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스트레스 유발하는 ‘파르쿠르쉽’
대학입시제도의 새로운 이름
프랑스 대입 수험생들은 4년 전부터 ‘파르쿠르쉽(Parcoursup)’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한다. 지원을 희망하는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한 사전 지원 플랫폼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대학입학자격시험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누구든 자유롭게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류 심사를 통한 지원자 선별을 일반화하는 ‘파르쿠르쉽’ 플랫폼으로 인해 학교 선택 및 학업의 자유가 위축되며 학업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 대학이 15년 전부터 유례없는 격변기를 겪고 있다. 2007년 대중운동연합(중도우파) 소속의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부 장관은 대학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입법을 추진했고, 그전까지 85개였던 대학 수는 법 제정 후 60곳 정도로 크게 줄었다. 주로 대학 간의 연합과 합병이 이뤄진 탓이다. 그에 반해 학생 수는 더 늘었다. 2007년 당시 11만 5,000명이었던 단기 기술 대학(IUT, 취업 기술 중심의 전문 대학) 학생 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125만 명 규모였던 일반 계열 진학생은 150만 명으로 증가했다. 프랑스 사상 두 번째로 대학 진학률이 급증한 것이다.
맨 처음 대학생 수가 늘어난 건 1990년대의 일이었다. 고등교육이 일반화되고 고등학생 및 대학생 수가 순차적으로 늘면서 대학 진학 인구가 많아졌다. 이후 1985~1995년 동 세대 내 대학 진학생 비율은 30%에서 60% 이상으로 증가했다. 1995~2010년 출생률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다시금 대학 진학률이 늘었다. 대입 수험생 자체도 많아졌고, 진학 희망자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5년 간 학생 1인당 공공지출 비용은 오히려 12% 감소했다.(1) 대학의 재정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
2021년 경제분석위원회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엔지니어 학위 그랑제콜 중점 준비반CPGE 과정 및 고등기술자격증BTS 취득을 위한 단기 일반 대학STS 교육과정은 학생 1인당 연간 1만 유로를 초과하지만, 2년제의 1기 대학 과정을 3년제로 허가해주는 특정 학사학위의 평균 비용은 4,000유로를 조금 넘는다.”(2) 이렇듯 예산 위기가 구조적으로 악화하면서 2022년에는 다수의 대학이 적자 예산을 의결했다.
1990년 구축된 지망 학과 집계 자동화 플랫폼 라벨(Ravel)에서 2007년 집계 대상으로 삼은 건 오직 수도권 지역 대학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서 가까운 대학으로 진학했다. 2004년 장피에르 라파랭 정부가 예외적 자율 규정을 허용한 곳은 16구의 파리-도핀 대학 하나였는데, 그에 따라 이 대학은 자체적으로 학위를 발급하고 정부의 규제를 벗어난 등록금을 적용했으며, 아울러 유상 교육 지원자도 선별적으로 뽑을 수 있었다.
바칼로레아보다 높아진 파르쿠르쉽 문턱
지금은 프랑스 대학의 모든 전공 계열이 지원자에 대해 서류 심사를 시행한다. 사전 입학 지원 플랫폼 ‘파르쿠르쉽(Parcoursup)’을 통해 학생들이 내신 자료와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면 학교 당국에서 이를 검토하는 것이다. 2018년 도입 시점부터 학생들은 이 시스템에 반발했다. 선별적으로 학생을 뽑는 제도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후, 학생들 대다수에게는 이제 바칼로레아를 통과해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하는 것보다 ‘파르쿠르쉽’ 문턱을 넘는 게 더 중요해졌다. 대학 교수진과 학생들을 포함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새로운 제도를 (부분적이나마) 체념하듯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원래 대학 교강사는 대부분 대입 과정에서 학생을 골라 뽑는 것을 원치 않았다. 1960년대 말 이후 프랑스 대학가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학생 운동과 정치 투쟁의 결과였다. 프랑스 교육법 제L612-3조에서도 “대학입학자격을 취득한 모든 학생은 자유로이 고등교육 1기 과정에 진학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제는 법대, 의대 등 진입 장벽이 높은 전공 계열은 물론 인문대(철학, 문학, 역사학)과 자연대(수학, 생물학, 물리화학) 등의 순수 학문과 신규 학문(컴퓨터 공학), 60년대 이후 대중화된 전공 계열(경영학, 행정학, 심리학, 사회학, 스포츠체육학 등)에서도 대놓고 학생들을 선별하는 학교가 매년 늘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골라 뽑기’ 시작한 건 1971년 이후부터였다. 의대, 약대 등 보건 의료 계열 학교에서 2학년 진급생에 대한 ‘정원제한제(Numerus Clausus)’를 실시한 시점이다. 특정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는 이런 시스템은 원래 과학기술석사나 경영학석사같이 1970년대에 신설된 몇몇 ‘직업 전문 과정’ 학위나 박사예비과정학위DEA, 전문특수학위DESS 등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 파리-도핀 대학 같은 곳에서는 학생 전원을 선발제로 뽑았고, 이후 다른 전공 계열에서도 선별적으로 학생을 뽑을 수 있는 학위 과정(복수전공, 해외 연계 이중 학위 등)을 늘려 우수 재원을 유치하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 2016년에는 석사 과정인 ‘마스테르’까지 선발제가 확대됐다. ‘마스테르’ 학위는 프랑스 교육제도 내에서의 최상위 학위 중 하나로, 대학 입학 후 4년 차(학사3년+석사1년)에서 끝났던 프랑스 고등교육 2기 과정은 해당 학위 도입 이후 5년 차에 끝나는 것으로 늘어났다(박사예비과정학위 DEA 및 전문특수학위 DESS 역시 마스테르 과정으로 대체됐다).
