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적합한 어휘 선정
정당들은 ‘당파 간 대립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반복된 타협 끝에, 좌파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 한다. 과연,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에 좌파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충분할까?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부동층과 기권층 같은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파 진영으로 이끌 수 있을까? 각종 선거 전략이 마련돼 있지만 어떻게 해야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무엇을 강조하고 어떤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할까? 요컨대, 좌파 진영이 어떻게 소통해야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유권자의 표심은 정치지도자들이 회의나 토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가장 주목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변화와 변절은 엄연히 다르다
오늘날 사람들은 ‘좌파의 소프트웨어’는 구시대적이고, 과거에 쓰던 말이 이제는 통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변화와 변절은 구분해야 한다. 심한 경우, 좌파나 우파나 결국 서로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필요했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다 지났으니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더 큰 숲을 보라고 한다. 불복하는프랑스(La France Insoumise, 라 프랑스 앵수미즈)당의 대선 후보였던 장 뤽 멜랑숑의 도발적인 발언에서도 이런 논리가 등장한다.
멜랑숑은 자신의 대선 공약집 <공동의 미래(L’Avenir en commun)>에 ‘좌파’라는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한 기자의 지적에, “나를 좌파로 보든 우파로 보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좌파라는 단어가 ‘거짓 선동’에 악용됐다고 강조했다(2021년 11월 25일, <베에프엠 테베(BFM TV)>). 그럼에도 멜랑숑이 좌파 후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모두가 좌파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의미를 되살리려고 애쓴다. 그리고 아직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 불평등 문제가 아직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빈곤퇴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좌파는 다소 뜻밖의 방정식으로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다(야닉 자도 유럽생태녹색당 후보의 2021년 9월 28일 연설과 2021년 11월 25일에 <베에프엠 테베>에 출연한 멜랑숑 후보의 발언 등). 사회 정의나 사회 변혁을 요구하기보다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불의를 규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두 가지 접근방식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의 특징은 ‘한 달에 800유로’를 벌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해가 져야 퇴근하는’ ‘노동 일선’의 여성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이다(2021년 10월 25일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의 ‘정책 문제(Questions politiques)’에 출연한 올리비에 포르 프랑스 사회당 대표). 이런 담론은 신랄하며, 호소력 있고, 분노를 자극한다. “가난한 사람, 춥고 배고픈 사람, 전기도 물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2021년 10월 7일, <프랑스2>의 ‘네 가지 진실(Les 4 vérités)’에 출연한 멜랑숑).
강력한 어조, 모호한 의미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극빈층이 겪는 극단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분노가 좌파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시간제로 일하는 여성’과 ‘빈곤이라는 수치’, ‘빈곤퇴치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언급하며, “과밀 가구 아동들은 눈이 나빠도 안경을 구하지 못하고, 급식비가 없어서 점심을 굶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좌파 인사가 아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었다(2018년 9월 13일, ‘빈곤퇴치 국가 전략 발표’).
이미 1891년에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집필해 반포한 교황 레오 13세는 사유 재산을 배척하고 무신론을 표방한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에는 반기를 들었으나,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를 규탄하고 ‘정당한 임금’을 역설하면서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부당한 처우와 빈곤 문제를 지적했다.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 전환을 촉구한 결과, ‘임금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하는 기독교 사회주의와 기독교 협동조합 운동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는 프랑스 노동민주동맹(CFDT)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멜랑숑이 즐겨 쓰는 말인 사회적 ‘냉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온정’이나 ‘보호’, 혹은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자주 언급하는 ‘동반’의 차원으로 빈곤 문제를 축소한다. 빈곤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다름 아닌 ‘존엄한 삶’이기 때문이다. ‘환경만큼 인간의 삶도 존중할 것’, ‘존엄한 삶을 영위할 권리(2021년 9월 11일, ‘뤼마니떼 축제 Fête de l’Humanité’에 참석한 프랑스 공산당 대선 후보 파비앙 루셀)’와 같은 말은 ‘벌어먹고 사느라 바빠도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소시민들(2021년 5월 1일, 릴에서 진행한 연설)’을 대신해 멜랑숑이 평소 즐겨 쓰는 구호이기도 하다.
어조는 강력하지만 정작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모호하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존엄하다’는 ‘명예롭다’의 동의어다. 과연,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존엄한 삶’이라는 말은 어쩌면 1944년 3월 15일에 레지스탕스 전국 회의(Conseil National de la Résistance, CNR)가 채택한 경제·사회 강령 ‘황금시대(Jours heureux, 사회의 진보가 절정에 이르러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서 착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해당 강령은 ‘대폭적인 임금 조정을 통해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이 안전과 존엄, 전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임금 수준의 보장’을 기본 가치로 삼았다. 레지스탕스 전국 회의 구성원 중에는 가톨릭 사회 교리(교황 레오 13세의 사상에 근접)로부터 영향을 받은 인사가 여럿 있었다. 자유주의 성향의 정당 ‘전진하는 공화국!(LaREM)’ 출신인 아녜스 파니에뤼나셰(Agnès Pannier-Runacher) 경제 국무장관이 서슴없이 “월급 800유로로는 존엄하게 살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2021년 12월 9일, 프랑스 뉴스 채널 <세뉴스Cnews>).
