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동맹에 맞서는 선거전략
선거의 효용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언제나 그렇듯,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도 우파와 중도파가 중심인 선거판에서 서민층은 후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좌파 진영 내에서조차 노동자들의 표심이 기권이나 극우로 기울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사회세력에 대한 심각한 판단의 오류가 빚어낸 결과였다.
남성은 의사 집안 출신으로, 아미앵의 가톨릭 사립학교를 다니고 대학도 정치 명문 ‘시앙스 포’를 졸업했다. 국립 행정 학교도 수료했으며, 재무 감사와 투자 은행가로도 활약한 재원이다. 여성 쪽도 만만치 않다.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 역시 베르사유의 사립 가톨릭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고등 경영대학원과 국립 행정 학교를 다니고 참사관까지 역임했다. 남성은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고학력자의 마음을 사려 했고, 여성은 유력 인사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았다면 필경 부르주아 대동단결이 이뤄졌을 것이다.(1)
하지만 남성과 여성, 즉 에마뉘엘 마크롱과 발레리 페크레스는 서로 등진 채 표심을 다퉜다.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아마 프랑스의 두 주요 정당 역시 힘 있고 영향력 있는, 그러나 그 수는 소수에 불과한 사회 계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슷한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노린 건 다름 아닌 기업의 간부와 대표들, 그리고 고학력 직업군으로, 그들을 모두 합치면 경제 활동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노동자층은 그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후보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대선 결선 투표에서 자연스레 우파와 중도파를 결집시킨 이 부자들의 연합 전선에 맞선 서민층(2)은 온라인에서야 그 수가 많아 보여도 정치적으로는 한없이 분산돼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 프랑스에서 경제활동인구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서민층에 해당하는 육체노동자(현장직 및 미숙련 단순 기능공) 혹은 비육체노동자(사무직 및 판매서비스업 종사자)다. 육체노동자의 80%는 남성이며, 비육체노동자의 75%는 여성이다. 대체로 학력과 급여가 낮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서민 계급과 소중산층 계급 사이의 사회적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민간 혹은 공공 부문에서 전문 기술자나 자영업자, 교사 및 간호사, B등급 공무원(2년제 이상 대학 졸업자) 등으로 종사하는 소중산층 계급은 긴축 경영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차츰 무너지는 상황이다.
어이없는 중산층 신화, 심각한 이분법의 오류
정당의 선거 전략은 - 주류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함께 보조를 맞추는 가운데 - 언제나 동일 구도로 사회를 양분하며 수립된다. 도심의 고학력 계층과 근교의 서민 계층으로 사회를 이분화해 선거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이 구도에 따른 서민 사회는 보통 남성이 주를 이루며, 몇몇 소집단끼리만 뭉치는 가운데 섬처럼 고립되는 경향을 보인다. 도심 쪽 부르주아 계층이 내세우는 사회적 가치나 생태적 가치에도 시큰둥하다. 이로써 과거와 미래, 근교와 도심, 폐쇄와 개방, 무지와 지식, 정주와 이동, 정체성과 다양성, 서민과 엘리트, 포퓰리즘과 자유주의로 양분된 사회가 탄생한다. 이렇듯 엉성한 사회 구분은 지난 15년 간 너무도 쉽게 당연시됐다.(3) 그 원인은 비단 그렇게 양분된 사회의 모습이 70년대 이후 인기를 끈 ‘중산층화’의 어이없는 신화보다 더 충실하게 이 나라의 초상을 담아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이분법적 구도는 사실 그 어떤 변화도 이뤄지지 않는 보수적인 선거판을 짜는 데에도 꽤 유용하기 때문이다. 표심 경쟁에서 극우파는 정처 없이 떠도는 민심을 일단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세계화에서 득을 보지 못한 서민층이나 소상공인, 가족 기반의 소규모 사업자,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과 에리크 제무르가 민족주의 집단으로 규합하고자 하는 전통적 보수주의 우파 등을 포섭했다. 이는 마크롱과 페크레스 입장에서도 반가웠던 처사였다. 적당히 인종주의나 안보 위협으로 몰아가는 꼼수를 쓰면서 ‘파시스트의 위협’이나 ‘포퓰리즘의 위험’ 프레임으로 묶어버리면 굳이 연정 체제를 구축하지 않아도 쉽게 권력을 교대로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좌파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민층 노동자와 중산층 지식인을 규합하며 얼마 남지 않은 표심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은 서로 상극인 사람들을 한 울타리 안에 집어넣는 격이나 다름없다. 저학력 노동자들은 세상이 실력 위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깨달았고, 고학력자들은 스스로 문화적 차별주의를 구축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집단을 한데 묶는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모하기까지 한 발상이다.(4)
여론 분석가 제롬 푸르케 역시 2019년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한 태도는 각 개인의 학력 수준에 따라 굉장히 상이하게 나타났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저학력자들은 노란 조끼 시위에 훨씬 동질감을 느낀 반면, 고학력자들은 무덤덤하거나 적대적이기도 했다.”(5) 이에 직업 자격증 소지자들 중 약 1/3이 스스로를 ‘노란 조끼 시위대’라고 생각했으나, 대졸 이상 학력자들 중 9%만 스스로를 ‘노란 조끼 시위대’로 인식했다. 사회 계층의 정신적 성향과 취향을 조사한 어느 사회학 연구팀 역시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들과 가장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단연 교사라는 직업이 우선적으로 언급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6) 따라서 두 집단이 함께 미래를 구상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2017년 대선에서 부르주아 진영을 이끈 마크롱이 당선하고 극우 세력의 이례적인 지지율이 지속되면서, 언론과 정치권 내에서는 서민층 역시 이민 문제에 집착하고 진보에 적대적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하지만 마크롱 임기 동안 크게 두 가지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면서 이런 인식이 뒤집힌다. 하나는 사회경제적 취약성에 초점을 맞춘 노란 조끼 운동이고, 나머지 하나는 2020년 봄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대대적인 봉쇄 조치다.
