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오케의 텅 빈 군상

2012-02-13     자비에 라페루

무라카미 류가 그리는 일본은 미친 듯이 자신을 갉아먹는 괴물과 닮아 있다. 남성 등장인물들은 빈둥거리는 젊은이들로 모여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여성에 대한 혐오감과 열렬한 애정을 큰소리로 표현한다. 여성 등장인물들은 미도리협회 회원들로 마치 클론처럼 똑같다. 5명의 여성은 40대이고, 이름도 똑같고, 이혼 경력이 있고, 가라오케에 가는 것이 취미다. 이들은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고 기쁨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쇼와 후반기(1926~87)에 태어난 남녀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독립적 개체라기보다 어느 조직을 이루는 세포 같다. 개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또한 타인, 신체적 접촉을 두려워하고 폭력을 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것은 남녀의 성대결이라기보다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다.

“이런 불안감은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새로운 것이다. 그는 이런 불안감을 태아라고 표현했다. 불안감이 그에게 위협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중략) 그 신호가 어찌나 불쾌한지 이시하라는 점점 더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마치 불안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불안감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렇게 웃는 것 같았다.”

불안감을 쫓아내고 쾌락의 욕구를 채우려 젊은 남성들은 예식을 만들어내고 춤을 추고 기분전환을 한다. 하지만 이내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지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우연히 만난 여성 한 명을 목 졸라 죽인다. 공교롭게도 미도리협회 회원인 여성이다. 이때부터 남녀 사이의 진정한 전쟁이 시작된다. 남성과 여성 진영은 각자 당한 만큼 교묘하게 복수하는데, 폭력은 나날이 괴상해져간다. 총기류, 로켓 발사기, 수제 핵폭탄까지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가상세계가 각 등장인물의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예를 들어 “이시하라는 여자를 목 조를 때 본 여자의 목구멍을 생각하면서 여자의 입이 게임 속 파크맨의 입처럼 크게 벌어지는 상상을 했다”. 현실이 사무라이 영화, 할리우드 영웅물, B급 영화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오직 살인만이 (중략) 어떤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무라카미는 이같은 폭력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 등장인물들이 어릴 때 당한 무관심, 일종의 체념, 아이로니컬하게도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자살을 숭배하는 마음, 따뜻함이 사라진 교육이 폭력을 부른 원인이다. “이들은 살면서 진정한 시련을 겪어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바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들은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런 능력은 유치원 때부터 당연히 배우기는 하지만 이론에 그칠 뿐 실생활에서는 써먹지 못했다.” 미국 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와 마찬가지로 무라카미도 공허함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묘사하고 있다. 무라카미가 그리는 인간들은 지표가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현기증을 느끼면서 미쳐간다. “괴상한 옷차림을 한 저 놈들은 뭐야? 미도리협회 회원 여성들이 생각했다. 이것이 일본이 전쟁 때부터 성공적으로 이뤄온 결과물이란 말인가? 여기저기에 괴상한 옷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며 돌아다니고 바보처럼 웃고 가라오케 노래를 부르는 20대의 이 젊은이들이 바로 일본이 이뤄놓은 결과물?”

3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한 무라카미는 이번 소설에서도 세련된 유머를 필사적으로 선보이며 현대사회의 악몽을 이야기한다. 무라카미 류는 동명이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와는 아주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무라카미 류는 어둠을 통과하는 유령열차까지 우리를 데려가려 한다. 승객들은 애써 웃지만 공포심을 감추지는 못한다.


/ 자비에 라페루 Xavier Lapeyroux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