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속에 누가 정부의 특혜를 누리는가

국가가 불평등을 선택할 때

2023-01-31     뱅자맹 르무안 l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

프랑스 정부는 오랫동안 물가연동 임금제를 통해 노동자들을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해왔다. 프랑스 정부 측에서는 “임금 인상은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연구는 이런 주장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한편,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재무부가 정한 규율로 혜택을 보는 특권자들이 있다.

 

인플레이션은 지난 몇 달 사이에 서구경제의 현대판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년 영국의 철학자 홉스가 쓴 국가론 제목으로, 국가를 구약성경에 나오는 지상 최강의 괴물에 비유함)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상승하면서 중앙은행들의 다른 우려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물가상승을 막으려는 중앙은행들은 세계경제를 불황으로 빠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22년 9월 21일 잭슨홀 회의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십만 명의 미국인이 실직하지 않고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재앙’에 직면한 프랑스 정부는 서로 다른 두 집단에 관해 각각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우선, 노동자에게는 물가연동 임금제 도입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2년 10월 26일 <프랑스2>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경제는 통제체제로 운영되지 않으며 임금을 결정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다” 라고 이유를 밝혔다.

물가연동 임금제를 도입하면 경제를 정치적으로 통제하게 되며, 물가가 다시 치솟아 계속 임금상승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브뤼노 르메르 재무부 장관은 “물가-임금 연쇄상승의 악순환으로 인플레이션을 영속화하는 결정은 내리고 싶지 않다. 경제에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1)

 

물가연동 임금은 극약? 물가연동 국채는 해독제?

반면, 정부는 투자자들의 소득은 꾸준히 지켜주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꼽히는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자소득자들을 ‘경제에 기생하는 주체’로 평가했다. 케인스는 물가상승은 이자소득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안락사’ 수단이며, 채무자가 부담하는 실질 이자율을 낮춰준다고 봤다.

하지만 프랑스 재무부는 금융 투자자들에게 OATi(프랑스 물가연동 국채)나 OAT€i(유로존 물가연동 국채)와 같은 인플레이션 지수화 채권, 즉 투자가치 하락에 대한 예방책을 제공한다. 물가연동 국채는 프랑스 재무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약 10%에 달한다(영국 22%, 미국 8%, 독일 5% 미만). 프랑스 은행은 2022년에 소매 물가의 급등으로 OATi 관련 30억 유로의 추가 비용이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2) 

두 가지 상반되는 논리를 한 가지 주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OATi를 통한 자본의 수익을 논할 때는 노동소득의 물가연동이 ‘물가-임금 연쇄 상승 악순환’을 유발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사라진다. 즉, 물가연동 임금은 물가상승을 부추기지만 물가연동 국채는 급한 불을 끄는 조처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인 셈이다. 이렇게 모순되는, ‘물가연동’이라는 한 가지 방식을 두고 대상에 따라 상반되는 논리를 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가연동 임금제는 물가상승분 만큼 임금이 올라가는 제도를 말한다. 프랑스에는 1950년과 1952년 7월 제정된 법률에 따라 물가지수가 5%를 넘어서는 경우 최저임금을 물가상승률에 따라 인상하는 전 직종 최저임금제(SMIG: Salaire Minimum Interprofessionnel Garanti)를 시행했다. 전후 정치적 배경의 산물인 물가연동 임금제는 같은 시기에 창설된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 주도로 도입됐으며, 정치권이나 사회 세력과 무관하게 물가지수를 바탕으로 임금이 자동으로 인상됐다. 