보건 위기로 그 알몸이 드러난 프랑스 사회에서는 그 동안 부르주아 집단에서 통상적으로 무시하거나 배척했던 모든 일들이 곧 긍정적인 것으로 부각됐다. 이 나라가 젊은 벤처 기업가나 재무 관리사, 경영자, AI 전문 기술자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트 계산대 출납원과 간호조무사, 화물 운전자, 육아 및 요양 도우미, 환경미화원 등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7) 아울러 이와 함께 지난 수십 년간 서민 계층 내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던 노동계의 지각 변동 또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 노동자 계층의 주도적 성별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던 자리를 화물 컨테이너가 하나둘씩 차지하면서 공장 노동자가 물류 노동자로 대체되리란 사실은 쉽게 짐작이 됐지만, 프랑스 사회의 가장 놀라운 변화 양상은 사실 다른 데서 나타났다.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여성 노동자가 서민 계층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1970년 당시 여성들은 경제 활동 인구의 38%, 서민층 노동자 인구에서도 역시 38%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50년 후, 경제 활동 인구 중 여성의 비율은 48.5% 정도로 증가했으나 서민 노동자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2% 이상으로 올라갔다. 사실 1995년 여성들은 경제 활동 인구 중 소수(46%)에 해당했음에도 서민 노동자층에서는 이미 과반을 넘어섰다. 그해 알랭 쥐페 총리의 연금 제도 개편에 반발해 일어난 대대적인 총파업에서 다들 철도 노조가 (언론의 표현처럼) ‘전위 부대’ 역할을 했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이런 변화는 사실 사회 필수 서비스를 기반으로 노동자 계층이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민층 여성 노동자가 늘면서, 당연히 전체 여성 노동자가 늘었다. 1970년에는 25~59세 여성 중 약 절반만 하던 경제활동을, 지금은 약 82.5%가 한다(남성의 경우, 1970년대에는 해당 연령대에서 95%가, 현재는 91.9%가 경제활동에 참여한다). 교육 수준과 무관하게 여성 노동자가 늘자, 남성보다 훨씬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덩달아 늘었다.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이 늘어났으며, 여성 노동계의 지형도 자체가 달라졌다.
1982년까지만 해도 타이피스트나 전화교환원, 경리 등의 사무 보조직이 전체 일자리의 36%를 차지했다. 그러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해당 직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이와 동시에 인구 고령화가 진행됐으며, ‘가사 활동’이 ‘가사 직무’로 바뀌면서 육아 도우미나 아이 돌보미, 가사 도우미, 노인 및 장애인 돌보미 등 여성들의 일자리 스펙트럼이 대거 확대된다.
간호조무사나 보육 교사, 요양보호사, 의료상담지원사 등 ‘정부의 왼팔’로 불리는 인력도 크게 늘었다. 요컨대 여성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부상은 “개인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과 민간기업 종사자, 공공서비스 제공자의 증가로 이뤄졌다.”(8) 해당 분야의 종사자 수만 해도 전체 고용 인구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제는 남성 노동자보다 여성 노동자와 마주칠 때가 더 많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단 언론과 문화계의 소자본가 계층이 주도하는 허상과 달리 노동자 계층의 주도적인 집단이 여성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나 직장 생활에서나 급여 및 학력 수준이 더 높은 또 다른 여성 직업군과 인접해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즉, 이들이 간호사와 복지사 등 의료 보조 및 사회 사업 부문의 소중산층 계급 일자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분야 역시 국내 고용계의 지형도를 바꾸면서 교사 직업군과 더불어 프랑스 전체 고용시장의 약 10%를 차지한다.
