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선수들의 삶, 그 고통과 희열
복싱의 해부학, 그리고 사회학
2021년 9월에 출간된 로이크 바캉의 저서에는 바캉이 30여 년 전 시카고에서 복싱에 푹 빠졌던 시기가 담겨 있다. 그는 복싱도장 동료들의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희망(대부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과 본업,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지켜야 했던 각종 규율들을 분석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경의를 표한다.
1988년 8월에 내가 우들론의 복싱 도장을 방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 시카고 대학교의 사회학과 박사과정 중이었던 나는, 사우스사이드를 직접 경험할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래야 사우스사이드에 관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우스사이드의 가난과 불행은 우리 집의 발코니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대학 측에서 우들론 흑인 구역과 맞닿은 마지막 아파트를 나에게 배정했기 때문이다. 그 구역에는 200m마다 흰색 전화기가 설치돼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대학교의 사설 경찰차를 바로 부를 수가 있었다.
3년 넘게 출석한 체육관의 이방인
현지 상황을 관찰할 장소를 몇 달째 찾던 때, 유도를 하던 한 프랑스 친구가 한 복싱 체육관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 친구가 전화번호부를 뒤져 찾아낸 이 체육관은 우리 집에서 불과 두 블럭 거리에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버려진 건물, 불에 탄 상점, 비어있는 땅이 이어지는 우울하고 황폐한 거리에서, 이 체육관은 고독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완벽하게 보호된 섬처럼 보였다.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불편한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지학 일지를 펼쳐 들었다. 그때는 내가 3년 넘게 체육관에 출석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운동 후 집으로 돌아와 매일 밤 그날의 사건, 교류, 대화를 기록하며 2,300여 장의 메모지를 가득 채우게 될 줄도 몰랐다.
처음에, 체육관의 수련생들은 나를 호기심 많은 바보로 봤다. 나는 체육관의 유일한 백인이자 유일하게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또한 유일한 대졸자였다. 유일한 프랑스인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나는 복싱을 전혀 몰랐다! 복싱은 보기보다 어려운 운동이었고, 오랜 시간 복싱을 해온 사람들은 내가 곧 복싱을 그만두고 체육관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나의 등 뒤에서) 내기를 했다. 내 몸은 부어올랐고 멍이 들었으며, 다른 모든 사람처럼 코도 한 번 부러졌다. 그렇지만 나는 복싱에 진심이었다. 코치님과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비로소 나를 동료로 대하기 시작했다.
복싱 수련생들에게 요구되는 규칙들을 지키고 링 위에서 ‘죽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무리 속에 낄 수 있었다. 피부색이 어떻든, 부자든 가난하든, 교육 수준이 높든 낮든, 체육관 밖에서의 정체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복싱 경기와 체육관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고, 거기에는 각자의 사생활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는 규칙도 포함돼 있었다.
나의 체육관 동료들은 복싱이라는 운동뿐만 아니라 흑인 구역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기꺼이 가르쳐 줬다. 거리에서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위협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어떻게 감추어야 하는지, 개인 어음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차에서 안전하게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훔친 물건을 살 때는 어떻게 흥정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프로 복서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복싱을 오래 하고 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장 빈곤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 아니었다. 우들론 체육관의 수련생들은 아버지가 안정적인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트럭 운전사,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 제빵사, 벽돌공, 용접공, 택배사, 화물 운송 담당자, 작업반장, 전화 수리공 등이었다. 건실한 가정의 아이들이 이곳의 문화에 더 잘 맞았다. 결손 가정에서 안전과 규칙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개개인의 안정성, 검소한 습관, 어느 정도의 조직 생활을 요구하는 체육관의 엄격한 훈련 과정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적 위계질서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희망을 품기 이전에 프로 복싱선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수준 낮은 노동에 저항하는 전략인 동시에 노동 시장의 밑바닥을 담당하는 저급한 일자리와 더 단순하게는 평범한 임금 노동자의 지루한 일상과 그로 인한 각종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다. 복싱은 사회적 무중력 상태에서 살아가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며,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복싱은 흑인 구역의 문화를 지배하는 남성적인 가치, 즉 육체적 강인함, 삶의 양식, 신체의 단련, 힘과 기술의 연마 등을 대변한다. 또한 복싱선수는 스포츠, 언론, 방송계와 같이 대중을 꿈꾸게 하는 스타들의 세계에 속해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기도 하다. 게다가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모호하다. 사람들은 프로 복싱선수가 실제로 돈을 얼마를 버는지 잘 모른다.
