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티스를 팔고 아셰트를 넘보는 비방디
혼돈의 프랑스 출판업계
각계 명사들은 종종 책의 효용을 찬양한다. 그러나 그 책을 만드는 곳, 출판업계는 수십 년 동안 재벌들에 휘둘려왔다. 출판업계가 이윤 중심이 되면서 생각과 유형의 다양화가 훼손됐다. 또한, 이념과 윤리 측면에서 또 다른 형태의 지배구조가 떠오르고 있다.
미국 정부가 펭귄랜덤하우스 측에 소송을 제기했다. 펭귄랜덤하우스가 사이먼앤슈스터(Simon and Schuster)를 인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는 볼로레 일가가 움직이는 출판기업 비방디가 에디티스(Editis, 매출액 8억 5,000만 유로)를 매각하고 아셰트(Hachette, 매출액 26억 유로)를 인수하려는 현 상황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출판업계를 뒤흔들었던 주요 인수 합병 사례들을 되짚어본다.
2020년 7월부터 언론은 아르노 라가르데르와 뱅상 볼로레를 비교하는 기사를 주기적으로 게재했다. 전자는 2003년 부친으로부터 대규모 미디어 제국을 승계한 인물이고, 후자는 목재 무역과 아프리카 항구 이권 사업에서 거액을 벌어 ‘비방디’라는 또 다른 미디어 제국을 설립한 인물이다. 비방디는 우호적인 공개주식매입과 코만도 작전을 번갈아 구사하며, 2년 후인 2022년 6월 14일 기준으로 라가르데르의 주식 57.35%를 손에 넣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프랑스 출판사, 서점 조합, 작가연합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출판업계가 거쳐온 인수 합병 역사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자였던 에디트 모라가 1952~1953년 <레 누벨 리테레르 Les Nouvelles Littéraires>에 연재했던 ‘발행인, 당신은 누구?(Éditeurs, qui êtes vous?)’라는 제목의 르포르타주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 내놓았을 때, 그녀는 출판업계의 분위기가 가족경영 방식이 지배적이던 19세기 초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당시 ‘트러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초록 문어’ 리브레리 아셰트는 1890년대에 급성장했다. 그러나 아셰트가 역내 도서관과 신문잡지 배급소로 구성된 거대 유통망, 메사주리 아셰트를 구성하면서 흡수됐다. 이 출판업계 최초의 인수 합병은 소규모 출판사들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1930년대에 아셰트가 마스크와 탈랑디에를 인수하고 갈리마르의 유통망을 메사주리 아셰트가 인수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952~1961년: 1차 변동기
첫 번째 본격적인 변화는 1952~1961년에 일어났다. 아셰트와 갈리마르, 두 출판사는 전쟁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 이유는 서로 달랐다. 아셰트의 경우 1954년에 그라세, 1958년에 파야르, 1959년에 파스켈, 1961년에 스톡을 리브레리 제네랄 프랑세즈(LGF)의 이름으로 인수했다.
LGF는 대중용 전집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리브레리 아셰트의 자회사로, 『콜렉시옹 푸르프르(Collection Pourpre)』와 『르 리브르 드 포슈(Le Livre de poche)』가 대표 상품이다. 1953년 발행을 시작한 『르 리브르 드 포슈』시리즈를 키우기 위해 ‘초록 문어’는 소설 출판 이력이 풍부한 출판사들을 인수했다. 그리고 알뱅 미셸, 칼만 레비, 플라마리옹, 갈리마르 등과 같은 주요 독립 출판사들과 협약을 체결했다.
