘게 ‘초상화’ 면을 담당해 온 뤽 르 바양은 자신의 업무 원칙 중 하나를 공개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Libération> 2015년 11월 13일). 초상화는 그 사람이 몸담은 조직의 이익보다 개인의 심리를 더 중점적으로 고려한다. 개인의 개성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배경은 지워버린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 때 광장에 집결한 무수한 인파는 배경처럼 처리하고, 장갑차 부대를 바라보는 한 남성만 또렷하게 부각했던 사진이 대표적인 예다. 언론의 프리즘에서 대규모 시위는 용감한 개인의 행동이 모이고 모인 결과일 뿐이다.
“언론이 우리의 메시지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다루는지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저는 게임의 원칙을 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거부냐 수용이냐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가리도는 『미디어 게릴라의 안내서(Manuel de Guérilla médiatique)』(Michel Laffont, 2018)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나 이를 거부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영국의 제레미 코빈과 미국의 버니 샌더스는 언론에 굴복하지 않고도 2015년과 2020년 사이에 큰 성공을 거뒀다.
후에 그들이 몰락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장뤽 멜랑숑 역시 ‘넓은 시야, 광범위한 대중’의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여겨지는 일부 언론사(<France Inter>, <Libération>, <Mediapart>)를 임시 보이콧했다. 또한 이 세 명의 정치인은 공통적으로 독립 언론을 선호했는데, 강압적인 대형 언론사와 달리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보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SNS의 활성화와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개인의 브랜드화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조직 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적 책임자들은 당대의 뜨거운 이슈에 관해 발언하고 언론이 요구하는 ‘튀는 언행’도 한다. 그런데 최근의 LFI 스캔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선택은 조직의 결속력과 정당 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호의적인 기자를 만나면 조직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론 당내 논쟁에 대해 언론이 유권자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위험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이 게임이 계속해서 돌아가도록 손을 보태고 있는데 어떻게 이 게임이 끝날 수 있을까? 스페인 포데모스 당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011년에 시작된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 운동은 초반에는 대변인을 언론에 등장시키기조차 거부했다. 그로부터 3년 뒤에 이 운동을 바탕으로 포데모스 당이 창당됐는데, 그 당수는 젊고 똑똑하고 TV 방송에 적합하고 심지어 인터넷에서 토론 방송을 진행하는 인물이었다. 포데모스 당의 국제부 책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선택했느냐고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TV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고 또 그의 사회적 인지도가 계속해서 높아지는 추세였기 때문입니다.”(10)
그러나 포데모스 당은 곧 이런 전략의 한계에 마주했다. 이글레시아스는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제가 여러 방송에 얼굴을 비춘 덕에 포데모스 당은 창당 후 몇 개월 동안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저에 대한 의존도가 어찌나 높았는지 홍보팀이 투표용지에 저의 얼굴 사진을 넣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아닌 정당이 일선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도 더 흥미롭기 때문입니다.”(11) 그러나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한때 이글레시아에 열광했던 언론은, 이제는 포데모스 당의 소속이었다가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 이니고 에레혼과 이글레시아스 간의 갈등을 마치 집안싸움처럼 몰아가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동시에, 똑똑하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개인을 ‘브랜드화’할 수 있는 인물을 대표로 내세운 반자본주의신당(NPA)도 2011년에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당 대표였던 브장스노가 사임하고 그 자리를 두 명의 대변인이 채운 것이다. 브장스노는 “당이 정당 활동에 브장스노 개인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사용”했고 자신은 그 부분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감이 있었다면서, 이런 “모순”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대표직 사임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언론은 반자본주의신당의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필리프 푸투의 낮은 인지도를 지적하면서 전임자인 브장스노의 복귀를 촉구했다. 5년 뒤에 푸투는 이렇게 고백했다. “당은 2016년 5월 1일 <BFM-TV> 방송에 제가 꼭 출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BFM-TV> 측은 완강했습니다. 결국에는 이 한마디로 우리를 설득시켰습니다. ‘이번에 브장스노가 오지 않으면 앞으로 NPA 관련자가 우리 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요.”(12)
언론을 보이콧해야 하는 이유
게다가 정당의 높은 언론 의존도는 기자들에게 시민운동의 대표자를 ‘선발’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언론이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물을 여러 명 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물론 언론의 선택은 정치적인 역량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언론 노출에 익숙한 인물은 파격적인 언행을 일삼게 마련이고, 이것은 언론과 SNS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풍부한 기삿거리를 만들어낸다. 반면에 활동가들은 경험, 노하우, 동료들과의 관계, 위기관리 능력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언론은 소수의 인물에게 명성, 발언 기회, 여행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면서, 시민운동을 만들어가는 실질적인 주체들의 존재는 숨기려 한다.
