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당국이 부추긴 학교 젠트리피케이션

최상류층을 도심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책략

2022-12-30     리처드 카이저 l 미국 정치학 교수

학부모들이 거주지를 선택할 때 자녀를 일류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지역을 선호하는 전략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지자체는 이 논리를 역으로 이용해 대개 빈곤층이 거주하는 도심에 부유층 끌어들이기에 나섰다. 일부 학교를 허물고 새로운 학교를 지어 ‘학교 교육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학교의 문을 닫고 새로 공립학교를 만든다. 백인 인구가 교외로 이주하는 ‘백인 유출’ 현상을 막고자 최근 미국 지자체가 선택한 전략이다. 주로 백인으로 구성된 중산층 가구가 도심으로 돌아오고, 이들의 자녀가 개교한 현대식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연쇄적인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도심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예쁜 카페, 고급 마트, 근사한 상점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반면, 저소득 임차인들은 치솟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도심 밖으로 밀려난다. 부유한 인구가 유입되면 해당 지역의 치안과 안전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도 강화된다. 이런 인구 이동 및 도시 변천 움직임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 다름 아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지자체와 연방 당국은 땅값이 낮은 토지들이 밀집된, ‘게토(Ghetto)’로 불리던 지역에 빈민층을 몰아넣고 도심, 수변 혹은 공원과 인접한 지역을 재정비해 더 부유한 납세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전략을 펼쳐왔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도시 재개발 정책을 장려했다. 이 정책의 요지는 빈민가를 철거하고 수십만 명의 주민을 이주시킨 뒤 해당 부지를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가난한 흑인들은 가고, 부유한 백인들이여 오라!

개발의 장애물이 제거된 땅에서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공공 보조금을 받으며 새 아파트를 건설했다. 이렇게 세워진 아파트는 대다수의 기존 거주자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1) 미국 정부와 언론은 이를 도시 재생으로 여겼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이런 정책을 ‘흑인 추방’으로 묘사했다. 영어로 ‘재개발(renewal)’과 절묘하게 각운을 이루는 ‘흑인 추방(Negro removal)’이야말로 이 정책을 솔직하게 묘사하는 표현인 듯하다. 신규 교량과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주로 흑인으로 구성된 가난한 주민들은 추방됐다. 빈민가는 점점 더 인구 과밀 지역으로 변해갔다. 

반면 도심은 중산층을 위한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재정비됐다. 두 지역 사이에는 차가 없으면 넘을 수 없고 통제가 용이한 경계선이 생겨났다. 파산에 가까운 재정상태를 하소연하던 도시들은 어떻게든 부유층의 교외 이주를 억제하기 위해 기존 거주지를 철거하고 해당 부지에 볼티모어의 하버플레이스 쇼핑센터를 본 따 경기장, 호텔, 컨벤션 센터, 관광지를 건설할 자금을 마련해 냈다. 가난한 주민들은 주거비 부담이 덜한 노후 건물을 찾아 도시 내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가난한 주민들은 지자체가 그토록 유치하고 싶어했던 인구, 즉 교외에 거주하는 중산층과 부유한 관광객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최빈곤층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 몰아넣으면서 특권층에 혜택을 주는 도시 재개발 방식은 이제 대부분 효력을 상실했다. 철거 및 재건축 사업으로 발생한 혜택은 절대 기존 거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민들이 이제 이런 재개발 방식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반대를 의식한 많은 도시들은 이제 학교 교육 정책을 ‘무기’로 동원하고 있다. 

시카고,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뉴욕, 디트로이트, 워싱턴 등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듯 백인 가구가 오랫동안 교외를 선호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심에 위치한 학교들의 열악한 상태 때문이다. 교외 지역은 재산세 수입이 높기 때문에 실제로 공립학교들을 괜찮은, 더 나아가 우수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적 수단을 갖추고 있다. 반대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대도시 도심 지역은 모든 학교의 필요를 적절하게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디트로이트나 필라델피아처럼 빈곤층과 저소득층 가구 수가 부유층 가구 수를 넘어서는 대도시에서 두드러진다. 대도시에 살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주민은 대개 사립학교를 선택한다. 이런 사립학교의 등록금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의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오랫동안 중산층 가구가 교외를 떠나 대도시로 이주하려면 엄청난 학비를 감수하면서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우수 학생을 위한 특별반이나 국제 바칼로레아 준비반이 있는 공립학교를 찾거나, 자녀가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차터 스쿨의 환상과 그 이면

이론적으로 공립학교 한곳이 문을 닫고 이와 동시에 다른 공립학교 한곳이 인근에 문을 연다고 해서 해당 지역 학생 인구에 엄청난 사회학적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빈민가와 경계가 맞닿은 도심에 새로운 학교가 들어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선 도심에 새로 문을 여는 학교 중 다수는 차터 스쿨(Charter school)이다.

