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성희롱, 사회적 과정의 외설

Corée

2012-02-13     박승희

“굼벵이는 더럽지만 변해서 매미가 되며,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변해서 반딧불이 된다.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항상 어둠에서 생겨난다.”(<채근담>)

피해자

현대자동차의 충남 아산공장 하청업체에서 14년 동안 일하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이 사실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성희롱 사건이 대체로 그렇듯, 박사랑(가명)씨를 둘러싼 상황은 애초부터 피해자에게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박씨는 2009년 조장과 관리소장에게서 성희롱을 당했다. 조장은 걸핏하면 “우리 둘이 자고 나서 입 다물면 누가 알겠느냐”며 박씨를 괴롭혔고, 관리소장 역시 “너희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식의 전화를 수시로 해댔다. 작업 중에도 박씨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만졌다. 박씨는 심한 성적 수치심을 참을 수 없어, 2010년 8월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해 노조에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노조는 그해 9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소속업체인 금양물류는 같은 달 20일 곧바로 ‘회사 내 선량한 풍속을 문란’케 했다며 박씨를 해고했다. 그해 12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을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징계·해고)’으로 인정했고, 사장과 가해자 2명에 대해 총 1800만 원의 피해보상을 결정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어, 금양물류가 직장폐쇄를 단행한 뒤 새로 업체를 넘겨받은 형진기업은 기존 다른 노동자들의 고용을 모두 승계했지만, 이미 해고돼 명단에서 제외된 박씨에 대해서는 승계 의무가 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이에 박씨와 권수정 대리인 등은 이듬해 5월 말 상경해 여성가족부 앞 노숙농성에 돌입하면서 이 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노조뿐만 아니라 여성·사회·시민·학생 단체와 정당 등 18개 단체가 참여하는 지원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농성, 기자회견, 집회, 거리홍보, 여성가족부 장관 면담, 전국 현대자동차 대리점 앞 1인시위, 인터넷 청원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1월 30일 전미자동차노조를 포함한 국제연대단체의 해외 현대자동차 대리점 앞 공동 1인시위가 현대자동차를 효과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 사 쪽이 서둘러 교섭을 요청했고, 그해 12월 14일 금속노조와 형진기업의 원청인 글로비스는 ‘피해자에 대한 원직복직’과 ‘가해자 처벌’에 전격 합의하면서 투쟁은 끝났다.

이 사건은 ‘성희롱으로 인한 우울증’ 등에 대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성희롱 사건에서 묻히기 쉬운 피해자 치유 문제를 주목시켰다. 민주노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 조사를 벌여 비정규·간접고용 여성노동자가 정규직보다 더 많은 종류의 성희롱 행위와 더 심각한 성희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음을 확인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해 성희롱 단일 의제만으로 민주노총 차원의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면 다 된 것일까? 이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는 여성가족부에 관한 질문이다. 여성가족부는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두 번째 의문은 우리 내부로 향한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1년 4개월씩이나 필요했을까? 가해자의 맞고소도 있었지만 성희롱 피해 사실은 이미 녹취를 통해 증거가 확보됐는데도, 피해자가 해고된 데 비해 가해자는 아무 제약 없이 직장에서 일하는 상황을 노조와 조합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여성가족부

1987년 국민적 투쟁의 성과로 헌법에 양성평등 조항이 처음 신설됐고, 다시 10년 뒤 대통령 직속 여성특위를 거쳐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정책을 전담하는 독립적 국가기구로 설립된 여성부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성주류화 정책’을 시행하는 입법권과 준사법권을 행사해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단체의 많은 지도적 여성들이 여성 정치인으로 배출됐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는지는 몰라도, 여성 노동자·농민 등의 사회적 지위와 조건은 더 나빠졌다. 영화 <도가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킨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이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을 통해서 보듯이, 성폭력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196일, 성희롱 피해자가 노숙농성을 벌이는 동안 여성가족부는 또 하나의 커다란 벽이었다. 여성가족부는 시간이 흘러 어서 빨리 피해자의 저 끔찍한 텐트가 없어지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듯 보였다. 김금래 신임 장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건이 이미 사회적 현안이 된 터라 취임 초 박씨의 손을 잡은 점이 달랐을까, 그 또한 건물주를 통해 농성을 방해했고, 철거 수거 단행 가처분으로 피해자를 압박했다.

성희롱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여성가족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성희롱 관련 법 개정으로 주요 성희롱 업무는 국가인권위에 넘어간 반면, 여성가족부는 성희롱 예방 업무만 맡았다. 그러니 바로 자신의 눈앞에 구제를 호소하는 피해여성에게 여성가족부는 처음부터 ‘우리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이런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여성가족부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실효성 없는 현행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 성희롱 관련 부처는 국가인권위원회, 노동부, 여성가족부에 걸쳐 있으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서로 연계성이 없어 실제 사건 해결을 지연시킨다. 통합적인 법과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에서는 ‘고용 관련 성희롱 금지법’(가칭)을 준비 중이다.