복싱선수는 스스로를 결사적으로 투쟁하는 ‘검투사’나 현대판 ‘전사’처럼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지치지 않는 상대와 벌이는 아주 격렬한 경기를 지칭할 때도 ‘전쟁’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한다. 마이크 타이슨은 링 위에서 “나는 복싱선수다. 나는 전사다. 나는 나의 일을 한다.”는 말을 되뇌면서 정신 상태를 다잡았다고 한다. 수많은 국가의 군대가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한 스포츠가 복싱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원처럼 성스러운 육체
몸은 하나의 도구이자 노동 수단으로, 할당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정비돼야 하는 존재다. “몸은 나의 도구이자 생계 수단”이라고,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동자 앙리는 말했다. 지겨운 반복과 단조로운 훈련, 그리고 똑같은 동작, 과정, 느낌, 소리의 연속으로 이뤄진 복싱선수의 일상은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복싱선수의 활기 넘치는 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반복적으로 연상되는 주제는 바로 깨끗함이다. 엔진, 무기, 기타 도구와 달리 몸은 속세의 유혹과 폐해, 순서와 관계없이 말하자면 ‘나쁜’ 음식, 술, 마약, 여자 등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 복싱선수의 몸을 설명할 때 “몸은 정말로 성스러운 무언가로, 예정된 경기가 없을 때도 항상 정갈하게 유지해야 한다”와 같은 문구나 몸은 “보존돼야 하는 사원”이라는 표현처럼 종교적인 은유를 종종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순수함의 이상향이나 속세와의 분리와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복싱선수 입문서의 첫 번째 계율은, 경기에서 복싱선수의 힘과 지구력을 높이기 위한 음식 관련 지침과 금기사항들이다. 경기를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이 시작되면 복싱선수는 찐 채소, 삶은 생선, 흰 살코기, 신선한 과일, 차, 생수로만 구성된 엄격한 식단을 따라야 한다. 기름지고 당분이 높은 음식은 금지된다. 무엇을 얼마나, 또 언제 먹어야 하는가? 언뜻 보기에는 사소한 질문일지 몰라도 복싱선수에게는 평생의 숙제다. 복싱선수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시 말해 다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계약 조건에 명시된 체중 범위에 들어가기 위해 체중을 줄이겠다는 명백하고 실질적인 목표를 넘어서서, 식단 조절은 복싱선수에게 일상과 단절하고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속세의 친구들을 멀리하는 한편 복싱의 세계로 온전히 들어와 자신과 똑같은 식단으로 생활하는 동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배고픔을 경험하면서 복싱선수들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존적 고양을 느끼게 되고, 그 효과는 경기가 벌어지는 날 링 위에서 그대로 발현된다.
일터에서, 집에서, 또는 친구들과 거리에서 하는 복싱 이외의 모든 활동은 훈련, 휴식, 선수로서의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까지 대폭 줄이거나 아니면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 복싱선수가 자신의 직업적인 의무를 헌신적으로 이행하려면 사생활 일체를 포기해야 한다. 복싱선수의 수칙 중 가장 잔인한 점은 선수 자신과 배우자에게 사회생활이 금지된다는 점이다.
