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신우파의 실험실

2012-02-13     지. 엠. 타마스

‘노동, 집, 가족, 국가, 젊음, 건강과 질서.’ 헝가리의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주창하는 슬로건이다. 이로써 그는 근면하고 ‘건강한’ 중산층의 지지를 기대한다. 헝가리 주재 외교관들조차 자유주의적이고 전제주의적인 오르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데, 국수적 우파 정부는 이를 더욱 주지시키려고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유럽의 경고조차 오히려 오르반의 의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 국민이 느끼는 불안함과 비참함은 오르반 정부의 실정과 경제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주의공화국과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좀더 공정한 사회질서를 구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기 이전 지배적이었던 상황과 비교해봐도 결과가 놀라울 뿐이다. 공산주의 체제는 억압적이긴 했지만 효과적인 사회안정망, 완전고용, 효율적인 국민의료 정책, 저렴하거나 비용이 안 드는 여가생활,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했다. 물론 이것들은 위선과 검열, 소비자들의 선택권 부재 그리고 노예근성의 순응주의를 대가로 했으나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는 윤리적·문화적 차원에서 보수적 복지국가였던 셈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삶을 영위하던 벽지에까지 문맹 퇴치와 상하수도 보급 등을 통해 현대적 삶의 기준을 마련해주었고, 이로써 민중을 구세계의 귀족지배로부터 해방시켰다. 구체제의 귀족지배는 군부와 권위주의적인 국가관료 권력으로 대체됐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종교적·국수적 신비주의를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는 실증주의 철학으로 대치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 죄인 취급

현재 동유럽 국가에 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는 이유를 동유럽 국민이 천성적으로 지닌 노예근성에서 찾는 서방의 선입견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 국가들에서 자유주의에 대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신감은 불합리한 대의적 민주정치와 불평등한 시장경제 사회에서 비롯된 것이지, 가정이나 성적 혹은 엄격한 교육적 규범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동유럽 국민이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저항한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들의 사회 모델이 서구식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헝가리만 보더라도 소비에트 블록이 해체된 이후 2년 동안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졌다. 헝가리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복지국가의 가능성이 해체됐다. 복지국가에선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덕분에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균형과 공정한 질서가 이뤄지지만, 헝가리에선 불가능해졌다. 자본에 대한 감세와 국제무역의 자유화, 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실질임금과 일자리는 현기증이 날 만큼 추락해버렸다. 국가는 실업자·이민자·노약자·어린이같이 스스로 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나, 이젠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반대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개인들은 열등한 계층으로 간주됐다. 이들에 대한 모든 사회적 지원은 게으른 이민자, 편모, 실업자, 은퇴자, 장애인, 심지어 공무원과 학생, 기타 지적 활동가들을 돕는 것만큼이나 낭비적인 일이다.

국가는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한편, 체제에서 축출된 계층에 대해선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표현을 가다듬어서 이방인이거나 윤리적으로는 죄인으로 취급했다.

공공서비스 분야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가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힘겨운 다툼이 본격화되자, 공권력은 경쟁이라는 게임을 내세워 훌륭한 윤리와 생물학적 능력, 우수한 지능을 갖추도록 요구했다. 오직 젊고 근면하고 유연성을 갖춘 개인만이 고려 대상이 되었다. 이런 기준을 거부하는 것은 곧 세상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경쟁을 거부하거나 경쟁에 뛰어들 능력이 없는 자는 국가로부터 억압을 받거나 심지어 경찰의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은 이상주의자, 전제주의자,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남녀라는 굴레를 씌워 어렵게 획득한 자유를 원망하는 자들이라고 매도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우파 다수당이 자리잡은 것이다. 그들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해 헌법을 바꿀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되었다. 이 다수당의 대표 오르반은 인기도 없고 부패하고 무능력하기까지 했던 이전 자유-사회주의 정부의 정책을 열성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선전한 대리인이었다. 그는 헝가리 전국노조가 주장해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학 입학 권리의 법제화와 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는 국민투표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자 이를 지지했다. 그 뒤 그는 국민의 최소한의 반대 의견도 듣지 않고 이 법안들을 차례로 도입했다. 2010년 선거운동 당시 공약다운 공약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후 채택한 정책들 대부분은 비밀리에 집행되다시피 했다.

