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분담금, 해방의 지렛대

Spécial 억압에 맞선 인식론적 저항

2012-02-13     베르나르 프리오

‘부 전체를 상호부조를 통해 분배하자’는 주장은 자주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임금의 상당 부분이 사회적 분담금 제도를 통해 사회화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가? 가치에 대한 어떤 정의에 기초해서 무엇을 생산하는가? 이런 결정적 질문들은 공적 토론에서 배제된다. 긴축으로 고통받는 임금노동자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임금은 급여명세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임금은 사회변혁과 해방을 위한 수단임에도 두 가지 사회적 통념 때문에 그 힘이 온전히 인식되지 못한다.

첫 번째 통념은 ‘노동력 가격’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임금이 노동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두 번째 통념은 임금을 노동자의 생산성에 대한 대가, 즉 노동 생산물의 가격으로 간주한다. 이 두 가지 통념에 의해 각각, 때로는 동시에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자 ‘노동자의 수입’으로 정의된다. 한마디로 생계 수단이자 노력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이 두 가지 정의에서 임금은 곧 ‘구매력’이라는 생각이 나온다. 첫 번째 정의로 보면 올바른 표현이다. 노동자가 노동을 지속하려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정의로 봐도 옳은 말이다. 임금이 노동 생산물의 분배라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자기 몫’을 받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얻는 수입으로 정의된다. 임금노동자들은 제공한 노동만큼 구매력을 얻는 셈이다.

임금은 급여명세서와 다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자(자본가)를 ‘인적자본으로부터 자원을 창출하는 자’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제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즉 무엇을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현 경제체제에서 가치는 노동시간으로 측정된다. 이를 ‘노동가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죽은 개념을 더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이미 강력하고 대안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쟁취해낸 사회적 분담금 제도가 그것이다. 사회적 분담금은 임금 속에 내재된 두 가지 해방적 차원의 한 측면을 이룬다.(1)

여기서 전제로 삼는 것은 총임금(Total Wages)이다. 세전임금(Gross Wages), 세후임금(Net Wages) 등의 개념과 혼동하면 안 된다. 세후임금은 세전임금에서 임금노동자의 분담금을 제한 금액이다. 그러나 고용주가 지불하는 2배의 분담금은 임금에 명시되지 않는다. 가령 한 정치인이 ‘소득세’ 혹은 ‘원천징수’처럼 소득에서 공제되는 부분을 언급하거나, 경영자 대표가 고용주 쪽에서 지불하는 사회보장 부담금이 높아서 ‘생산비용’이 증가한다고 불평할 때, 이들은 총임금의 일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따라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고용주들의 분담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곧 노동자들의 미래와 해방의 가능성과 직결되는 총임금을 삭감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분담금은 가치를 반(反)자본주의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회적 분담금 공제는 한마디로 상품화되지 않은 영역, 가령 의료서비스나 아동 교육, 퇴직자 활동 등에 경제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와 같다. 퇴직자들을 위한 종신연금, 간호조무사들에게 제공되는 보조적 임금, 병가나 실업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지급되는 실업수당, 비상업 활동인 부모의 노동 등에 대한 자본 투입은 그 자체로 노동시장과 생산시간에 의한 상품 가치 측정 방식을 전복하는 효과가 있다.

사용자 부담 몫도 노동자의 총임금

사회적 분담금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초반에는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고용주들이 먼저 도입한 경우가 많았다. 1950년대까지 프랑스 사회보장 제도의 핵심이던 가족수당이 좋은 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운동의 압력으로 임금제도가 안정되면서 이런 수단이 도리어 체제를 전복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부가 창출되어 분배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공제는 자본축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분담금 제도가 자리잡기 전에는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노동자와 부양가족은 어딘가에서 돈을 꾸거나 보험회사에 비싼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의료비용과 노후비용을 위해 부가가치의 일부분을 공제하는 사회적 분담 제도가 확대되면 그만큼 신용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재산은 쓸모가 없어진다. 소득세나 법인세,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보험 계약 등과 달리 사회적 분담금은 사회화된 임금으로 기능한다. 이 결정적 차이 때문에 사회적 분담 제도는 사회변혁의 지렛대가 될 수 있으며, 임금노동자들에게는 경제에 대한 권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자본주의 가치 전복하는 투쟁의 산물

사회적 분담 제도를 투자자금과 기본급 전체로 확대한다고 상상하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사회적 분담금 모델을 확대해 ‘경제분담금’ 공제로 투자 기금을 마련하고 ‘임금분담금’ 공제로 사회 기금을 마련하면 된다.

