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어산지, 그의 친구들이 있는 곳

2023-02-28     메리엠 라리비 l 기자

라틴 아메리카에서 좌파의 집권으로 흐름이 뒤바뀐 분야가 있다. 다름 아닌 ‘외교’다. 일부 지도자들은 지역통합 과정의 재활성화를 촉구하지만, 좌파정권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갈등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특히 ‘어산지 문제’에 관해 그렇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줄리안 어산지를 박해하는 국가(미국)도 있는 반면, 지지하는 지역(라틴 아메리카)도 있다. 2010년 위키리크스가 방대한 규모의 기밀문서를 공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하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어산지가 미국을 “도덕적으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1) 이 쿠바 지도자는 “어산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에도 도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라고 말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은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평생 두려워했다”라고 고백하며 “위키리크스의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덧붙였다.(2) 

브라질의 제35대, 39대 대통령을 지낸 ‘룰라’(애칭),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본명)는 위키리크스가 “접근이 불가능해보였던 외교 기밀들을 만천하에 공개했다”라며, “죄는 그것(외교 기밀문서)의 폭로자에게 있는 게 아니다. 작성자에게 있다”라고 단언했다.(3)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전 대통령은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을 어산지의 은신처로 제공했다. 어산지는 2012~2019년 그곳에서 은둔했다.

 

라틴 아메리카 10개국, 영국에 어산지 석방을 요구

지금까지도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상당수는, 약 4년 전 영국에서 체포된 후 영국에서 보안이 가장 엄격한 교도소에서 미국 송환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어산지를 지지한다. 어산지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최대 형량은 175년이다. 13년 전부터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은 어산지를 재정적, 물리적, 법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 10개국의 수장들은 어산지의 석방을 요구한다. 바로 시오마라 카스트로(온두라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멕시코), 다니엘 오르테가(니카라과), 미겔 디아스카넬(쿠바), 니콜라스 마두로(베네수엘라), 구스타보 페트로(콜롬비아), 루이스 아르세(볼리비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아르헨티나), 가브리엘 보리치(칠레), 룰라(브라질)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CIA의 실체를 폭로한 어산지에게 노벨상을 수여해야 한다”라는 말까지 했다(<RT>, 2023년 1월 6일). 일명 ‘AMLO(암로)’로 통하는 멕시코 대통령은 어산지에게 “경호와 은신처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라고 밝혔다.(4)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산지는 죄인이 아닙니다. 살인을 저지르지도, 인권을 침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유를 실천했을 뿐입니다. 어산지를 구속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입니다.”(5)

칠레의 기자 다니엘라 레핀은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 지도자들은 크게 잃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지금도 딱히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테말라의 변호사이자 어산지의 친구인 레나타 아빌라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태도가 “품위 있고 공정하다”라고 평가했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어산지를 향한 이 국가들의 지지 표명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난해오던 미국이 도리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가 돼버리자, 미국에게 그 책임을 요구하려는 메커니즘이 발동한 결과”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없었다면 어산지는 이미 미국에 송환됐을지도 모릅니다.” 레핀 기자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놀랐던 것은, CIA가 내정간섭, 납치, 정치적 살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위키리크스 편집장 크리스틴 흐라픈손의 고백이다. 2010년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외교 기밀문서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 좌파가 장기간 비판했던 부분을 확인시켜줬다. 그것은 미국의 은밀하고 집요한 내정간섭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2004년 당시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대사였던 윌리엄 브라운필드는 우고 차베스 정부에 맞선 미 대사관의 전략을 5가지로 요약했다.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하고, 차베스의 정치적 기반에 침투하며, 차베스주의를 분열시키고, 자국(미국) 기업들을 보호하며, 차베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6)

 

미국이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과 볼리비아 간에도 여러 차례 대화가 오갔다. 2006년 에보 모랄레스가 빈곤과 신자유주의를 타파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 대사는 그와 특별 면담을 진행했다. “마치 영화 <대부>

의 한 장면 같았다.” 경제정책연구소(CEPR) 소속으로 문서 정리를 담당했던 댄 비튼과 알렉산더 메인의 회고담이다. 당시 미 대사는 볼리비아 신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주개발은행(IDB)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미국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협박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이에 모랄레스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미 국무부는 국제개발처를 이용해 볼리비아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7년 4월 문서에 따르면, 미 정부는 모랄레스에 반대하는 볼리비아 현지 단체들에 거액의 후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뒤 볼리비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지자들 가운데 최소 20명이 사망했다. 미 정부가 볼리비아 정부에 대해 다양한 체제 전복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으며 심지어 모랄레스의 암살까지 기획 중이라는 사실도 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게다가 이와 유사한 시도가 2000년과 2010년 사이에 니카라과, 에콰도르,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다는 사실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기밀문서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CEPR의 두 분석가는 “미국 외교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미국의 ‘민주주의 홍보’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문서”라고 평했다.

그러나 줄리안 어산지와 그의 동료들은 오로지 미국만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기밀문서를 공개한 것이 아니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내용은 전 세계와 관련돼 있다. 일부 문서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좌파 세력들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베네수엘라에도 엄연히 정보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정보기관이 차베스 대통령에게 직접 조언을 건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룰라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넬슨 조빔은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콧속의 암세포로 고생하고 있다고 미국 외교관에게 전했다(이에 대해 볼리비아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2006년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볼리비아의 탄화수소 분야를 국영화하라고 ‘부추긴’ 사실도 밝혀졌다. 이는 브라질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브라질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를 비롯해, 총 26개 해외 기업이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라도 세워야겠네요.”

2010년 위키리크스의 폭로 후, 피델 카스트로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5년 후, 어산지는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물면서, “백악관과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의 내부 문서들을 보면 의외로 쿠바에 관한 내용은 많지 않다. 미국은 생각보다 쿠바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쿠바의 사례가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독립운동을 일으키고도 무사한 모습을 다른 국가들이 본다면 언젠가는 그들도 그렇게 할 것이고, 이는 미국에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위키리크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미국의 정보기관, 군, 외교부의 위상이 흔들리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아 똑같은 시도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7) 

 

 

글·메리엠 라리비 Meriem Laribi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L’Empire au banc des accusés 피고인석에 앉게 된 제국’, <Réflexions> 시리즈, 2010년 12월 14일, www.fidelcastro.cu 
(2) <Venezolana de Televisión(VTV)>, 2010년 11월 29일.
(3) <Agence France-Presse(AFP)>, 2010년 12월 9일.
(4) 2021년 1월 4일 보도자료.
(5) 2022년 7월 18일 보도자료.
(6) Alexander Main & Dan Beeton, ‘Washington tente de déstabiliser les gouvernements progressistes 미국은 진보주의 정부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자 한다’, <Centre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CEPR)>, Washington DC, 2015년 10월 27일.
(7) ‘Conversation avec Julian Assange 줄리안 어산지와의 대화’, Clara López Rubio & Juan Pancorbo와의 화상 대담,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