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다시 공장을 원한다

Spécial 재산업화의 야누스

2012-03-12     로랑 카루에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누구든 산업을 비호했다가는 가차 없이 구시대적이란 비난을 들었다. 요즘은 프랑스, 미국을 막론하고 오히려 모든 대선 주자들이 생산기지 재이전의 덕목을 칭송하기에 바쁘다. 과거에 후보들 자신이나 소속 정당이 생산지 이전을 버젓이 방임해놓고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산업 일자리 창출을 소리 높여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유럽 시장 공급을 목적으로 모로코에 사상 최대 르노 공장(정부가 주주로 참여 중)을 짓는 계획에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런 식의 생산지 이전은 센생드니의 예에서 보듯이 지역 개발과 인구 편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14~15면). 미국에서는 자국의 생산 공장을 구제하기 위해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16면). 중국이 상품 고급화에 나서고 있는 오늘날, 미래 유럽 산업이 나아갈 길은 대체 어디일까(본 기사)?

1990~2000년대에는 '탈산업화 여가사회'에 관한 담론이 꽃을 피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산업 생산은 국토 편성, 효율적 생산 시스템, 세계화 시대의 역학 관계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0~2010년에 이르는 20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각국의 위계서열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흥국과 지역 강국이 눈부시게 약진한 반면, 유럽 30개국(유럽연합 27개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이 전세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에서 24.5%로 급감했다. 2011년 중국은 세계 최대 산업 강국으로 변신했다. 그와 함께 한 세기를 풍미한 미국의 패권시대도 막을 내렸다. 브라질은 프랑스, 한국, 영국 등을 제치고 세계 6위의 경제 강국(1)으로 우뚝 섰다. 그런 브라질의 뒤를 인도가 바짝 추격했다. 경제 지정학적 지형도의 변화는 다원화된 세계 질서 속에 새로운 국제분업 구도가 등장한 것이 원인이었다.(2)

시장이 사상 초유의 대대적인 이동에 나섰다. 새롭게 재편된 시장으로 투자, 고용, 생산지 등이 집중됐다.(3) 1990~2010년 유럽 220대 대기업이 신흥국에서 올린 수익은 전체 수익의 15%에서 24%로 급증했다. 초국적 기업의 입지 선정 원칙도 변했다. 물론 기업은 여전히 임금비용 격차에 근거해 생산지를 이전할 지역을 선정했지만, 이제는 구매 능력을 갖춘 도시 신흥 중산층 수요를 충족하는 데에도 관심을 쏟았다. 사실상 선진국 도시 중산층의 소득 증가가 답보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개도국 시장을 향한 진출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신흥대국은 저부가가치 산업에만 만족하지 않고, 통신·우주·항공·초고속철도·원자력·조선 등 고도산업 분야에서도 서서히 입지를 넓혀나갔다. 기술 이전 협상에 사활을 거는 한편, 노동력을 교육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서구 기업을 위협하는 역동적인 초국적 기업도 널리 갖춰갔다. 지난 2월 라팔 전투기 126기 공급을 위한 인도와 프랑스 다소 간 협상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단연 공영기업 '힌두스탄 항공'(HAL)이 인도 내에서 제조할 항공기 대수(원칙상 86%), 기술 이전 여부, 계약 체결에 따른 경제·재정적 보상 등에 집중됐다.

