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검사의학, 동네 연구소에서 다국적기업까지

기업이 장악한 검사와 치료제

2023-02-28     앙투안 레마리 l 사회과학 연구원

백신 부족과 이해충돌의 의혹. 코로나19 팬데믹이 보여준 의약 부문의 두 가지 결함이다. 제약산업은 수익성에만 집착해, 효과적인 치료법을 소외시켜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지난 20년간 금융화된 진단검사연구소들은 수상한 파업에 돌입했다.

 

“내 건강, 내 연구소: 우리를 보호하는 이들을 보호하자!”

‘사설 연구소 임상병리사’들이 2022년 12월 1~3일 진행한 파업에 대한 안내문 제목이다. 이번 파업은 11월 14~17일에 이은 2차 파업으로 향후 추가 파업의 가능성도 예고했다. 이 안내문은 건강보험의 ‘긴축정책’과 2억 5,000유로에 달하는 사회보장 예산 삭감을 규탄하며 “진단검사의학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파업은 어떤 성격을 지닐까? 자유직에 속하는 사설 연구소 소속 임상병리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벌인 ‘단순 파업’일까? 

그렇지 않다. 이 파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프랑스 진단검사의학의 역사와 지난 20년간 이 분야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사회·경제 현상인 LBM(Laboratoires privés de Biologie Médicale, 민영 진단검사연구소)의 금융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진단검사의학 분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병원 소속 연구소와 일상적인 검사를 담당하는 ‘사설’ 연구소다. 진단검사의학은 매년 질병 진단에 70% 이상 활용되므로, 이 두 유형의 연구소 모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프랑스 진단검사의학 모델의 특징은 전체 검사량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 분야의 우위다. 보건 위기 속에, 민영 연구소의 PCR 검사 점유율은 85%까지 치솟았다. 

 

‘연구소의 프랜차이즈화’를 막아라

1975년, 민영 진단검사연구소에 관한 최초의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이 법은 임상병리사의 재정적 독립성, 경쟁에 대한 강력한 규제, 인접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골자로 한다. LBM이 수행하는 검사는 의료행위 성격을 지니며, 사회보장 예산의 지원 대상이다. 입법부는 이 점을 고려해, LBM의 지분 소유권을 연구소 소속 현역 임상병리사(의사 혹은 약사)에 한해 허용했다. 또한 1975년에는 ‘연구소의 프랜차이즈화’를 방지하기 위해, 광고와 경쟁 연구소의 매수를 금지했다. 이후 임상병리사는 직업윤리강령의 규제를 받는 자유직형태로 독자적인 검사 장비를 갖추고 소수의 팀 단위로 활동했다. 이런 소규모 연구실은 4,000개에 달했고 프랑스 전역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1980년대에 들어 진단검사의학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다른 의학 분야와 차별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전반적으로 수공업 수준에 머물렀던 검사 기술이 급속도로 자동화되며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이와 동시에 검사의 수요도 대폭 증가했다. 기술 발전에 힘입은 공급이 수요와 선순환하며 서로를 부양했고 당국은 거의 10년간 검사 비용을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LBM의 황금기’에, 임상병리사는 의료 직종 보수 순위에서 방사선 전문의에 이어 2위로 급부상했다.

진단검사의학이 급성장하며 점점 더 많은 예산을 소모하자, 당국은 1990년대 초 이 분야를 개혁할 필요성을 느꼈다. 정부는 특히 집중화와 기업화를 장려했다. LBM이 ‘임계 규모’에 도달하도록 유도하고 투자와 검사 역량 공유를 장려했다. 연구소들의 규모가 커지면 사회보장 예산을 적게 투입해도 더 양질의 진단검사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990년 비(非)임상병리사에게 LBM 자본금의 25%까지 투자를 허용하는 법이 최초로 제정됐다. 이와 동시에 임상병리사가 5개 이내의 연구소를 통합할 길도 열렸다. 이 법은 프랑스 진단검사의학 모델의 토대를 뒤흔들었으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다. 임상병리사는 무엇보다 의료 종사자로 가족주의적인 연구소 경영에 익숙했으며 지역 내 경쟁도 치열했기 때문에 기존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2001년, ‘경제·금융 개혁 긴급 조치에 관한 법(MURCEF)’이 제정되면서 진단검사의학 분야의 집중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 법은 LBM의 프랜차이즈화를 ‘무제한으로’ 허용했다. 단, 임상병리사가 지분을 소유한 LBM만 해당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LBM의 자본이 개방된 국가에서 진단검사연구소를 운영하는 해외 영리 기업들은 유럽연합(EU)법의 자격 상호 인정 원칙을 내세워 프랑스 진출을 꾀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프랑스는 이 해외 연구소도 프랑스 연구소와 동등하게 간주해야 한다. 유니랩스(Unilabs), 노베시아(Novescia), 랩코(Labco)처럼 투자 펀드나 상장기업이 소유한 대형 연구소는 프랑스 당국이 추구했던 LBM의 집중화를 금융화로 변질시켰다. 

