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미국의 최적화된 속국

2023-01-31     알렉산더 제빈 l 역사학자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뒤이은 우크라이나 사태, 물가 상승, 실업난 등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위축되는 한편, 미국의 영향권 속에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영국의 미래는 계속 암담할 것인가.

 

“유사시에 프랑스와 독일이 극단에 치닫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해럴드 맥밀런 영국 총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 말이다. 미국이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EEC) 가입을 독려하는 이유였다. (1) 따라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이 처음 EEC 가입을 시도하자 거부권을 행사했다. 1967년, 드골 대통령은 미국과 영국의 ‘특수 관계’, 그에 따른 이점과 더불어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다시 한 번 영국에 퇴짜를 놓았다. 영국은 드골 대통령이 퇴임한 후, 1973년이 돼서야 EEC에 합류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 4년 후인 2020년에 영국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국가가 됐다. 영국 내에서는 경제적 비용에 대한 끝없는 불만이 브렉시트로 이어지는 주요한 원인이었지만, 국경 밖에서는 (과거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우려와 정반대로) ‘영국이라는 트로이 목마가 없는 유럽은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의문이 만연했다. 

과연 EU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과거 드골 대통령이 지탄했던 ‘거대한 대서양 공동체’라는 조롱거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드골이 열망했던 ‘유럽인의 유럽(미·소 양대 진영과 구분되는 제3블록으로 자체 방위를 담당하는 유럽)’에 더 가까워지고 더 큰 독립성을 얻을 것인가?(2) 

 

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러낸 역학관계

불행히도 EU는 연방주의나 유럽 방위에 대한 영국의 비타협적인 태도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에서 고립돼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빠지지 않았다. 지정학적 현실은, 두 가지 예측을 다 빗나가게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런던과 EU 간 힘의 균형을 나타내는 지표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미국과 영국, 그리고 미국과 EU의 힘의 균형도 겉으로 드러냈다.

2022년 2월 24일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를 세계 경제에서 계속 조금씩 몰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하고, 기술 장비 수출 중단, 비자 발급 종료, 자산 동결, 가스와 석유 금수 조치에 대한 지지를 통해 유럽의 대응 기조를 밝혔다. 영국은 러시아 침공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약 23억 파운드의 원조를 제공해 미국의 뒤를 이었다. 영국 켄트와 솔즈베리 기지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대상으로 대전차 미사일과 소형 무인 정찰기 사용법 훈련을 진행하고, 영국 특수부대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하기도 했다.

2022년 3월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유럽 지도자로 영국 총리를 꼽았다. 젤렌스키는 “독일이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중립을 자처하지 않고 확실히 우리 편에 섰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영국의 존슨 총리는 국가 원수 중에서 처음으로 키이우를 방문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임시 평화협정이 초읽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 2022년 4월 9일, 우크라이나 수도를 방문한 존슨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상만큼 막강하지 않다”라면서 회담을 중단하라는 서방의 메시지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3)

이후 존슨 총리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에 병력 8,000명을 추가 배치해 해당 국가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증강했다. 2012년에 영국은 영국 왕립해군이 이끄는 영국군을 파견해 이미 1,700명이 에스토니아에 주둔하고 있었다. 과거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전쟁 참여에 대한 보상으로 발트 3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EU 가입을 지지하기도 했다. 영국은 결국 비셰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간의 지역 협력 기구)를 비롯해 루마니아, 불가리아, 네덜란드와 유럽의 군사 독립에 대한 회의론을 공유하며 EU 회원국 시절의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브렉시트 이후 EU 핵심국들은 전보다 더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 예상됐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독일은 경기 후퇴의 위협에 직면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가스와 석유 공급 감소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타격을 입었고, 독일의 주요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제재로 인한 불이익이 독일에까지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탈산업화의 위협’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독일의 성장 모델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4)