이 시기에 리브레리 아셰트는 NMPP(파리 신문잡지의 새로운 배급소) 협동조합을 통해 역내 서점과 신문잡지 유통시장을 장악해 막강한 힘을 얻었다. 메사주리 아셰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1944년 기탁됐다. 레지스탕스들은 이 메사주리 아셰트를 기반으로 메사주리 프랑세즈(Messageries françaises de la presse)를 세웠는데, 이는 NMPP의 전신이다. 3년 후, 사업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리브레리 아셰트는 NMPP의 지분 49%를 보유함으로써(나머지 지분은 협동조합 소속 출판사들이 보유) 하원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막강한 자본세력이 됐다. 프랑수아 미테랑도, 자크 샤방델마스도, 장 르카뉘에도, 선거 자금을 지원해주고 신문잡지 배급소의 국유화를 막게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1)
리브레리 아셰트가 유통망 강화 과정에서 떠들썩한 행보를 보인 반면, 리브레리 갈리마르는 조용히 성장했다. 갈리마르는 1952년 드노엘, 1958년 라 타블 롱드와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를 인수함으로써, 다양한 작가군을 얻었다. 대독 협력 작가로서 갈리마르에 거액을 벌어준 루이페르디낭 셀린을 비롯해 루이 아라공, 엘사 트리올레 등이 그들이다.
갈리마르가 유통사인 소디스와 배급사인 CDE(Centre de Diffusion de l’Édition)를 설립한 것은 1972~1974년이다. 이때는 갈리마르가 리브르 드 포쉬와의 불공정한 협약을 규탄하며 스스로 ‘폴리오(Folio)’ 브랜드를 출시하고, ‘트러스트’의 독점에서 벗어나려던 다른 출판사들에 메사주리 아셰트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갈리마르의 배급유통사로 오라고 권유하던 시기다.
1980~1988년: 2차 변동기
출판업계의 두 번째 지각변동은 1980년대에 일어났다. 1988년, 가장 큰 2개 출판사가 그룹 드 라 시테(Groupe de la Cité)라는 브랜드로 합쳐졌다. 비방디 그룹의 탄생을 예고한 순간이다. 첫 번째 회사는 1943년에 설립된 프레스 드 라 시테(Presse de la Cité)로, 르 플뢰브 누아르, GP 루즈 에 오르, 플롱, 쥘리아르, 라 리브레리 아카데미크 페랭과, 탐정 소설과 스파이 소설, SF, 청소년 문학, 일반 문학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기타 출판사들을 흡수했다. 두 번째 회사는 아바스(Havas)의 CEP-커뮤니케이션으로, 나탕, 라루스, 보르다스-뒤노를 인수했다.
원래는 아바스, 파리와 네덜란드 은행(Banque de Paris et des Pays-Bas, 아셰트의 최대 주주), 그리고 <RTL 라디오>의 소유주인 CLT(Compagnie Luxembourgeoise de Télédiffusion)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커뮤니케이션 그룹을 구성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81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을 대통령에 재선시키고자 계획된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장뤽 라가르데르(마트라스(Matras)와 <Europe 1>의 CEO)는 이를 기회로 삼아, 1980년 12월 리브레리 아셰트를 인수했다. CEP 커뮤니케이션은 1984년 리브레리 아셰트로부터 라루스를 가져가기는 했지만, 1919년에 설립된 주식회사 리브레리 아셰트가 1988년에 그룹 아셰트로 거듭나 프랑스 출판업계의 리더 자리를 굳히면서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같은 시기에 또 하나의 주자인 마송(Masson) 그룹이 출판업계에 뛰어들었다. 제롬 탈라몽과 그의 사촌이자 로레알의 부사장이던 마르크 라드레 드 라샤리에르가 이끄는 회사였다. 이 둘은 갈리마르 가문의 불화를 기회로 삼아 유럽 3위 규모의 출판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주식공개매입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송 그룹은 (계열사인 벨퐁, 아르망 콜랭 등과 함께) 그룹 드 라 시테에 인수됐다. 