‘온정’이라는 따뜻한 함정
레지스탕스 전국 회의의 사상적 계보는 좌파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때에 따라 맥락을 달리하거나 의미의 해석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좌파는 최빈곤층 문제에 대한 독단적인 시각처럼 ‘노동 착취’라는 단어도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노동과 관련된 노사관계나 사회 보장제도, 부과방식 연금(Pay-as-you-go system), 국유화 정책의 혁신적 모델은 반기지 않았다. 반면, 좌파 진영은 노동에 관한 한 막연하고 낙관적인 공상을 좋아한다. 공산당 후보였던 파비앙 루셀은 ‘황금시대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고 ‘프랑스의 황금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야닉 자도 후보는 ‘생명과 아름다움, 기쁨과 희망의 편에 선다’라는 환경친화적 공약을 제시했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은 이보다 더 직설적인 어조로 아무 거리낌 없이 “황금시대를 되찾을 것(2020년 4월 13일)”이라고 공언했다.
좌파의 정체성은 후보자나 정당 지도자의 개인적인 성향에 서민(보통 사람 혹은 평범한 시민) 친화적인 모습을 더해 만들어진다. 이달고 파리 시장은 자신이 이민자이자 노동자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멜랑숑은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자주 언급한다. 좌파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정감 어린 목소리로 ‘우리 아이들’이라는 말을 쓰고, 통속어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대형 제약회사들이 돈 버는 데만 눈이 시뻘겋다”(2021년 11월 30일, <LCP>)라고 했던 루셀 후보부터, ‘착한 먹거리(Bon manger)’라는 표현을 쓰는 멜랑숑 후보, 정부의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인상 결정에 “혓바닥이 길다”라고 깎아내린 포르 대표(2021년 10월 25일, <프랑스 앵테르>), “프랑스 국민은 토론에는 완전히 신경 껐다”(2021년 9월 20일, <BFM - TV>의 ‘칼비 3D’)라고 평가한 자도 후보까지, 좌파 인사들의 언사는 가감 없고 솔직하며 직설적이다. 엘리트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간혹 “환장한 듯 돈을 푼다(Pognon de dingue)”라는 뜻밖의 표현을 쓰거나, “밥 벌어 먹고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하기도 했다.(1)
물론 핵심은 소통이다. 정치인 중에는 승부수를 던지는 이도 있다. 하지만 관건은 잡음과 혼선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공약(제시된 공약의 구체적인 이행)이다. 반면 정치적 이슈몰이와 공동체의 온정에 함몰되다 보면 감정적인 측면에 치우쳐 표심을 잃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어려운 이웃에게 훈훈한 온정을 베푸는 일은 좌파냐 우파냐에 관계없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작가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2018년과 2016년의 마크롱 대통령 발언.
정보 조작 사용 설명서
지난해 11월 7일, 1983년에 촬영된 영상 하나가 트위터에 올라왔다.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우든(Edward Snowden)이 올린 것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퍼진 이 영상에서 프랑크 스넵(Frank Snepp) 전 CIA 요원은 “베트남 전쟁 중 어떻게 스노우든이 거짓 정보들로 언론을 조작했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그 당시 사이공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특파원들과 존경 받는 기자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카라벨 호텔이나 콘티넨탈 호텔에서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어울리면서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진짜 정보를 주면서 이들의 신뢰를 얻으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기자들에게 그가 확산시키려던, 진실이 아닌 가짜 정보들을 은연중에 흘렸습니다.” <뉴욕타임스>부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물론이고, <뉴요커>나 <뉴스위크>에 이르는 유력지들이 CIA 스넵 요원의 계속되는 속임수에 쉽게 넘어갔다. “대개는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습니다. 기자들에게 거짓 정보를 줬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영국 대사를 만나러 갔고, 영국 대사에게 기자들이 제 말을 확인하려고 할 때 진짜 정보인 것처럼 답변해주도록 부탁했습니다.” 1970~1980년대 대부분의 진보 성향 기자들은 정보기관을 거짓 정보의 온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CIA와 FBI가 공권을 위한 시위대 억압, 학생운동권에 잠입, 블랙 팬서(Black Panthers, 1965년 결성된 미국의 흑인운동단체-역주) 요인 암살, 라틴아메리카 극우파 독재자들에 대한 은밀한 지지 등을 자행했다고 여겼다. 30년 후, 모든 것이 변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비밀 정보원들은 TV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을 했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진짜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음모에 대해 고발했다. 존 브레넌(John Brennan) 전 CIA 국장은 2018년부터 <NBC>와 <MSNBC>방송에서 ‘국가안보 및 정보전문가’로 출연하고 있다. CIA 보좌관 출신이자 전 미 국방부 보좌관 제레미 바시(Jeremy Bash)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당시 민주당에 채용됐다(그는 이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팀에 합류했다). <CNN>방송은 ‘CIA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요원’ 로버트 바어(Robert Baer)와 ‘CIA 국장상, 뛰어난 대테러 투쟁 업적을 기리는 조지 H.W. 부시상 등 CIA 내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는’ 필립 머드(Philip Mudd) 등 전문가 명단을 웹사이트에 당당히 올렸다. 계속해서 어리석은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면, 스넵은 어쩌면 자신의 허튼소리를 맞는 정보라고 확인해달라고 영국 대사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TV에서처럼 언론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더는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11월 16일 <워싱턴 포스트>는 특별한 반박 기사를 웹사이트에 올리며 3차 대전을 촉발할 수 있는 특종이라고 했다. “2022년 11월 15일 작성한 기사의 이전 버전들에서 <AP>통신은 익명의 미 정보기관 고위 인사에게서 받은 정보에 의거해, 러시아 미사일이 폴란드에 떨어져 2명이 사망했다고 잘못 보도했다. 후속 보도에서 미사일은 러시아에서 제조됐고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우크라이나가 십중팔구 발사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