경제 지정학적 지형도의 급변

기술 혁신에 따른 세계 지형도도 크게 바뀌었다. 이를테면 인재·자본·기술,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춘 중국이 새로운 혁신 거점으로 부상했다. 먼저 인적자본 차원에서 115만 명의 연구진을 보유한 중국은 미국 능력의 82%, 유럽 능력의 79%에 달하는 잠재력을 갖췄다. 지금부터 2025년까지 중국은 전세계 연구 인력의 30%를 보유할 것으로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은 내다보고 있다. 재정적 차원에서도, 중국 정부는 2009년 최초로 세계 2위 수준의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편성했다. 여전히 1위인 미국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지만, 일본은 따돌린 셈이다.(4) 마지막으로 기술적 측면에서 중국은 2011년 세계 최대 특허 출원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제조국 중국)에서 '디자인드 인 차이나'(개발국 중국)로 발돋움하기 위한 필사적인 국가 전략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중국이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산업 영역이 더욱 확대됐다. 한 예로 2011년 12월 23일 '중국삼협총공사'(China Three Gorges, 양쯔강 싼샤댐 이름을 땀)는 국채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민영화에 나선 포르투갈 국영 전력업체 '에네르기아 드 포르투갈'(EDP, 프랑스 전력공사 EDF에 상응하는 기업)의 지분 21.3%를 인수했다. 독일의 '에온'(Eon)이나 브라질의 '엘렉트로브라스'(Electrobras) 같은 쟁쟁한 경쟁업체들을 물리치고, 27억 유로에 당당히 EDP 인수를 성사시켰다. 중국삼협총공사는 매입 가격으로 1주당 실제 시세보다 50% 높은 가격을 EDP에 제시했다. 이미 중국은 전세계 태양광전지판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며 서구 기업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2011년 12월 독일의 '솔론'(Solon)과 '솔라 밀레니엄'(Solar Millennium)이 파산했다. 한편, 중국은 세계 최대 풍력발전단지를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2020년까지 4.7배가량 증강할 것이다.

중국이라는 슈퍼 기술 강국

이런 상황인데도 유럽연합(EU)은 그저 자충수나 다름없는 전략을 펼치기에 바쁘고, 유럽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고 있으니 그저 기가 찰 노릇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 산업국으로 부상한 데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위기의식에 휩싸인 미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5) EU와 프랑스는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고 자국의 산업·과학·기술의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실업에 불완전고용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EU는, 2011년 말 구직자 수가 무려 2830만 명에 달했다. 위기로 인해 EU 내 산업생산액도 2년 만에(2007~2009) 20% 가까이 추락했다. 감소세는 중앙유럽과 동유럽이 15%, 에스토니아가 3분의 1, 라트비아가 4분의 1가량을 기록했다. 심지어 독일(21.4%), 이탈리아, 핀란드, 스웨덴 등은 감소세가 20%를 넘기까지 했다. 위기가 발생한 2008년 가을부터 2010년 말에 이르기까지 EU에서는 산업 일자리가 400만 개 넘게 사라졌다. 전체 인력의 무려 11%에 달하는 수치였다. 2011년 3·4분기 동안 독일을 제외하고는 감소된 일자리를 상쇄할 만한 고용 창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2012~2014년 강도 높은 긴축정책의 여파로 대대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며, 앞으로 일자리 감소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프랑스는 유로존 4대 강국(프랑스 외 독일·스페인·이탈리아) 가운데 탈산업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이다. 1980~2011년 프랑스의 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24%에서 13%로 추락했다. 산업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든 요인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1980년 이후 감소한 산업 일자리의 4분의 1은 생산 시스템이 바뀌거나 임시직 활용 등으로 일부 산업직 직무가 서비스직 직무로 외주화된 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생산에 속하던 기획개발·정비관리·사무 등의 일부 업무가 서비스 업무로 분류되었다.(6) 여기에 생산성 향상에 따라 30%에 달하는 인력이 추가로 감축됐다.(7)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탈산업화의 현실을 목도만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위기로 인해 오랜 기간에 걸친 심각한 수준의 탈산업화가 더욱 악화되는 실정이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경제지표만 봐도 잘 드러난다. 2008~2010년 투자 규모가 10% 감소한 것이나, 2004년 이후 무역수지 적자 폭이 급격히 확대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농가공을 제외한 모든 산업품 교역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수입 대비 수출 규모는 공산품 87%, 소비재 73%, 설비재 87%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5년간 프랑스가 특히 중국, 독일과의 교역에서 기록한 누적 무역 적자는 무려 1136억 유로에 달한다.

