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영혼을 울리는 음(音)은?

2023-01-31     파스칼 코라자 l 기자

오디오 드라마 <콜스(Calls)>가 TV에서 거둔 성공과 별개로, 이미지와 음악을 중시하고 정적을 꺼리는 영상물의 특성상, 음향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 한편 영화계 거장 감독들이 말의 억양, 소음, 환경음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그들은 영화 제작에 앞서 사운드를 먼저 고려한다.

 

픽션 영화를 제작할 때 세트, 의상, 사진, 메이크업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이 사운드, 즉 음성 녹음, 환경음, 효과음, 믹싱 작업에 소요되는 인력보다 월등히 많다. 그렇다고 첨단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음향의 존재감이 축소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영화의 미학에서 소리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1895년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첫 번째 영화를 상영하기 1년 전, 토마스 에디슨이 조수와 함께 키네토폰으로 유성 시퀀스를 촬영했다. 프랑스 국립영화학교(Fémis)에서 강의하는 다니엘 데샤이(Daniel Deshays) 음향감독에 의하면 “에디슨의 두 조수가 동시에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녹화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30초였다.”

그래서 연극의 기술을 영화에 적용해 배우가 연기하는 동안 화면 뒤편에 음향 효과 전문가와 연주가들이 숨어 녹음하기도 했다. 35mm 필름에 오디오 신호를 수록할 수 있게 된 1930년대에 들어서야 유성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초창기 모노로 녹음하던 것이 2중, 3중 동시녹음으로 점차 발전했다. 최초의 트랜지스터 방식 휴대용 레코더 나그라3 사용을 시작한 1960년대에 이르러 소리를 따로 녹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누벨바그 영화의 특징인 ‘즉각적 사운드’와 ‘실제의 소리’가 동의어인 듯하다.

레이 돌비(Ray Dolby)가 도입한 다중 채널의 혁신이 대중에게 보다 큰 감동을 선사했다. <스타워즈(Star Wars)>(1977)에서 돌비 스테레오를,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1979)에서 돌비 스플릿 사운드를 사용해 관객을 음향으로 에워쌌다. 뒤이어 최초의 완전 디지털 다중 채널 돌비 디지털 5.1(1992)이 등장했다. 천장 스피커를 포함, 최대 64채널을 사용하는 돌비 애트모스(2012)는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매년 평균 700편씩 개봉하며 유럽 영화관까지 장악한 미국 영화의 국제적 스케일에 걸맞게 스피커를 대폭 사용했다.

 

음향을 예술로 승화시킨 감독들

오손 웰즈(Orson Welles),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자크 타티(Jacques Tati),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등이 음향 제작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싸이코(Psycho)>(1960) 속 샤워 신의 비명소리는 잊을 수 없다. 1970년대 말에 이르자 미국의 일부 영화인들이 ‘사운드 디자이너’와 협업했다. 월터 머치(Walter Murch)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음향을 담당했고, 벤 버트(Ben Burtt)는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를 맡았다. 소리 없는 제다이 광선검은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머치와 버트의 제자인 니콜라스 베커(Nicolas Becker)는 프랑스 출신으로, <사운드 오브 메탈(Sound of Metal)>로 2021년 오스카에서 수상했다. 그는 “다리어스 마더(Darius Marder) 감독이 영화촬영을 시작하기 1년 전, 전화로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라며, “최근 연락을 해온 이는 <바벨(Babel)>, <버드맨(Birdman)>,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를 제작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z Iñarittu) 감독이다. 타티 감독 영화처럼 개성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소리를 구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 Hulot)> 믹싱을 25년 간 3번씩 손봤던 타티처럼 말이다.

그러나 거장을 찾아간들, 사실적인 사운드와 격렬한 감정을 추구하는 업자들을 저지하기란 쉽지 않다.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타르콥스키(Andreï Tarkovski)의 <스토커(Stalker)>(1979)의 경우 감독 사망 20년 후에 음향이 수정되기도 했다. 데샤이는 “원작에서는 초반부 긴 침묵이 이어진다. 하지만 DVD 5.1 버전(2003년)에서 이 부분이 바람과 비와 삐걱거리는 소리로 채워졌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타르콥스키가 절대 동의했을 리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사운드가 이미지의 위상에 미치지 못하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또한 점점 더 정적을 꺼리는 추세를 반영한다. 

