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하는 이론, 빅뱅이 던지는 세 질문

2012-02-13     오렐리앵 바로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에서 연구자들은 이른바 ‘신의 입자’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벨상 수상자 리언 레이더먼이 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따 ‘힉스보손’(Higgs Boson)이라고 명명한 이 입자가 발견된다면 우주의 속성을 밝힐 열쇠를 쥐게 될 것이다. 물리학은 무한히 작은 세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를 우주 탄생의 순간으로 안내한다.

우주론(Cosmology)은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으로서, 우주 공간이 탄생한 시초부터 향후 예상되는 종말까지를 묘사하는 독특한 학문 분과다. 그런데 ‘우주 탄생’의 순간을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관찰해 추론과 확인을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난점이 있다. 더욱이 관찰자가 자신이 묘사하려는 체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중립적·객관적 관찰을 위해 필요한 거리를 확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초기 조건’, 즉 우주의 진화 과정을 계산하기 위한 시작점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우주-체계’의 이전 혹은 외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 탄생 시점의 에너지는 지구 위에서 실험할 수 있는 성질의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 연구와 달리 연구 대상의 최종 상태만 주어질 뿐 그 최초 상태는 밝혀야 할 대상으로 남는다. 한편 이런 어려움에도(부분적으로는 그 덕분에) 우주론은 하나의 과학, 나아가 하나의 정밀과학으로 간주된다. 가령 ‘140억 년 전에 탄생한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빅뱅 이론은 견고한 근거 위에 구축된 설득력 있는 이론(표준 우주론)으로 대접받고 있다. <<원문 보기>>

표준 우주론의 위상에 오른 빅뱅 이론

관찰 가능한 영역에서, 우주가 팽창 중이라는 생각이 20세기에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결정적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실제로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게 관찰됐다. 우주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화학원소의 존재도 빅뱅 시나리오에 제시된 핵물리학적 예측과 맞아떨어진다. 또한 우주 공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가는 현상은, 우주를 정태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우주 폭발 순간에 방출되었다고 가정되는 전자파, 즉 우주 최초의 빛 움직임 역시 예측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우주 공간의 모든 방향으로 광자(Photon)를 퍼뜨리는 우주 배경복사는 1965년 최초로 발견되었고, 현재도 유럽의 플랑크 인공위성(우주망원경)(1)을 통해 훨씬 정밀한 수준까지 관측되고 있다. 이 현상은 최초의 폭발 직후 우주가 엄청난 고온상태였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빅뱅 이론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며, 탄생 순간 우주의 물리적 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렇게 최초의 순간이 천천히 베일을 벗게 됐다.

이런 실험적 요소들과 더불어 빅뱅 모델은 탁월한 이론적 틀 속에서 전개됐다. 일반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시간과 공간의 근본적 성격이 밝혀진 것이다. 이 혁명적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단지 현상이 전개되는 장소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다. 이제 시공간은 동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우주의 팽창은 공간 속에서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팽창으로 설명된다. 이 이론적 틀 속에서 블랙홀에 대한 실질적 연구도 가능해진다. 거대한 별이 초신성 상태에 도달해 폭발하면 고밀도의 영역, 즉 블랙홀이 형성되어 그 경계 밖으로는 어떤 것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블랙홀은 공간이 시간으로, 시간이 공간으로 변화하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2) 이를테면 공간이 시간의 끝을 나타내는 블랙홀 중심의 특이점으로 빨려들어가는 것과 같다. 상대성이론의 극한을 보여주는 블랙홀 안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블랙홀의 경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물체를 근거리에서 관찰하면 최고속도(빛의 속도)를 나타내지만 원거리에서 관찰하면 최저속도(‘0’)를 나타낸다.

그러나 빅뱅 모델도 완전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우주를 채우고 있는 근본요소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더욱이 블랙홀은 고에너지물리학(소립자의 성질을 연구하는 물리학)이 발견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중의 수수께끼 앞에 도달한 셈이다. 첫째, 우주의 기본 구성요소를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우주생성론과 관련된 질문이다. 둘째,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입자들을 발견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립자와 관련된 질문이다. 그러나 시원한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우주의 새로운 대칭(초대칭·Supersymmetry)을 가정하는 것이다. 대칭이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쿼크·전자 등) 사이의 관계와 전자기, 원자핵 등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이 우아한 가정에서 무겁고 안정적인 미립자, 즉 암흑물질(Dark Matter)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이 물질은 가시적 물질보다 약 60배 많다고 추측한다. 오늘날 물리학자와 우주론 연구자들은 입자가속기, 특히 제네바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의 LHC(Large Hadron Collider) 등의 도움으로 이 입자의 존재를 규명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LHC를 통해 초대칭을 증명해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이 이론의 축소된 버전마저 배제된 상태다.