유럽의 날개 없는 추락

프랑스의 약점은 더욱 악화되고, 강점은 더욱 퇴색되고 있다. 유럽과 세계 수출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물론, 자국 수요를 충당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2008~2010년 프랑스는 (폐기물, 수자원, 오염 방지 등을 제외한) 전 부문에 걸쳐 산업생산액이 감소했다. 생산액 감소 규모는 정유 및 코크스 제조가 28%, 섬유가 26%, 제철·기계·정보·광학·전자 등이 15~20%에 달한다. 이에 따라 생산 공장이 문을 닫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1989~2011년 프랑스에서는 250만 개 산업 일자리가 감소했다. 중공업이나 저숙련 산업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용 파괴는 설비·로봇공학 등 첨단 전략 산업으로까지 널리 확대되고 있다. 저숙련 노동자는 67만1천 개 일자리가 감소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18만2천 개의 고숙련 노동직과 7만4천 개의 엔지니어·중역·기술자의 일자리도 함께 줄어들었다. 2011년 10월 푸조는 6천 개에 달하는 고용 감축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1900개가 생산직, 3100개가 연구개발을 비롯한 서비스직이었다. 3천 명의 하청 인력과 임시직 인력 해고도 단행했다.

일자리가 증발하고 있다

지난 30~40년 과거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산업 개발을 소홀히 하는 동안, 1960~70년대 드골이 남긴 유서 깊은 산업 유산인 항공·우주·군수·원자력 산업이나 농가공업을 비롯한 프랑스의 전반적 산업·기술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그러니 오늘날 프랑스, 미국을 막론하고 탈산업화가 대선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극좌파에서 극우파, 프랑수아 올랑드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에 이르기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탈산업화를 성토하기에 바쁘다. 2010년 산업에 관한 국민대표자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에리크 베송 산업부 장관이 상환기간 3년의 중소기업 융자 혜택을 뼈대로 한 '산업부흥(재산업화) 지원책'을 약속했다. '프랑스전략기금'(FSF)은 전략산업으로 분류된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 참여를 발표했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대책과 선언이 정작 문제의 본질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EU집행위원회와 지난 30년간의 역대 유럽 정부들은 시스템 위기의 두 특징인 '금융 축적 체제의 구축 및 붕괴'와 'EU의 탈산업화 메커니즘'을 일으킨 직접적 원흉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발표된 이른바 '리스본 전략'은 결국 헛된 망상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애초 리스본 전략의 목표(목표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음)는 각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의 3%를 기술 개발 및 혁신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물질적 생산을 대체하는 '지식경제'라는 이데올로기적 재현 체계를 활용했다. 지식경제 담론은 유럽과 프랑스가 국제노동분업 원칙에 입각해 EU의 역량을 첨단기술과 산업에 집중하는 식으로, 전반적인 산업 기반을 포기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국제적으로 자본이 새롭게 재편되고, 금융화가 강화됐다. 근시안적 산업자산 관리가 판을 치고, 부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또한 '자유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오래도록 EU 및 개별국 차원의 모든 산업정책이 무차별 금지됐다.

이런 이념·정치·경제적 무장해제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2000~2010년 1인당 GDP 상승률이 유럽은 0.9%, 프랑스는 0.5% 수준에 그쳤다. 산업경제국 가운데 가장 저조한 수치였다. 유럽과 프랑스는 개도국과 신흥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수세로 몰렸다. 더욱이 현 추세대로라면 비교적 안전한 분야도 15년 뒤에는 개도국이나 신흥대국과 치열한 경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1998~2008년, 유로존 국가들이 생산비가 낮은 국가의 가공품을 수입하는 비중은 17%에서 44%로 치솟았다.(8)

