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공교육 덤핑 ‘텔레콜레주’

2012-02-13     안 비냐

‘마약 카르텔’이 전국을 장악한 가운데, 멕시코의 공권력이 약화되고 있어 미국 워싱턴마저 우려할 정도다. 또한 교육 분야에서 이런 상황이 감지되고 있다. 멕시코의 과학기술 예찬론자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교육 분야에 도입한 ‘TV통신학교’(텔레콜레주)가 별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수학 수업이 끝나고 벨소리가 울린다. 15분마다 벨소리가 울리고, 전교생이 기다리는 광고가 방영됐다. 첫 번째 연출광고는 줄지어 늘어선 주택 앞에 서 있는 가족들이었다. 내레이터가 “현 정부가 극빈층을 위해 3만 가구를 건설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한다. 이어 험상궂은 인상을 한 불량배들이 사슬에 묶인 한 남성을 폭행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상영되는 가운데 내레이터가 덧붙인다. “인권 보호는 연방정부의 최우선 순위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케트살코아틀 지역 아마틀란 마을 어린이들의 새로운 하루 수업이 시작됐다.

우리는 모렐로스주 한복판에 있다. 이곳이 바로 한 세기 전, 1910년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주도한 혁명 때 농민들이 질 높은 무상교육을 외쳤던 곳이다. 멕시코의 많은 마을처럼, 이곳의 수업은 위성에 연결된 텔레비전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텔레콜레주’(télé-collège·방송통신중학교)이다.

과목별 교사 없이 TV 수업

텔레콜레주는 지붕에 있는 위성 안테나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띈다. 건물 안에 있는 두 교실의 하얀 벽은 거의 헐벗었다. 조그마한 칠판 옆에 뒤틀어진 멕시코 지도 하나와 흐릿한 추억이 되어버린 칠판에 놓인 분필 하나가 전부다. 교실 한복판에 비치된 TV로 원격 수업을 하는 가운데, 15분마다 광고를 방영하고 있다. 교사 2명이 중학교 1·2·3학년 학생 18명을 지도하고 있다. 교사들은 어떤 임무를 맡고 있는가? 교장이자 2학년을 담당하는 리카르도 벤투라는 TV가 고장날 때 TV 대신 수업을 하는 것, 이른바 ‘수업 땜빵’이 임무라 했다. 그는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며 한탄했다. 실제로, 방송 수업이 40분 정도 진행되자 위성 신호가 사라졌다. 그렇게 학교 수업도 막을 내렸다.

우리는 학교를 방문하자마자 몇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1학년 학생들은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학생들은 수업에 열중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도의 한 스튜디오에서 여강사가 찌푸린 얼굴로 지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교실에 있던 3학년 학생들은 1·2학년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잠을 자거나 펜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이들은 읽을 책이나 풀 연습문제도 없이 지루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2학년 수업이 시작되자) 고개를 들어 TV 화면을 보던 한 여학생이 “작년에 본 수업이네”라고 했다.

(TV 속의 강사가) 눈짓으로 교실에 있는 교사에게 2학년 TV 수업의 종료를 알린 뒤 3학년 수업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교실에 있는 교사가 역사책을 꺼내들었지만, TV 속의 젊은 강사가 음악과 요란한 조명 속에서 ‘고대하던’ 수학 시간임을 알렸다. 그러자 교사는 “방송사에서 우리한테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을 전송하는데, 내가 전자우편을 열어보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번엔 학생들이 3분 정도 수업을 받았을 때 송신이 끊겼다.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교사가 TV 없이 수업을 진행하려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수업은 주중에 다시 할 것이다. 아무튼 시청각 수업이 더 수월할 테니까.”

수시로 끊기는 방송, TV 없는 곳도 30%

일반 중학교는 전공이 다른 8명의 교사가 각기 다른 8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텔레콜레주는 교사가 단 1명뿐이다. 이론상 수업 시간(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은 동일하지만, 우리가 학교를 방문한 날은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있어 시작 시간이 10시로 미뤄졌다. 학생들은 거의 3시간 동안 수업을 하지 못했다. 일부 학생들이 청소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었다. 2명의 교사가 수업이 다음날로 미뤄졌으니 복습하란 말만 반복했다. 이튿날에도 위성은 작동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임시방편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산책한 뒤 귀가시켰다.

1968년 멕시코에서 출범한 이 모델(텔레콜레주)은 20여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으로 확산됐다. 멕시코 국립사범대학(UPN)의 교육학 박사 에텔비나 산도발은 “신설 중학교들이 건설되는 동안 임시방편으로 도입한 제도가 여태 지속되고 있다. 이젠 중학생의 5분의 1이 텔레콜레주에 등록한 학생들이다”라고 했다. 국민행동당(PAN·자유주의 우파)이 정권을 잡은 이후, 텔레콜레주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센테 폭스 대통령 재임(2000~2006) 시절 117% 증가했고, 2006년 펠리페 칼데론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또 2배나 증가했다. 현재 20%의 공립중학교 학생들(대략 130만 명)이 TV 방송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시골 벽지나 도시 변두리 학생들이다.