법안들은 의식하기도 힘들 만큼 재빠르게 통과됐다. 의회 회기가 마감되기 하루 전인 2011년 12월 23일, 다수당은 단번에 기존 307개의 법안을 뜯어고치도록 하는 법안 1개를 통과시켰다. 같은 12월, 단 하루 만에 16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입법부의 이런 맹렬한 행태는 목적이 뻔하다. 우선 임기 9년 혹은 12년의 국가 고위 공무원을 임명해 권력을 영속시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선출직 자리를 우파와 그의 우군인 사용자 쪽을 위해 봉사할 인물들로 교체하려는 것이다. 지방 의회의 93%가 이미 우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음에도 의회의 대부분을 정부 관료에 의해 통제하거나, 적어도 의회 권한을 대폭 축소하려는 것이다. 다양한 수단을 통해 사법부, 국가평가위원회, 공공미디어, 대학, 문화 관련 기구 등을 우파 인물들로 채울 것이다. 교묘한 선거구 분할로 다수당이 25%만 득표해도 의석의 3분의 2를 장악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오르반의 개인 경호대는 국가 주요 정보기관을 장악한다. 새로운 법안은 파업과 투표를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이라고 명시한 조항은 헌법에서 삭제됐다.

오르반 정권, 영구 집권 노린 법 개정

여기에는 향후 개혁을 어렵게 하는 조처들이 포함돼 있다. 소득에 단일세율이 적용되는 16% 일률과세(Flat Tax)가 한 예다. 유럽연합(EU)과 서방 자유주의 언론은 헝가리 중앙은행의 자율권 축소에 반대하지만, 억압적인 노동법에 반대한 유럽노동연맹의 항의에 대해선 조용히 지나갈 뿐이다. 공산당과 그 후속 정당, 즉 두 개의 주요 사회주의 야당인 헝가리사회당(MSZP)과 민주연합은 새로운 헌법에 의해 ‘범죄 집단’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공교육은 (중·상류층 자녀를 주로 대상으로 하는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가톨릭 교단의 부추김을 등에 업고 과도한 경쟁 체제를 도입한다.

태아는 ‘임신이 시작되면서부터 인간 존재’로 간주된다. 파시즘에 저항한 인물이라든가 심지어 미국의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로명을 짓지만, 또 한편으로는 로널드 레이건의 영광스런 동상을 세우기도 한다.

우파 정부의 인기영합주의식 조처인, 사립연기금의 국유화라든가 몇몇 외국계 은행과 테스코(Tesco) 같은 거대 유통업체에 부과한 특별세 혹은 외국 화폐로 표시된 부동산 부채의 일부를 헝가리 화폐 포린트(Forint)로 일부 전환한 것은 서방 금융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은 소수의 상위 중산층 계층에게만 도움이 될 뿐이다.

오르반이 꿈꾸는 것은 국가의 부흥이다. 단지 위대한 국가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게 아니라 경제적 부흥과-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비효율적 국가를 복원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강하고 진취적이고 용감하고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이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세제 개혁과 보조금 지원은 자신과 친구들이 속한 이 사회계층, 특히 젊은 층에 집중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형 인물들은 기업가, 자유직업 종사자, 애국자, 충성심이 있고 경건한 신앙인, 전통과 당국을 존중하는 자들이다. 국가는 이들이 개인 주택을 구입하도록 돕고 있는데, 이것이 헝가리의 부채를 가중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일부 인기영합 정책은 서방에서 반발

다른 중유럽 보수주의자들이 그러하듯이, 헝가리 우파도 한편으로는 다국적기업, 은행권, 금융자본,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극빈자, 공산당을 중산층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도저히 계발이 불가능한 ‘인간 이하’의 계층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구시대 못지않게 인종차별적이다. 헝가리 우파는 우선 극빈층에 대한 지원, 떠돌이 집시와 동일시하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실업자에 대한 지원을 반대한다. 이들은 이른바 ‘비경제활동적’ 계층으로, 사회가 지원할 필요 없는 ‘비생산적’ 요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은퇴자에 대한 지원도 포함된다.