광장에 나온 여성들이 보여주는 것
물론 학위를 소지한 전문 간호사와 육아 도우미 사이에 소득 격차나 처우 및 생활 방식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관리직이 아니라 상부의 압박을 받는 일자리이며, 그 때문에 자기 업무에만 전념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삶이 점점 취약해지는 현 상황으로 인해 이들 두 계층 사이의 사회적 거리도 점점 더 가까워진다. 2018년 말 두 계층 여성들 모두가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에 나선 이유다. 한 유력 정치학 저널에 따르면 “광장에 나온 여성들 가운데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인력이 굉장히 많았으며, 개중에는 간호사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 이는 노동환경의 악화로 부문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다.”(9)
좌파 정당이 서민 계층을 다시 ‘공략’하고자 할 때, 그 주된 대상은 정체성이 위축된 해직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의 척추를 이루는 필수 서비스 업계 여성 노동자다.(10) 사회적 재생산 기능을 하는 이 부문은 구태의연한 과거의 직업군이 아니며, 코로나 시국 하에서 그 ‘필요성’과 더불어 현대적 직업군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제 그 누구도 컴퓨터 앞 실리콘 밸리 광대들의 잔재주를 쌍수 들고 환영하지 않는 세상에서, 학교와 병원, 요양원 등의 기간 시설을 이끌어가고 집안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이 모든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냉전 이후 프랑스의 주요 좌파 정당들은 더 이상 서민층 노동자의 사회 전선을 구축하지 않았다. 고학력 직업군이 배제될 소지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히 좌파의 참모들도 고학력 직업군에서 배출됐다. 하지만 기자와 고숙련 기술자가 손을 잡는 것보다는 사회 복지사와 간호사, 그리고 이들의 배우자인 화물 노동자와 기술 노동자의 동맹이 사회적으로 더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이들의 정치적 동력도 높은 편이다. 팬데믹 속에서 각광받은 필수서비스 직종은 여성 노동자가 주를 이루며, 이민자 출신의 기여도도 꽤 높다. 즉, 부분적으로나마 민족주의적 편가르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따라서 사회 필수 서비스 부문은 개인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부분들이 사회적 차원에서 보장될 때 비로소 개인의 완전한 성장도 가능하다는 사회 모델을 예고한다.
즉, 개별 지위의 보호 하에 필수 서비스 직업군을 아우르는 공공 서비스의 안착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차기 정권 공략을 위한 토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Bruno Amable, ‘Majorité sociale, minorité politique(한국어판 제목: 정치진영을 X레이로 분석한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3월호, 한국어판 2017년 4월호.
(2) 프랑스 국립 통계 경제 연구소(INSEE)의 사회직업군 분류에 따른 육체 노동자와 비육체 노동자를 모두 서민층으로 정의한다. 별도의 언급이 없다면, 본문에 게재된 수치는 모두 프랑수아 드노르(François Denord) 및 실뱅 틴(Sylvain Thine)의 1970년, 1995년, 2019년 고용조사 통계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3) Christophe Guilluy, 『La France périphérique』, Flammarion, Paris, 2014. / David Goodhart, 『The Road to Somewhere』, Penguin Books, London, 2017. / Jerome Fourquet, 『L’Archipel français』, Seuil, Paris, 2019. / Jerome Sainte-Marie, 『Bloc populaire』, Editions du Cerf, Paris, 2021.
(4) Benoît Bréville & Serge Halimi, ‘On aimerait bien, mais on ne peut plus... (한국어판 제목: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프랑스어판, 2022년 1월호.
(5) ‘노란조끼들 - Note n° 2 : 그들 “노란조끼들” : 규정을 벗어난 운동의 사회학’, <IFOP Focus>, n° 191, Paris, 2019년 2월.
(6) Rémy Caveng, Fanny Darbus, François Denord, Delphine Serre & Sylvain Thine, ‘윤리 연구 자료의 교차점’, in Emmanuelle Duwez & Pierre Mercklé, 『프랑스 패널 조사. 온라인으로 장기간 진행된 사회과학적 연구(Elipss)』, INED Editions, Paris, 2021.
(7) Gilles Perret & Francois Ruffin의 영화, ‘Debout les femmes !’ Jour2fête & Fakir, 2020.
(8) Virginie Forment & Joelle Vidalenc, ‘피고용인들: 폭넓게 여성화된 직업들’, <Insee Focus>, n° 190, Paris, 2020년 5월 5일.
(9) 노란조끼 대상 설문집, ‘모바일 설문을 통한 원론적 조사: 노란 조끼 관련 연구’, <Revue française de science politique>, vol. 69, n° 5-6, Paris, 2019년 10월-12월호.
(10) Pierre Rimbert, ‘La Puissance insoupçonnée des travailleuses(한국어판 제목: 여성 노동자들이 지닌 뜻밖의 권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