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뷔 카바레>, ‘벽을 뛰어 넘은’ 초대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대표작 <위뷔왕(Ubu Roi)>은 1896년 뢰브르 극장(Théâtre de l’Œuvre)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초연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모든 형식과 풍토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신랄한 작가였던 자리는 말라르메, 아폴리네르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34세에 사망할 때까지 30여 편의 소설과 오페라를 남겼다. 그중 대표작은 『상상적 해법의 과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Gestes et opinions du docteur Faustroll, pataphysicien)』(이지원 역, 워크룸프레스, 2019년-역주)이다.
그러나 ‘상상적 해법의 과학’의 이론화보다 ‘위뷔’라는 인물의 불경함과 기상천외함이 더 조명을 받았다. ‘위뷔스러운(Ubuesque)’이라는 형용사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그의 이름은 일상어로 녹아들었지만, 정작 러시아군 및 폴란드군을 비롯한 수많은 등장인물이 내포하는 철학적·정치적 쟁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과거 아라공 왕국의 왕이었던 위뷔는, 권력을 찬탈하고자 자신을 신임하는 폴란드 벤세슬라스 왕을 주저 없이 살해한다. 게다가 아내의 부추김에 힘입어 농민들을 수탈하고 귀족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약탈과 폭정을 일삼는다. 끔찍하고 추악하고 심술궂은 위뷔는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소시지를 처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위뷔와 어머니 위뷔는 그렇게 폭군의 원형이 되었고, 이야기의 구성은 시대와 인물을 막론하고 권력에 중첩될 수 있다.
자리는 욕설 등을 그대로 쓴 어조와 용어, 독창적인 도구나 장치(뇌를 튀어나오게 하는 기계 등)를 만들어냄으로써 초현실주의와 부조리극의 선구자로서 희극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부르주아 문화에 도전했다(<현대프랑스 문학과 예술>, 권은미 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년 참조-역주).
장 랑베르-빌드(Jean Lambert-wild)가 카트린 르푀브르(Catherine Lefeuvre)와 각색하고 로랑조 말라게라(Lorenzo Malaguerra), 제롬 마랭(Jérôme Marin)과 연출한 <위뷔 카바레>에서 카바레의 공간 자체가 무대가 되며, 관객은 위뷔의 실종과 그의 유쾌한 장례식을 통해 ‘자리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소환되는 위뷔의 등장인물이나 자리의 세계관, 혹은 부대의 등장인물들이 남기는 지나치고 그로테스크한 내레이션은 허풍과 화려함으로 승화된다. 위뷔의 죽음을 축하하고 자유의 회복에 대해 자문하도록 초대받은 인물들은 세상을 등에 짊어진 하얀 광대(장 랑베르-빌드), 부드러운 천 내부에서 물결치거나 뇌 속에서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공중곡예사(로라 베르노키), 시르카시아 출신 벵상 데프레, 배우이자 가수이자 탱고 댄서인 잔느 플랑트, 로익 아세마(빅 버사), 실방 뒤푸르(미스 탐폰), 제롬 마랭(미스터 K) 등의 방탕한 드래그 퀸과 퍼포머, 음악가 프레데릭 지에와 로랑 누지에, 그리고 에메 랑베르-빌드와 그녀의 작은 말 등이다.
이들은 모두 홀로, 혹은 함께 자리의 언어와 세계관을 탐험하며 자신의 악기와 몸을 사용해 자리의 시를 재해석한다. 허망스레 변덕스런 자리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말장난과 노래를 뒤섞어 관중을 증인으로 소환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연기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위험을 감수한다.
이 공연은 지난해 5월 26일까지 모뵈주, 발랑시엔, 몽에서 열린 이탁 축제(festival iTAK)의 일환으로 브뤼셀 레알드샤에벡(Les Halles de Schaerbeek) 무대에 올랐으며, 2023년까지 상연된다. 카바레 공연의 또 다른 형식을 취한 귀르샤 샤에망(Gurshad Shaheman)의 <요새(Les Forteresses)>는 지난해 5월 24~25일 모뵈주의 마네쥬 극장에서 선보였다.
아랍계 프랑스인 예술가가 테헤란의 야외 식당을 배경으로 1960년대에 태어나 1979년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고 결국 망명한 자신의 어머니와 두 이모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당사자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뿐 아니라 춤과 노래를 선보이고, 세 명의 배우-스토리텔러들이 동양적인 일렉트로-어쿠스틱 세계에서 펼치는 험난한 운명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환상적인 공연이다.
이토록 색다른 카바레는 관객에게, 극장의 네 번째 벽을 뛰어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하는 것, 즉 ‘참여로의 초대’가 아닐까?
글·마리나 다 실바 Marina Da Silva
연극평론가
번역·안해린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