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연금 민영화, 사회안전망 불안 가중

아르헨티나 칠레 민영연금'폭리, 쥐꼬리만한 지급액' 연금 위기 속 국유화 검토'남미 전체 확산' 조짐

2009-02-01     마뉘엘 리에스코 | 경제학자

아르헨티나에서는 2008년 11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즈 정부가 제안한 연금 국유화법이 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지지를 얻어 도입된 후 이를 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번 법을 두고 '강탈'이란 강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연금 국유화법으로 인해 자본이 유출되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마드리드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특히 민간연금 관리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스페인 기업들이 빠져 나가는 바람에 주가가 대폭 하락한 것이었다.
 
 쥐꼬리만 한 지급 '민간 연금'
 아르헨티나에서도 이번 연금 국유화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민간연금 관리회사가 보유한 약 280억 달러를 강탈하여 마음대로 사용해 심각한 재정난을 불러일으킬 작정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연금 국유화법은 연금을 지급할 때에만 돈이 사용되며, 돈 관리는 양원제 위원회와 기업, 노동자, 은퇴자, 공무원, 금융기관, 의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철저히 감시할 것이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연금 국유화법으로 14년 전에 시행된 연금 민영화 시대와 민간연금 관리회사의 패권 시대가 종말을 맞게 되었다. 정부는 연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들이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공익적인 임무를 실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민간연금 관리회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합당한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일, 이것이 정부가 추구해야할 목표다.
 민간이 연금을 관리하던 시절에는 가입자만 950만 명이었다. 나중에 돈 없이 궁색해질까봐 두려웠던 사람들은 민간연금에 가입했던 것이다.
 민간연금은 초기 계약 가입 때 정해진 기준에 따라 책정되며 예치한 금액, 누적 이자, 평균수명과 같은 여러 가지 변수를 따랐다. 하지만 가입자들이 막상 퇴직을 하면 예상한 것보다 넉넉한 연금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은 성에 차지도 않는 쥐꼬리만 한 액수의 연금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연금이 국유화되면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봉급 액수, 갹출금을 부은 연수를 기준으로 한 간단한 계산법으로 연금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계산 방식은 연금이 민영화되기 전에 여러 남미 국가에서 시행되었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선호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금이 국유화되면 연금 수혜자들이 대부분 봉급의 60%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칠레 연금제도의 '빛과 그늘'
 칠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25년 이상 완전한 연금 민영화를 시행한 적이 있는 아르헨티나의 이웃 국가다. 아르헨티나에게 칠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칠레의 연금 완전 민영화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에서 직접 영향을 받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강압적으로 시행한 개혁이다. 이는 1980년도부터 자유주의 경제학자 호세 피노레에 의해 적용되었다. 그러나 의회나 야당과의 협의 과정은 전혀 없었다. 호세 피노레는 연금 민영화를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생각했다. 
 당시 칠레는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회복과 빠른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다. 중간에 특별한 불경기도 없었다. 봉급도 꾸준히 상승하였고 사회보장 금고에도 돈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동시에 기업이 민영화되면서 짭짤한 투자의 기회도 생겨났다.

 칠레를 포함해 이웃 국가들의 주식과 통화는 1900년에서 2000년까지 엄청난 투기 거품의 덕을 톡톡히 보았고, 칠레의 연금 기관들은 약 25년 동안 약 10%의 높은 연이자율을 보였다. 주식이 붕괴되어 금융 투자자들의 신뢰와 경제가 다시 하락하기 전까지는 이 같은 호황이 계속 되었다.
 어쨌든 호황기에 칠레는 국민들이 꼬박꼬박 낸 연금을 많이 보유하면서 모범적인 연금 운용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현재 칠레 국민들은 연금이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소 봉급이 13만 5천 페소(156유로)일 경우 최소한 수령하게 되는 연금의 최저 액수는 매달 8에서 16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81년부터는 기존의 분배식 연금(공적 연금)에 가입돼있던 35%(군인과 경찰), 따로 연금을 부은 3.5%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은 봉급을 받으면 그중  일정 액수를 꼬박꼬박 갹출금을 붓는 민간 연금제도에 가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용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샐러리맨 중 11%만이 매달 갹출금을 붓고 있다. 칠레 연금 관리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가입자 중 평균 2/3가 두 달에 한 번, 절반이 석 달에 한 번, 1/3이 다섯 달에 한 번만 갹출금을 붓는 형편이라고 한다.
 
