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무기를 든 자본주의의 폭력
카라치 공장에서는 불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파키스탄의 경제, 금융 수도 카라치의 남동쪽에 위치한 란디 산업단지 외곽에 최근 주거단지 ‘그린 파크 시티’가 들어섰다. 인구밀도가 높고 산업시설이 빽빽한 외곽지역에 이렇게 녹지를 조성한 경우는 드물다. 이곳 주민들은 잘 관리된 공원을 거닐고, 세련된 양식의 건물에 산다.
주차장에는 번쩍이는 SUV가 보인다. 특권층의 주택을 본떠서 세운 이 주거단지에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이들에게, 인력사무소는 노동자 출신 인부와 관리인을 소개해 준다. 이곳의 전력 인프라는 아직 부족하지만, 특권층으로서 누리는 호사스러운 생활은 파키스탄에서 급성장한 섬유업과 의류업 종사자들의 계급 상승을 보여준다.
43세의 비랄 칸*도 계급 상승에 성공한 노동자들 중 한 명이다.(1) 우리가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은 2022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소박했지만, 그의 집은 아주 넓었다. 파슈툰인이 즐기는 차를 마시며, 그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들려줬다. 파키스탄 북서쪽 디르 지역에서 태어난 비랄 칸은, 카라치에서 성장했고 그곳에서 중등교육까지 마쳤다. 이후 28세 무렵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섬유공장의 말단직원에서 시작해 단순보조직을 맡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파키스탄의 최대 의류 업체에서 생산 총괄관리자가 됐다.
친 군부 정권은 곧 친 기업 정권
비랄 칸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근면함과 성실함 덕분이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듯 정치권력과 돈독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공장을 계속 가동시켜 지금 같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1985~2015년 약 30년 동안 친 군부 정권이 카라치를 장악하고 수도, 전기, 교통 등 도시의 주요 기반시설을 관리했다(박스기사 참조). 게다가 당원들이 공장의 단속반 역할을 해, 공장주에게 친 군부 정당은 불가분한 파트너가 됐다.
칸의 공장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이 폐쇄되고 국내 매출이 급락하자, 위기 극복을 위해 수출로 전환했다. 2020년부터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열린 새로운 시장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 방호 장비 시장이다.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칸도 미국과 마스크와 방호복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게다가 당시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9개 기업을 선정, 작업환경 개선과 수출에 필요한 증명서 발급을 도왔다. 칸은 이런 사업지원 혜택도 누렸다. 단 몇 달 만에 전 세계 대상의 사업이 가능할 만큼 공급라인을 설치했으며 민간, 군용 항공 화물 운송수단도 충분히 확보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에 도움을 준 것은 다름 아닌 파키스탄 정부였다. 정부는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현대화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을 통해 가장 많은 재정지원을 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이동제약 조치를 부분적, 단기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장기적인 이동제약에 걸린 인도, 중국, 방글라데시 경쟁업체들보다 먼저 시장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결국 파키스탄에서 1,500만 명을 고용하고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하는 섬유산업은 수출을 통해 코로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이제 섬유산업 수출액은 파키스탄 총 수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2021년, 2022년에는 연속 최고 수출 기록을 경신했다(190억 달러).
그러나, 이런 성장세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2022년 여름 심각한 홍수로 원면 가격이 폭등했고, 유럽의 액화천연가스 대량 수입으로 에너지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2) 게다가, 2022년 10월 연간 물가 상승률이 26%에 달했다. 일부 기업인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최대 기성복 기업 회장이자 카라치 기업 가문의 상속자인 자히드 메몬*은 2022년 반정부 시위가 들끓었던 스리랑카의 사태가 재현될까 우려했다.(3)
그러나 파키스탄의 산업 자본주의는 혼돈 속에서도 살아남을 힘을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의 위기 극복 비결은 유연한 적응력도, 정부의 재정지원도 아니다. 기업주들의 만행을 ‘전략적’이라는 명목으로 봐주는 정부의 ‘관용’ 덕택이다. 노동법 위반, 안전규정 위반, 추가 근무 수당 미지급, 부당해고 등 기업주들의 불법행위들은 이런 정부의 ‘관용’ 밑에서 행해졌다. 이렇게 탄탄한 ‘무장 자본주의’가 건립됐다. 30년 동안 도심에서 연일 벌어지는 분쟁 속에서도, 카라치의 섬유산업이 살아남은 이유다.
