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아성’ 마르세유의 매력

2023-01-31     루이즈 뒤마 l 영화평론가

지중해의 마르세유는 영화의 아성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첫 영화를 촬영했던 라시오타에서 30km가량 떨어진 이 도시는 형제의 조수들에 의해 1896년부터 필름에 담기기 시작했다. 마르셀 파뇰과 로베르 게디기앙도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여러 편의 영화를 찍었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 가는 영화촬영지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니콜라 뷔를로의 다큐멘터리 2편 <La fête est finie>(2014), <La Bataille de la Plaine>(2020)이나 논란의 범죄영화 <더 스트롱홀드(The Stronghold)>(세드리크 히메네스, 2021)의 주요 배경이 됐다.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의 기원이자, 이민자들에게는 약속의 땅이며,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태양이 끊임없이 비추는 반항적인 이미지의 이 도시는, 오늘날의 젊음을 영화화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무기력하게 빈둥거리며 범죄라도 저지를 듯한, 적대심과 도발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진 청춘들 말이다. 

그래서 마르세유는 압둘라티프 케시시의 <게임스 오브 러브 앤 찬스(Games of Love and Chance)>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r)>를 계승하는 포스트-케시시의 현대 사실주의 영화 실험실로 자리 잡았다. 권태와 소규모 마약밀매를 배경으로 10대들이 사랑을 발견하는 <코르니쉬 케네디(Corniche Kennedy)>(도미니크 카브레라, 2016), 마르세유에서는 감옥에서 출소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다시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임을 보여주는 <셰에라자드(Shéhérazade)>(장베르나르 마를랭, 2018) 등이 그렇다. 

 

마르세유는 전 세계 영화감독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이다. 친근하고도 낯선 이 도시는,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1971)에 등장한 추격전, 토머스 매커시가 <스틸워터(Stillwater)>(2021)를 통해 보여준 거짓말 같은 사랑 등 영화의 고전적 주제들을 새롭게 해석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영화 <스틸워터>는 오클라호마의 작은 도시 이름이 제목이지만, 배경은 마르세유다. 마치 ‘이동’과 ‘통과’가 영화적 실험의 조건인 것처럼 말이다. 

독일의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영화 <트랜짓(Transit)>(2018)에서 이런 특징을 최대로 드러냈다. 아나 제거스의 소설(1944)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나치의 위협을 피해 배를 타고 떠나려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문학에서 영화로의 또 다른 이동 즉, 영화에 대한 매개론(프랑스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가 주창한 문화의 기술적・제도적 매개 이론-역주)적 고찰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보다 보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항구도시(영원히 0년에 머무르는 마르세유)와 장치와 상영이라는 시간성을 통해 본질적으로 ‘이동’을 나타내는 영화 사이에 유사성을 만드는 진정한 선언이다. 

에밀리 아우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우리의 영원한 여름(Our Eternal Summer)>은 이 두 가지 영감을 모두 드러낸다. 마르세유라는 도시는, 케시시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키며 청춘을 표현한 이 영화의 배경이자, 영화를 ‘깊게 생각’하기에 적합한 멈춤의 공간이다. 대입 시험을 이제 막 통과한 10대들은 인생에서 가장 긴 방학인 ‘영원한 여름’을 즐긴다. 이렇게 멈춘 시간 속에서, 마르세유의 신고전주의적 배경은 포세아에 시대 즉, 도시의 고대 시대를 부활시킨다. 10대 연인들은 롱샹 궁전의 주랑에서 서로를 ‘신’이라 부른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처음 맞는 이들의 여름은 온전한 시작일 뿐만 아니라 끝이기도 하다. 리즈(아가트 탈리슈)를 비롯한 유쾌한 10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리고, 여기에서 영화는 좀 더 무거워진다. 리즈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청년 무리와 어울리며 위안을 얻는데, 리즈가 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셰에라자드>와 <스틸워터>에 출연하며 다양한 종류의 경험과 슬픔에 능통한 배우 이디르 아주글리가 연기한 배역 덕분이다. 리즈와 친구들은 영원함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견디기 위해, 공동생활을 하며 연극에 참여한다. 

에밀리 아우셀은 영화 <워크숍>(로랑 캉테, 2017)이 라시오타를 배경으로 표현했던 고찰을 마르세유로 옮겨왔다. 글쓰기 워크숍에 참여하며 자아를 되찾는 청소년을 연기한 배우 마티외 루치는 두 영화 사이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힘든 일상을 견디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요트를 소유한 부자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곳, 라시오타는 캉테에게 영화산업 초창기를 상기시키며 현대 픽션의 힘을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틀을 마련했다. 한편, 케시시와 페촐트 그리고 캉테의 계승자로서 에밀리 아우셀의 연극 및 영화적 워크숍은 정치적이기보다는 매개론적이다. 등장인물들을 자신들이 뿌리내린 곳에서 끄집어내, 존재의 파열을 견디게 해주는 ‘영화’라는 영원한 공간에 자리잡게 만든다. 

 

 

글·루이즈 뒤마 Louise Dumas 
영화평론가

번역·김자연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