그룹 드 라 시테는 장뤽 라가르데르가 고전하는 동안 프랑스 출판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당시 장뤽 라가르데르는 리브레리 아셰트와 NMPP가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전체를 매각해야 했다. <TF1>의 독주를 막기 위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의 합작으로 개국한 TV 채널로서 1987년에 민영화된 <라 생크(La Cinq)>가 1992년에 파산하면서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그룹 아셰트가 영국, 호주, 미국, 스페인, 남미의 수많은 출판사들을 사들이며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을 무렵, 그룹 드 라 시테는 HPE(Havas Publications Edition)으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당시 그룹 드 라 시테 자본의 상당 부분은 지미 골드스미스가 1968년 설립한 지주회사인 제네랄 옥시당탈이 소유하고 있었다. 인수전은 CGE(Compagnie Générale des Eaux)가 이 지주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 줄줄이 시작됐다. 그룹 드 라 시테는 최대 주주인 아바스에 1997년 인수돼 HPE가 됐다. 그리고 아바스의 최대 주주였던 CGE는 아바스를 인수하고, 1998년 비방디(Vivendi)로 이름을 바꿨다. 장마리 메시에가 이끄는 비방디는 세계 커뮤니케이션 시장을 공략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2002년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출판계의 재앙은 예견된 것”
닥쳐올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회사 직원들이 얼마나 불안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출판 전문가들은 출판업계의 문화에 대해 지식도 교양도 없는 팀장 밑에서 일해야 했다. 또한 자신이 만드는 책이 무사히 출간될지, 수익성이 더 높은 다른 책에 밀릴지 홍보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책의 가치는 ‘확장성’에 따라 평가됐다. 영화나 TV드라마 등 다른 장르로 확장될 수 있는지,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에 따라서 말이다. 대표적인 예로 디즈니의 ‘노틀담의 꼽추’를 꼽을 수 있다.
앙드레 시프랭은 그의 저서 『편집자 없는 출판사(L’Edition sans éditeurs)』 (La Farique, Paris, 1999)에서 “출판계의 재앙은 예견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판업계의 산업적 논리를 경제적 논리로 대체하면서부터 말이다. 미래 예측과 일방적 명령에 익숙하지 않은 출판업계에서 10% 이상의 수익을 낸다는 것은, 2세기 전부터 출판업계를 지지해온 양대 원칙인 ‘모험’과 ‘무명작가 발굴’을 없애야 함을 의미했다.
2002년 가을, 경매에 부쳐진 비방디 유니버설 퍼블리싱(VUP, Vivendi Universal Publishing)은 장뤽 라가르데르에게 인수됐다. 이 사건은 2020년 뱅상 볼로레가 아셰트를 인수했을 때처럼 거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문화부 장관이었던 장자크 아야공(Jean-Jacques Aillagon)은 세계적인 규모의 출판그룹 탄생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립출판노조, 프랑스서점노조, 작가연합, 수많은 지식인들은 이런 대재앙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EU 집행위는 장뤽 라가르데르에게 인수 과정을 멈추고 나텍시스 은행(Banque Populaire)에 인수 관리를 맡길 것을 지시했다.
VUP는 장뤽 라가르데르가 세상을 떠난 2003년 에디티스로 회사명을 바꿨는데, 아셰트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이 ‘꾼’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장뤽 라가르데르의 외아들인 아르노 라가르데르는 2004년 가을에 VUP의 지분 40%를 가져갈 수 있다는 판결을 EU 집행위로부터 받았다. 나머지 60%는 에른스트 앙투안 셀리에르 전 MEDEF(프랑스산업연맹) 회장이 이끄는 웬델 인베스트먼트(Wendel Investissement)에 돌아갔다. 셀리에르는 VUP를 인수하면서 출판 분야에 본격적으로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2008년에 그는 에디티스를 스페인의 플라네타 그룹에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단순한 제품이 아닌 ‘책’을 만들겠다는 믿음으로 일하던 출판사 직원들은 또 다시 충격에 빠졌다.