 불안한 '사회망' 연금 무력화
 남미의 여러 대도시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수백 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단기간 일하다가 계약 만료 기간이 되면 일을 그만두게 되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놀고 있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다.
 여성은 고용 불안정으로 더욱 고통 받고 있다. 여성들은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일이 계속 되어 더욱 힘든 처지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을 경우 봉급자들이 일정 액수를 붓는 연금제도는 제대로 유지될 수가 없다.
 좌파인 야당의 비판과 제안에 귀를 기울인 칠레의 미셸 바슐레 대통령은 2008년 초에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망'을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최저 임금 가운데 60%의 금액에 해당되는 120유로의 액수를 매달 받을 수 있는 국가연금과, 215유로 이하의 금액을 받는 칠레 연금기관 가입자들에게 지급되는 추가 수당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최상의 조건에서 실시된다 하더라도 봉급자들이 내는 일정 갹출금에 기대는 연금제도는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현재 칠레에는 은퇴자의 2/3가 수입없이 방치되어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선 이번 개혁정책으로 조기 퇴직하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며, 여성과 남성의 퇴직금에 동일한 계산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여성의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 여성 은퇴자의 1/3이 남성 은퇴자보다 1/3이 적은 연금을 받고 있다.
 칠레는 그 좋은 사례다. 칠레에서는 1981년부터 꾸준히 높은 금액의 연금을 부은 여의사는 나중에 퇴직하여 받는 연금이 550유로 미만이었다. 반면 동일한 조건으로 연금을 부은 기혼 남성이 퇴직 후 받는 연금은 945유로였다. 만일 여의사가 자동으로 정해진 액수를 받는 연금에 계속 가입된 상태라면 나중에 수령하게 되는 연금은 1천100유로였다. 여러 건의 조사 끝에 내린 결과, 칠레의 민간 연금 제도는 여성들에게 아주 불리했다. 경제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10월 30일에 칠레 연금청은 연금의 손실액수를 발표했다. 1년도 채 안 되어 연금의 손실액수는 1천980만 유로에 달하였는데, 이는 전체 기금의 26.7%에 달하는 액수였다. 가장 위태로운 연금의 경우 손실액은 전체 기금의 35%, 45%에 달했다. 이는 연금 가입자 절반 이상과도 관계된 일이다.
 "기업은 없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그대로 있습니다." 칠레의 미셸 바슐레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주요 민간 연금이 무너지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남미 사람들 수만 명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은퇴 후 연금을 타며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연금을 꾸준히 붓던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연금에 기댈 수조차 없어졌다.
 