금욕과 매력의 슬픈 아이러니
“복싱선수의 삶은 전혀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불편한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해서 저녁 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와 사는 것이 여자에게는 좋을 리 없지요. 보통의 여자라면 그런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한 집단 속에서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하는 삶은 자부심과 성취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정해진 음식을 먹고 여자를 멀리함으로써, 저는 규율에 따르면서 전투를 준비하는 최후의 전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이들은 복싱선수 입문서의 세 번째 계율, 즉 성관계를 금지하는 것이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이 규칙은 다른 스포츠에서처럼 경기 날로부터 24시간이나 48시간 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몇 주에 걸쳐서 성관계가 금지되기도 하는데, 4~8라운드 경기를 앞두고는 2주에서 1개월, 10라운드로 이뤄진 중요한 경기나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는 3개월 이상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복싱 관계자들은 성관계가 선수의 체력을 약화시킨다고 믿는다. 쉽게 피로해지고 무릎이 약해지며, 펀치의 힘과 지구력, 회복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정은 특히 해로운 행위로 간주된다. “척추의 혈액을 배출하기 때문”이라고 디디(DeeDee)는 주장했다. 정신적 측면에서도 성관계는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나약하게 하며, 공격성과 집중력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즉, 복싱선수의 ‘본능’이 무뎌지는 것이다. 반대로 성관계를 피하면, 경기를 향한 호전성이 향상된다.
코치들은 복싱선수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강압적인 방식에 의존하기도 한다. 선수와 선수의 배우자에게 성생활 관련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하고, 혼외 관계도 조사해본다. 이동 시에는 선수 여러 명이 한 방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선수의 야간 외출을 막기 위해 코치가 선수와 ‘한 침대’에서 자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서 슬픈 아이러니는, 강도 높은 훈련은 복싱선수들의 몸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육체적인 매력을 높여준다는 데 있다.
게다가 선수로서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여성들에게 인기도 높아진다. 즉 이겨야 할 필요성이 커질수록 성적 유혹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난다. 이런 계율이 복싱선수들의 만성적 욕구불만의 원인이자, 선수들 간 또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불화와 마찰의 원인이다. 미혼의 복싱선수들은 자신이 연인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해서 연인이 바람을 피우거나 아예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커플은 이 ‘금욕 조항’을 현명하게 협상한다.
복싱선수들의 금욕의식은 성욕을 침대에서 링 위로, 여자에서 남자로 옮긴다. 전통적 애정의 대상을 향하던 세속적인 성욕은 복싱 리비도, 즉 자신처럼 ‘희생’을 감수하며 경기를 준비한 또 다른 남자를 상대로 승부에 몰입하겠다는 욕망으로 탈바꿈한다. 연인의 육체를 탐하는 대신 복싱선수는 남자인 상대 선수를 탐해야 하고, 링 위에서 거의 나체 상태로 상대를 격렬하게 포옹함으로써 오르가슴에 도달해야 한다. 타이슨이 그날 경기를 치를 상대가 기다리는 링으로 걸어가는 여정을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아들이 복싱을 하는 건 원치 않습니다”
경기 중 상대 선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덮어둔다. 일부 복싱선수들은 경기 전날 자신이 링 위에서 상대를 죽이는 악몽을 꾸곤 한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복싱을 그만두고 가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33세의 미카엘은, 링 위에 올라갈 때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고백했다. “가끔은 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 전에 저는 의자에 앉아 글러브의 냄새를 맡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때 죽음을 떠올리면서 ‘복싱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어요. 그런 생각이 언제나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복싱을 계속했고, 지금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프로 복싱선수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사회 하류층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학교에서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복싱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MBA 출신이 링 위에 올라가 복싱을 하지는 않겠죠.” 프로 복싱선수들은 그들의 “잔인한 직업”이 “가난한 소년들의 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제임스 볼드윈은 씁쓸하게 말했다. 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저항한다 해도, 복싱을 향한 그들의 애정은 강요된 것이고, 또한 복싱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출신 계급상의 필요성, 민족적 소외감, 남성의 자존심에 뿌리를 둔 맹목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하마드 알리는 1974년 킨샤사에서 조지 포먼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 다음 날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복싱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내 안의 일부분은 언제나 그것에 반발했다. 아마도 복싱 경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복싱선수는 똑똑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부자를 위한 오락 도구로만 여겼다. 두 명의 덩치 좋은 흑인 노예가 맞붙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주인은 커다란 시가를 입에 문 채 우리의 피를 보고 흥분해서 고함을 지르는, 그런 소름 끼치는 장면이 언제나 나의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복싱선수의 열정은 숙명적인 모순으로 점철돼 있다. 복싱선수 10명 중 8명은 복싱이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기꺼이 복싱 글러브를 다시 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복싱선수 10명 중 8명은 아들이 프로 복싱선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제가 맞은 펀치로도 족합니다.” “제가 복싱을 하는 이유는 아들이 복싱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기를 잃은 복싱, 그럼에도 링에 서는 이유
복싱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영광의 시기를 누린 뒤에 급격하게 쇠퇴했다가 1960년대에 반짝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다시 암흑기를 지나고 있다. 과거에 복싱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지금 시점에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20세기 중반까지 모든 체급의 챔피언 타이틀전은 경제, 정치, 문화계의 엘리트 인사들부터 최빈곤층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의 초미의 관심사였고, 링 위의 스타는 최고의 인기인이자 나아가 국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대접받았다(미국의 잭 존슨, 잭 뎀프시, 조 루이스, 무하마드 알리와 프랑스의 조르주 카르팡티에, 마르셀 세르당).