오늘날 사회보장 부담금과 일반사회분담금(CSG)의 형태로 이미 총임금의 40%가 사회화되었다. 이 바탕 위에서 고용주가 지급하는 임금을 대체하고 퇴직자들에게 종신임금을 보장해줄 임금분담금을 도입함으로써 기본급까지 모두 포괄하는 임금의 사회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임금은 민간기업 노동자들과 공무원들이 기존에 받던 임금뿐 아니라 질병수당, 출산수당, 실업수당, 장애자 연금, 산재 보상, 퇴직연금, 사회 보조금 등을 모두 포괄할 것이다. 이를 전체 금액으로 계산하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쯤 된다. 이 규모에 맞춰 각 공제비율을 산출하면 될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고용주가 ‘피고용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대신 기업 경영 지도부가 임금 분담금을 납입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임금 지불을 전제로 한 고용 형식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노사 간 역관계가 일시에 균형을 되찾게 되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사회적 분담금의 공제 비율이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상승한 사실을 감안할 때, 새로운 제도 역시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임금 분담금을 내는 것이 어떤 면에서 유리한지 파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 분담금을 관리하는 기금의 입장에서는 국민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기 전에 부작용이나 시행착오를 평가·수정해가면서 제도 안착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임금도 분담금으로 전환 가능

두 번째로는 경제분담금이 필요하다. 21세기 초에 이른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GDP의 20%만 투자에 할당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령 이 비율을 30%까지 올리고 싶다면, 각 기업이 자사가 창출한 부가가치 중에서 15%는 자사 투자를 위해 비축하고, 15%는 투자기금에 분담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상환이나 이자 없이 투자자금으로 조달되는 경제기금이 부분적으로 도입되는 기간 관리자들(사회화된 임금의 일부와 관련된 것이므로 관리자는 노동자들이 선출해야 한다)뿐 아니라 그 수혜자들은 새로운 제도를 배울 기회를 갖게 된다. 경영 책임자들에게는 부가가치의 일정 비율을 공제하는 방식과 상환을 전제로 한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비교할 기회가 될 것이다.

생산된 부를 사회화하는 유력한 장치

그럼 이제 GDP의 20%가 남는다. 이 부분은 임금이나 투자와 관계없는 무상 소비를 위한, 가령 학교나 병원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에너지 비용, 기타 자재 구입 비용 등 사회 분담금으로 공제하면 된다. 주택·교통·문화 등(목록은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과 관련된 무상 서비스를 확대할 경우 GDP 중 무상으로 제공되는 사회임금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그럴 경우 직접적으로 지불되는 임금은 1500~6천 유로로 충분할 것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세금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세금의 문제점은 그것이 재산을 통해 얻은 이윤과 노동시장에서 지급된 임금을 합법적 방식으로 재분배한다는 본래의 기능에 있다. 생산 순간에 이미 부의 일부를 이윤 형태로 노동자들에게서 수탈하는 시스템 속에서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는 세금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GDP 대부분이 사회화된다면 세금의 필요성은 최소한으로 축소될 것이다.

요컨대 생산된 부 전체를 분담금, 즉 사회화된 임금으로 공제하는 것은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가치를 정의하고 생산하고 사용하고 할당하는 모든 권한은 이제 임금노동자 혹은 주권자 전체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임금을 둘러싼 논의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부가가치 분배 비율을 자본보다는 좀더 임금에 유리하도록 조정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라는 질곡에서 가치를 해방시키고 자본가와 노동시장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고, 모든 부가가치를 온전히 임금과 필요한 투자에 할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왜냐하면 노동하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고용주나 사제, 주주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어 설명

총임금(Total Wages) 세후임금에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부담하는 모든 공제금액을 합한 금액이다. 세후임금이 최저임금(Minimum Salary)의 1.6배 이상일 경우 총공제금액은 세후임금의 83%에 이른다. 세후임금이 100유로라고 가정하면, 각종 명목으로 공제된 73유로와 일반사회분담금(CSG)과 사회보장부담금 10유로가 여기에 덧붙는다.
 
경제가치(Economic Value)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특정 생산 방식에만 화폐가치를 부여하는 구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행위에 경제가치를 부여하지 않지만, 사회복지 계획을 담당하는 관리자의 노동에는 경제가치를 부여한다.
 
부가가치(Value Added) 새롭게 창출된 경제가치. 1년간 창출된 부가가치의 합이 국내총생산(GDP)이다. 생산물 가격에서 중간재 소비(에너지·원료)와 생산설비의 감가상각비를 제한 금액이 부가가치다. 부가가치는 이윤과 임금으로 분배된다.
 
대중교육(Education Populaire) ‘급여 생활자 네트워크’(Réseau salariat)는 강연회, 강의, 교재 제작·배포 등의 활동을 통해 확장된 임금 개념을 대중에게 교육하는 단체다. 홈페이지 www.reseau-salariat.info, 이메일 coordinateur@reseau-salariat.info.


/ 베르나르 프리오 Bernard Friot
사회학자. <임금의 쟁점>(La Dispute·파리·근간)의 저자.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다른 하나는 ‘평가’(Qualification)라는 차원이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졸저 <임금의 쟁점>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