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불안을 극복할 힘은 상상력!
체념은 질서유지를 위한 도구다. 단순한 시민들에게 현재는 너무나 복잡하기에, 체념이 곧 현재를 대면할 현실적인 유일한 방법처럼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운명론에 대한 거부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욕망은, 오늘날 집단적 상상력을 촉발하고 있다. 레닌과 5월 혁명도 이렇게 외치지 않았던가. “꿈을 꾸라!”
“과연 미래는 올 것인가? 계속되는 냉혹한 어둠 속에서 품게 되는 이 의문은, 특히 탐욕에 빠진 이들과 비참한 상황에 던져진 이들을 볼 때면 짙어진다.”(1)
19세기에 빅토르 위고가 가졌던 이 의문은,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하다. 미래, ‘이후의 세계’는 운명론, 보편적 두려움, 우울함이 난무하는 끝없는 나날을 견디기 위해 설계된 듯하다. 그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 연속적인 위기와 내일을 야기하는 현재는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우중충한 벽과 같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우리의 정신은 체념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교착상태를 벗어나 후일을 도모하려는 시도는 집단적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어제보다 미래를 꿈꾸는 일을 중요시하며, 미래를 향해 다시 걸어간다.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깨어나고, SF(공상과학소설)가 화려한 복귀를 선언한다. 수필가들이 가세하고, 결정권자들이 이를 거론하며, 박스오피스가 쐐기를 박는다. 대중오락, 철학적 고찰, 정치적 의도, 여론의 기막힌 결합이 사회에 표면화되면서 시류를 휘젓는다. 2002년 프랑스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 7편 중 5편이 SF이며, 세계적 수상작도 마찬가지다.
가장 성공적이고(3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 가장 큰 주목을 받은(학계를 비롯한 무수한 비평이 쏟아진) 영화는 바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 물의 길>이다. 머나먼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 영화에는 인간, 고래류 그리고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소통하는 특별한 정신적 능력을 갖춘 나비족이 등장한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카메론의 말을 들어보자.
“나비족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 즉 우리의 선한 측면을 은유화한 것이다. 반면, 나비족에 맞선 인간은 우리의 악한 측면을 은유한다. 이는 인간성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단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다.”(Huffingtonpost.fr, 2022년 12월 17일) 학식 있게 표현하자면, <아바타2: 물의 길>은 ‘자연과의 재결합에 대한 찬양’이자 ‘행성 간 교감’에 대한 메시지며, 더 나아가 ‘생명의 근원과의 교감’이다.(2)
한층 독하게, 생태학자 프레데리크 뒤카름의 어법을 빌어 말한다면(<르몽드>, 2022년 12월 25일), “아름다운 행성을 비웃고 파괴하며 식민지화하려는 잔혹하고 난폭하며 탐욕스러운 인간들, 그리고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온화하고 선량한 원주민들 간의 이중적 대립”이라 할 수 있다. 익숙한 내용들이다. 환경에 관한 문제, 영적 성장, 먹이사슬의 최상층에서 군림하던 인간의 종말, 탐욕을 향한 비판... ‘동물에 대한 감상주의적 시선’이라든가, ‘동물의 도구화’ 등 프레데리크 뒤카름의 흥미로운 지적은 접어두자. 분명한 것은 이 두 번째 작품(이후에도 여러 후속편이 나올 예정인)의 주제는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는 (대립이 따르는) 혁명적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라는 것이다.
“지구보존과 동물보호는, 새 시대의 행위”
아바타가 제시하는 혁명은 SF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수많은 ‘환경론적’ 운동의 지향점을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했다. 인류학자 필리프 데콜라와 인지과학자이자 만화가인 알레산드로 피뇨키의 토론을 담은 『미래 세계의 민족학』도 같은 지향점을 보여준다.(3)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인류는) 헤게모니적 세계를 끝내고, 더욱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세상에서는 정치권력을 모든 인류가 공평하게 나누며, (...) 인류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과도 나눠야 한다.” 필리프 데콜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상호의존성은 자본주의에 의해 시작됐고, 상업적 가치로 변모됐다. 19~20세기에 인간들로만 이뤄진 계층 간 대립 속에서 국제적 연대가 형성됐다. 그처럼, 비인간 생명체도 인간과 더불어 지구적 계층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쟁점에 대한, 참으로 과감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비인간 생명체에 계급, 계층을 운운하며 감히 인간과 같은 선상에 놓다니 말이다). 여하튼, 이 주장은 분명히 ‘혁명’적이다.