 민영 연금, 부조리 속속 노출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대표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을 가장 많이 강탈하고 있다. 1년 만에 ING보험은 68.7%의 액수를 손해보다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일부 국유화 되었다. 네덜란드 정부가 ING보험을 회생시키기 위해 부은 자금은 100억 유로 이상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은 52.7%의 액수를 손해 봤으며, 프린스팔 보험은 63.1%의 액수를 손해 봤다. 이들 보험사들은 민간 연금 28만 페소의 40% 이상이 집중적으로 모인 곳이기도 하다.
 한편 칠레 정부는 계속해서 기존의 할당 연금 제도를 위해 79만 6천 페소를 붓고 있으며  53만 3천 명은 분배식 연금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성인 4명 중 3명은 분배식 연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서는 민간연금 관리회사와 보험사의 대표들이 가입자들의 돈을 세계 금융으로 굴려 얻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발표되면서 여론의 분노를 자아냈다.
 2007년, 한창 위기 때 아르헨티나에서는 민간연금 관리회사의 대표 150명이 가입자들이 예치한 금액 중 27%를 손해 보며, 자신들은 2억 아르헨티나 페소(4천700만 유로에 해당)를 챙김으로써 지급하기로 한 연금 30만 5천 아르헨티나 페소를 '꿀꺽'했다.
 칠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981년과 2006년 사이에 연금을 위해 모은 금액 279억 칠레 페소(400억 유로에 해당) 중 1/3이 칠레 연금 관리회사와 보험사 임직원들의 봉급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남아 있는 2/3는 연금 관리회사의 간부들이 고위 간부직을 맡고 있는 일부 대기업에 투자가 되었다.
 페르난데즈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연금의 민영화는 '돈 먹는 하마'라며 비난했으며, 더 이상 국민의 돈이 낭비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연금의 민영화를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연금이 국유화되면서 190억 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칠레의 보수 일간지 <엘 메르큐리오>는 연금이 국유화 되는 건 걱정되지 않지만 연금을 국유화하여 민간 기업 40여 곳의 대표들을 임명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예를 칠레에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민간연금' 종말 오려나
 봉급에서 떼어내는 연금은 세계 금융그룹에게는 든든한 자산이 되고 있다. 역사학자 로빈 블랙번은 연금의 민영화에 관한 역사를 쓴 논문에서 이에 대해 기발하게 묘사한 적이 있다. "국민의 봉급에서 따로 마련한 돈에 손을 대는 것, 바로 금융 자본주의가 최후에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다." 블랙번은 모든 신흥 국가에 연금의 민영화를 권고하는 연구를 지시한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레리 수메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비록 부분적이지만 여러 신흥국가에서 연금이 민영화 된 것이다. 반면 일부 유럽국가나 브라질 같은 강대국들은 여론의 거센 저항에 밀려 연금을 민영화시키지 못했다. 칠레는 완전한 연금 민영화를 실시했던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다."
 이와 관련,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자본주의는 분명 이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테지만 민간연금 관리회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민간연금 시대가 종말을 맞았지만 멕시코,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에는 아직도 민간연금이 존재하고 있다. 멕시코,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 등이 아르헨티나처럼 연금 국유화에 동참한다면, 남미 등에 사는 퇴직자 수백만 명은 분명히 좀 더 숨을 제대로 쉬고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저축형이냐 분배형이냐'

프랑스 연금제도 개선 논쟁 치열
소득·인구분포, 이념구도까지 작용

장-프라수아 쿠브라 | 언론인*

주식 폭락으로 인해 연금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이 주춤할 것인가? 금융 투자 방식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감이 가시지 않는 한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하지만 연금제도 개선에 대한 로비는 20여 년 전부터 꾸준하기 때문에 이 같은 시도가 꺾일 거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더구나 최근 연금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인물 중 한 명은 절대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 인물은 바로 자크 아탈리. 그는 '금융 쓰나미 사태'라는 말을 하면서 2008년 1월에 프랑스의 샐러리맨들이 자동적으로 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강력한 반발이 나올 법도 한데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은 곧 동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찬성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자크 아탈리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연금제도로 연금 가입률이 40%에서 80%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연금제도를 주장하는 건 '파피붐' 시대의 은퇴자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예치하는 연금을 주식 투자로 이어가자는 뜻이었다.
 