한편, 프랑스는 이제 EU 내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자 유일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됐다. 하지만 호주가 미국 및 영국과의 군사 동맹을 유지하고자 프랑스로부터 잠수함 12척을 수입하기로 했던 계약을 파기하면서 국제적으로 프랑스의 위상이 약화됐다.(5) 현 단계에서 EU의 ‘전략적 주권’은 그저 프랑스의 욕심일 뿐이다. 게다가 독일 녹색당이 연정의 조건으로 미국 F-18 전투기 도입을 내걸었기 때문에, 사실상 프랑스・독일・스페인이 공동 추진하는 미래 전투항공시스템(SCAF) 계획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올라프 슐츠 총리는 결국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2022년 7월, 메르켈 정권의 유력 인사로 꼽히는 볼프강 쇼블레 전 재무장관은 프랑스와 독일이 폴란드와의 파트너십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면 유럽의 무게 중심은 보수적이고 대서양주의적인 방향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여하튼 브렉시트가 미국으로부터 더 독립적인 유럽의 안보와 국방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6)

 

영국, 미국에 대한 종속 더욱 부각돼 

1990년대 이후 ‘대서양 동맹에 구애받지 않는 유럽’이란 가망 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004년에 동유럽 국가들이 NATO에 이어 EU에도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대한 NATO 공세가 시작되기 직전인 1999년에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NATO에 가입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초의 NATO 외부 작전을 시작한 2004년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 3국이 뒤를 이었다.(7) 동유럽 국가에서는 CIA의 비밀 기지와 포로수용소가 운영됐다. 프랑스는 이라크 전쟁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미군의 바그다드 접근을 위해 자국 공군 기지 사용을 허락했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에 대한 종속 관계를 부각시켰다. 프랑스 독자들은 소위 ‘품격을 자랑하는’ 언론을 통해 위안을 얻기도 한다. 10월 30일,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르 피가로>를 통해 “아직은 유럽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라며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나 기후변화를 위한 유럽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유럽이 그런 미덕을 발휘했다고 해도, (미국이 아니라 유럽의 중재로 체결한) ‘민스크 협정’이 파기된 이후 그에 걸맞은 외교적 노력이나 군사 행동을 제안한 적은 없다.(8)

EU가 동맹국인 미국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를, 최근 위기로 더욱 고조된 프랑스와 독일 양국 간의 긴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와 더불어 두 국가의 무기 지출은 러시아의 2배 이상이다. 속수무책인 현 상황의 원인이 군사 장비 부족은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은 냉전 종식 이후 EU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웅크린 ‘NATO의 민간 보조국’이 됐다고 평했다.(9)

국가 차원의 절박한 상황이 닥치면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서방의 단결도 금이 갈 수 있다. 체코에서의 에너지 가격 급등 대응 촉구 시위, 이탈리아에서의 무기 수송에 관한 논쟁, 급상승한 천연가스 가격으로 ‘이익을 챙기는’ 미국에 대한 독일 재계의 분노가 그렇다. 그런데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서도 유럽과 미국이 서로를 외면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조만간 다른 지역에서 대두될지도 모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서방이 러시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2년 6월 말, 마드리드에서 열린 NATO 정상 회담에서 유럽 지도자들은 중국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에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북태평양’의 경계를 더 잘 감시해달라고 촉구했다.(10)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영국이 유럽을 추종하기보다는 앞서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국이 돋보이는 이유는 미국과의 ‘특수 관계’ 때문이다. 물론 브렉시트 이후에 영국 지도자들은 EU 탈퇴와 함께 영국이 ‘리더십’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긴 했다. 2021년 3월 영국 정부는 안보·국방·개발·외교 정책의 미래 비전을 담은 ‘종합보고서(경쟁 시대의 글로벌 영국, 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Age)’를 통해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특수부대와 해군과 더불어 작지만 현대화된 신속배치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핵탄두 보유 상한선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10년 안에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존슨 전 총리의 계획은 이런 의지를 잘 보여준다(존슨 총리의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트러스 총리는 동기간 국방비를 GDP의 3%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연간 추가 예산이 200억~250억 파운드 발생하는 셈이다). 세계의 주요 무기 수출국인 영국은 항공우주산업 선도국이다. 최근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이탈리아와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템페스트(Tempest)’ 개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미국에 최적화된 ‘글로벌 영국’