1960년대에는 시카고의 모든 서민 구역에 복싱 체육관이 하나씩 있었다. 아마추어 복싱선수들은 일주일에 3번 경기를 치렀고, 뇌물을 주고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프로 복싱선수들은 일주일에 3~4번 경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3개월에 한 번 정도로 줄었다. 이런 복싱의 쇠퇴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고강도 신체 노동을 꺼리게 됐고, 생활 수준이 향상됐으며 과거에 비해서는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이민자들의 사회적 통합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복싱 지원자의 감소로 이어졌다.
또한 폭력을 싫어하는 중산층의 문화적 감수성이 대중에 확산되면서, 복싱 경기에 대한 수요도 급감했다(그럼에도 프로레슬링과 이종 격투기의 인기는 오히려 올라갔다). 복싱의 쇠퇴를 이끈 또 다른 원인은, 가장 중요한 세계 챔피언 결정전을 PPV(Pay-Per-View) 방식으로 중계방송하게 되면서 복싱의 상업적 모델이 바뀐 것이다. PPV 덕분에 일부 복싱 스타들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수당을 챙길 수 있게 됐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졌다. 또한 생동감 있는 쇼로서의 복싱의 매력도 반감됐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복싱이 마이너 스포츠다. 뭔가 사연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나 농구나 미식축구를 하기에는 키가 작고, 레슬링을 하기에는 유연성이 부족한 선수들의 종착지로 여긴다. 고등학교에서는 복싱을 가르치지 않고, 대학에서는 복싱을 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복싱은 육상, 테니스, 수영, e스포츠 등의 종목에 비해서도 훨씬 홀대받고 있다(육체적으로 복싱이 훨씬 힘든데도 말이다). 게다가 새롭고 다양한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두 남자가 서로 때리는 것을 보러 쾌적하지도 않은 체육관에 갈 사람은 많지 않다.
복싱을 하는 사람들에게 복싱은 합법적인 마약, 결코 치료될 수 없는 질병, 가슴을 설레게 하고 온통 마음을 쓰게 만드는 열정적인 사랑의 대상이다. 4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복싱을 즐기는 앙리는 인터뷰 말미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그는 우리에게 34세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우리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마치 믿는 것처럼 행동했다.) “복싱선수에 관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절대로 은퇴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다만 포기할 뿐이지 스스로 복싱을 그만두지는 않습니다. 이런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저에게는 복싱 말고는 없습니다. 사나이여, 싸워라! 말로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제 말을 이해하려면 직접 복싱을 해보세요.” 라이트헤비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알폰조는 이렇게 말했다.
“링 위에 오를 때 느끼는 감정에 비할 만한 것은, 천국으로 향할 때 느끼는 감정뿐일 것이다.”
글·로이크 바캉 Loïc Wacquant
사회학자, 『Voyage au pays des boxeurs 복싱선수의 나라로 떠난 여행』(Éditions Dominique Carré/La Découverte (2022)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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