텔레콜레주 학생들이 매년 멕시코의 전국 공·사립학교에서 치르는 국가학업성취도평가시험 엔라세(ENLACE)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이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 2000년 국가교육평가위원회의 연구원 안네트 산토스가 다양한 사회계층을 상대로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1) 텔레콜레주 학생들의 스페인어와 수학 능력은 초기 입문 과정을 겨우 이해하는 수준에 불과했고, 이들의 성적은 일반 중학교나 실업계 중학교 학생들의 성적에도 훨씬 못 미쳤다. 이 연구원은 “텔레콜레주가 사회적 불평등, 즉 극빈층 학생들이 최악의 성적을 거둔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취약지역은 갈수록 ‘교사가 1명뿐인 텔레콜레주’, 즉 교사 1명이 모든 학년을 전담하는 학교를 채택하고 있다. 교육부는 텔레콜레주의 예산 부족을 솔직히 인정했다. 교육부가 2003년 마지막으로 시행한 (학교 현장)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5180개 텔레콜레주 중 대략 30%에는 TV가 비치돼 있지 않았고, 2천 곳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2)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게다가 2001~2008년 국내총생산(GDP)에서 교육비에 할당된 비율은 5.3%에서 5%로 줄었다.(3) 반면 2006년 이후 경찰 예산은 6배나 늘었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멕시코의 학교 상황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OECD 회원국 평균 교육비 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멕시코의 초등학생 1인당 교육비는 2111달러인 데 비해, OECD 회원국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는 3배(6741달러)에 달했다.(4) 텔레콜레주가 포함된 중학교의 교육비는 격차가 4배나 됐다(1814달러 대 7598달러). 다른 OECD 회원국들은 학부모가 부담하는 공립학교 수업료도 동결했다. 하지만 아마틀란중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이 화장지부터 전기료까지 모든 것을 부담한다. 운영 예산이 전혀 없는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일반 중학교와 학력 격차 심화

그렇다고 칼데론 정부가 교육 분야에 수수방관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녀들을 가톨릭계 사립학교에 보내는 가정들에 편향적 조처를 취했다(사립학교 학생이 230만 명이고, 공립학교 학생은 2310만 명인 마당에). 2011년 2월 15일 그는 가톨릭 교단의 오랜 소원을 수용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경우) 월급에서 소득세가 면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옥타비오 로드리게스 아라우조 교수는 “이 조처는 중산층에겐 선물이지만 사회적 불평등의 골이 한층 깊어질 나라를 생각하면 새로운 재난”이라고 했다.

그 밖에 멕시코 정부는 미국 프로그램인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본뜬 ‘교육의 질을 위한 국민연맹’이란 싱크탱크의 주도 아래 많은 교육정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클린턴 정부에서 교육부 차관을 지낸 다이앤 래비치는(5) 정작 이 제도를 비판하지 않았던가! 이 제도의 골자는 ENLACE 시험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학교와 교사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자는 것이다. 산도발 박사는 “이 제도는 분명 기존 불평등을 가중할 것이다. 극빈층 아이들이 몰린 초등학교와 텔레콜레주가 가장 적은 보너스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시험에서 최악의 성적을 낼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당국은 현 사태의 책임을 교사들 탓으로 돌린다. 이에 대해 로머니 연구원은 “교육현장의 실상은 완전히 다르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주 헌신적이다”라고 단언했다.

‘옹고집’이란 별명을 지닌, 네자후알코요틀 마을의 호세 바스콘세로스 교장의 경우가 그렇다. 유서 깊은 멕시코시티 중심가에서 전철로 열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교 건물이,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는 이곳의 가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금세 무너져내릴 것 같은 천장, 헐벗은 벽, 깨진 창문들. 학교 부지는 학생 100명이면 꽉 찰 정도로 협소했다. 작은 운동장은 조립식 구내식당이 들어서는 바람에 더 작아졌다. 바스콘세로스 교장은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식당을 지었다”고 했다. 43년 전 사범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텔레콜레주 창설 모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네자후알코요틀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땐 교육 프로그램을 사범대 교수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아주 좋았다. 요즘 (우리 학교의) 교사 8명은 TV를 거의 이용하지 않은 채, 일반 중학교에서처럼 수업한다. 물론 수업을 준비하는 데 힘은 들지만, 학생들이 TV 방송 수업에선 배우는 게 전혀 없다. TV 방송 수업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실패작이다. 이 프로그램이 특정 효과를 내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교육적이지 못해서 더 문제다”라고 했다.

사립학교엔 학부모 세금 혜택까지

네자후알코요틀중학교도 모든 텔레콜레주에서처럼 반나절만 수업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곳의 교사들은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운영 예산이 전혀 없는 교사들이 국가 교육의 저하를 막기 위해 봉사하고 있다. 교사들은 시 낭송이나 연극 활동을 활성화해, 학생들을 될수록 학교에 오래 잡아두려고 애쓴다. 그래서 이 학교는 ENLACE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과학)기술이다. ‘현대적’, ‘혁신적’, ‘값싼’ 기술이란 단어들이 판을 치고 있다. 국가가 사범대를 강제로 폐쇄해버린 가운데, 텔레콜레주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민간기관인 라틴아메리카 교육커뮤니케이션 연구소(ILCE)가 교사연수 디지털 프로그램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ILCE의 파트리시아 카브레라 소장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교사들이 휴대전화나 아이패드로 받아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전송할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이런 것들을 정부와 논의 중이다.”

멕시코 교육 시스템의 부재를 개선하기 위해 기술적 대책을 쓰겠다는 것인데, 이런 시도는 이미 한물간 대책이 아닐까?


/ 안 비냐 Anne Vigna 언론인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Annette Santos, <Oportunidades educativas en telesecundaria y factores que las condicionan>, Revista latinoamericana de estudios educativos, Centro de estudios educativos, Mexico, 2001.
(2) <Situación actual de la telesecundaria en México>, Subsecretaría de Educación Básica, 2003.
(3) 유엔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 2010년 12월.
(4) <Mejorar las escuelas: Estrategias para la acción en Méxic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파리, 2010.
(5) 다이앤 래비치, ‘선택의 자유, 특권 교육의 다른 이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