“코로나는 행운”, 기업에 기회가 된 보건위기
2022년 5월 15일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국노동조합연맹(NTUF)은 기업주의 불법행위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는 이름과는 달리 노동조합 결집 단체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의 법적 권익을 보호하고 대중에 알리는 비정부기구다. 그런데 당일 카라치의 주요 집회 장소인 언론 클럽 앞은 한산했다. NTUF 회원과 노동자 10여 명, 그리고 연계기관인 가사도우미 연맹(HBWWF) 운동가 몇 명이 모였을 뿐이다. 이들이 번갈아 메가폰을 잡았으나 그 목소리는 팔레스타인 문제로 모인 대규모 시위대의 강력한 음향장비 소리에 묻혔다. 이번 노동조합집회는 파키스탄 노동운동의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심도 영향력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NTUF의 활동가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 단체의 수장 나세르 만수르와 제하 칸은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부당해고를 당했거나 노동조합 결성 승인을 받으려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법률자문을 제공하며, 산업재해 피해자들도 돕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2년 9월 11일 알리 의류공장의 화재로 사망한 255명 노동자 유족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원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이 화재의 직접적 원인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누전이나 방화였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안전 지침 미준수로 인해 인명 피해가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독일 의류기업 키크(KiK)에 납품하는 청바지를 생산하는 이 공장에서 발생한 산재에 대한 소송은 세계화된 밸류 체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 10년 전부터 NTUF와 희생자 가족들은 파키스탄과 독일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결국 이 독일 회사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막대한 금액을 보상했다. 독일 법정은 비록 이 참사에서 발주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2021년 채택돼 2023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는 ‘공급업체의 주의 의무’에 관한 법(LkSG법)은 유럽 의류 브랜드의 납품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4)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만수르와 칸은 기업주가 코로나 팬데믹을 기회삼아 다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카라치가 있는 신드주에서 시행한 이동제한 기간(2020년 3월 23일~4월 28일)은 고용주에게 불법 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적기였다. 노동자들은 급여를 받는 날 공장폐쇄 소식을 듣고 출입증을 빼앗겼다. 심지어 전화로 해고를 통보받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법적으로 보장된 급여도,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런 불법 해고를 단행한 기업들 중에는, 고용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저금리 대출을 받은 곳들도 있었다.
“코로나는 기업에 행운이었다.” 파키스탄 고용주연맹 전 회장이자 의류기업 회장인 나잠 카티아와리*가 이렇게 털어놓았다. 실제로, 보건 위기는 많은 기업에 ‘생산 합리화’의 기회로 작용했다. 코로나 덕택에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으며, 생산방식을 바꾸고 공장을 ‘현대화’해 더욱 성능이 우수한 공정을 도입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일 잘하고, 말 잘 듣고, 저렴한 여성 인력
‘현대화’는 여성 고용 확대를 통해 이뤄졌다. 과거 파키스탄은 문화적인 이유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등)에 비해 여성 고용률이 낮았다.(5) ‘더 성실하고 순종적’이라고 평가받는 여성 인력은 심지어 저렴하기까지 하다. 여성의 급여는 같은 일을 하는 남성에 비해 40%나 적다. 한 의류업체의 생산부장 캄란 후세인*은 최근 그룹의 관리자 120여 명이 모두 모인 회의에 참여했다. 그는 “회의에서, 사장단이 앞으로 여성만 채용하라”고 요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비용 절감을 위한 여성 인력 선호 현상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우리가 란디에서 본 통근버스 뒤에는 여성만 지원할 수 있는 채용공고가 붙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수급비용이 상승하고 있어 남성 노동자들은 계속 해고의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내몰리는 수만 남성 노동자들은 심각한 생활고를 겪게 되고 이 처지를 악용한 고용주는 착취를 일삼는다. 1일 법정노동시간은 추가 근무 포함 12시간이지만 24시간, 36시간 연속 일하는 노동자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휴식시간은 단 몇 분. 