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값의 글로벌한 폭락기
Corée Spécial FTA 시대, 사유와 전략
소값 폭락이 심각한 수준이다. 600kg 한우 수소의 산지 가격은 310만 원으로 구제역 발생 이전인 2010년 11월 490만 원에 비해 180만 원이나 하락했다. 한우 암소의 산지 거래 가격도 380만 원으로 1년 만에 25% 하락했고, 4∼5개월 된 한우 암송아지도 1년 만에 190만 원에서 90만 원대로 내려앉았다. 젖소 수컷 육우송아지는 2010년 11월 24만 원에서 현재 1만8천 원까지 떨어졌다. 설 명절을 맞아 쇠고기 수요가 늘어나고 정부의 소비 촉진 캠페인 효과도 있어 소값이 약간 상승했으나 과잉공급 상태에서 가격 상승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소값 폭락에 화가 난 농민들은 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의 수급 안정 정책 실패
소값 폭락의 원인은 정부의 수급 안정 정책 실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 재협상으로 인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증가에 있다. 한(육)우 사육두수는 1996년 말 284만 두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른 쇠고기 수입 개방 우려로 암소 도축이 급증한 결과 2003년 148만 두로 감소했다. 그러나 2003년 광우병 발생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면서 사육두수가 2004년 167만 두, 2005년 182만 두, 2006년 202만 두, 2007년 222만 두로 수직 증가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의 영향으로 ‘원산지 표시제’가 도입되면서 한우의 인기가 높아져 520만 원이던 수소 1마리 가격이 2009년 610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농민들은 너도나도 소 사육에 뛰어들어 사육두수는 2008년 243만 두, 2009년 264만 두, 2010년 292만 두, 2011년 304만 두로 늘어났다. 가임 암소도 적정두수는 90만~100만 마리인데, 실제 사육두수는 120만 마리로 적정치를 크게 웃돌았다. 사육두수가 늘어나고 정부가 암소 조기 도태 캠페인을 편 결과 도축 마릿수도 평년보다 10만 두 정도 증가한 70만 두로 늘어났다. 결국 소값 폭락 사태를 부르고 만 것이다. 2010년 말~2011년 초 구제역 사태가 진정되면서 지난해 3월 이후 소들이 집중 출하된 것도 소값 폭락을 재촉했다.
2008년의 시점에서 한우 공급 과잉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지만 정부는 사육농가의 사육두수 자율 감축을 촉구하는 데 그쳤다. 2010년부터 적정 사육두수 270만 마리를 크게 뛰어넘었다. 2011년에 암소 도태 10만 두를 목표로 했지만 농가의 참여 부족으로 2만9천 두밖에 줄지 않았다. 2011년 6월 전체 두수 305만 마리를 정점으로 최근 295만 마리로 10만 마리가 줄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소값 폭락의 결과일 뿐이다.
수입 급증하고 사료값 폭등하고
쇠고기 재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2008년부터 재개돼 급속히 증가한 것이 한우·육우의 가격 폭락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다. 수입 쇠고기 물량은 2003년 32만6천t에서 광우병 사태로 미국산 수입이 중단돼 2004년 16만t으로 급감한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관세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쇠고기 수입량은 34만4천t으로 2010년(29만t)보다 18% 늘었다. 미국산 수입이 12만8천t으로 39% 급증했다. 수입 쇠고기에 국산 쇠고기는 밀려나고 있다. 국산 쇠고기 물량은 2003년 14만2천t에서 2009년 19만8천t까지 증가하다가 2010년 18만6천t으로 감소했고, 2011년 7월 말 11만3천t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2003년 36.3%이던 국산 쇠고기 자급률이 2009년 50%까지 올라갔지만 2010년 43.2%, 2011년 7월 현재 39.1%로 하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료값이 크게 상승한 것도 소값 폭락을 재촉했다. 2005년 임신한 암소 전용 사료값은 포대당 5천 원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1만 원으로 2배 이상 치솟았다. 농협중앙회 자회사인 농협사료는 2010년 8월 사료값을 평균 5.6% 인상했고, 지난해 3월과 6월에도 각각 9.5%, 7.4% 인상했다.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의 국제 거래 가격이 지난해 1월 t당 282달러에서 9월 351달러까지 오른 결과다. 사료값 상승으로 적자를 보자 소 사육농가들은 소를 헐값으로 방매하고 사육두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전국 육우의 25%를 사육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의 육우 사육농가들은 지난해 6월부터 송아지를 들이지 않고 소를 내다팔기만 해서 사육두수를 3만5천 두에서 3만2천 두로 줄였다. 육우 비육농가가 송아지를 들이지 않자 젖소 수송아지 사육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전체 한(육)우 사육농가 17만 호 중 20두 미만을 사육하는 영세농가 13만5천 호는 주로 번식우를 사육하며 송아지를 키워 소득을 올린다. 사료값 상승에다 한-미 FTA 비준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증가가 예상되자 어린 송아지를 미리 내다팔면서 송아지 가격이 폭락하게 되었다.
독점자본 지배 소매유통
지나치게 중간 마진이 큰 유통구조도 소값 하락을 부추긴다. 축산농가에서 수집, 도축, 가공, 중간 유통업체, 대형 유통업체, 소비자 등 6~7단계의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다 보니 한우값 폭락에도 소비자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3개 등급의 한우 지육 1월 도매가격은 구제역 파동 이전인 2010년 10월보다 20~23% 떨어졌지만 평균 소비자가격은 6~16%만 하락했고, 최고 등급 한우는 백화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는 오히려 값을 올리기조차 했다. 한우고기 소비자가격에서 소매 단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통수익 비중은 2009년 38%, 2010년 41%, 2011년 42%로 상승했다. 소수의 독점자본이 소매유통을 지배한 결과다. 이렇게 소비자가격이 산지 가격에 연동해서 내리지 않음으로써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 증가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것이 가격 하락을 부추기게 되었다.
