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노동자들, 힘겨운 반격

Spécial 억압에 맞선 인식론적 저항

2012-02-13     안 뒤프레슨

2011년 5월 16∼19일 유럽노동조합연맹(1)은 현 시점에서 꽤 상징적 의미가 있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총회를 열었다. 재정 긴축 문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유로존에서 위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총회였다.(2) 총회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그리스 국민에 대한 연대 차원에서 전 유럽이 힘을 합쳐 반격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의 총체적 하향 조정 사태에 맞서기 위해 단합된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들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노동자총연맹의 전임 의장인 스페인의 칸디도 멘데스는 “저들이 루비콘강을 건넜다. EU 집행위원회의 긴축 계획을 저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대표단은 사회적 퇴행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는 자신의 ‘실험실’을 기반으로 전략을 구상하라고 제안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긴축 계획과 경제 거버넌스 구성이라는) 처방전은 사태를 더욱 악화하는 격”이라고 분석했다. “충격요법을 쓰는 세계은행의 원칙을 몰아내고, 경쟁력이라는 논리를 배격해야 한다. 급여 평준화? 물론 해야 한다. 하지만 임금 조정은 상향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개의 유럽에서, 또 다른 노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 모델을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건 사태를 더욱 악화하는 길이다.”(독일 민간서비스 부문 노조 베르-디 대표) 독일노조연맹(DGB)의 또 다른 노조 대표는 “그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폴란드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 대표 역시 “우리의 이웃이 적이 된다.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3)

유럽에서 노동자 임금 감축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저지하고 임금 문제를 핵심 화두로 삼는 데 유럽 노조가 뜻을 모은다고 해도, 여전히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과연 이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EU 노동자들 사이의 실제 임금 격차를 고려하고 일부 국가에 최저임금제가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해결 과제는 바로 유럽 차원의 최저임금 설정이다. 총회 참가자들에게 이 문제는 민감한 주제이고, 수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지뢰밭이었다.

2007년 5월, 세비야 총회 무대 뒤에서는 이런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독일 노조원들도 토론을 벌였다. “27개 회원국 중 20개국에 이미 정부가 정한 포괄적 최저임금이 존재하는데, 그 대단한 독일 경제에 최저임금제가 없다. 우리 상황을 주변 국가와 비교하면 전 업종 최저임금제 수립을 위한 국내 투쟁에 도움이 될 것이다.”(4) 1999년 영국마저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이후, 독일은 사실상 저임금 업종의 단체협상 자리에서 정책적 기반이 없는 유일한 유럽 국가가 됐다.

노동자들에게 남은 건 국제연대뿐

영국과 프랑스 역시 독일 노조원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최저임금제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총회가 끝날 무렵, 프랑스노동총연맹 사무국의 일원인 장크리스토프 르 뒤귀는 실망감을 표출했다. 한 번에 7리를 갈 수 있는 장화를 눈앞에 놔두고, 아무도 이를 신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는 “원칙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해왔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구체화하기까지가 무척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랑스노동민주연맹의 마르셸 그리냐르 사무부총장은 의문을 제기한다. “각국의 임금체계가 저마다 다른데, 유럽 노동조합연맹이 어떻게 모든 EU 회원국에 대해 공통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겠는가?”

1997년부터 여러 노조단체들의 일부 급진 세력들은 어느 정도 경제개발을 이룬 일련의 국가들에 대한 다양한 최저임금 규칙을 구상해둔 바 있다.(5) 2005년 친노조 연구 네트워크에서는 유럽의 국내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기준을 설정했고, 단기적으로는 50%, 이어 60%라는 수준을 제시했다.(6) 현재 최저임금의 법정 기준은 평균임금의 30~48%로 책정됐고, 이는 체코와 프랑스에서 각각 시간당 1.82유로와 9유로에 해당한다(나라별 최저임금표 참조). 이 기준을 따른다면 전체적으로 상대적 임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 이 기술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유럽 노동조합연맹의 시각에서 봤을 때, 문제는 최저임금과 관련한 구상도, 임금협상에서 사회적 동반자들이 갖는 자립성도 아니다. 2011년 아테네 총회에서 프랑스 노동민주연맹의 한 대표는 “우리는 모든 유럽 국가에서 정부가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사실 유럽 차원의 최저임금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벽은, 바로 단체협약에 따라 부문별로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국가의 노조들이다. 특히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과 이탈리아가 이에 해당한다. TCO(Tjänstemännens Centralorganisation·스웨덴전문직고용자연합)의 스웨덴 대표는 “우리는 정부의 개입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스웨덴에서 노동자의 90%는 단체협약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전 업종의 법정 최저임금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대표는 전 업종의 법정 최저임금이 저임금 문제 해결의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우리 입장에서 누려오던 자율성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 차원의 최저임금 쟁취를 향해