'지식경제'는 허위의 이데올로기

프랑스는 단순히 노동비용 측면의 경쟁력만 낮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경쟁력 약화를 좀더 심도 깊게 이해하려면, 유로화 강세 기조에 따른 영향을 비롯해 직업교육의 질, 노동 편성 방식, 연구 혁신의 위상, 생산 시스템의 특징, 자본 인출(배당금 배분 등) 등의 요소에 따른 경쟁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2008년(현재 이용 가능한 가장 최근 자료) 프랑스 제조산업의 시간당 노동비용(33.16유로)은 독일(33.37유로)보다 낮았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1인당 생산성은 유럽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데, 유럽 27개국 평균에 견줘 21%, 독일에 견줘 15%나 높았다. 이는 노동비용만 줄기차게 감축하는 전략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자본 배 불리며 임금은 삭감

요즘 툭하면 독일 사례를 거론하는 상황에서, 필자 역시 몇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 독일 산업의 효율성은 강도 높은 산업화 전략(GDP의 20%, 고용의 19%)에 철저히 기대고 있다. 게다가 이런 산업화 전략은 기술 혁신과 상품 고급화, 민간 설비재 부문 집중화, 대기업(콘체른) 중심의 생산조직, 수출 가능한 탄탄한 혁신중소기업(미텔슈탄트) 조직 등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프랑스 GDP는 독일 수준의 평균 73.5%에 달한 반면, 산업생산액은 42%, 재화 및 서비스 수출은 52%에 그쳤다. 독일 산업 전략이 진정 빛을 발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예로 오늘날 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식 실업률은 지난 20년 기록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5.8%). 또한 독일은 2011년 3%대 성장률을 달성하며, GDP 대비 1% 수준으로 재정적자를 축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53만1천 개에 달하는 종일제 일자리를 창출했고, 설비재 투자는 8.3%가량 확대했다. 이렇듯 독일 경제가 순항할 수 있었던 데는 특히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8.2% 증가한 덕이 컸다. 신흥국 가운데서도 중국은 3년 뒤 독일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콘체른'은 중앙유럽 및 동유럽을 비롯한 해외로 일부 생산시설(자동차·기계 등)을 이전했다. 그 결과 1998~2012년 산업 부가가치 가운데 중간재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33%에서 59%(프랑스는 50%에서 80%로)로 급증했다.(9) 그럼에도 콘체른은 전략적 중요도가 높은 활동이나 부문에는 결코 통제권을 내주지 않았다. 또한 새로운 국제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국 내 산업조직을 혁신했다.

연구 개발 투자마저 뒷전

40여 년 전부터 프랑스식 자본주의의 맹점이 하나둘 드러났다. 이를테면 저조한 산업화(GDP의 12%, 전체 고용의 11%)와 민간부문과 산업체의 미진한 연구개발, 중가 중심의 상품 포지셔닝,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와 약탈(프랑스는 수출 가능한 중소기업이 독일에 견줘 3분의 1에 불과함), 허술한 정규교육 및 계속교육, 직무능력 저하 및 일부 직무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실태, 기술적·전문적·과학적 소양을 천시하는 사회적 가치관 등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의 경쟁력 약화는 무엇보다 기업과 민간의 기술개발 투자가 저조한 탓이 크다. 프랑스의 순배당금 대비 기술개발 투자 비율은 1995년 35%에서 2008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10) 게다가 2010년 프랑스의 기술개발 투자 규모가 독일 기업의 57% 수준에 그치고 있다.

리스본 전략은 30~34살 대학 졸업장 소지자 비중을 전체 노동자의 4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현재 25~45살 프랑스인의 46%는 BEP(직업교육증)나 CAP(직업능력증명서)- 프랑스의 직업교육자격증으로서, BEP가 식품·상업 등 일반적 직업 분야를 교육한다면, CAP는 제빵 기술, 미용 등 좀더 구체적인 직업 분야를 교육한다- 등의 직업교육 과정 수료증을 소지하거나 그 이하의 학력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생산 시스템은 산업 전략을 좌지우지하는 금융투자자 등의 금융패권 세력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 이처럼 심각한 제약과 위급한 상황 앞에, EU와 프랑스는 개발 모델을 전면 재정립하고, 금융·은행 시스템이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도록 하는 데 온힘을 기울여야 한다. 금융·은행 시스템이 연대정신에 입각한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 경제·사회·지역적 성장을 위해 자본을 조달해야 하는 본연의 사명을 벗어나도록 방임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국가의 위상 복원, 최우선 과제