여기에다 양극화에 따른 소득 부진으로 값싼 수입 쇠고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소비 행태가 바뀌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도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시장 개방이 확대돼 우리 농산물값이 더 비싸더라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39.1%로 1년 전보다 6.0%포인트 내려갔다. 반면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품질 우수성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38.2%로 1년 전보다 11.5%포인트 증가했다. 이러한 값싼 수입 쇠고기 수요 증가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1인당 1만5천 원에 수입쇠고기를 무한 리필해주는 쇠고기 전문 뷔페가 성행하고 있다.
정부는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되, 장기적으로 산업의 안정성이 높아지도록 보완 대책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군납용 수입 쇠고기를 전량 한(육)우 고기로 대체하고, 공급해온 돼지고기의 절반 이상도 한(육)우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우 사육두수 감축을 위해 송아지생산안정제를 개선하는 동시에 한우 암소 도태도 확대 추진키로 했다. 육우는 송아지고기 개발과 육우고기 소비 확대로 대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적정 사육두수로의 조정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은 농민들의 손해를 방관하는 것이고, 다수 한우농가의 생업을 박탈하는 것이며, 자금력이 있는 일부 부유 축산농가에만 기회를 주는 무책임한 정책이다. 적자 농가의 조기 도태와 투매가 가속화하면 한우 사육 기반이 와해될 우려가 있다.
암소 조기 도태를 위해 3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출산 경험이 없는 암소에 대해서는 50만 원, 새끼를 두 번 이하로 낳은 60개월령 이하 암소는 3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7만~8만 두 도태밖에 지원할 수 없다. 애초에 500억 원을 계획했는데 기획재정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삭감됐다. 지금이라도 조기 도태 지원 예산을 500억 원으로 늘려야 할 것이다.
정부 수매 실시, FTA 재협상해야
정부는 소 수매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시장에 직접 개입하면 1998년의 경우처럼 사육두수를 과도하게 감축시켜 머잖은 장래에 소값 폭등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암소 조기 도태도 시장에 쇠고기 공급을 늘리는 것이고, 가격 폭락에 따른 불법 도축 증가도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잉 공급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가격은 더욱 하락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가 소를 수매해 가공하거나 북한에 원조해 시장에서 격리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소값 안정에 꼭 필요한 조처다. 그리고 사료값 폭등으로 인해 소 사육농가의 수지가 악화됐으므로 소값과 사료값이 안정될 때까지 우선적으로 일본처럼 사료안정기금을 설치해 사료값 부담을 경감해줘야 할 것이다.
육우(젓소 수소) 가격은 한우 가격보다는 수입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실제 육우 경락 가격은 1kg 기준 2010년 평균 9752원에서 지난해 12월에는 6786원까지로 30.4%나 하락했다. 육우에 대해서도 정부 수매로 학교급식, 공공급식, 북한 지원 등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수요를 보장해야 하고, 최저 생산비 보장을 위한 비육우 소득 안정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소값 안정을 위한 농협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축산농가에서 소비자까지 7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다 보니 한우 가격이 폭락해도 소비자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소비도 증가하지 않는다. 덴마크나 네덜란드처럼 축종별 연합회 조직을 강화해 도축·운반·가공·경매 등의 과정에서 농협이 시장을 주도함으로써 중간 유통상인의 폭리를 막아야 한다. 정부의 지원이 있더라도 농협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원활한 생산 조절을 하기 어렵다.
쇠고기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협상이 타결되고 수입 재개를 1월 20일에 고시하면서 쇠고기 수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여기다 한-미 FTA 시행으로 미국 쇠고기가 저율관세로 수입되면 국내 축산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쇠고기 수입 관세율 40%는 애초에 너무 낮게 설정됐다. 우루과이 농산물 협상 당시 쇠고기 수입은 국내외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매길 수 있었는데, 미국과의 협상에서 쌀시장 개방 유예를 확보하는 대신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는 종전의 40% 저율관세를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수입쿼터를 10만t에서 20만t으로 점진적으로 늘리고 수입부과금을 95%에서 10%로 점차 낮추는 등의 한시적 보완 조처를 두었을 뿐이다. 이렇게 낮은 수입관세율이 쇠고기 수입을 증가시키는 구조적 원인이다.
게다가 한-미 FTA에서는 수입관세를 폐지하도록 했고,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발동도 거의 불가능하게 해놓았다. 15년에 걸쳐 현행 40%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없어지는 쇠고기의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은 한-미 FTA 발효 첫해 27만t에서 시작한 뒤 해마다 6천t씩 증가해, 15년차에는 35만4천t까지 늘어난다. 세이프가드 발동시 적용되는 세율은 기간별로 1~5년차는 실행세율(40%), 6~10년차에는 실행세율의 75%, 11~15년차는 실행세율의 60% 등이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 12만8천t에 비교해 27만t은 엄청나게 큰 규모이므로 세이프가드 발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이후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으나, 전년 대비 수입증가율에 의한 구체적인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이 설정돼 있지 않아 실질적으로 수입이 급증하는 걸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한-미 FTA를 재협상해 쇠고기의 관세율 인하폭과 일정을 수정하고 세이프가드 발동을 더 쉽게 해야 한다. 일본과 같이 전년 대비 누계 수입량이 117%를 초과하는 경우 관세율 50%를 적용하는 등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글 / 장상환
농업경제학자.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국 사회의 이해> <제국주의와 한국 사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