간신히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식사? 음식물을 구겨 넣는 수준이다. 노동법은 초과근무 수당을 기본 시급의 2배로 정하고 있지만, 그렇게 받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아예 못 받기도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가는 해고당하기 일쑤다. 구제를 받으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매우 힘든 법정 투쟁을 벌여야 하므로, 저항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주의 만행에 저항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코랑기 산업단지에 위치한 섬유기업 인터내셔널 텍스타일(International Textile)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어떤 공지도 없이 노동자 25명을 해고했다. 이곳 공장에서 9년 전부터 기계 공정 업무를 맡고 있는 25세 압둘 라티프 샨디오*도 이 해고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곧 부당해고 구제를 위해 NTUF에 도움을 청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샨디오에게 취업을 알선하고 월급을 지급했던 인력사무소가 중재해 기업주는 금전적 보상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러자, 인력사무소 측에서는 노동자 탄압을 위해 정당의 힘을 빌리고 폭력조직까지 동원했다.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빈촌이나 ‘고스(Goth, 농촌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지역)에서는 이런 유착관계가 만연해 있다. 심지어는 기업주가 노동자들의 일상까지 침해할 수 있다. 9년 전 신드의 고향 마을을 떠나 코랑기에서 가장 낙후한 고스에 정착한 샨디오도 고초를 겪었다. 이 동네의 풍성한 과실나무들과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들판은 주변 산업지대의 단조로운 풍경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주민들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도, 자연적이지도 못하다. 이곳 주민들은 산업공해에 과다 노출돼 호흡기 질환과 조기 암 발병률이 높다. 게다가, 2010년대 발루치족 마을에서 만행을 저질렀던 갱단이 활보하고 있어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폭력조직은 2013~2015년 대부분 해체됐다. 그러나 일부 조직원들이 남아 여전히 기업주와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 권력자들을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샨디오가 고용주의 합의 조건을 거절한 직후 깡패들이 집으로 쳐들어왔다. 거친 욕설로 위협하며 괴롭히는 깡패들 때문에, 샨디오는 결국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는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깡패들이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도의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 가족과 더 조용한 동네로 이사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했다.
코랑기 고스에서 멀지 않은 샤크라 고스, 신드의 농촌 지역을 떠나 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점점 심해지고 있는 가뭄과 홍수 등 기후변화를 피해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서 샤크라에 있는 ‘다바(Dhaba)’에 도착했다. 다바는 동네 남자들이 식사를 하거나 멀구슬나무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는 동네 식당이다. 지아울하크 독재정권(1977~1988) 이후 시민들 간 불신이 깊어지기는 했지만, 이런 동네 식당은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적 토론 금지’라는 문구를 벽에 붙인 식당도 있다. 그러나 아르샤드 카쉬헬리*와 그의 친구들은 이런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밧줄로 엮어 만든 평상에 앉아,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했다가 최근 몇 달 동안 겪은 고초를 털어놓았다.
‘윤리적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들
2021년 10월까지 카쉬헬리*는 데님 클로싱 컴퍼니(Denim Clothing Company)에서 근무했다. 2005년 코랑기에서 창립된 이 회사는 8,500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2022년 예고도 없이 노동자 절반을 해고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의류 브랜드인 H&M, 자라, 망고, 월마트 등에 청바지를 납품하며 윤리적 가치, 환경보호, 최신 설비 등을 내세워 이미지를 관리했다. 그러나 카쉬헬리와 동료들은 실상 딴판인 이 회사의 실체를 비판했다. 이 공장의 인사관리 담당자는 전 육군 장교로 기업주가 정한 공장의 규율을 엄수하도록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한다.