사회학자인 토드 기틀린은 1960년대에 미국에서 온갖 시위가 등장했던 상황을 분석하면서,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조직한 이들, 그리고 활동가와 활동가들의 정치적 활동을 언론에 홍보한 이들 간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는 자신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어떻게 생산하는지, 심지어 자신이 생산한 제품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해 관여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의미를 생산하는 활동가의 경우에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또 자신의 행동이 어떤 맥락으로 해석되는지는 언론에 의해 결정됐습니다. 일단 방송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그들의 행동이 가진 의미는 하나의 실체가 돼 당사자의 손을 떠나고, 나중에는 낯선 힘이 돼 부메랑처럼 되돌아옵니다.”
정계, 협회, 노조 수뇌부의 대부분이 외면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론과의 관계 정립 문제는 사회운동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다. 2003년 봄과 여름에 걸쳐 발생한 파업에서 교사들과 공연업계의 비정규직들은, 언론사의 거리 여론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사진도 찍었으며 각종 연출까지 도왔다. 그러나 자신들의 선량한 의도가 언론사가 해당 이슈에 부여하려는 이미지로 잘못 소비되는 것을 보고는, 언론사 건물을 점령하고 때로는 방송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2018년에 노란 조끼 시위대도, 2006년 최초고용계약(CPE)에 반대하는 대학생들도 비슷하게 반응했다. 일부 대학교 연합은 언론 홍보를 제한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
또한 이슈가 한창 진행 중일 때는 기자들이 있으면 시위 참여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교내 출입을 금지했다. 반세기 전에 CGT의 대표였던 레옹 주오는 <La Bataille syndicalite> 측에 이렇게 말했다. “선입견을 가지고 우리의 활동을 비난하고 토론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우리의 공간 안에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그들이 아예 우리의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지 고민입니다.”(13) 당시에 언론에 대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례는 없었다.
다행히 현대사에는 대형 언론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심지어 언론에 적대적인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정치적 활동의 예가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2005년에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 헌법안을 부결시킨 경우가 대표적이다. 열성적이면서도 끈기 있게 뜻을 밀고 나갔던 활동가들 덕분에 언론에 놀아나지 않고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언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 오히려 캠페인에 도움이 됐다. 이렇게 효과적인 전략을 좌파든 우파든 그냥 놔뒀을 리 없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 대통령 재직시 백악관에서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담하건대, 내가 언론과 그렇게 싸워대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당신이 다른 사람에 질문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있겠지요.”(14)
“기자들이 파업해도, 일상은 문제없이 돌아간다”
언론에는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인간과 시민에 관한 권리 선언> 제11조에 명시된 이 법적 의무는, 한밤중의 방송 출연 요청, 끊임없는 간섭, 조악한 연출을 수용하면서까지 구걸해야 하는 특혜가 아니다. 게다가 언론의 이데올로기적인 역할, 과두 세력의 독점,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의 품질 저하에 관해 함구하는 대가로 얻어지는 특혜는 더더욱 아니다.