한편 아셰트는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넓혀가 2006년 타임 워너 북 그룹과 몇 개의 영국 출판사들을 인수했고, 그 결과 랜덤 하우스를 소유한 독일의 베텔스만, 펭귄 북스를 소유한 영국의 피어슨, 미국의 사이먼앤슈스터와 미국 출판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아셰트가 전 세계 출판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자 새로운 타이탄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프랑스에서는 플라마리옹이 2000년 이탈리아의 리졸리 코리에레 델라 세라(Rizzoli Corriere della Sera)에 인수됐다가 2012년에 갈리마르의 지주회사인 마드리갈에 다시 팔렸다.
쇠이(Seuil)는 2004년 라 마르티니에르(La Martinière, 샤넬 향수)에 인수된 뒤 2017년에는 한창 사세를 확장 중이던 신생 기업 메디아-파르티시파시옹(Média-Participations)의 손에 넘어갔다. 2014년 각종 기업의 인수 합병으로 돈방석에 앉은 볼로레의 비방디는 다시 출판업계로 돌아왔다. 볼로레는 2002년에 플라네타 그룹에 매각했던 에디티스를 재인수하겠다고 2018년 깜짝 발표했다.
결국 에디티스는 돌고 돌아 다시 비방디의 소유가 됐다. 곳곳에서 물이 새는 아셰트 호의 선장 아르노 라가르데르의 지원 사격에 나선 니콜라 사르코지가 2020년 설계한 전략에 따라, 볼로레는 아셰트의 지분에 곧 참여할 예정이었다.
‘뇌의 휴식시간’을 노린 새로운 갈등
그러나 이런 프랑스식 인수 합병에 대해 앞으로 EU 집행위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황은 2002년과 완전히 다르다. 현재 출판사별 매출액을 보면 아셰트가 26억 유로, 에디티스는 8억 5,000만 유로다. 만화 분야에서 강세 (르 롱바르(Le Lombard), 뒤퓌(Dupuis), 다르고(Dargaud))를 보이는 출판업계 3위의 메디아 파르티시파시옹과 4위 마드리갈이 6억 5,000만~7억 유로의 매출액을 내고 있다.
볼로레가 업계 1위의 아셰트를 노리는 이유는 단순히 숫자 때문은 아니다. 비방디를 이끄는 볼로레는 ‘도덕 재무장(moral rearmament)’에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 볼로레는 공식적으로 첫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미디어 제국(<CNews>, <Europe 1>, <Canal+>, 그리고 곧 추가될 예정인 <Paris Match>, <Journal du dimanche>)에 기독교적인 서구의 전통 가치를 입히기를 공공연하게 원하고 있다. GAFAM(Google, Apple, Facebook, Amazon, Microsoft)이 2010년과 2015년 사이에 이미 온라인 판매 분야를 장악하기는 했지만, TV, 라디오, 신문, 출판사를 소유하고 인터넷상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디어 제국의 출현은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 사의 소유주이자, 페넬로페 피용의 관대한 후원자이며 문화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백만장자 마르크 라드레 드 라샤리에르가 설립한 웨베디아는 온라인 미디어(Purepeople, Puremedias 등)와 온라인 비디오 게임(jeuxvideo.com)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에디티스와 아셰트도 이 분야에 투자했다. ‘뇌의 휴식시간’을 노린 치열한 전투가 곧 시작될 것이다. 출판업계에 새롭게 등장한 갈등의 주제다.
글·장이브 몰리에 Jean-Yves Mollier
역사학자. 『Brève Histoire de la concentration dans le monde du livre 출판업계의 인수 합병 역사』의 저자(2022년 9월 8일 Libertalia에서 출간).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Jean-Yves Mollier, 『Édition, presse et pouvoir en France au XXe siècle 20세기 프랑스의 출판, 언론, 권력』, (Fayard, 2008), 『Le Siècle d’or de la corruption parlementaire. 1880~1930 1880~1930년 의회 부정부패의 전성기』, (Plon, 2018), 『Brève Histoire de la concentration dans le monde du livre 출판업계의 인수 합병에 관한 역사』, (Libertalia, 2022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