두 가지 장애 요소는 국내 투자자의 LBM 자본 참여를 여전히 방해했다. 모호한 합법성으로 해외의 대형 연구소에 빈틈을 허용한 현행 법률과 외부 자본의 침입에 격렬히 저항한 노동조합, 의사회, 약사회를 말한다. LBM 종사자들이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던 상황에서 감사원, 사회복지감독총국(IGAS), 보건부가 2005~2008년 결정적인 보고서 3건을 발표했다.(1) 이 보고서들이 지적하는 문제 및 권고 사항은 동일했다. 진단검사의학은 너무 많은 예산을 소모하고, 연구소의 질적 수준 관리가 미흡하며, EU집행위원회가 요구하는 진단검사 분야 자유화를 거부하기는 힘들다는 내용이다. 금융화 확산을 지적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3건의 보고서 모두 계속해서 진단검사 분야를 집중화하고 외부 자본에 완전히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0년, ‘발레로’ 행정명령 시행으로 몇 년에 걸쳐 지속된 불확실성이 종식되고 진단검사 분야의 운명이 결정됐다. 보건부의 2008년 보고서를 작성한 미셸 발레로 보건기관 총고문의 이름을 딴 이 행정명령은 검체 분석을 전담하는 기술 센터를 중심으로 검체 채취만 하는 검사소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다중 현장(Multi-site) 방식의 연구소 운영을 허용했다. 이는 검사 결과 확인에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하며 금융 주체에 유리한 산업 모델이다. 

현행 법률의 허점을 인식한 정부는 발레로 행정명령을 통해 공식적으로 연구소 자본을 개방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논란을 피해갔다. 발레로 행정명령은 또한 검사 결과 100% ‘인증’을 의무화하는 ‘품질보장’ 프로세스를 모든 LBM에 적용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높은 국제적 규범 수립은 결국 소규모 연구소의 매각을 부추겼다. 소규모 연구소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인증 시스템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인증제가 진단의 질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이 제도가 LBM의 집중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였음은 분명하다.

 

패배가 예정된 ‘반(反)금융화 투쟁’

3년 후 제정된 2013년 법으로 진단검사 분야의 미래는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이 법의 ‘반(反)금융화 투쟁’에 관한 조항들은 임상병리사가 연구소 지분의 과반을 소유해야 한다고 재확인했다. 그러나 2001년 이후 해외기업은 법적 허점을 파고들어 계속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2019년에 작성된 진단검사 분야 관련 보고서에서 프랑스 경쟁규제위원회는 자유주의 성향으로 유명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입법부는 “해외 기업의 자본, 활동 혹은 상황을 재검토하거나 동결시키기 위한 조항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하며 놀라움을 표했다.(2) 

‘반(反)금융화 투쟁’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2013년 당시 보건부 고문으로 재직한 한 인사는 “2013년 법은 순전히 정치적인 법이었다. 이 법에 담긴 건전성 규제는 적용 불가능했다. 나는 이 법을 만드는데 참여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2013년 법은 대형 연구소가 소규모 연구소를 연속적으로 인수해 더욱 몸집을 불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0년대 들어서 정부는 검사 비용을 낮추는 정책을 동시에 펼쳤다. 소규모 LBM의 마진은 점차 줄어들었고 대형 연구소는 검사의 양으로 마진 축소를 상쇄했다. 2010년, 16%에 불과했던 금융그룹 소유 연구소의 비율은 10년 후인 2020년 75% 이상으로 확대됐다. 협동조합 한 곳(LBI)과 몇몇 독립 연구소만 금융그룹의 시장잠식에 맞서 살아남았다. 경쟁의 영향으로 LBM의 가치는 매출액의 300% 이상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젊은 임상병리사의 자본 참여가 불가능해졌고 임상병리사의 세대교체에 제동이 걸렸다. 선두 LBM 그룹 중 한 그룹의 경영자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6개 그룹이 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내일이면 시장의 90%를 차지할 것이고 99% 도달도 가능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솔직한 대답을 들려줬다. 