그로부터 30년 후, 피에르 모루아 총리 정부는 자크 들로르 당시 재무부 장관의 결정에 따라 물가연동 임금제를 폐지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긴축 전환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이 법안은 11%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노동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 이데올로기적 정책 변화로 말미암아 국가 재정 운용 전략이 전후 시대의 전통적인 ‘순환경제(당시 국가주도 정책이라는 비난을 초래)’에서 ‘시장주도 경제’로 전환됐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는 강경책을, 국채를 사줄 것으로 보이는 투자자들에게는 유화책을 썼다. 다른 국가에서도 프랑스처럼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똑같이 받는 두 집단에 대한 상반된 공공정책이 불문율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물가연동 채권은 자본시장의 일반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도입되기까지는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상당한 내부 진통을 겪어야 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의 집권기인 1970년대 말에 ‘링커스(Linkers)’라는 별명이 붙은 물가연동 국채가 처음 발행됐다.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나이절 로슨은 대처 총리가 처음에는 “물가연동제에 반대했다”라고 회상했다.(3) 대처 총리는 “물가연동 금융 상품이 정부 지출이나 임금과 같은 훨씬 덜 바람직한 형태의 다른 부분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당시 현안이던 재정 적자의 해결 방안으로 링커스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플레이션 지수화 국채를 매입할 채권자들이 위험부담을 덜 수 있어 저금리를 수용할 것이고, 따라서 적자 재정의 자금조달이 용이해지면 정부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처 총리도, 단기적으로는 부채 부담을 줄이는 것이 자신의 감세 공약을 이행할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이 새로운 금융 상품이 곧 인플레이션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말에 설득된 것이다. 물가 인상은 정부의 부채 부담을 더욱 키우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출은 급증하는데 수입은 감소하는 이른바 ‘가위 효과(Scissors Effect)’를 우려하는 이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인 존 놋 상무장관은 “정부가 어떻게 임금이 아닌 채권에 대한 물가연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4) 그러나, 이렇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링커스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훨씬 컸다. 결과적으로, 물가연동제에 임금은 배제하고 채권은 포함시키는 것이 정치 의제가 됐다.

 

초(超)인플레이션의 트라우마

프랑스에서는 영국에서보다 좀 더 늦게 물가연동 채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1990년대 초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재무장관 시절 사무차관을 지낸 프랑수아 빌루아 드갈로(현 프랑스은행 총재)를 중심으로 소수의 고위관리자 집단이 형성됐다. 이들은 당시 프랑스은행 총재를 역임한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와 같은 ‘과거 세대’와의 결별을 시도했다. 젊은 40대 재무부 관료의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 승리는 이제 오랜 추억일 뿐이다. 반면 1980년대 중반의 소위 ‘경쟁적 디스인플레이션’ 세대에는 트리셰 전 총재처럼, 1970년대와 초(超)인플레이션의 기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트라우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재무부 고위관리는 “초인플레이션이란, 불과 한 달 사이에 물가가 50% 이상 상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재무부 관리들’은 채권의 물가연동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기는커녕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투자 포트폴리오 가치가 무너지지 않도록 투자자를 보호하고, 현재는 중앙은행에 재량권이 있는 통화 긴축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 했다. 처음에는 재무부 관료들과 프랑스은행 간의 토론이 논쟁으로 변했다. 트리셰 총재는 재무부의 혁신안 발표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 채무관리 부서의 전 책임자 실뱅 드포르주는 프랑스 은행 총재가 보인 적대적인 반응을 회상하면서 그를 ‘파블로프 학설의 신봉자’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트리셰 전 총재와 다음과 같이 전화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내가 중앙은행을 성가시게 한다고, 국가의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느라 인플레이션 긴장을 되살리고 중앙은행의 명성을 깎아내린다고 비난하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세요. 저는 당신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거기에 제 돈을 걸겠어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도 성공하고, 당신이 실패하면 저도 실패하는 거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가장 신뢰하는 프랑스인은 바로 접니다. 당신이 성공한다는 데 돈을 걸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이렇게 냉소와 아부가 뒤섞인 드포르주의 말에, 트리셰 총재는 결국 굴복했다.

