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마지막 투기 은신처

2012-02-13     장 지글러

지난 1월 초, 조제 그라지아누 다시우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신임 사무총장이 아프리카에 대한 식량 지원 확대를 임기 중 주요 정책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제안한 대로 단순히 식량 지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농산물이 투기 대상이 되지 못하게 막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농업 전문가이자 스위스 대사관 협력 참사관인 아다마 파예와 함께 세네갈 대영도로 가는 길. 투기가 농산품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최근 통계 그래프들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있다. 자동차가 생루이에서 100km 떨어진 루가 마을로 들어가 멈춘다. “제 여동생을 만나러 갈 겁니다. 여동생은 이곳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접 설명해줄 거예요. 통계는 필요 없습니다.” 파예 참사관의 말이다.

날마다 비싸지고 있다

누추한 시장, 도로가에 늘어선 좌판들. 각종 채소들이 언덕처럼 쌓여 있고, 암탉들은 닭장 속에서 꼬꼬댁거리며 울고 있다. 땅콩, 토마토, 감자도 보인다. 스페인산 오렌지와 밀감도 보인다. 그런데 세네갈에서 흔한 과일로 알려진 망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나무 좌판 뒤로 여자 한 명이 장사꾼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샤로, 파예 참사관의 여동생이다. 아이샤는 우리 질문에 열심히 대답한다. 분노로 열변을 토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외국산 쌀 50kg짜리 한 부대 가격은 1만4천 세파프랑(CFA)이다.(1) 쌀값이 갑자기 폭등하면서 저녁에 먹는 쌀죽은 쌀보다 물이 많아 점점 묽어졌다. 솥 안에는 쌀 몇 알갱이만 물에 떠 있을 뿐이다. 시장에서 여자들은 이제 컵으로 쌀을 산다. 작은 가스병 하나도 몇 년 새 가격이 1300세파프랑(2)에서 1600세파프랑으로 폭등했다. 당근 1kg의 가격은 175세파프랑에서 245세파프랑, 바게트빵은 140세파프랑에서 175세파프랑으로 오른 상태다. 달걀 30개가 담긴 한 판은 1년 새 1600세파프랑에서 2500세파프랑으로 올랐다. 생선값도 폭등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샤는 이런 상황에 분노했다. 다른 장사꾼들이 현재 상황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자 아이샤는 다그치듯 큰 소리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쌀 1kg 가격이 얼마인지 알려줘요! 모든 것이 매일 비싸지고 있잖아요.”

자본시장이 이처럼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작 어떤 메커니즘으로 식량 투기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식량 가격을 올리는지 잘 모른다.

모든 것은 희소성에서 시작된다. 농산물 무역은 다른 품목의 무역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뤄지는데, 농산물 시장에서는 공급보다는 수요가 많은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에서 판매되는 갖가지 곡물은 실제 생산된 양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쌀은 7%).” 경제학자 올리비에 파스트레의 설명이다. 파스트레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세계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시장은 요동칠 수 있습니다.”(3) 농산물은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생산물)이 급박해져서 공급에 영향을 주는 가뭄·대화재·홍수 등의 자연재해에 민감해진다.

이런 이유로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한다. 주식·채권·현금 같은 금융수단으로 중서부 지방의 농부들은 수확하기 전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계약해 농산물을 팔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수확기 때 농산물 시세가 떨어지면 농부는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시세가 오르면 투자가가 수익을 얻는 구조다.

하지만 1990년대 초에 농산물은 투기 대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수석 경제학자 하이너 플라스베크 박사는 2003~2008년 농산물 펀드(4)를 이용한 농산물 투기가 지수로 200~300% 증가했다고 밝혔다.(5) 이때부터 기본 식량 가격이 폭등해 37개국에서 기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아이티의 빈민촌 시테 솔레유의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먹일 진흙 쿠키를 만드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했다. 이집트 카이로, 세네갈 다카르, 인도 뭄바이,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튀니지 튀니스의 거리에서 수만 명이 빵을 요구하며 벌이는 시위가 몇 주 동안 신문마다 1면을 장식했다.

유엔 FAO가 정한 2008년 가격지수는 2007년보다 평균 24%, 2006년보다 평균 57% 높았다. 옥수수가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사용되면서 세계 옥수수 시장에서 미국이 판매하는 옥수수 물량은 줄어들었다(참고로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위해 옥수수 생산자들에게 매년 6천억 달러 정도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동물 사료로 일부 사용되던 옥수수 역시 시장에서 귀해졌다. 옥수수 수요가 커지면서 가격은 2006년부터 올라갔다. “또 다른 중요 식량인 쌀도 가격이 올랐습니다. 방콕은 쌀 1t이 250달러에서 1천 달러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6) 세계는 21세기가 되면 기아로 죽는 사람이 수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하지만 침묵이 이어질 뿐이다. 이런 침묵은 다시 한번 비극을 잉태한다.