일반상대성 이론이 낳은 자식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나온 믿을 만한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점점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3)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힘인 중력이 인력(引力)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팽창 가속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속 에너지가 암흑물질의 에너지보다 2배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이론적 추론과 관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빅뱅을 우주의 탄생 순간으로 고찰할 때 근본적인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무엇인가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고 수학적으로도 모호한 이 시작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우주는 시간 속에서 창조됐다. 따라서 창조자가 있어야 한다. 그 창조자는 하느님이다”라고 선언한 교황 피우스 12세의 말 속에 이 문제의 난점이 숨어 있다.) 빅뱅 이론은 일반상대성 이론의 예측에 근거한다. 그러나 일반상대성 이론은 빅뱅 이론에 이르러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시적 세계에 관한 물리학인 양자역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시적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비연속성을 띠며 소립자들은 편재적(Ubiquitous)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결정론적 관점(하나의 원인은 필연적 결과를 낳는다)이 아닌 확률론적 관점(하나의 원인은 개연적 결과를 낳는다)이 지배한다.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화해시키는 것은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들이 거의 한 세기 가까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만큼 어려운 과제다. 어떤 혁명적 가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서 ‘루프양자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4)이 있다. 이 이론에 등장하는 고리들로 형성된 얇은 망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구성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원자’들로 채워진 공간이다.

이 이론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면 우주론적 관점은 급진적으로 변화한다. 이제 특이점으로서의 빅뱅 대신 ‘급팽창’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빅뱅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우주 공간이 수축하다가 초고밀도 상태에 이르러 다시 급팽창을 시작해 현재의 우주를 낳았고 팽창을 계속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될뿐더러 우주 배경 복사 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흔적을 통한 실험적 증명 가능성도 높다.

이와 다른 접근 방식도 존재한다. 복수의 우주가 존재하는가 하는 현기증 나는 질문을 제기하는 ‘끈 이론’(String Theory)(5)이 한 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최초 시기 우주의 ‘몸집’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난 것)에 의해 하나의 우주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물리법칙(끈에 따라 다른)을 가지는 무한한 우주거품(Cosmic Bubble)이 탄생했다. 따라서 우리가 속한 거품 속 물리법칙은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 된다.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에 의해 이미 반박된 터에 인간의 나르시시즘이 다시 한번 상처받게 된 것이다. 우주가 광대한 ‘복수우주’(Multiverse) 속에 고립된 외딴 섬으로 간주될 경우 유일한 우주로서의 권위를 모두 잃게 되는 셈이다. 이제 빛 없는 우주, 물질 없는 우주, 10차원의 우주도 상상해볼 수 있다. 각 우주거품은 자신만의 빅뱅, 혹은 차원성을 지닐 수도 있다. 이 우주론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여러 개 우주가 공존하는 속에서 우리는 복잡한 구조, 즉 생명이 존재하기에 유리한 우주(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우아하고 기묘한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매우 작은 부분) 속에 살고 있을 터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처럼 우주 역시 전체 복수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생각 자체가 이론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생각 덕분에 다양한 이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따라서 이 우주론 모델은 매우 사변적 관점에서 검토가 가능하다. 이 이론대로라면 유일자와 질서라는 신화에 의해 구축된 전통과 달리 현실은 여러 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스의 원자론자, 일군의 분석철학자, 프랑수아 라블레,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자크 데리다 등도 이와 비슷한 생각들을 제기했다.

양자역학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이 가설들은 일반 물리학의 엄밀함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다. 각 모델은 경계를 허물기 위해 그 경계 위에 구축된다. 다시 말해 해체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런 탐색은 자연과학에 거는 기대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며 전통적 생각 속에 누락된 디테일, 균열 지점, 패러독스와 논리적 난관(Aporia) 등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게 한다. 물리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구성물이며 따라서 현실을 설명하는 유일한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배가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 안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 다양성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혁신해야 한다. 상상력 결핍은 단지 오만한 생각의 과잉을 낳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도 방해가 돼왔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저항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오늘날 과학적 창조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혹은 적용돼야 한다). 여기서 ‘저항’이란 일반적 통념,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 쉽게 순응해버리는 태도, 허술할뿐더러 해악적이기까지 한 신용평가사들의 난립, 기괴한 형상을 한 관료주의의 팽창, 실패가 예정된 자유주의적 독트린 유입, 지성의 발전을 억압하는 시스템을 창출하는 불안정 고용의 일반화에 저항하는 것을 뜻한다. 카를로 로벨리가 지적하듯,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존 세계관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한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의 꿈은 현재의 세계관과 현실 속에서 실현되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계속해서 기존에 저항하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할 길을 찾아갈 것이다.”(6)


/ 오렐리앵 바로 Aurelien Barrau
조제프푸리에대학 교수, 프랑스대학연구소 회원.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www.planck.fr 참조.
(2) Jean-Pierre Luminet, <우주의 운명>, Gallimard, 파리, 2010.
(3) 이 발견에 대해 2011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됐다.
(4) Martin Bojowald, <급팽창 우주>, Albin Michel, 파리, 2011.
(5) Steve Gubser, <The Little Book of String Theo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6) Carlo Rovelli, <시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이란 무엇인가?>, Bernard Gilson Editeur, 파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