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맥킨지화로 치닫는 프랑스 개혁
프랑스 고위직 공무원에게 오랫동안 개혁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추진한 공공정책검토(RGPP)도, 올랑드 전 대통령의 공공부문 현대화(MAP)도, 현재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2022 공공부문 개혁 위원회(CAP22)도 모두 일반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한 칼질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위직 공무원은 그간 국가 개혁정책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개혁의 바람 속에 디지털화가 시작되자 현장 서비스는 사라졌다. 인력이 줄어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새로운 사람을 뽑지 않았다. 이제 남은 직원은 사무실 크기를 줄이고 전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비스 이용자의 거센 불만을 감내하는 것도 오롯이 그들 몫이다. 그런데 정부의 악착스러운 임금 동결로 돈벌이는 오히려 줄어드니 왜 일하는지, 그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다. 이 모든 건 세무 계획을 짜던 세무공무원이나 보험금 허위 청구 방지를 위해 애써온 프랑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 같은 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때로는 고위직 공무원 핵심 인사마저도 공공기관 내부 조직을 와해하는 데 가담했다. 과거에 철강, 은행, 국방, 항공, 통신, 에너지산업이 민영화된 것도 다 그들 작품이다. 프랑스 재무부와 예산집행부 간부들이 프랑스 경제 ‘현대화’를 추진하자 퐁제쇼세(Ponts et Chaussées) 건축학교는 건물 정비나 토목공사에 현직 엔지니어 대신 수석학생을 투입했다. 병원장과 대학 총장은 개혁정책으로 병원 간, 대학 간 경쟁이 심해지고 고위 관료의 간섭을 감내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개혁을 지휘한 프랑스 전 총리 미셸 로카르와 에두아르 발라뒤르, 알랭 쥐페, 리오넬 조스팽을 찬양했다.(1)
‘국가 외주화’, 이미 15년 전에 시작됐다
왜 그랬을까? 개혁에서 파생돼 탄생한 임금삭감이나 조직 재편성 같은 일은 곧 제일 윗선에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무분별하게 칼날을 휘둘렀다. 2020년 코로나 대유행이 한창일 때, 옥시타니 지역회계감사원은 툴루즈 대학병원에 한 차례 더 ‘신속한 비용절감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재무 행정관의 조사에 부응하기 위해, 툴루즈 대학병원은 결국 해당 조치 절차를 강화하고 의료진까지 비용 절감 대상에 포함했다. 2021년 오르페아(Orpéa, 프랑스식 노인요양원 ‘에파드(Ephad)’를 운영하는 그룹) 스캔들이 터지기 몇 주 전, 부르고뉴 지역 재무 행정관은 에파드 직원 수를 언급했다. “최근 국가 평균 에파드 직원 수는 전일제 환산 기준 요양자 100명당 68명인데, 르크뢰조(le Creusot)에 위치한 에파드 직원 수는 89명이나 된다(너무 많다)”라며 보고서에서 비판했다.(2)
고위직 공무원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선발되고 교육받으며 정부가 원하는 일이라면 늘 기계처럼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정책 당국이 손쉽게 고위직 공무원 자리에 경영인을 앉히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로 2017년에는 발레리 아밀리위스 베다그 넥시티(Nexity) 그룹 사장과 로스 매키니스 사프란(Safran) 이사회 의장이 공공부문 현대화 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된 바 있다. 고위직 공무원이 민영화의 필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데 정부는 왜 개혁 과정에 경영인을 끌어들여 개혁방식마저 민영화하려는 걸까? 그건 당연히 아랫사람들을 쳐내고 옥죄는데 열심인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어 개혁을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함이다.
이런 일은 이미 2007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공공정책검토(RGPP) 일을 컨설턴트에게 맡겼다. 그리고 공공정책검토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만든 정부현대화기관(DGME) 총책임자 자리에 에콜 폴리테크니크(공학계열 그랑제콜) 및 맥킨지(McKinsey) 출신 프랑수아 다니엘 미종을 앉혔다. 정부현대화기관 직원 대다수는 계약직 감사관이었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약 1억 유로를 들여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진행했다.