독일의 사례는 최저임금 문제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독일의 자본주의가 태동할 무렵 ‘법정 최저임금’이라는 개념은 늘 민감한 문제였다. 헌법이 단체협상의 자율성을 우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헌법은 각 지역과 지부에서의 협상 권한을 산업부문별 조직에 넘겨준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체결한 기업의 수가 줄어들고(7) 저임금 정책을 시행하는 부문이 늘어나며 사회적 권리에 미치는 압박이 커지자, 기존 시스템으로는 최소 기준 설정이 점점 어려워졌다.(8) 이에 따라 2006년부터 NGG(Nahrung Genuss Gaststätten·음식 및 호텔요식업) 노조와 베르-디(민간서비스 부문) 노조는 법이 보장하는 통합 최저임금제를 위한 운동을 전개한다. 오늘날 이들은 시간당 8.50유로의 최저임금을 요구한다. 일부 부문에서는 (이 금액보다 높은 수준의) 특별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운동은 임금 문제의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주며, 여론을 동원해 베르-디 노조의 취약한 조직력을 보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최저임금 원칙에 적대적이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선거가 다가오자 이에 호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이미 협의된 부문별 최저임금제의 확대를 원한다고 주장했으나, 아직 전 업종 최저임금제 수립에 명확한 의견을 표명하진 않았다. 그 액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별 차이 어떻게 극복할까

어쨌든 독일이 통합 최저임금제 구상에 찬동하는 입장이긴 해도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유럽금속연맹의 한 책임자에 따르면, 프랑스는 자국의 선진 모델을 다른 나라로 전파하려 들지 말아야 하고 이런 요구는 시기상조이고 부적절하다. 통합 최저임금제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임금이 갈수록 하향 조정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다. 유럽 노동조합연맹의 전 연맹의장 발테르 세르페다는 “어느 한도 이상 임금이 낮아지면 안 된다는 선(가령 국내 평균임금의 50%)은 법적 차원에서나 정해질 수 있는 것이지, 협상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원칙상 자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프랑스노동총연맹의 베르나르 티보 위원장은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해놓고 어떤 노동자도 그 한계선 밑으로는 임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북유럽 사람들에게 어떤 면에서 위협이 될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하며, “정작 루마니아와 폴란드에서는 임금 긴축정책을 저지하는 데 필요한 유럽 기준이 없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의견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국경을 초월해 함께 하나 된 요구를 제시할 수 있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 유럽 노조가 좀더 포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마 임금협상의 공조 전략에 있을지 모른다.(9)


독일의 민낯

독일 수출업자들의 경쟁력 향상이 최근 유로존에 닥친 난제들의 구조적 원인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독일의 인건비는 10년 전부터 급격히 낮아졌고, 이는 경쟁 국가들의 재정 안정성에 해를 미치면서 성장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내수시장의 취약성을 상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출이라는 활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국가들의 산업이 독일의 강력한 내수시장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임금 둔화 정책은 소비 위축이라는 결과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1995~2001년, 유로존의 다른 국가들보다 독일에서 한층 소비가 위축된 건 사실이나, 더 큰 문제는 유례없는 속도로 소득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데 있다. 심지어 이는 통일 이후의 충격을 더욱 지속시키기도 했다. (중략) 유럽 차원에서 봤을 때, 독일의 이런 상황은 장기적 경기 부진의 조건을 구축해둔 셈이다. 다른 회원국들이 경쟁력 부족에 대한 해법으로 한층 강화된 임금 둔화 정책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출처 국제노동기구, ‘Global Emplyment Trends 2012: Preventing a deeper jobs crisis’, Geneva, 2012년 1월 24일.


/ 안 뒤프레슨 Anne Dufresne
벨기에 국립과학연구기금 소속 사회학자. 주요 저서로 <임금, 유럽 노조의 쟁점: 단체협상 조율의 역사>(Le salaire, un enjeu pour l’eurosyndicalisme: Histoire de la coordination des négociations collectives·Presses universitaires de Nancy·2011) 등이 있다.

번역 /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1) 유럽 노동조합연맹은 36개국 84개 국내 노조와 12개 유럽 업종별 노조연합으로 이뤄져 있다.
(2) 노엘 부르기, ‘야만적 위기, 그리스 무너져내리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2월.
(3) 여기 실린 노조 대표들의 발언은 2007년 세비야 총회 및 2011년 아테네 총회에서 저자가 들은 발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4) 독일노조연맹(DGB) 책임자와의 인터뷰.
(5) 피에르 부르디외·클로드 드봉·데틀레프 헨셰·부르카르트 루츠, <저항의 전망>(Les perspectives de la protestation), Syllepse, Paris, 1998(1997).
(6) 독일·스위스·프랑스 연구진으로 이뤄진 이 연구 네트워크는 ‘유럽 최저임금 정책을 위한 논제’를 노조 쪽에 알리려고 노력하며, 토르스텐 슐텐·라인하르트 비스핀크·클라우스 셰퍼가 공동 작업한 <Minimum Wages in Europe>(ETUI-REHS·Bruxelles·2006)의 출간에도 힘썼다.
(7) 가령 작센 지방의 미용사와 튀링겐 지방의 플로리스트가 받는 실급여는 각각 시간당 3.06유로와 4.54유로다. ‘Tarifspiegel: unterste Tarife nach Branchen’, WSI Tarifarchiv 2011, www.boeckler.de.
(8) 현재의 시스템은 일부 부문에서 취약한 수준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있으며, 그것도 단체협약에 따르는 노동자들만 적용받는데 이는 전체 노동자의 62%에 해당한다.
(9) 안 뒤프레슨, <임금, 유럽 노조의 쟁점: 단체협상 공조의 역사>(Le salaire, un enjeu pour l’eurosyndicalisme: Histoire de la coordination des négociations collectives), Presses universitaires ed Nancy, Pari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