철학자이자 『동물주의 선언』의 저자인 코린 펠뤼숑의 주장도 같은 선상에 있다. 펠뤼숑은 최근 저서에서 “인류학적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지구를 보존하고 동물을 보호하는 모든 행위는 ‘새 시대를 알리는 도덕적, 정신적 개조의 신호’다.(4) 그녀에게 생명체에 대한 관심은 ‘도덕적 진보’이며, ‘상대를 지배하는 방식 외에는 관계를 맺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함’에 대한 구원이고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인간중심적, 약탈자적 가치에 대한 거부인 동시에, 무의미한 삶에서 비롯된 피로와 절망으로 표출되는 공허함의 종말이다. 이와 비슷한 견해를 지닌 많은 작품들은 하나의 열망을 표출한다. 그것은 이기주의에 가까운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초월하려는, 새로운 휴머니즘에 대한 열망이다. 희망을 회복하는 이상(Idéal)의 포문이 열리는 것이다.
유력가, 전문가, 현 체제의 옹호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청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상을 주장한다. 공공의 미래와 삶에 대한 의미 부여와 ‘환경 불안(Éco-anxiété)’이라는 명목 아래 그들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세계를 등지고 엄격한 윤리성을 보여줬다. 그들이 고안한 발명품을 이끌고, 키우고, 정착시키기 위해 새로운 생각의 틀과 욕망의 연동장치를 소환했다. “종종 이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고, 무언가 바꾸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2022년 5월 11일에 진행된 아그로파리테크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8명은 예정된 직업, 즉 농산업을 ‘파괴하는 직업’을 이탈하자고 호소했다. 이들이 창설한 단체인 ‘방향을 전환한 농업인들(Agros qui bifurquent)’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5)
그로부터 며칠 후, 툴루즈국립농업대학(ENSAT) 졸업생 10명도 마찬가지로 졸업식에서 그들의 직업과 삶의 의미를 찾고, ‘보다 공정하고 평등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창설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형적 상황’을 규탄하고, ‘길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기’라는 이념을 수용했다.(6) 파리 이공과대학의 한 단체도 “공익을 위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우리의 의구심에 귀를 기울이고 망가진 시스템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여기서도 강한 열망이 느껴진다. “우리는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건설하는 미래를 갈망하게끔 만드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파리 이공과대학 학생들은 행동하는 힘과 기쁨을 정의한 스피노자를 인용하며, ‘두려움이 아니라 열정과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미래’를 여는 ‘상상력’을 촉구했다.(7)
위의 세 사례가 전부는 아니다. 미래의 엘리트 지도자 양성소에서 ‘또 다른 가능성의 장’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파리경영대학(HEC)의 한 졸업생은 “끝인 줄 알았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의 행동에 영감을 준 투쟁자와 이탈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8)
환경 불안을 극복하는 힘, 상상력
환경 불안 또는 막연한 유심론은 ‘시스템’의 구조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동력이지만, 소위 ‘정상’이라고 제시되는 것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상상력만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구성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필수적 요소는 상상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SF를 찾는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미지의 길을 개척하고, 현실주의를 비꼬아서 현실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SF의 매력이다. 정교한 유토피아를 향한 긴장감이 장르소설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알랭 다마시오 작품의 놀라운 성공도 이런 욕구를 여실히 보여준다. <은밀한 존재들(Les Furtifs)>(2019)은 근접한 디스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다. 광범위한 통제가 허용된 사회에 분열이 생기고, 자치구역(ZAG)이 들어선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미스터리한 ‘은밀한 존재들’과 섞이고 싶어 한다. 자치구역에 모인 자들은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시스템이 고장났다’고 믿는 점이다. 이 불순종자들과 함께 강렬한 진실이 드러난다. ‘모든 권력은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데 흥미가 있다. 기쁨은 그들에게 가장 유해하다. 기쁨은 순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는 환경 불안이 아니라 삶의 무감각화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입소스(Ipsos) 글로벌 설문조사에서 ‘2023년 전망: 프랑스인들의 예측’ 부분을 살펴보면, 극적으로 다른 미래를 향한 방대한 혁신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비관론이 경제, 지정학, 환경 등 전 부문을 지배한다. 과학 부문마저 침체된 분위기다. 기술발전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7%가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2023년 1월 16~20일) 사전 보고서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 유명한 세계화도 이제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지난 20년의 유산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입소스 설문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이 우려했던 부분을 똑같이 열거하고 있다.