점점 쉬워지는 외주화, 점점 불편해지는 국민들
2012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회계감사원의 제롬 필리피니를 공공부문 현대화 프로젝트 총괄 후임자로 선정했다. 2014년, 회계감사원은 정부의 외부인력 고용 관련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회계감사원 자체의 평과 회계감사원 직원들 평이 상이했다. 직원들의 경우 ‘행정부가 공공정책검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적절한 수단을 찾지 못해 행정부 내 수많은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3)
반면 회계감사원 자체는 프로젝트 방식에 아쉬움은 좀 있었을지라도 정부가 캡제미니(CapGemini)나 보스턴 컨설팅 그룹, 액센추어(Accenture) 같은 외부 컨설팅회사에 감사를 맡긴 건 괜찮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추진 결과 수천만 공무원이 궁지에 몰리고 수백만 공공서비스 이용자가 불편을 겪게 된 점에 대해서는 어떤 아쉬움도 내비치지 않았다.
2022년 상원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가 증명하듯, 정부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있다.(4) 외주화 작업은 점점 더 손쉬워지고 엘리트들은 본인도 모르게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권력의 못자리’로 불리는 국립행정학교(ENA)를 폐교했고, 대신 2021년 6월 2일 행정명령에 따라 ‘고위직 공무원 민영화’의 기틀을 다질 국립 공공서비스연구소(INSP)를 설립했다. 2022년 1월 1일부로 이곳 총장직은 KPMG 컨설턴트 출신 마리본 르 브리뇨낭이 맡고 있다.
행정부 관리방식을 바꾸고 외주화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젠 고위직 공무원 물갈이의 때가 온 모양이다. 정부는 이제 개혁의 마지막 대상으로 행정부 엘리트를 노리고 있다. 관리방식을 넘어 이제 관리직 인물도 교체하라 압박하며 행정부 개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 한다.
그렇게 2019 공직 개혁법(la loi du 6 août 2019 de transformation de la fonction publique)이 세상에 등장해 본격적으로 고위직 공무원 계약직화가 시작됐다. 이미 공직자 5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인 상황임에도 정부는 계약 기반 시스템을 강화한 것이다. 계약직 체계로 정부는 좀 더 손쉽게 고인 물을 흘려보내고 그 자리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을 앉힐 수 있게 됐다. 파리 고등상업학교(HEC Paris)를 졸업하고 맥킨지를 거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회계 감사일을 맡다가 사회부장관 직을 수행한 후 현재는 프랑스 국민건강보험기금(CNAM) 대표로 있는 마르그리트 카즈뇌브 같은 인물을 말이다.
행정부 내에 다방면으로 유능한 인재가 배치되자, 정부는 주요 고위공직 기관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2021년 12월 시행령을 통해 사회문제감사기구(IGAS), 재정감사기구(IGF), 행정감사기구(IGA) 업무를 행정부 내에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감사기구는 특성상 상당히 엄격한 자질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에 정부의 움직임에 저항할 힘이 있었다. 메디아토르(Médiator) 스캔들을 파헤치는 데 기여한 것도 IGAS이지 않은가. 또한 법은 IGAS, IGF, IGA에 독립성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세 감사기구는 외부의 압력과 그로 인한 자기검열 압박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자유로움 덕분에 그동안 몇몇 감사관들은 구미에 따라 공직과 민간기관을 오가며 돈벌이를 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위원회를 구성해 앞으론 행정관 중에서 감사관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5년 근무 후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는 계약방식으로 말이다. 마음대로 들어왔다 나갈 수 없는 시대, 신랄한 보고서를 쓰기엔 눈치를 좀 봐야 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고위 공무원과 기업 경영인, 과연 다를까?