이 새로운 질서를 관철하기 위해 예산 절감을 감행한다. 예술과 고고학, 박물관, 출판, 연구에 대한 예산 삭감 내지는 삭제가 불가피하다. 이렇게 해서 그야말로 지나가는 길에 거추장스러운 중도 좌파적 인텔리겐치아를 치워버린다. 대중교통이나 환경, 병원, 대학, 초등학교, 맹인, 농아, 장애인, 환자들에 대한 보조금 같은 것이 끊긴다. 반대로 경쟁심을 자극하는 스포츠, 팀워크, 충성심, 개인의 규율, 용감함 등을 자극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분야에는 보조금이 넘쳐난다.

보수적 지식인들이 늘어놓는 비판을 한번 생각해보자. 놀랄 일은 아니다. 보수주의자, 특히 보수적 지식인들은 그다지 오래전의 일도 아니지만, 프랑스혁명의 주도자들이 사교인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그 후예라 할) 비판적 지식인들을 증오했다.

‘노동에 근거한 사회’라는 주장을 하는 오르반은 복지국가에 사실상 공식적인 조종을 울렸다. 이 점에서 오르반은 대다수 서방 지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서방 지도자들이 좀더 강한 비명을 지를 뿐이다. 헝가리 총리가 좀더 솔직하고 오히려 일관성 있어 보일 뿐이다. 그의 정책은 형식주의와 과시, 나아가 전통을 덜 의식하면서 ‘근본적 개혁 조처’들을 시행하는 것이다. 한 예가 실업수당을 그에 합당한 서비스의 대가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당국의 지시 아래, 내무부의 통제를 받아 최저생계비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집시인 ‘공공사업’ 종사자들은 이제 우파 미디어가 게으른 자로 자신들을 매도하는 와중에 엄격한 경찰 감시 속에 끝없는 학대와 모욕을 받으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치워야 한다.

복지국가에 조종이 울렸다

EU와 미국 정부는 오르반의 의견에 전반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그의 국수주의적 주장과 은행을 비난하는 발언에는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이를 맘껏 이용해, 자신들이 국제 좌파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주장한다. 중유럽 우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현대적이거나 전통적이거나, 코즈모폴리턴적이거나 공화주의적이거나 간에, 금융자본과 공산주의는 모두 한통속이라고 주장한다.

국제기구의 헝가리 정부 비판은 이미 묘한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다. 네오 나치 성향의 의원들이 EU 깃발을 불태우기도 한다. 국민은 자국 정부가 비판받을 만하지만 외국의 절대 공적이 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국수주의에서 유발된 분노가 헝가리 우파로 하여금 국내에서 사회적·민주적 항의를 억압하게 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결국 유럽의 헝가리 비판은 어쨌거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출발한 오르반 정부를 도와주는 셈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패하게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국제사회가 한 국가의 정치 정세를 바꾸기 위해 그 국가에 대한 지원금을 폐지하는 것은 일종의 협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롭고 정직한 의도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지원금 폐지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헝가리의 민주 야당이 정부가 취하는 정책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EU 산하 여러 기구들의 압박에 동시에 반발하는 이유다.


/ 지. 엠. 타마스 G. M. Tamas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헝가리 철학자. 유럽 통합 이후의 상황과 현 정부에 비판적이다.

번역 / 이진홍 memosia@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저서로 <진보와 그의 적들>(2003), <자살>(200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