차터 스쿨이란, 예산은 세금으로 충당하되 민간주체가 직접 학교를 운영하는 일종의 자율형 공립학교다. 대부분의 차터 스쿨은 전반적으로 도시 내 다른 공립학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입학 조건으로 독해 및 수학 레벨 테스트에서 지역 평균 이상의 점수 획득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 중 절반 이상은 차터 스쿨에 입학할 수 없다.(2) 

지자체는 높은 입학생 선별 기준을 내세워 차터 스쿨을 홍보한다. 교육의 질이 낮고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들과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포장해, 차터 스쿨에 대한 중산층 학부모의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서다.(3) 차터 스쿨은 입학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하는 저소득층 가구 학생들을 배제하고 이들의 자리를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교외 또는 다른 지구 출신의 학생들로 채워 교육의 질이 향상된 듯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언론은 이런 변화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그 공을 교사들에게 돌린다. 하지만 차터 스쿨의 표면적인 학업 성취도 향상의 이면에는 ‘우수 학생 유치, 하위권 학생 배제’라는 이중적인 학생 선별 기준이 숨어 있다.

소외된 흑인 및 라틴 아메리카계 주민이 거주하는 동네가 번성한 도심과 맞닿아 있는 도시들에서는, 이런 학교 정책을 다양한 도심 젠트리피케이션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학교 운영 성과를 인위적으로 부풀릴 방법은 많다. 결석이 잦은 학생을 거부하거나, 비영어권 출신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거나, 장애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거나, 징계를 받은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리기 전 자퇴를 권유하는 방식 등이 있다.(4)

일부 학교는 진로 상담사가 서명한 추천서 제출을 학부모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한부모 혹은 맞벌이 가구가 충족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우는 학교도 있다. 예를 들어 많은 학교가 종종 매우 이른 오후 시간에 수업을 끝내는데 방과 후 돌봄 시스템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 중 한 명은 오후 시간을 비워 자녀를 데리러 가야 한다. 과외활동 감독 자원봉사, 학교 회의 참석 요구 등의 형태로 학부모의 학교 생활 참여를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5) 전교생이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진행되는 일부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해 취약 계층 학생을 확실하게 배제하는 학교도 있다.(6)

대도시의 백인 가구는 대개 “다양성이 존재하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 이들은 본인의 자녀가 너무 차이가 나는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애틀랜타의 중상층 백인 부모들은 시당국이 나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들은 막대한 학비를 내야하는 사립학교나 교외 이주를 선택하는 대신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공립 차터 스쿨을 새로 만들었다. 해당 학교의 흑인 학생 비율은 50%로 도시 내 다른 공립학교의 흑인 학생 비율인 87%보다 훨씬 낮다.(7)

한편, 최상위권 학생들을 빼앗긴 낙후된 학교들의 운영 성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학교들은 학생 수도 감소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그로 인한 임대료 상승 때문에 가난한 주민들이 점점 더 도심에서 먼 곳으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시 당국은 학생 수 감소를 이런 학교들을 폐교하는 구실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폐교 부지는 대부분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에 팔려 젠트리피케이션을 악화시킨다.(8) 

이처럼 대부분의 미국 도시가 “학교 교육 공급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바꿔 더 부유한 가구를 도심으로 유입시키고 이들의 교외 이주를 막기 위한”(9) 전략의 일환으로 운영 성적이 저조한 학교를 폐쇄하고 중산층을 위한 거주지를 건설하는 이중 작전을 펼치고 있다. 

 

 

글·리처드 카이저 Richard Keiser
미네소타주 노스필드 칼튼 대학교 미국 정치학 교수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Lawrence J. Vale, 『Purging the Poorest : Public Housing and the Design Politics of Twice-cleared Communiti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3.
(2) Mary Pattillo, 『Black on the Block : The Politics of Race and Class in the C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3) Maia Cucciara, ‘Re-branding urban schools : Urban revitalization, social status, and marketing public schools to the upper middle class’, <Journal of Education Policy>, 2008.
(4) Sarah Karp & Linda Lutton, ‘One in 10 charter school students transfers out’, <Catalyst Chicago>, 2010년 11월 9일.
(5) Robert Pondiscio, 『How the Other Half Learns : Equality, Excellence, and the Battle over School Choice』, Avery, New York, 2019.
(6) Brian Robinson, ‘Codeword for getting whiter : Parent experiences and motivations for choosing schools in a gentrified Washington, D.C.’, <Journal of School Choice>, 2022.
(7) Katherine B. Haskins, ‘The final frontier : Charter schools as new community institutions of gentrification’, <Urban Geography>, 2007, https://www.urbangeographyjournal.org
(8) Stephanie Farmer & Chris Poulos, ‘Tax increment financing in Chicago, IL, building neoliberal exclusion one school at a time’, <Critical Sociology>, 2015.
(9) ‘Why these schools? Explaining school closures in Chicago’, Great Cities Institute,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