브렉시트 옹호자들이 약속한 ‘글로벌 영국’ 실현 전략은 모두 미국의 우선순위와 잘 들어맞는다.(11) 2021년 ‘글로벌 영국’ 보고서에 언급된 목표로는 1) 인도-태평양 지역에 새로운 항공모함을 파견해 ‘NATO가 상시 이용’하도록 할 것, 2) 한국을 ‘전략 지역’으로 고려할 것, 3) 2018년부터 진행해온 ‘수에즈 동부’ 지역으로 영국 공군을 재배치하거나 바레인에 영국 해군 기지를 건설해 페르시아만과 그 너머 지역에서 이뤄지는 미국의 작전을 지원할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 RUSI)나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 킹스칼리지의 전쟁 연구학부처럼 영국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들이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점이 별로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워하는 ‘제국’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미지수다. 2015년에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영국-중국의 무역 관계가 ‘황금기’에 접어들었다고 밝혔지만, 지난 11월 28일에 리시 수낙 현 총리는 ‘황금기’는 끝났다고 발표했다.

영-미 간의 ‘특수 관계’는 비공식적이고 모호하게 묘사되곤 하지만 1940년 이후로 영국은 매우 구체적인 실효를 거뒀다. 영국은 영-미 양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이 참여하는 정보 공유 체계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차원의 협력을 이어왔고, 자국 영토에 작전 기지를 유지하는 대가로 미국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12) 토르, 스카이볼트, 폴라리스, 트라이던트로 이어지는 일련의 탄도 미사일 개발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1950년대 블루스트릭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실패한 영국은 미국의 협력이 없었다면 독자적으로 미사일 추진, 발사, 유지, 시험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86년, 한 탐사보도 기자는 영국 영토에 130개의 미군 기지가 있다고 전했다. 영국은 북대서양 중심에서 소련을 겨냥하는 거대한 항공모함이나 마찬가지였다.(13)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관할하는 라켄히스 기지는 유럽 최대의 미국 전투기 기지다. 게다가 영국에는 일본과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가장 극적으로 달라진 점으로는 영-미 ‘특수 관계’에 대한 옹호와 반대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한때 미국에 대한 지나친 칭송은 노동당은 물론 보수당에서도 비판과 눈초리를 샀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1973년 10월 아랍-이스라엘 분쟁 당시의 에드워드 히스 총리처럼 영국 총리가 미국의 영국 공군 기지 접근을 거부하는 상황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이클 풋이 당 대표로 있던 노동당은 미국 순항미사일 철수와 NATO 해체를 요구하는 핵 군축캠페인(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CND)을 대대적으로 지지했다. 

 

수에즈 위기의 교훈은 어디로?

하지만 키어 스타머(이라크 전쟁 당시 ‘조지 W. 부시의 푸들’로 희화화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되는 인물)가 이끄는 오늘날의 영국 노동당에서 이런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노동당에서는 제러미 코빈(영국 대서양주의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노동당 지도자)이 당에서 제명된 후, 노동당 의원들과 당원들의 전쟁 중지 집회 참여나 NATO 비판이 금기시됐다.(14)

이제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미국의 정책을 비난하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2019년, 뉴욕에 기반을 둔 민간 싱크탱크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퀸시 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의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외교를 지향하는 점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영국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기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디언>부터 시작해서 <텔레그래프>, <이코노미스트>까지 영국의 주요 언론은 러시아군을 조롱하고 승리가 임박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열렬히 우크라이나를 찬양한다. 미국에서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NSA와 국무부 ‘매파’의 영향에 대항하는 일은 자주 보도되지만, 영국 정책 결정자나 민간 지도자, 군사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겉으로 좀체 잘 드러나지 않는다.(15)