노동조합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 감원이나 비정규직 투쟁들은 하나같이 장기화된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 등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들 사이에 이해와 입장 차이가 생길 때 투쟁은 복잡한 양상을 띤다. 그러나 이번 성희롱 사건은 구조조정 문제도 아니고 해당 정규직이나 직장 동료들의 고용에 악영향을 주는 사안도 아니었다. 회사 쪽 처지에서 봐도 ‘성희롱 사업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언론에 장기간 노출되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까닭이 없었다. 재정 부담이 결코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대자동차 사 쪽은 왜 피해자의 요구를 외면했을까? 그 원인은 노조 내부에 있다.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들은 항상 ‘피해자 행실’을 들먹인다. 즉,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단정치 못했다’며 가해자도 잘못했지만 피해자도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을 편다. 중립성을 가장한 이런 유의 주장이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박씨는 비정규 (여성) 노동자다. 가해자는 고용상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조장과 관리조장이다.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성립된다. (여성)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맞았을 때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다’라고 선뜻 얘기하진 않는다. 그런데 유독 성희롱 피해자에게는 이런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남성 중심의 조직이나 사회는 피해여성이 아닌 가해남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노조가 단호하게 피해 (여성) 노동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자동차 사 쪽은 지난 국정감사 때 제출한 ‘구 금양물류 성희롱 주장 사건’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아산위원회)가 주관한 관련자 조사와 전체적인 정황을 볼 때, 박씨의 처신이 바르지 못하여 성희롱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현대차노조(지부, 아산위원회)에서도 “당해 사건 조사 결과 성희롱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면피성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통해 노조가 이 사건에 대해 초기에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감지할 수는 있다. 회사는 친절하게도 “일반적으로 조합원 징계시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으나, 이번 성희롱 피해 주장자에 대한 징계위 개최시에는 노조의 반발과 방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황은 제조업 대공장 사업장 내부의 가부장성과 노사관계를 뛰어넘는 가해자 남성과의 동류의식이 노조의 초기 판단을 흐리게 했을 수 있다.

이후 피해자의 지속적인 투쟁과 여론의 지지가 있었고, 특히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이 가해자의 성희롱과 피해자의 고용 불이익을 인정해 사장에게 벌금 300만 원 처분 결정을 내리고,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판정을 내리면서 현장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졌다. 결국 성희롱에 대한 현장 노조 간부들의 감수성이 사회적 의식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편, 금속노조는 본조-충남지부-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라는 중앙-지역지부-지회 체계와 함께 현대자동차지부-현대자동차 아산공장위원회라는 기업지부 구조가 동시에 존재한다. 박씨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었고, 그래서 지회에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 그 뒤 지회와 현대자동차지부, 아산공장위원회 등이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논의 과정이나 의사소통 과정에 시차가 생기기도 했고, 본조도 내부 체계와 질서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개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울러 노조 내부의 선거가 일처리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다양하게 일어나는 투쟁 사안에서 우선순위에 밀리기도 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역시 같은 고민에 빠졌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는 복직촉구 서명운동, 전국 대리점 앞 1인시위, 성희롱 실태 조사와 법제도 개선안 마련, 여성가족부 앞 결의대회 등을 위해 노력했지만 교섭과 투쟁의 기본단위인 노조와 달리 투쟁 지원과 여론 환기를 위한 역할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굼벵이를 봐야 반딧불을 알 수 있다

민주노총은 창립 뒤 여러 번의 성폭력 사건을 겪었고, 성찰과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희롱 관련 규정과 사건처리 매뉴얼을 만들어왔다. 부족하나마 성희롱 예방 교육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노조의 가부장적 태도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향한 비판은 우리 내부에도 똑같이 해야 한다. 규정과 제도가 의식 변화를 바로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아울러 ‘긴급구제’는 여성가족부에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미 몸집이 커진 노조에도 복잡한 지휘 계통을 뛰어넘어 종합적 조정을 감당할 ‘긴급 출동’ 같은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성희롱 피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노조 간부는 아직까지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역량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집중적 대응이 필요하고, 투쟁을 거치면서 조합원들 앞에 객관성과 신뢰 역시 인정받아야 한다.

어둡고 더러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힘들고 두렵다. 그러나 굼벵이를 외면하면 그가 어떻게 허물을 벗는지, 썩은 풀숲에서 어떻게 저리 아름다운 반딧불이 솟아오르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밝은 빛은 어둠에서 나온다.


/ 박승희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 및 수석부본부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