향후 2년간 글로벌 리스크 순위에서는 ‘생계비 위기’가 1위를 차지했는데, 이 부분에서도 다보스 사전 보고서와 입소스 설문조사 내용이 일치한다. IFOP가 2023년 1월 2~3일에 실시한 ‘프랑스 사회 풍토와 퇴직연금 개혁을 바라보는 프랑스인의 시선’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국민의 48%가 ‘분개’하고 있으며 ‘1/2가량이 사회적 분출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매우 낮은 수준의 낙관주의’를 악화시키진 않는다. 디스토피아 유행과 SF ‘호러’ 시리즈도 그렇다. 몇 년 전, 조지 오웰의 『1984』는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도 충격적인 여파를 가져왔다.(9) 좀비물도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에서 최다 시청률을 기록했다. SF가 그리는 종말 이후의 세계는 재앙 그 자체다. 그러나 이런 상상들이 아무리 어둡다 하더라도 내적, 집단적 황폐함을 강화하지는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회적, 정치적 투쟁을 은유하며’(9) 현재의 부정적인 가능성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SF는 어두운 잠재성을 뛰어넘고 고갈시키며, 위협과 모순을 박살냄으로써 일종의 일탈을 선보인다. 현재의 쟁점과 투쟁을 미화시키려는 지배자의 민낯을 까발린다.
프랑수아 뤼팽의 말처럼 ‘슬픈 좌파’의 진부한 언어 관습과 달리, 글쓰기 수업의 증가는 유쾌한 현상이다. 알리스 카라베디앙도 그녀의 저서에 ‘반운명적 관행을 추구하며 상상력을 재개하는 소설의 유용성’을 언급했다. 당장은 사회문제가 마치 주문처럼 보이더라도, 꿈 또는 악몽 속의 사회가 주로 군도라 해도, 낙원이 개발제한구역(ZAD)을 닮았다 해도, ‘낯설게 경험하기(Estrangement)’는 역설적 기쁨을 전달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감각적 인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즉 아직 무너뜨릴 것도, 발명할 것도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문화평론가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Victor Hugo, 『Les Misérables』, 1862.
(2) Perig Pitrou, <르몽드>, 2022년 1월 15일.
(3) Philippe Descola, Alessandro Pignocchi, 『Ethnographies des mondes à venir 미래 세계의 민족학』, Seuil, Paris, 2022년.
(4) Corine Pelluchon, ‘L’Espérance, ou la traversée de l’impossible 희망, 또는 불가능을 넘어서기’, Rivages, Paris, 2023. / ‘L’animal, un citoyen comme les autres ?(한국어판 제목: 동물에게 시민권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7월호 참고.
(5) 유튜브 연설, ‘Des agros qui bifurquent 방향을 전환한 농업인들’
(6) 유튜브 연설, ‘Bifurquer ne veut pas dire fuir 방향 전환은 도피가 아니다’
(7) Vidéo disponible dans l’article de Marina Fabre Soundron, ‘ Polytechnique, Sciences Po, AgroParisTech : comment la remise des diplômes, vitrine des grandes écoles, est devenue politique 폴리테크니크, 시앙스포, 아그로파리테크: 그랑제콜 학위수여식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변했나’ 기사에 게재된 영상 참고, Novethic, 2022년 6월 17일, www.novethic.fr
(8) ‘Polytechnique, HEC, Centrale Nantes, AgroParisTech, ENSAT… : ces jeunes diplômés de l’enseignement supérieur qui regardent en face l’urgence écologique 폴리테크니크, HEC, 상트랄 낭트, 아그로파리테크, ENSAT 등 대학 졸업생들, 시급한 환경문제를 직시하다.’ Énergie partagée, 2022년 7월 8일, https://energie-partagee.org
(9) Margaret Atwood, 『La Servante écarlate 시녀 이야기』, J’ai lu, Paris, 2005.
(10) Alice Carabédian, 『Utopie radicale. Par-delà l’imaginaire des cabanes et des ruines 폐가와 폐허의 상상력 저편의 극단적 유토피아』, Seuil,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