 '연금을 주식투자에 연계'
 그러나 연금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정부형 관리의 분배식 연금은 재분배하는 사회 복지 시스템이며 민간관리의 저축형 연금은 시장이라는 확신을 갖고 더욱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로운 주제가 언급되었다. 우선, 인구 통계가 실제로 저축형 연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상당히 과감한 주장이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노년과 은퇴 후 생활을 보장 받으려면 연금 같은 든든한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주장이 나왔다. 위험한 주장이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한다. 특히 분배식 시스템 자체가 연금을 낳게 된다. 한 곳이 갹출금을 덜 내게 되면, 다른 곳이 갹출금을 더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세 및 사회보장 정책이 이 같은 움직임을 더욱 부추긴다. 결국 연금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최후로 내 놓는 주장은 이렇다. "다른 곳에서는 다 하는데 어떻게 프랑스만 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세계에 불고 있는 흐름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퇴직자 미래 보장을 둔 논쟁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아주 극소수의 프랑스 샐러리맨들만이 저축형 연금을 통해 은퇴 후 생활을 보장 받았다. 이들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저축형으로 연금을 부었고, 퇴직 후에는 종신연금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나치에서 해방되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해지면서 분배식 제도가 우선시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군사, 정치, 사회보장 부문에서 악재를 겪고 있었다. 따라서 전전 시스템인 저축형 연금제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여러 가지 면을 신중하게 고려한 결과 분배식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경제활동 인구가 부은 갹출금은 퇴직자들의 연금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같은 시스템은 40년 동안 유지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연금을 개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경제활동 인구에 비해 퇴직자들의 수가 갑자기 급격히 증가하여 연금제도가 불안해 진 것이다. 1986년에는 분배식 연금제도가 결국은 몰락할 것이며, 퇴직자들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건 저축형 연금제도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어느 공식 보고서가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여론의 생각과 달리 분배식 연금제도가 저축형 연금제도보다는 퇴직자들에게 더욱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한다. 만일 저축형 연금제도에 의존하게 되면 경제활동 인구의 수익은 불안정하게 되며 이 같은 불안정한 상황은 공공기관도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다." 저축형 연금제도는 저축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추가로 얻는 혜택에 불과하기 때문에 저축형 연금제도가 분배식 연금제도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축형 연금 시도 실패
 그 후 여러 보고서도 비슷하게 저축형 연금제도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특히 1991년에 발간된 퇴직자에 대한 백서가 그렇다. 1987년 주가 하락으로 저축형 연금제도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훗날 프랑스 보험사 연맹의 대표가 되는 드니 케슬러는 1990년에는 저축형 연금제도와 분배식 연금제도가 무승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드니 케슬러는 저축형 연금제도와 분배식 연금제도의 장점을 섞은 혼합형 제도를 지지했다.
 저축형 연금제도가 인구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은 정말로 순진한 것이다. 어떤 연금제도든지 경제활동 인구가 생산하는 국가의 수익의 일부를 퇴직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기본원리다. 따라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게 되므로 연금제도의 재정이 위협을 받게 된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다우-존스 지수와 미국의 인구변화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레 겁을 먹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니다.

 1993년에 프랑스에서는 우파가 정권을 잡았고, 마침 저축형 연금에 대한 지지가 다시 높아졌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정부는 여름부터 은밀히 개혁을 진행하기로 했고, 개혁의 목표는 저축형 연금제도를 도입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랫 세대에게서 연금을 타가는 방식인 분배식 연금제도가 보장하던 세대별 연대정신도 1945년부터 후퇴하고 있었다.
 
 '분배식' 반발, 개선 목소리
 이와 맥을 같이 하며 연금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우파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의원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중 필립 마리니 상원위원은 1993년 4월 법안을 제안하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저축형 연금제도는 프랑스의 샐러리맨들이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노년에 대한 걱정, 위축되는 주식시장)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했으며, 프랑스의 저축 실적도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모순이 있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 국가들 중 프랑스는 저축률이 가장 높으며 상장된 기업들은 주식을 활발히 발행하는 만큼 주식에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저축형 연금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일반 연금 개혁이 이루어져 2003년에 일반 퇴직 저축 플랜(Perco)인 피용법이 탄생했다. 연금을 위해 저축한 금액에 대해서는 세금 감면 조치를 취하고, 사회보장비도 면제시키는 방식이었다. 특히 피용법은 분배식 연금제도로 인해 발생한 적자를 메우고 있다.
 2007년 말, 5만6천 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페르코(Perco)' 라는 저축형 연금에 돈을 붓고 있는 샐러리맨의 수를 조사해보면 35만 명을 넘지 않았다. 금액으로 따지면 총 14억 유로였다. 생명보험에 가입한 금액의 700분의 1에 불과한 수치였다. 
 프랑스 금융관리협회에 따르면 2020년에 은퇴하는 샐러리맨 한 명이 매달 연금을 위해 적어도 봉급의 10%를 저축해야만 현재의 수준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일한 결과를 내려면 분배식 연금제도에서는 얼마나 갹출금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주가 하락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