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해체 시기, 변화에 적응하는 삶
모턴 111. 독특한 제목이다. 공상과학 소설? 아니다. 읽다 보면 이 제목은 독일 민주공화국(동독)에서 생산된 트랜지스터의 이름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식탁 위에 군림했다.” 나레이터인 칼 비쇼프가 이 트랜지스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가 루츠 실러는 1963년, 동독에서 태어났다. 1995년부터 시집을 출간해온 그는 2014년 첫 소설 『크루소』를 내놓았다. 1989년 여름, 동독 발트 섬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는 이곳’, 발트 섬에 자리를 잡으려 한다.
『스턴 111』역시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과 적응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시작된 후 몇 달이 지난 시점, 나레이터인 칼 비쇼프는 더 이상 자유의 공간을 형성할 때가 아니라, 전환 즉 느린 변화에 적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1989년 11월 10일, 동독의 해체를 앞둔 시점이다.
서독의 튀링겐 게라에 살고 있는 컴퓨터 과학자 발터 비쇼프와 아내 잉게는 동독에 있는 아들에게 전보를 보낸다. 아들 칼은 동독 할레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하는 26세의 청년이다. 부부는 국경이 폐쇄될 것을 걱정해 아들에게 즉시 동독을 떠나라고 전한다. 부부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집과 차를 지켜주기를 원한다. 차는 독일에 흔한 ‘트라반트’가 아니라 소련산 ‘시굴리’다.
칼은 부모의 요청대로 서독의 부모에게 오지만, 결국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시굴리를 타고 동독의 베를린으로 간다. 그의 차는 오라넨부르크의 황폐한 동네에 멈춘다. 이곳에는 혼란한 상황에서 무정부주의에 빠진 이들이 모여 있다. 자신이 시인이라고 강조하는 칼은 지하실 카바레 겸 카페 ‘클로포르테’에서 웨이터로 일한다. 이 소설에서 루츠 실러가 구사하는 예술은 마치 불꽃놀이처럼 미디어와 관광으로 파괴된 옛 동독 베를린의 이미지를 생생하고 우스꽝스럽고 그로테스크하게 만든다.
칼은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을 들려준다. 편지에는 칼의 어머니가 미국에 정착할 때까지의 여정, 그녀가 미국인 록 가수 빌 헤일리에게 사랑을 맹세한 사연 등이 담겨있다. 빌 헤일리는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전, 그녀와 아들 칼이 서독 베를린에서 잘 알고 지낸 인물이다. 이렇게 칼과 그의 어머니, 각각 두 인물이 중심이 된 두 줄기의 이야기는 1989년 11월 이후 19개월 동안 흐른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의 승리에 도달한다. 승리란, 다름 아닌 자아실현이다.
『스턴 111』은 동독의 ‘역전’을 그린 서사시일까?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의 미완성 장편소설 『푸른 꽃』같은 학습 소설일까? 루츠 실러는 독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특히 낯설게 느낄 혼합 장르의 소설을 선보인다. 『스턴 111』도 그중 하나다. 5편 이상의 영화가 인용됐고, 10여 명의 화가와 20여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이들 중 실제 인물도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칼의 친구, 작가 토마스 쿤스트다.
루츠 실러는 주인공이 “클로포르테와는 끝냈습니다”라고 선언하게 하며 『스턴 111』을 끝낸다. 그 다음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신자본주의의 기치 하에 통일된 독일에서, 자칭 ‘시인’ 칼은 자본과의 타협 없이 시만 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글·리오넬 리샤르 Lionel Richard
여러 대학의 명예교수, 저서로는 <요제프 괴벨스, 배후조장자의 초상>(앙드레 베르사유 출판사, 브뤼셀, 2008)이 있다.
번역·이주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