결국 한 세대, 다시 말해 30여 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진정한 산업생산 체제 혁명에 나서야 한다. 19세기 말에 버금가는 기술·공학적 비약을 실현해야 한다. 관건은 새로운 미래 산업을 개척해 21세기 EU와 전세계가 직면한 도전 과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2030년까지 전세계 인구는 14억 명가량, 2020년까지 전세계 노동인구는 2배가량 증가할 것이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식 소비 모델을 세계 모든 나라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오랜 기간의 혁신 투자, 기본과학과 응용과학 연구, 노동자 교육 및 직무능력 개발 등을 포함한 EU와 개별국 차원의 적극적인 산업부흥 정책(재산업화 정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는 GDP에서 차지하는 산업부흥 관련 예산 비중을 4~5%포인트 높여 1천억 유로를 지속적으로 투입할 필요가 있다.

현 위기를 타개하려면 반드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에 입각한 EU 및 개별국 차원의 새로운 개발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려면 산업정책과 장기투자를 주도할 전략가로서 국가의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또한 규제 강화를 통해 은행 및 금융계가 생산 시스템 투자라는 본연의 소임을 회복해야 한다. 더불어 인적 잠재력 개발과 혁신에 힘쓰고, 새로운 생산자와 신상품 공급을 강화한 새로운 형태의 분업 체제 구축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프랑스와 EU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해 있지만 잠재성이 많이 있다.(11) 이를테면 에너지 분야는 수급 불균형 증대와 중장기에 걸친 원자재 가격의 구조적 인상으로 인해 앞으로 에너지 효율성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거나, 에너지 자원 및 광물자원을 더욱 합리적으로 사용해 절약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재활용 공정의 일반화). 신에너지 사용률을 높이는 한편, 원자력 부문에서 기존 기술과 완전히 단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신세대 원자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세계 식량 수요 증가(지금부터 2025년까지 50% 증가)에 따른 극복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를테면 환경·보건·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식량안보도 함께 확보하는 방향으로 올바른 방법의 생산 확대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녹색기술과 저탄소에너지,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생명공학과 생명과학, 식물화학, 신소재, 나노기술, 인지과학, 신정보기술 등 신산업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이는 모두 새로운 생산체제 혁명을 실현하는 길인 셈이다.


글•로랑 카루에 Laurent Carroué 지라학자. 파리8대학 산하 프랑스지정학연구소(IFG) 선임연구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영국 경제산업연구소(CEBR) 발표. 2011년 12월. www.cebr.com
(2) ‘World manufacturing production 2010’, IHS 글로벌 인사이트, www.ihs.com.
(3) ‘위기와 세계의 변혁: 지리정치학적, 지리경제학적, 지리전략적 쟁점’, <이스토리앵 & 제오그라프>, 제416호, 파리, 2011년 10~11월.
(4) ‘국가별 고등교육 및 연구 정책에 관한 보고서’상의 추산, 2012년 재정법안 부속 서류, 파리.
(5) ‘The case for a national manufacturing strategy’,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워싱턴, 2011년 4월/ ‘Report to the President Ensuring American leadership in advanced manufacturing’, 대통령실, 2011.
(6) 산업 조직이 아닌 곳이 산업 직무를 수행하는 비중이 25년 전 26%에서 오늘날 36%로 늘어났다.
(7) ‘1980~2007년 프랑스 산업 고용 감소: 현실은 어떠한가?’, <트레조르 에코>, 제77호, 2010년 9월.
(8) <트레조르 에코>, 제95호, 2011년 11월.
(9) <플래시 에코>, 제32호, 나티식스 출판사, 파리, 2012년 1월.
(10) ‘2011년 프랑스 현황에 관한 연례 보고서’,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 파리, 2011년 11월 23일.
(11) ‘프랑스 2030: 경제성장의 5가지 시나리오’, 파리 전략분석연구소(Centre d’ analyse stratègique), 2011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