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케네디가 숨긴 것
지금으로부터 61년 전, 소련의 최고 권력자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에게 비밀 서한을 보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 군대에 의해 쿠바에 설치된 핵 탄도미사일을 철수하라는 공식 명령을 내린 1962년 10월 28일이었다. 이날, 현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두 초강대국의 대치를 타개할 평화적 해결책에 관한 서한이 전달된 것이다. 공식적으로 소련은 미국이 쿠바 침공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는 조건으로 미사일 철수에 동의했다.
그러나 실상 위기가 해결된 것은, 같은 해 10월 27일 저녁 케네디 미 대통령이 자신의 동생 로버트를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에게 보내 극비 거래를 제안한 후였다. 미국은 당시 터키(현재 튀르키예)에서, 소련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킨다는 조건이었다. 흐루쇼프는 케네디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거래를 문서로 확실히 하고자 다음과 같이 썼다.
“터키에 배치한 미국 미사일 기지의 철수를 고려하는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까다로운 문제인지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나는 이 사안의 복잡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당신이 이 사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도브리닌은 이틀 뒤인 10월 29일 2차 회담에서 로버트 케네디 미 법무장관에게 이 서한을 전달했다. 그러나 로버트 케네디는 이 서한을 케네디 대통령에게 건네는 대신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소련 대사에게 돌려보냈다. 미국은 “구두(口頭)로 한 약속이라도 그것을 반드시 지킬 것이지만” 어떤 형태의 서면 기록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도브리닌이 크렘린에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는 “나는 이런 서한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거나 공개될 수 있을지 알기 때문에, 이런 성격의 편지 전달에 관여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문건이 나오면, 내 정치 경력에 매우 치명적이다. 따라서 당신에게 이 편지를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 위기를 종식시키고 핵전쟁으로부터 전 세계를 구한 거래의 길고도 장대한 은폐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터키 미사일과 쿠바 미사일을 거래한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터키가 회원국으로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에서 미국의 통제권을 지키고, 자기 형제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모스크바와 협상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에게도 동생 로버트 케네디에게도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최대한 재량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세 명의 전임 대통령(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해리 트루먼, 허버트 후버)을 속이고, 언론을 조작했다. 그리고 본인이 임명한 유엔 대사 애들레이 스티븐슨을 조직적으로 음해하기로 결정했다.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케네디에게 미사일 철수라는 거래 옵션을 권고한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고문들 중 하나였고, 따라서 그를 침묵시켜야만 했다. 존 F. 케네디 암살 이후에는 그의 전직 고문들 중 몇몇이 케네디의 뜻을 지켜나갔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침묵의 벽’은 냉전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의 진상과 교훈을 25년 이상 왜곡한 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미국 언론의 조작, 위대한 신화의 탄생
1962년 10월 28일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흐루쇼프가 핵미사일을 철거하고 본국으로 복귀시키라는 결정을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뒤, 케네디 대통령은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스스로 만든 시나리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백악관 도청 시스템은 케네디와 전임 대통령들이 이 문제로 통화한 내용을 포착했다. 미사일 위기 역사학자 셸던 스턴이 그의 책 『‘결정적 실패’ 피하기(Averting ‘the Final Failure’)』에서 보고했듯, 케네디는 아이젠하워에게 당시 터키 협상에 대해 “우리는 그런 협상을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1)
그는 터키에 배치된 미국의 주피터 미사일에 대한 흐루쇼프의 공개적인 요청을 “거부했고”, 크렘린이 결국 (쿠바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워싱턴의 “애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하면서 트루먼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또한 후버에게는 소련이 미국의 불간섭 제안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거짓 보고했다.