멜리사 쁘띠장(Mélissa Petitjean) 음향감독의 경험담은 인상적이다. “TV에서 상영할 영화 선정을 위한 상영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좋은 영화가 거절당했기에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정적이 너무 많습니다. 시청자들이 TV를 보며 다른 일을 할 거예요. 사람들의 이목을 시종일관 사로잡아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광고를 위해 뇌를 비우는 시간’(1)을 말하는 건가... 데이샤는 또한 “요즘 영화는 매우 짤막한 호흡으로 구성돼 우리가 공간에 머무를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할 새도 없이 강렬한 사운드로 가득해 스트레스를 야기한다”라고 말했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뤽 아르날(Luc Arnal) 신경과학 연구원에 따르면, “관객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영화감독들은 마치 보너스가 자주 등장하는 비디오게임처럼 끊임없이 감각중추에 폭격을 가해 우리를 현혹한다. 음악도 중독성이 있어 여기에 한몫한다.” 픽션 및 논픽션 영화를 편집하는 카트린 라스콩(Catherine Rascon)이 “처음부터 음악을 한껏 틀어놓으면 대체 어떻게 역동성을 표현할 수 있나?”라고 지적한다. 영화 제작자 알렉상드르 가브라스(Alexandre Gavras)는 “미국에서 제작자들이 중시하는 사운드의 두 가지 요소는 명확한 대사, 그리고 관객을 확실히 매료시키는 음악이다. 미국 대작 영화의 가치가 2억 달러에 달하는 만큼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결정이 언제나 감독의 영역은 아니다. 

작고한 아이슬란드 출신 작곡가 요한 요한슨(Johann Johannsson)은 음악이 지나치게 많이 삽입된 영화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의 영화 <컨택트(Arrival)>(2016)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뒤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에서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둘은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사에 의해 결별하고,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라이온 킹(The Lion King)>,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듄(Dune)> 등의 영화음악을 프로듀싱 한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요한슨을 대신했다. 

 

“사운드가 관점을 바꿔놓는다”

분명 음악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한편, 창조적이지 않은 소리의 끔찍함을 덮는 데 쓰이기도 한다. “감독은 음향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전문가는 그것을 점점 더 정교해지는 기계에 맡긴다”라고 장-피에르 듀렛(Jean-Pierre Duret) 음향감독이 말한다. 음향효과 전문가 파스칼 쇼뱅(Pascal Chauvin)이 말하길, 영화 <카멜롯(Kaamelott)>(2021>(알렉상드르 아스티에, Alexandre Astier)을 처음 받았을 땐 테이프가 대사로만 가득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매주 화상회의를 진행해 작업이 마음에 드는지 확인했다.” 이 사례는 “편집물을 받을 때 당연히 음향을 함께 작업해야 한다. 사운드가 관점을 바꿔놓기 때문이다”라는 라스콩에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 감독의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1971)에서 진 핵크만(Gene Hackman)이 분한 도일 형사가 클럽 여종업원과 대화할 때는 음악이 대사를 덮는다. 그가 동료 로이 샤이더(Roy Scheider)와 대화할 때는 배경처럼 음악이 흐른다. 따라서 대화 내용은 물론, 술잔 속 얼음 소리까지 또렷이 들린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저편에서 마약밀매를 하는 듯한 이탈리아인들의 말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이로써 영화 전체의 골조가 형성된다.

소리가 들리게, 혹은 들리지 않게 함으로써 내러티브를 진행하는 기법은 관객만큼이나 영화학도들에게도 생경할 것이다. “각본을 집필할 때부터 사운드를 고려할 것을 최근에야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엠(M)>(1931)에서 프리츠 랑(Fritz Lang) 감독이 2가지 소리를 겹쳐 사용한 점은 매우 창의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에는 350개의 소리가 산재한다.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요소가 많을수록 들리는 것은 적다. 프레이밍은 ‘솎아내는 작업’이다. 어떤 것에 생명력을 부여할 것인지, 소리를 통해 선택해야 한다”라고 데샤이가 말한다. 그는 타티 감독의 <나의 삼촌(Mon Oncle)>(1958)을 예로 든다. 거구의 아르펠 씨가 내려놓는 커피잔 소리만 들리게 한 와이드 숏에서 그 작은 잔이 일순간 시각을 가득 채운 것이다. “현재 오스카 수상 가능성 있는 영화의 30%가 사운드를 미리 고려한 후 성공했고, 20%는 음향을 고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음악과 목소리와 소음을 담았을 뿐이다”라고 쁘띠장은 말한다. 쁘띠장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매년 수십 편의 영화를 본다. 