전문 외교관과 도지사 또한 사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개혁정책을 통해 이들이 가진 특별지위를 없애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 정부는 도지사직 및 외교직에 측근 인사를 채용하기 쉬워진다. 그럼 도지사직과 외교직 전문성은 떨어지고, 정부는 전문성 결여를 핑계 삼아 외부 인력 고용을 합리화할 것이다. 집행부 입장에서는 참 완벽한 전략이 아닌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시행령이 발효되기도 전인 2020년에 이미 상수도 기업 수에즈(Suez eau France)의 영업본부장 살리마 사(Salima Saa)를 도지사로 임명한 바 있다.(5) 개혁의 바람은 이미 고위직 공무원을 향해 불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그 바람을 막을 수 없다. 행정비서 인원을 감축하고 교사를 무기력에 빠트렸으며 간호사 번아웃과 경찰 자살을 이끌었던 개악이 고위직 공무원에게도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
2022년 6월 2일, 프랑스 엘리트 부처 외교부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외교관 수백 명이 현 외교직 지위를 수호하고자 시위에 나선 것이다. 2021년 6월엔 행정법원 판사(juge administratif)의 1/4이 파업에 나서며 부처 간 이동과 지방법원 발령을 강요하는 고위직 공무원 개혁은 법조인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2021년 11월 23일엔 사법관(Magistrat judiciaire)의 1/3이 <르몽드> 논단을 통해 ‘정의가 귀를 틀어막고 계산기만 두드리며 모든 걸 숫자로만 평가하려 든다’라고 비난했다.
문제는 투쟁에 나선 엘리트마저 실은 명망 높은 후원자의 도움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프랑스 ‘최고’ 엔지니어 단체 코르 데 민(Corps des Mines)을 ‘일반’ 엔지니어 단체와 통합하려 할 때, 과연 누가 코르 데 민 입장을 지지할 것인가? 바로 코르 데 민 대표 엔지니어인 파트릭 푸야네 토탈 최고경영자다. 시위에 나선 외교관들을 뒤에서 지지해준 사람 또한 외교관 출신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다. 파업에 참여한 외교관들은 후원자로부터 지원금을 받지만 어떤 언론사도 이를 들추지 않는다. 또한 언론은 그저 공공서비스에 관한 일반적 논쟁만 이슈화할 뿐 정부와 외교관 사이의 갈등은 대수롭지 않은 주제처럼 여긴다. 외부 컨설팅 자문에 의존하는 일은 좌우 이념을 떠나 해롭다. 공화당이나 공산당 양쪽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맥킨지화’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며, 소수 고위직 공무원만이 이런 개탄스러운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6) 우리는 왜 맥킨지화를 막지 못하는 것일까?
국립행정학교 출신 엘리트가 겪는 불행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남의 일이기 때문일까? 고위직 공무원들이 아무리 시위를 해도 세금을 써가며 민영화를 추진한 정부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행정부 엘리트 중 기회주의자들이 공무원직과 공익을 수호하기보다는 자신의 더 중요시해, 비관료출신 경영인과 타협했기 때문일까?
글·시몽 아랑부루 Simon Arambourou
그레고리 르젭스키 Grégory Rzepski
두 사람 모두 프랑스 고위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번역·류정아
번역위원
(1) ‘De l’État providence à l’État manager 민영화를 위한 군국주의 방식의 역설’ 참고, Laurent Boneli(로랑 보넬리), Willy Pelletier(윌리 펠르티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2월
(2) ‘Rapport d’observation définitive, CHU de Toulouse 최종 조사보고서, 툴루즈 대학병원’ 옥시타니 지역회계감사원(CRC), 2020년 10월 1일 & ‘Rapport d’observation définitive, EHPAD départemental du Creusot 최종 조사보고서, 르크뢰조 에파드’, 부르고뉴 프랑슈 콩테 지역회계감사원(CRC), 2022년 1월 24일
(3) ‘Le recours par l’État aux conseils extérieurs 정부의 외부 컨설팅 이용’, 상원 재정위원회 보고, 2014년 11월
(4) Éliane Assassi, ‘Un phénomène tentaculaire : l’influence croissante des cabinets de conseil sur les poliques publiques 공공정책에 드리운 컨설팅회사의 그림자, 날로 짙어진다‘, 컨설팅회사 영향력에 관한 상원 조사위원회 보고서, 2022년 3월 16일
(5) ‘Des préfets aux X-Mines, les grands corps négocient leur sauvetage 고위 공직기관, 존폐를 두고 협상하다’, <La Lettre A>, 2021년 9월 20일
(6) Arnaud Bontemps, Prune Helfter Noah, Arsène Ruhlmann, ‘Quand l’État paie pour disparaître 공공서비스의 외주화로 국가의 존재감이 사라진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