다음 날 케네디 대통령은 흐루쇼프가 미사일 상호 철수와 관련해 보낸 예상치 못한 서한을 두고 동생과 이야기했고, 이 사건의 결론에 관해서는 어떤 서면 흔적도 남기면 안 된다고 결정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작성한 극비 문서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는 도브리닌 대사에게 “케네디 대통령과 나는 우리가 논의한 내용을 적은 서신 교환이 그 당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이해했고 더 이상 필요한 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존 F. 케네디는 숨겨진 교섭 상대가 존재한다는 추측을 전면 차단해줄 방패막이 될 시나리오를 부지런히 언론에 뿌렸다. 그는 미사일 위기 동안 소련 정보부를 상대할 비밀 사절로 활용한 최측근 찰스 바틀릿에게, 갈등을 해결한 의사 결정의 ‘내부’ 보고서를 쓰도록 허가했다. 케네디의 또 다른 측근인 스튜어트 알솝과 함께 작업한 보고서 사본이 1962년 12월 8일 <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등장했고, 머지않아 워싱턴에서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바틀릿과 알솝이 “위기의 시간에”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기사는 기적적으로 해결된 미사일 위기에 관한 공식적인 해석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기사는 딘 러스크 국무장관의 이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고, 나는 상대가 방금 눈을 깜빡거렸다고 생각했다.” 이 문구는 세계가 핵으로 인한 파멸을 가까스로 모면한 덕분에 대통령의 침착한 대응을 상징적으로 부각시켰다. 케네디는 쿠바를 침략하겠다고 위협을 가하면서 소련과의 힘겨루기에서 과감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눈을 깜빡였고”, 미사일을 철수시키고, 냉전의 중요한 승리를 미국에 안겨줬다. 기사를 작성한 이들은 “러스크가 한 말들은 미국 역사에서 위대한 순간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케네디 암살 이후 몇 년간 그의 최고 고문들은 모스크바와의 비밀 협정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신성한 신화로 보존했다. 테드 소렌슨처럼 대통령의 전직 협력자들이 쓴 회고록들은 미사일 거래에 관한 모든 언급을 교묘히 피해갔다. 특히 로버트 케네디는 1962년 10월 27일 도브리닌과의 만남을 일기에서 상세히 묘사했으나, 그의 사후 1969년에 이 일기가 『13일(Thirteen Day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을 때 민감한 내용은 볼 수 없었다.
여전히 유효한 61년 전 메시지
20년 뒤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사일 위기 콘퍼런스에서, 소렌슨은 쿠바-터키 미사일 거래와 관련한 일체의 언급을 차단한 것을 시인했다. “나는 로베트 케네디가 쓴 책의 편집자였다. 그리고 그의 회고록은 (터키가) 협상의 일부였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은 여전히 기밀이었고, 미국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그래서 내 쪽에서 그 부분을 삭제하는 일을 맡았다.”
“유출은 없었다.” 전직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는 1988년 출간한 저서에서 이렇게 진실을 밝혔다.(2) “내가 아는 한, 우리 중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발설하지 않았다. 포럼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매번 협상의 존재를 부인했다.”
따라서 미사일 위기를 종식시킨 협상의 진상은 1980년대 말이 돼서야 표면 위로 드러났다. 1987년 존 F. 케네디 도서관은 갈등 시기에 대통령과 그의 고문들이 주고받은 발언들의 녹취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외무장관은 도브리닌이 로버트 케네디와의 협상 내용을 크렘린에 보고한 메시지를 포함한 주요 기록들을 공유하는 데 합의했다. 이후 미사일 위기 30주년과 40주년에 열린 일련의 국제 콘퍼런스에서, 생존해 있는 케네디의 전직 고문들, 전 소련군 관계자, 피델 카스트로 등이 쿠바 하바나에 모였다. 이들은 대결의 기원과 특히 그 결론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위협이 새로운 위기를 촉발하는 지금, 이런 역사적 경험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의 교훈이 현재의 상황에 어느 정도까지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1962년 10월 28일, 흐루쇼프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마치 핵무기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세계에 대해 앞을 내다보듯 말이다.
“대통령님, 우리가 얼마 전 겪은 위기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넘쳐나는 폭발성 물질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불확실성과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이 문제들의 해결을 미룰 수 없습니다.”
글·피터 콘블루 Peter Kornbluh
기자, 저서로 『Back Channel to Cuba: The Hidden History of Negotiations Between Washington and Havana 쿠바 측 비공식 루트: 워싱턴과 하바나 협상의 숨겨진 이야기』(윌리엄 M.리오그란데와 공저)가 있다. 이 기사의 영문판은 <The Nation> 2022년 10월 28일자에 ‘The cuban missile crisis cover-up(은폐된 쿠바 미사일 위기)’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Sheldon Stern, 『Averting ‘The Final Failure’ : John F. Kennedy and the Secret Cuban Missile Crisis Meetings』, Stanford University Press, Redwood City, 2003.
(2) McGeorge Bundy, 『Danger and Survival : Choices About the Bomb in the First Fifty Years』, Random House, New York,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