어느 도시에 입학할지도 모른 채 기다려
새로이 교육부 수장이 된 에두아르 필리프(전진하는공화국당)는 기존 플랫폼APB에서 제비뽑기 방식으로 고등교육 1기 과정, 즉 대학 입학 후 2년까지의 교육과정 지원자를 결정하는 게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2018년 ‘파르쿠르쉽’이라는 신규 플랫폼을 만들었다. 물론 서류상에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대학입학자격 취득자 모두가 프랑스 고등교육 1기 과정에 등록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학사과정 지원자의 선별 프로세스도 일반화됐다. 즉 지원자의 입학 역량이 무엇이든 각 전공 계열의 교수자 및 연구자로 구성된 지망 학과 검토 위원회 측에서 역내 사무 분류 작업 및 컴퓨터 분류 작업을 통해 지원자를 걸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신규 플랫폼은 도입 직후부터 첫 번째 한계를 드러냈다. 2018년 7월, 대다수 대학이 하계방학에 들어가 업무가 중단되자 입학 예정자의 약 12.5%에 해당하는 10만 명이 두 달 후 들어갈 학교와 학과, 심지어 통학 도시도 모른 채 무작정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부터 4년 후에는 등록 과정에서 실질적 선별작업이 이뤄지는 학위과정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존 APB 플랫폼에서는 예외로 허용된 극소수의 일부 교육과정을 제외하면 이 같은 선별작업 자체가 불가능했다. 몇몇 스포츠체육학과나 파리-도핀대학에서 시범적으로 내부 선발을 실시했지만 이후 행정 재판소의 즉각 금지 처분을 받았다. APB 플랫폼이 마지막으로 적용된 해에 불법적으로 제비뽑기를 실시해 입학 지원생을 다른 곳으로 배분한 학위 과정은 대략 100개 정도였으나, 2021년에는 773개의 학위 과정이 지원자 절반 이상을 돌려보냈다. 파르쿠르쉽 플랫폼을 통한 학위 과정 1/4 정도가 지원자를 선별한 것이다.(3)
게다가 진로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몇 달이나 기다려야 하니 수험생과 학부모의 스트레스도 가중됐다.(4) 1월에 지망 학과를 기입하고 6월에서 9월 사이 결과가 발표되길 기다려야 했으므로 파르쿠르쉽 플랫폼 도입 이후 전공 학과 및 통학 도시가 배정될 때까지의 대기 시간이 현저히 늘어났다. 사실 기존 APB 플랫폼에서는 학생 측이 진학 희망 교육과정을 선호도 순으로 기입했다. 하지만 파르쿠르쉽 시스템에서는 해당 학교가 학생 프로필과 자격 요건을 비교해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자를 분류한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는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을 보고 최종 결정을 내렸으나 지금은 학교가 학생들을 선별한다.