기업주와 폭력조직의 유착관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2021년 4월 30여 년간 봉제사로 근무했던 파이자 무함마드*는 회사의 영업이익에 따라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연간 인센티브를 요구했다가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가해자 중에서 최근 고용된 깡패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들은 고용주와 청부 계약을 맺은 후 거리낌 없이 공장 안을 휘젓고 다닌다.
노동자들을 규합해 권리를 주장하던 카쉬헬리와 그의 동료들은 기업주와 그 비호세력을 자극했다. 경찰은 노동자들의 신분증을 몰수하고 신분증 반환 조건으로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대부분 노동자들은 더 이상 반항할 수 없었다. 카쉬헬리는 사측과 몇 달 대치하다가, 결국 모함에 빠졌다. 인사 담당자의 하수인이 카쉬헬리의 휴대폰을 빼앗고 결박한 다음, 다른 공장에 감금한 것이다. 이 납치범들은 군의 정보부와 이미 사전협의를 했다고 카쉬헬리를 겁박하면서, 만일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와 유사한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정부가 조성한 공포 분위기가 가장 일상적인 노동 분쟁에까지 스며든 것 같다.
사측은 폭행으로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자의적으로 법적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카쉬헬리의 납치 사건 이후, 그의 사촌 사지드 말라*는 지역 경찰서에 자신이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님 클로싱의 동료들과 회사 운영진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말라는 이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불복종을 처벌하고 강제 사직을 유도하기 위한 고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말라가 증언한 것처럼 사측 요구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린 노동자들에게 꼼꼼한 채용자의 눈을 피해 다음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이다. 결국 ‘평판이 실추’되고 ‘생활도 파괴’된다.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에 나서서 개별적인 압박으로는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기업주는 경찰병력을 공장의 주변뿐 아니라 내부까지 투입시킨다. 2021년 데님 클로싱의 노동자들이 녹화한 동영상을 보면 경찰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와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봉으로 구타한다. 코랑기 경찰 간부에게 기업주와의 관계를 묻자, 그 간부는 “수출과 국가재정에 기여한 기업, 그래서 정치인이 각별하게 여기는 기업에 불복은 있을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기업들은 국가의 치안기관과 결탁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카랑기의 가장 오래된 산업단지인 신드산업단지(Sindh Industrial Trading Estate, SITE)는 위장 무늬로 덮은 보루로 둘러싸였고 무장경비 대원이 배치됐다. 이 경비원들은 레인저스 시큐리티 가드(Rangers Security Guards, RSG)의 직원인데 RSG는 민간 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지만 육군 사령관이 통수하는 지역군 조직 신드 레인저스 산하에 있다. 이 같은 치안 용역은 SITE의 기업협회와 협상을 거쳐 의뢰할 수 있다. 이렇게 산업단지 주변으로 쌓아 올린 성벽 때문에 노동운동은 위축됐다. 그리고 주변에서 거주하는 노동자들은 기업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보행자에게만 출입을 허가하면서 마치 군수산업단지처럼 변해가는 신드산업단지의 성벽 앞에서 지역 의원 바와니 샬리는 “세상은 결국 돈을 가진 자의 편”이라고 한탄했다.
이 철옹성 같은 지배체제에도 틈을 낼 수는 있다. 가령, 다국적 기업들의 감독 의무를 강화해, 납품업체에서 벌어지는 불법관행들을 보고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LkSG법도 인권침해의 범위를 ‘민, 관 치안 요원에 의한 노동조합의 자유 탄압’까지 포함시키고 있다.(6) 이 조항은 글로벌 브랜드 기업들에 납품하는, 카라치의 섬유기업 노동자들이 당하는 수많은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글·로랑 게이에Laurent Gayer
시앙스포 국제연구센터장. 저서로는 2023년 1월 출간 예정인 『Le capitalisme à main armée. Défendre l’ordre patronal dans un atelier du monde 무장 자본주의, 세계의 공장에서는 기업주의 위계질서를 지켜라』(CNRS Editon, 파리)이 있다.