정치적 지도자가 언론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유쾌하고도 바람직한 장면이 펼쳐진다. 지난 10월 17일, <BFM-TV>가 파업노동자 관련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묻자, 필리프 푸투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규모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도로 청소부가 파업을 하면 거리에 쓰레기가 쌓입니다. 우체국 직원이 파업을 하면 우편을 주고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철도청 직원이 파업을 하면 기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이 일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할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반면, CAC40의 주주들이 파업을 하면 일반인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BFM>의 기자들이 2주 동안 파업을 해도 일반인들은 별로 관심 없을 것입니다.”
노란 조끼, 노조, 정당, 협회 등은 언제나 언론이 갑인 이 불합리한 관계를 바로잡고, 언론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언론이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한 어떤 방송에 출연할지, 중간에 끊기지 않고 얼마나 길게 발언할 수 있을지, 어떤 주제를 다룰지, 배경으로 어떤 이미지를 사용할지, 어떤 패널과 함께 방송할지 등 언론 노출의 조건을 협상할 권리도 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대통령 연설을 방송에 내보낼 때마다 방송사에 끝없는 요구사항 목록을 내미는 엘리제궁에 필적하게 될 것이다. 언론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면, 언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크리스토퍼 래쉬는 이렇게 썼다.
“역사 속에서 대중 매체를 도구로 사용해 세태를 비판하고, 체제를 전복하고, 혁명을 이루려 했던 이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정치적 활동가들은 언론에 의존해 시민운동을 계획하기보다는, 조직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장기적인 활동을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15)
40년도 더 전에 미국에서 출간된 래쉬의 저서 속 이 문장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피에르 랑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Elie Cohen & Gérard Grunberg, ‘Les Gilets jaunes : une double régression 노란 조끼 : 두 번의 후퇴’, <Telos>, 2018년 12월 7일.
(2) Todd Gitlin, 『The Whole World is Watching. Mass Media in the Making and Unmaking of the New Lef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80.
(3) <Libération>, Paris, 2005년 12월 22일 & <Les Échos>, Paris, 2009년 7월 2일.
(4) <L’Express>, 2004년 5월 24일 & Sous-commandant Marcos 마르코스 부사령관, <Gatopardo>, 2007년 12월, <Le Point> 2007년 12월 13일.
(5) 적어도 Dominique Pinsolle의 저서 『À bas la presse bourgeoise 부르주아 언론을 무너뜨리자!』(Agone, Marseille, 2022)가 출간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6) William Greider, 『Who will tell the people』, Simon and Schuster, New York, 1992.
(7) Raquel Garrido, 『Manuel de Guérilla médiatique 미디어 게릴라의 안내서』, Michel Laffont, 2018.
(8) Damien Doignot의 다큐멘터리, José Bové, 『le cirque médiatique 미디어 서커스』, La Sardonie libre, 2008.
(9) <Rouge>, Montreuil, 2003년 2월 13일 & 3월 6일.
(10) Jorge Lago, Contre-courants 역류, <Mediapart>, 2015년 7월 1일.
(11) Pablo Iglesias, 『La démocratie face à Wall Street 월스트리트의 민주주의』, Les arènes, 2015.
(12) <AFP>, 2011년 4월 4일 & Acrimed, Philippe Poutou(NPA) : “Nous sommes dépendants du bon vouloir des rédactions” 필리프 푸투(NPA) : 우리의 운명은 편집국의 선의에 따라 좌우된다, Mathias Reymond, 2016년 7월 5일 화요일.
(13) Léon Jouhaux, Presse bourgeoise et syndicalisme : quelle doit être notre attitude? 부르주아 언론과 노조운동: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La Bataille syndicaliste>, 1913년 7월 24일 & 25일 / Dominique Pinsolle, 『À bas la presse bourgeoise 부르주아 언론을 무너뜨리자!』(Agone, Marseille, 2022.
(14) <Fox News>, 2020년 6월 25일.
(15) Christopher Lasch, 『Culture de masse ou culture populaire? 대중문화의 의미를 재고하다』, Climats, Castelnau-le-Lez,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