투기세력 배불리려 굶는 사람들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식량 투기는 더욱 심해졌다. 투기자본, 특히 최대 투기자본인 헤지펀드들은 손실을 피하려고 농산품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에게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재화가 미래 수익을 줄 수 있는 투기 대상이다. 그러니 전세계 소비의 75%를 차지하는 쌀·옥수수·밀 같은 기본 식량(이 중 쌀은 전세계 소비 중 50% 차지)은 당연히 투기할 만한 좋은 대상이다. FAO의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농산물 관련 선물거래에서 실제 농산물 거래는 2%뿐이다. 나머지 98%는 오로지 발 빠르게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투자자들이 벌이는 머니게임에 불과하다.

농산물 투기가 도를 넘자 미국 상원은 우려를 금치 못했다. 2009년 7월, 미국 상원은 밀 투기가 심각하다고 비난했다.(7)

미국 상원만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2011년 1월 또 다른 기관이 원자재, 특히 식량 가격의 증가를 사이버전쟁, 테러리스트들이 소지한 대량살상무기와 함께 국가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큰 적으로 꼽았다. 경고를 내놓은 곳은 세계경제포럼 다보스다. 하지만 다보스의 회원 가입 방법을 보면 다보스의 이중적 태도에 놀랄 뿐이다. 다보스의 창시자 스위스의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은 ‘1천 명의 클럽’(다보스 서클의 공식 명칭)의 가입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다보스 1천 명의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회원은 자산 규모가 10억 달러 이상인 대기업 총수들뿐이다. 가입비도 1만 달러다. 이런 정예회원들만 다보스의 모든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 회원들 가운데는 투기자본가도 상당수 포함된다.

2011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의 개막연설에도 식량 투기 문제가 제기됐다. 포럼 참석자들은 오직 이익만을 위해 식량시장을 교란시키고 전세계의 기아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투기자본들을 성토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6일 동안 고급 호텔에서 열린 세미나, 회의, 칵테일파티, 미팅, 비밀회담에서 식량 투기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레스토랑, 바, 라클레 비스트로에서 호화롭게 열리는 다보스 포럼에서 다뤄지는 세계 기아 문제에 과연 진지하게 귀기울일 사람들이 있을까?

모든 투기자본가들을 한 번 더 설득하고 농산물 시장을 투기자본가들의 지속적인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베크는 극단적 처방을 제안했다. ‘투기자본가들이 원자재, 특히 식량에서 완전히 손 떼게 하는 것’.(8) 플라스베크는 유엔에 특별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기구가 농산물 주식 가격 형성에 대한 세계 규제를 맡아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실시되면 오로지 생산자, 상인, 농산물 이용자들만 최종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선물거래 금지해 자본화 막아야

밀·쌀·오일 등에 대해 협상하는 사람은 누구나 (투기적 선물거래가 아닌 실제 거래를 목표로 하는) 현물화폐를 내놓아야 한다. 또한 업체들은 자체 자금조달 상한선을 높이 세워야 한다. 현물화폐를 이용하지 않는 이는 누구나 주식시장에서 배제된다.

‘플라스베크 방법’이 적용되면 투기자본가들은 농산물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고 농식품 시장은 자본화되지 못하게 된다. 플라스베크와 유엔무역개발기구의 제안은 비정부기구와 연구기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9) 지금 필요한 것은 각국 정부의 의지다.


/ 장 지글러 Jean Ziegler
스위스 제네바대학 교수. 2000년부터 유엔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대량살상 기아의 지정학>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이 있다.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엄마, 그땐 내가 미안했어>(2011) 등이 있다.


(1) 2009년 5월의 수치.
(2) 1유로=655.96세파프랑.
(3) 피에르 자케·장에르베 로랑지, <세계 농식품의 새로운 균형>(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파리·2011) 중 올리비에 파스트레의 글 ‘세계 식량 위기는 숙명이 아니다’.
(4) 기준 지수 수익과 일치하는 수익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투자 펀드.
(5) 유엔무역개발회의, <무역과 개발에 관한 보고서>, 제네바, 2008.
(6) 필리프 샬맹, <배고픈 세계>, Bourin Editeur, 파리, 2009.
(7) 폴 플로랑 몽포르, <미국 상원이 농산물 시장에 관한 투기를 비난하다>, 미국 상원 내 조사 담당 상임 부위원회의 보고서. www.momagri.org/fr.
(8) 하이너 플라스베크, <농산물 투기의 시작>, Handels blott, 뒤셀도르프, 2011년 2월 11일.
(9) 관련 논리는 조아 킴 폰 브라운·미구엘 로블레스·막시모 토레로, <투기가 미국의 문제가 될 때>(국제식품정책연구소·워싱턴·2009)에 잘 요약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