파와드 하산 Fawad Hassan
파키스탄 <Geo TV Network> 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본 기사는 2022년 5~8월 이 두 저자가 카라치에서 취재한 내용과, 2015년에서 2020년까지 로랑 게이에가 프랑스 연구지도자격학위(HDR) 취득을 위해 수행했던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1) 별표(*) 표시한 증언자들은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2) Marine Godlier, ‘Energie: la politique de l’UE plonge le Pakistan dans l’obscurité, 에너지: 유럽연합 정책이 파키스탄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La Tribune>, Paris, 2022년 6월 27일.
(3) Eric Paul Meyer, ‘Les Sri-Lankais défient le pouvoir 권력을 불신하는 스리랑카 국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7월호.
(4) Robert Grabosch, ‘La loi allemande sur le devoir de vigilance 주의 의무에 관한 독일 법’, 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riedrich Ebert Stiftung)
(5)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Employment, Wages and Productivity Trends in the Asian Garments Sector’, Genève, ILO, 2022, p33.
(6) Act on Corporate Due Diligence in Supply Chains, Section 2. art 11.
30년간 이어진 카라치 도심의 분쟁
파키스탄 남쪽에 위치한 카라치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다. 이 지역의 인구는 약 2,500만 명이며, 다양한 민족이 섞여있다. 그 중 신드인과 발루치인이 원주민의 지위를 요구하고 있지만, 타민족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소수민족이 됐다. 이제 카라치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모하지르족이다. 그들은 1947년 벵골 분할 이후 인도에서 이주해왔으며, 우두르어를 쓰는 무슬림의 후손이다. 그리고 1950~1960년 카라치의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파슈툰족과 펀자브족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다 보니, 갈등이 없을 수 없다. 1985~2015년 카라치는 범죄와 정치 폭력이 난무했으며, 그로 인한 희생자 수는 2만 명이 넘었다. 특히 폭력이 극에 달한 해는 1995년과 2013년으로, 희생자 수는 각각 1,742명, 2,507명이었다.(1) 분쟁은 그 성격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정치적 분쟁이 있다. 투표장에서 친 군부 정당들이 맞붙고 무력으로 자신의 영토를 수호하려 한다. 그다음, 경제적 분쟁이 있다. 정당과 범죄조직들이 합법적(시 예산, 공공 일자리 등), 불법적(갈취, 물 거래 암시장, 불법 부동산 등) 이권을 둘러싸고 다툰다. 그리고, 이런 적대적 관계의 근원에는 민족 정체성으로 인한 분쟁이 있다. 분쟁 중인 정당들은 각자 특정 민족 공동체를 대표한다. 예를 들어 단일국민운동(MQM)은 모하지르인을, 파키스탄민족당(PPP)은 신디인과 발루치인을, 그리고 국가인민당(ANP)은 파슈툰인을 위해 투쟁한다. 게다가 지조 없는 군이 이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정세를 불안하게 만든다. 1980년대 말 군은 PPP(당시 부토 일가가 당의 수장이었음)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MQM을 비밀리에 지원했다가 1992~1994년 MQM 정당을 ‘불법 정권’으로 몰아 이 정당의 ‘소탕’ 작전을 펼쳤다. 이후 MQM은 레프베르 무샤라프(1999~2008년 집권) 정권 하에서 군 기관의 지지를 얻었지만 다시 ‘GHQ’(군본부)의 제재로 고초를 겪었다. 갱단도 군과 결탁했다. 2008~2013년 평화를 위한 인민위원회(PAC)를 위해 결집했을 때처럼, 발루치 민족주의자들이 도시의 서민 거주지까지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3년에서 2016년 신드의 경찰과 레인저(Rangers)는 군의 허가를 받아 대테러 활동을 벌였고 결국 카라치에서 무고한 희생을 낳은 무장단체를 해체했다. 이 ‘카라치 작전’은 수백 명을 즉결처형하고 강제추방을 단행함으로써 도시를 이전보다는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과 레인저들은 기업주의 권력 수호자가 됐다.
글·로랑 게이에 Laurent Gayer, 파와드 하산 Fawad Hassan (1) Ashraf Khan, ‘Rester en vie à Karachi 카라치에서 살아남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