 

“사운드는 무대, 이미지는 배경”

아르노 데스플레생(Arnaud Desplechin)와 아르노 데 팔리에르(Arnaud des Pallières)가 제작한 영화들은 오스카 수상 가능성이 있으며 사운드가 미리 계산됐다. 쟝-피에르 라포스(Jean-Pierre Laforce) 음향감독은 데스플레셍과의 작업을 통해, 연기는 목소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런 면에서 데스플레셍은 상당히 유능하다. 믹싱작업을 할 때 특히 말의 강세에 신경 쓰는데, 아주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르노 데 팔리에르(Arnaud des Pallières) 감독의 경우 사운드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디즈니랜드, 나의 옛 고향(Disneyland, mon vieux pays natal)>(2001)에서 사람들이 거의 처절하게 놀이공원을 거니는 동안 흥겨운 음악을 보이스오버로 사용했다. 그는 “사운드를 무대로, 이미지는 배경으로 삼고 싶었다”라고 설명한다. 

프리츠 랑의 말마따나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동원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은 오프스크린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감독의 영화 <하얀 리본(The White Ribbon)>(2009) 중 마틴이 그의 아버지가 있는 방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자. 그는 복도를 지나 서재로 간다. 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있다. 관객은 그곳에 함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처벌받으리란 걸 안다. 관객에게는 회초리 소리가 들린다. 하네케는 “사물의 실제 소리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꿈을 재생하는 중요한 요소”라 확언한다. 음향 전문가 쇼뱅에 의하면 “하네케는 음향 작업에 관여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마치 배우에게 하듯 나를 감독한다.”

 

정적이 1초에 불과할지라도…

정적이 더욱 설득력을 지닐 때도 있다.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 감독의 영화 <암흑가의 세 사람(The Red Circle)>(1970)에서 한밤중 보석상을 터는 장면은 소리로 가득하다. 시계 분침소리, 진열대 위 보석들이 부딪히는 소리... 그러나 대사는 없다. 침묵의 시간이 6분 이어진다. 영화인 자비에 르그랑(Xavier Legrand)은 “사실 진정한 침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가 들리게끔 하려면 정적이 지속되게 둬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Jusqu’à la Garde)>(2017)에서 복도의 인터폰이 울리는 장면을 보자. 인터폰이 한참 울린 뒤 수화기를 들었지만, 어머니와 아들이 누워있는 방에서 여전히 진동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어머니가 엘리베이터 소리를 감지한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가족과 별거 중인 아버지가 건물에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퀀스의 길이는 3분이다. “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이 영화를 상영하자 <프랑스 2(France 2)> 방송국은 영화가 너무 고요하다는 이유로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라고 감독이 이야기한다.

알랭 카발리에(Alain Cavalier)는 <리베라 메(Libera Me)>(1993)에서 모든 대화를 지워버렸다. 고요 속에서 폭력이 일어난다. 손과 몸짓의 소리와 옷이 스치는 소리가 놀랍도록 선정적인 침묵이다. 카발리에는 말한다. “촬영 후 음향효과나 믹싱 없이 사운드 조정만 한 상태에서 화면을 등지고 귀를 기울인다.” 자비에 돌란(Xavier Dolan)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Juste la fin du monde)>(2016)에서 과묵한 인물 역할을 맡은 가스파르 울리엘(Gaspard Ulliel)이 말한다.

“말하기 직전에 흐르는 정적이 1초에 불과할지라도, 바로 그 순간 사람의 영혼과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글·파스칼 코라자 Pascal Corazza
기자

번역·안해린
번역위원


(1) 프랑스 민영방송국 <TF1> 전 회장 파트릭 르 레이(Patrick Le Lay)의 2004년 발언을 인용. 그는 “우리 방송국의 일은 말하자면 코카콜라의 상품 판매를 돕는 것이다. 우리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목적은 시청자의 뇌를 광고를 위해 비워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락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의 뇌를 편안하게 만들어 광고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코카콜라에 파는 것은 사람들의 뇌 속에서 그것을 위해 비워둔 시간이다.” 라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