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닐 때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저

2023-02-28     파스칼 코라자 l 기자

“내 작품들 중 단연코 최고가 될 것이다.”(1)

1938년 6월 10일,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집필 초기에 작가 존 스타인벡이 한 말이다. 그는 1936년 <샌프란시스코 뉴스>에 르포 7건을 기고했을 때부터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2) 이 기사는 오클라호마, 네브래스카, 캔자스에서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일하러 몰려드는 “수확기의 집시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1895~1965)이 찍은 사진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존 스타인벡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조드 일가의 이야기를 썼다. 이 소설은 1940년 존 포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존 스타인벡은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소설 『분노의 포도』는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졌다-역주). 

조드 일가의 아들인 톰은 과실치사로 복역을 마친 후 출소해 부모님 농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도, 아버지도 편지를 자주 쓰지 못하다 보니” 톰은 오클라호마 지역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가족들은 혹독한 환경과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비는 오지 않았고 땅속에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풀들은 빚진 농부들이 모는 트랙터의 날에 베여 사라졌다. 

톰은 가는 길에 짐 케이시를 만나 친해진다. 목사였던 케이시는 추잡한 농담을 내뱉는 방랑자가 돼있었다. 그는 톰과 마치 무도회에 가는 기분에 젖어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케이시와 함께 도착한 집에는, 이웃 한 명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농장을 사들인 은행으로 인해 쫓겨난 것이다. 톰은 다시 가족들을 찾아낸다. 케이시는 톰의 가족들, 즉 오클라호마 지역을 떠날 준비를 하는 조드 일가에 합류한다. 

조드 일가는 캘리포니아에서 농민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다른 이들처럼 팔지 못한 물건들을 챙겨서 낡은 트럭 뒤에 싣고 길을 떠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여행길에서 죽는다. 첫째 아들인 노아 조드는 콜로라도 강에서 낚싯꾼으로 살겠다며 가족을 떠난다. 아이를 가진 딸 로자샨은 아이의 아버지, 즉 남편에게 버림받는다. 이런 가운데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는 톰의 어머니는 가족을 화합시키고자 노력한다. 

“남자들은 단계별로 인생을 살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 그게 한 단계죠. (…) 여자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에요. 마치 강처럼 계속 흐르죠.” 톰의 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하는 이 장면에서, 실질적인 가장은 그녀임을 알 수 있다. 야영지에서 한 이주민은 “목화가 10센트고 고기가 40센트인데 대체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것인가?” 노래를 부른다. 이는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비극을 암시한다. 

조드 일가가 본 구인 광고는 1,000명의 일꾼을 뽑기 위해 무려 10만 장이 뿌려졌던 광고지였다. 짐 케이시는 노동조합에서 투쟁하며 톰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케이시가 하는 일이 옳다면, 저는 분노하는 이들이 고함치는 그 자리에 함께 있겠어요.” 그는 오렌지 나무보다 더 무서운 가시를 지닌 존재는 바로 지주들이라는 것과 중국인, 일본인, 멕시코인, 필리핀인 다음에 착취당할 이들은 바로 자신들, ‘오키(오클라호마에서 온 이주 농민을 낮잡아 부르는 말-역주)’임을 깨닫는다. 종일 일해도 농가 소유의 식료품점에서 커피에 설탕을 넣을 정도의 보수도 받지 못했다.

수년간의 가뭄 후, 이번엔 홍수가 났다. 소설의 마지막은 매우 아름다워 눈물을 자아낸다. 소설가 스타인벡만큼 농민의 삶을 제대로 그려낸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사용한 단어들은 극히 단순해서 내용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장 지오노 소설 『카마르그』에서 볼 수 있었던 직설적인 대화 톤을 살린 새로운 번역이 나온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글·파스칼 코라자 Pascal Corazza 
기자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John Steinbeck, 『Jours de travail, Les journaux des Raisins de la colère 고생의 나날, 분노의 포도 일기』, Robert Laffont(Pavillons poche), 2021, 251페이지.
(2) ‘The Harvest Gypsies’라는 제목의 기사. 이 르포 시리즈는 다음 모음집에 실렸다. ‘Their Blood is Strong’, Simon J. Lublin Socie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