진단검사 분야는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사례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중화와 독과점의 출현이라는 경제 체제의 평범한 추세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 최초로 한 의료 부문이 거의 온전히 금융화된 사례라는 특이점이 있다. 6개의 선두 그룹인 바이오그룹(Biogroup), 세르바(Cerba), 유로핀스(Eurofins), 이노비에(Inovie), 신랩(Synlab), 유니랩스(Unilabs) 등은 진단검사의학발전협회(APBM)를 설립하고 진단검사의학 분야의 과점을 공식화했다. 지난해 12월 초 파업의 안내문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이 그룹들은 이제 ‘전통적인’ 진단검사의학 노동조합을 제치고 당국과 직접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진단검사 기업들, 코로나19로 정부 견제 벗어나

투자 펀드의 전략은 매수 자금을 대출 받아 LBM 그룹을 인수한 뒤 그룹의 몸집을 키우고 구조조정을 해 대출 비용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이 그룹을 더 높은 가격에 되팔아 시세차익을 노린다. 금융 용어로 이를 ‘레버리지 바이아웃(Leverage Buy-Out)’이라고 한다. 노인요양시설(EHPAD)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LBM 금융화의 영향은 비용 절감과 임상병리사 인원 감축 정책 그리고 적시생산(Just In Time) 경영방식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투자 부진과 인력 부족의 여파가 명백히 드러났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의 한 고문은 “보건 위기 동안 우리는 주요 협상 상대인 6개 기업이 임상병리사의 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인적자원(HR) 절약 모드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증언했다. 보건 위기로 국가와 진단검사 분야 간 힘의 균형 역전도 확인됐다. 앞서 인력 부족 현상을 토로한 정부 고문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협상 초기부터 마진을 남기는 것은 용인할 수 있지만 과도한 부의 축적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오늘날에는 그게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2020년 7월 이후 연간 검사 비용 20억 유로 제한을 지지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이 그룹들을 견제할 수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 연구소 앞에 줄이 늘어섰지만 정부는 두 손 놓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던 8월의 상황을 떠올려 보라. 사실 연구소들은 보건 위기가 돈을 벌 기회라고 확신한 날부터 파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그룹들은 실제로 매출액 30~40%가 상승했고 큰돈을 벌었다.(3) 일부 투자 펀드는 보건 위기를 기회 삼아 지분을 매각하는 재주넘기를 멋지게 선보였다. 세르바를 45억 유로에 양도하고 지분을 매각한 파트너스 그룹(Partners Group)이 대표적인 예다.(4) 보건 위기를 틈타 신랩은 주식시장에 상장했으며 바이오 그룹은 연구소 인수를 확대했다. 이들은 보건 위기 동안 국민이 낸 사회보장제도 납입금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런 역사에 비춰보면, 90% 이상의 민간 연구소가 문을 닫아 병원의 응급실과 연구소에 혼란을 초래했던 지난해 11월, 12월 두 차례 파업은 단순히 ‘사설 연구소 임상병리사’들의 파업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는 실력 행사와 마진 보호를 목적으로 금융그룹의 경영진들이 의도적으로 조직한 파업이다. 2019년 연금 개혁 반대 파업 후처럼 무능함을 스스로 입증한 프랑스 정부가 금융 그룹과의 힘겨루기에서 항복을 선언할 것인가? 그 결과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글·앙투안 레마리 Antoine Leymarie
사회과학 연구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Rapport public annuel 연례 보고서’, 감사원, Paris, 2005년 9월; ‘La biologie médicale libérale en France : bilan et perspectives 프랑스 사설 진단검사 연구소 결산 및 전망’, 사회복지감독총국(IGAS), Paris, 2006년 4월; Michel Ballereau, ‘Rapport pour un projet de réforme de la biologie médicale 진단검사 분야 개혁안을 위한 보고서’, 보건청소년체육공동체생활부, 2008년 9월 23일.
(2) 경쟁규제위원회가 2019년 4월 4일 발표한 민영 진단검사 연구소에 관한 의견서 
(3) Zeliha Chaffin, ‘Le Covid-19 fait la fortune des laboratoires d’analyses 코로나19로 큰 수익을 올린 검사소들’, <르몽드>, 2021년 9월 23일.
(4) Aroun Benhaddou, ‘Cerba signe un LBO à 4,5 milliards d’euros 세르바 산하 LBO, 45억 유로에 매각 계약 체결’, <L’Agefi>, Paris, 2021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