이는 전쟁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그리고 정책 착오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대(對)러시아 제재는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고 루블화를 약화하기는커녕, 서유럽에서도 가장 심각한 에너지 가격 상승 문제를 불러오는 등 영국 경제에 타격을 줬다. 2022년 9월에 영국 정부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세안을 추진했지만, 투자자 이탈로 영국 국채 매도세가 강해져 영국 연기금이 부실화됐으며, 영국중앙은행이 개입해야 할 정도로 금리가 치솟았다. 트러스 장관은 사임했지만, 새로 집권한 재무 장관 출신 수낙 총리는 예산 추가 삭감을 들고 나왔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평균 임금이 동결된 공공 부문 직원들의 항의와 파업이 잇따랐다. 다음 ‘종합 보고’ 시점까지 국방 예산 발표는 없겠지만, 영국 국방부 장관은 7만 2,000명의 영국군 병력이 자국 내 ‘훈련’을 간신히 소화할 규모임을 시사하며 사실상 예산삭감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16) 2022년 10월 17일 토바이어스 엘우드 하원 국방위원장은 <스카이 뉴스>에서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수에즈 위기(제2차 중동 전쟁) 이래 최악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파운드화 급락세로 앤서니 이든 총리의 퇴임으로까지 이어졌던 1956년 수에즈 군사 파병과 현 상황을 비교하다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수에즈 위기를 통해 영국은 미국의 패권에 대처하는 법을 톡톡히 배웠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에 대한 영국의 의존도는 훨씬 높아졌다. 영국은 이런 상황을 과연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글·알렉산더 제빈 Alexander Zevin
역사학자, 『Liberalism at Large. The World According to The Economist』(Verso, 2019년 11월)의 저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Arthur Schlesinger, 『A Thousand Days. John F. Kennedy in the White House』, Houghton Mifflin Company, London, 1965.
(2) Richard Davis, ‘Les relations anglo-américaines et la question européenne (1945-1973) Le cheval de Troie à l’assaut de la forteresse européenne 영미 관계와 유럽 문제(1945~1973): 유럽 요새를 공격하는 트로이 목마’, <Revue française de culture british>, 제7권, 1호, 2002. 목마’, <Revue française de culture british>, 제7권, 1호, 2002.
(3) Roman Romaniuk, ‘From Zelenskyy’s ’surrender‘ to Putin’s surrender: how the negotiations with Russia are going’, Ukrainska Prvada, Kiev, 2022년 5월 5일. Fiona Hill, ‘The World Putin Wants’, <Foreign Affairs>, New York, 2022년 9~10월호.
(4) <The Economist>, 2022년 9월 11일.
(5) Marc Endeweld, ‘Les paris diplomatiques perdus du président Macron(한국어판 제목: ‘산업주권’을 되찾으려는 프랑스, 그러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4월호, 한국어판 2022년 5월호.
(6) Wolfgang Streeck, ‘L’Europe, cet empire dont l’Allemagne n’est pas sûre de vouloi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2월호. / Wolfgang Streeck, 블로그 <Sidecar>, ‘Pipe Dreams’, 2022년 9월 12일, https://newleftreview.org/sidecar
(7) Perry Anderson, 『New Old World, Verso』, London, 2009.
(8) David Teurtrie, ‘Ukraine, pourquoi la crise(한국어판 제목: 우크라이나 사태, 유럽은 여전히 구경꾼 신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2월호, 한국어판 3월호. / Igor Delanoë, ‘Ukraine, la guerre à tout prix 우크라이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 불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9월호.
(9) Wolfgang Streeck, ‘The EU After Ukraine’, <American Affairs Journal>, 제6권, 2호, Denville, 2022년 여름호.
(10) Martine Bulard, ‘ L’Alliance atlantique bat la campagne en Asi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6월호.
(11) Tom Stevenson, ‘At the Top Table’, <London Review of Books>, 제44권, 19호, 2022년 10월 6일.
(12) Philippe Leymarie, ‘Le club des ‘cinq’ face à la Chine 중국에 대항하는 영미권 5개국의 첩보 동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3월호.
(13) Duncan Campbell, 『The Unsinkable Aircraft Carrier : American Military Power in Britain』, Michael Joseph, London, 1984.
(14) Keir Starmer, ‘Labour’s commitment to NATO is unshakeable’, <The Guardian>, London, 2022년 2월 10일. Matt Kenard, ‘The Secret US Embassy-Backed Group Cultivating the British Left’, <Declassified UK>, 2022년 11월 24일, https://declassifieduk.org
(15) Peter Baker, ‘Top U.S. General Urges Diplomacy in Ukraine While Biden Advisers Resist’, <New York Times>, 2022년 11월 10일.
(16) George Grylls, ‘UK has ‘deep’ vulnerabilities, admits defence secretary’, <The Times>, London, 2022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