비선별적이라는 교육과정을 포함해, 각 기관이 지원자의 자질을 심사하고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험생과 학부모는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는 순간에도 1차 배정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현재 수험생의 약 50%가 (바칼로레아 시험이 치러지는) 6월에도 학교 배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5) 기존 시스템에서는 미 배정자가 20%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희망 고문이 될 이 대기 시간은 무작위로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일반 계열 지원생의 대기 시간은 보다 짧은 반면, 서민층에서 주로 가는 기술 및 직업 계열은 대기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파르쿠르쉽은 학습 부진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입생의 학습 부진에 대처할 수 있다는 파르쿠르쉽 시스템의 장점 또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파르쿠르쉽은 원래 ‘대학생의 학습과 진로에 관한 법’을 통해 도입된 시스템이다. 개정된 내용의 L612-3조에 따르면 “(교육과정에의) 등록은 교육 내용에 수반되는 규정과 조치에 대한 수락을 의미하며, 해당 기관에서 개인에 맞춰 제안하는 교육과정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여기에서의 ‘규정과 조치’란 재수강 혹은 (4년으로의) 학위 과정 연장 등을 뜻하는데, 그 같은 조치의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파르쿠르쉽 시스템을 선전하던 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강제하는 이 조치들을 크게 부각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조치가 취해지지 않거나, 혹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8년에 등록한 신입생 중 4%에게만 해당 조치가 적용됐다. 2020년 실시된 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업 부진 만회 조치가 이뤄진 학생들이 2학년으로 진학할 확률은 2배 더 적었다. 40%에 달하는 학생들이 이듬해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다.(6) 이 신규 플랫폼을 도입한 책임자 프레데리크 비달 장관은 지나칠 정도로 학부생의 학업 부진을 문제 삼았으나, 정작 어느 정도 인원을 학업 부진에서 구제할 것인지에 대한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설령 운 좋게 1학년 학생들의 학습 부진이 크게 개선됐더라도, 보다 많은 학생을 2학년에 수용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 또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일부 전공 계열에서는 실제로 학습 부진 상황이 개선됐으나, 이는 성적이 나쁜 학생들이 학교 당국의 까다로운 조건에 두 손을 들고 아예 등록을 포기했거나, 혹은 바칼로레아 고득점자의 입학 비율이 높아진 영향이 더 크다. 파르쿠르쉽 시스템을 통해 신입생 선별이 이뤄지고 대학에 자리가 줄면서 제일 먼저 피해를 본 학생들은 기술 및 직업 계열 학생들이다. 인문사회학 및 문학 부문을 제외한 모든 학과에서 기술 계열 비중이 감소했고, 직업 계열 역시 경제학 및 경영학, 스포츠체육학을 비롯한 대다수 학과에서 그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7)
물론 이는 경제학자 로베르 가리보보처럼 파르쿠르쉽 시스템을 도입하며 개혁을 시도한 이들이 원하던 결과다.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가 덜 되고 지극히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우리가 무한정 받아준다면 결국 학생들 본인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한계선이 있어야만 공부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므로 1학년 입학 시점에서 신입생 선발 제도를 도입하면 문제가 확실히 해결될 것이다.”(8)
그렇다면 과연 ‘파르쿠르쉽’은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가? 자유보수주의 정치인들은 이 시스템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프랑스와 유럽 교육 정책의 기본 목표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맞서는 진보 진영에서는 해당 시스템이 자유로운 대학 진학과 학습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벽이라 여긴다. 사회학적 차원에서 보면 이 시스템은 한 세대의 50%를 (학사학위 이상의) 대학 졸업자로 만드는 목표를 달성시켜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 계층 간의 뿌리 깊은 불평등은 지속된다. 교육제도의 낙오자를 발판으로 고등교육의 틀을 마련하는 파르쿠르쉽 시스템은 새로운 신입생 선발 제도의 한 이름에 불과하다.
글·세드리크 위그레 Cédric Hugrée
트리스탕 풀라우에크 Tristan Poullaouec
사회학자. 『L’université qui vient. Un nouveau régime de sélection scolaire』(Raisons d’agir, 2022) 공저자.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Lucas Chancel&Thomas Piketty, ‘La jeunesse sacrifiée’, 2021, https://lucaschancel.com.
(2) Hamza Bennani, Gabrielle Dabbaghian&Madeleine Péron, ‘Les coûts des formations dans l’enseignement supérieur français : déterminants et disparités 프랑스 고등 교육과정에서의 교육 비용 : 비용 결정 요인과 차별적 요인에 관해’, 파리 경제분석위원회, Focus n° 74, 2021.
(3) 고등교육 및 연구 현직자회의 진행자, 쥘리앵 고사(Julien Gossa)가 전달한 자료.
(4) Annabelle Allouch, ‘Les étudiants livrés au marché de l’anxiété(한국어판 제목: 지방 고등학교들의 수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4월호, 한국어판 2019년 1월호.
(5) ‘Parcoursup, une génération en attente 기다리다 지치는 파르쿠르쉽’, Collectif Nos services publics, 2022년 6월.
(6) ‘Mesure de la réussite étudiante au regard de la mise en œuvre de la loi Orientation et réussite des étudiants 대학생의 학습과 진로에 관한 법에 비춰본 학업 향상 조치’, 교육스포츠연구 종합 감독보고서, 2020년 2월 https://www.education.gouv.fr
(7) Guillaume Rateau, Diane Marlat, Cyrielle Perraud-Ussel, <Crédits ECTS et effets de la loi ORE : une première mesure 유럽학점호환체제와 대학생의 학습과 진로에 관한 법>, Note d’information du SIES, 2020년 8월 20일.
(8) Robert Gary-Bobo, 『Performance sociale, financement et réforme de l’enseignement supérieur 고등교육의 재정 및 개혁, 그리고 사회적 성과』,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