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인들의 오래된 전쟁
『위의 여우와 아래의 여우』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 저
20세기 초, 페루 북부 침보테 항구는 멸치 가루 가공과 수출로 인해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격렬한 싸움의 무대가 됐다. 15만 명의 주민들이 27개 빈민굴에 살면서 서로 마주치고 충돌하며 때로는 타협하고 연대했다. 서로를 무시하고 음모를 꾸미고 악행을 기도하기도 했으며, 고통받으며 일하고 삶의 중압감에 지쳐 술을 마셨다.
침보테 항구의 인물들로는, 우선 ‘삼손 1’호 트롤선 선장인 초카토, 강력한 마피아 두목이자 22개 공장의 소유자인 브라스키가 있다.
흑인 전도사인 몬카다는 십자가를 진 채 맨발로 길모퉁이에서 큰 호텔 홀까지 돌아다니며 전도했다. 그의 친구인 돈 에스테반 데 라 크루스는 광부 출신으로, 석탄가루 때문에 종일 기침을 달고 살았다. 평화봉사단 멤버로 석공이었던 막스웰은 ‘양키’였다. 티티카카 호수 연안에서 악기 차랑고로 아야라치 음악을 연주했다. “이들은 침보테 항구에서 서로 맞서며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갔다. 문명이 존재한 이래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싸움의 진정한 계승자들이다.” 상처 입은 슬픈 펠리컨이 시장 위를 날고 부둣가를 배회하며 이 모든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1911~1969)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깊은 강』(갈리마르 출판사, 1966년)과 『모든 피』(갈리마르 출판사, 1970년)를 꼽을 수 있다.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는 페루 문학인으로서 이중 정체성을 지닌다. 안데스산맥 원주민이자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스페인계 크리올이다. 그는 계급차별, 백인 지배, 페루 인디오들이 겪는 경제적 착취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공장에서 직원의 80%를 해고하자, 일자리를 찾아 안데스산맥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이런 억압의 모습을 언어, 아니 언어‘들’을 통해 재현해냈다. 뒤죽박죽 섞여 있는 말들 가운데 펼쳐지는 대혼란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케추아어가 섞인 스페인어, 최하층이 쓰는 은어와 문명화된 양키가 쓰는 스페인어 같은 다양한 언어들을 작품에서 선보였다.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서문을 쓴 소설이 사후 발표됐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내용뿐 아니라 엉성한 구문 구성과 인물들의 어설픈 동사 변화와 발음을 통해, 이들이 겪는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폭력적인지 보여준다. 국가를 정복한 이들이 ‘전쟁에서 진 국가가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게끔’ 강요하고 정복자의 문화를 강제로 주입시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로사나 오리우엘라 번역가도 이 복잡한 구성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 썼다.
이 작품의 창작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챕터 사이에 삽입된 작가의 일기가 잘 말해준다. “군데군데 잘려있는 구슬픈 이야기를 쓰면서 죽음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라고 믿었던 그는 작품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페루의 시대”를 자신이 끌어안기를 바랐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랐다. 자유로운 불새의 시대, 빛의 시대, 해방을 향해가는 꺾이지 않는 의지의 시대를 바랐다. 페루 민족의 사회적 관계를 분석하고 이야기하려던 그는 누구보다도 그들 문화에 심취하고, 완전히 소화해 버렸다.
글·에르네스트 런던 Ernest London
번역·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