최초의 프랑스 물가연동 국채 OATi는 1998년 9월 15일에 발행됐다. 인플레이션이 거세지고 있었지만, 프랑스은행의 독립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강력한 프랑스 프랑이 미래 유로존에서 독일 마르크에 필적하는 양대 주요 통화가 되리라는 것은 정치 공간에서 ‘기지의 사실’이었다. 1990년대 말, 임금노동자보다 투자자를 우대하는 ‘사회계급 간의 절충안’은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물가연동 국채가, 투자자들에게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특혜를 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 수뇌부에서는 이런 불공정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화질서에 압력을 가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라 여긴다.

 

월가 최악의 스캐빈저

이런 불공정의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 않을 때는 묵인됐다. 그러나, 최근 인플레이션 대응책에 다시 이목이 집중됐다. 2022년 7월 25일, 프랑스 국회가 국채상환에 대해 질의하는 자리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납세자를 희생시키면서 일부 금융 투자자를 보호하는 이유는 뭡니까?”라며 불공정한 처사를 비난했다. 국민연합(RN) 소속 장필립 탕기 의원은 브뤼노 르메르 재무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1990년대 말에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장관은 인플레이션이 10년 동안 통제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월가에서 최악의 스캐빈저(Scavenger, 사체를 먹는 동물에 비유해, 방어자가 없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이들을 지칭)에 해당하는 이 금융혁신(물가연동 국채)을 정당화했습니다. 10년간의 인플레이션을 점치는 것은 정책수립자가 아니라 마술사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 정당성 없는 금융부채 관리조차 뒷전인 상황에서 어떻게 절약과 저축을 권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국민연합 계열 진영에서 박수가 쏟아졌다.(5) 르메르 장관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탕기 의원님, 앞서 언급하신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월가 최악의 스캐빈저들’의 먹잇감이 될 ‘인플레이션 연동 채권’을 언급하셨죠? 물가연동 국채 투자자의 10%는 생명보험, A저축예금(Livret A), 서민저축예금, 보험사와 자산 관리사입니다. ‘월가 최악의 스캐빈저’라는 표현은 부당하다는 말씀입니다.” “(르네상스 계열 정당 진영의 박수) 다수의 다른 의원님들과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많은 프랑스 국민처럼 여러분도 생명 보험에 가입하셨을 겁니다. 이런 보험이 수익을 유지하려면 ‘인플레이션’에 연동돼야 합니다. 프랑스 투자자들은 이런 이유로 프랑스 국채 일부를 인플레이션에 연동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생명보험에 가입된 가구는 40%에 불과하다. 저축도 사회 최상위 계층에 집중돼 있다. 그럼에도 르메르 장관은 일반 국민의 이익을 금융이익과 결부시킨다.

중산층을 금융에 결속시키려는 의도가, 연금개혁 사업의 이유가 될 수는 있다. 공적 연금제도의 고갈로 국민이 추가로 민간연금에도 가입하는 실정이다. 연기금을 통해 자산운용 시장 부문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6) 모든 사람이 은퇴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금융에 의존한다면 프랑스인 전체가 ‘투자자 진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노동자들을 희생시켜가며 투기꾼들을 우대하는 불평등한 정책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글·뱅자맹 르무안 Benjamin Lemoine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모리스 알박스 센터(Centre Maurice Halbwachs), 파리 국립고등사범대학(ENS-PSL) 연구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Le Maire ne veut pas entendre parler d’une indexation 물가연동  임금제 언급을 피하는 르메르 재무부 장관’, 2022년 11월 3일, <latribune.fr>
(2) ‘La dette française encaisse le coût  de la hausse des taux 금리 상승으로 프랑스 부채 증가’, <L’Agefi>, Paris, 2022년 3월 28일. 
(3),(4) Michael J. Oliver, Janett Rutterford, ‘The capital market is dead : the difficult birth of index‐linked gilts in the UK’, <The Economic History Review,> 73(1), 2020.
(5) 프랑스 국회, 2022년 7월 25일 기록.
(6) Benjamin Braun, ‘Fueling financialization: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funded pensions’, <New Labor Forum> 제31권 1호 Los Angeles, CA SAGE Publications, 2022. SAGE Publication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