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그것은 리얼리즘이다

Corée 특집 탈핵 시대의 도래

2012-03-12     이원영

'4대강'의 전신인 '운하' 얘기를 듣고 분기탱천해 바깥세상에 나온 게 2007년. 그때부터 자다가도 한밤중에 깨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왜 그런가 했더니, 사람은 잠자면서도 무의식의 세계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다 보니 화가 치밀어서 한밤중에도 벌떡 일어나는가 보다. 잠을 깨면 멀뚱한 눈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봄 일본 후쿠시마 핵재앙이 터졌다. 아니 '터지고 있다'는 말이 맞다. 이건 정말 전대미문의 엄청난 사건이다. 그 피해가 시공을 초월한다. 대통령이 자동차 사고와 비교했다고? 이 바보천치가 5년짜리 월급쟁이인 주제에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확대해서 추진한다고?

스리마일과 체르노빌까지는 우연의 산물이었다고 인정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이 세 번째다. 반세기가 안 되는 세월 동안 세 군데서 6개 원전이 터진 것이다. 같은 사고가 3번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 확률의 세계로 들어간다. 지금 전세계 440개 원전 가운데 1천 년 동안 같은 확률로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고의 기대치가 몇 개일까? 120개다. 120개! 설사 절반 정도라도 지구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남아날 생물이 없다. '현세대가 미래세대에 가하는 테러'이자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동료 교수들의 태도였다. 내가 4대강 반대 활동을 열심히 성원해주는 공과대학 교수 두 분께 이 문제를 거론했더니, 이분들이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분들 정말 제정신인가? 평소 동지처럼 지낸 분들이라 충격이 더 심했다. 절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4대강은 문제되는데, 더 심각한 핵발전은 대안이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그들의 생각'이었다. 과연 대안이 없는가? 둘러보니 독일은 아주 훌륭하게 대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당장 가서 보고 듣고 확인해서 들려주고 싶었다.

내 제의에 호응한 운하반대교수모임 회원 위주로 20명과 함께 지난해 6월 말 독일에 다녀왔다. 견학 뒤 결론은, '대안은 있다' 는 것이다.

독일에서 탈핵은 무엇보다 양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핵발전소는 부모 세대의 자식 세대에 대한 반인륜적 행위이자 치명적인 윤리 문제라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장점은, 탈핵 정책을 17명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요구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윤리위원회는 8주간의 검토를 통해 윤리뿐 아니라 에너지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고, 독일의 미래경제도 탈핵에 있다는 명쾌한 결론을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도출했다. 우리도 방법은 많다. 독일과 비슷하게 혹은 수정하면 되고, 우리도 지금 하고 있다. 우리가 먼저 완성해서 이웃과 함께 핵을 추방한다는 시나리오가 합당하다. 이 내용으로 리포트 책자를 내고, 국회에서 발표도 했다.

지난 4년, 거듭 잠 못 이룬 이유

그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을 출범시켰고, 지난 2월 독일에 다시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환경 교사와 천주교 관계자가 많이 참가했다. 독일로 출발하기 직전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탈핵 선언 뒤 원전 7개의 가동을 중단한 독일이 오히려 원전국가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중순 도쿄 인근 대도시인 가와사키에 머물다 왔는데, 거기는 서울처럼 아주 밝았다. 그때 원전이 54개 중 5개만 돌아가고 있었는데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이젠 2개만 남았다. 원전을 둘러싼 전기 수급에 대한 그동안의 '상식'에 커다란 허구가 있는 게 아닐까?

원래 원전은 핵폐기물의 처리 방안이 전무한 것이나, 사고로 인한 생명 파괴와 지구의 영구적 황폐화를 생각하면, "핵발전은 부모가 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고 또 그 짓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다.

하지만 탈핵을 제대로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1980년 국민투표로 원전 불가를 선언했던 스웨덴이 2000년대 들어 원전을 가동한 걸 보면 선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웨덴 같은 녹색 선진국에서조차 말이다.

지난여름 첫 번째 방문 때였다. 밤에 베를린에 도착했는데, 가로등이 많지 않아 도시가 굉장히 어두운 느낌이었다. 이번 두 번째 방문 때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식당에 들어가니 촛불이 기본이고 실내등은 은은하다. 우리나라나 일본이 못 따라가는 부분이다.

이튿날은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에서 원전에너지 정책의 권위자 루츠 메츠 교수에게서 독일의 탈핵 로드맵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그는 원전이 왜 사양산업일 수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우라늄은 현재 전세계에 120만t이 매장돼 있는데 2010년까지 이용한 양은 250만t으로, 이미 묻혀 있는 것보다 2배 이상 사용해버렸고, 40년 뒤에는 우라늄이 고갈되고, 2025년까지 130~140개 원전이 문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폐기물 문제, 산업적 역량 및 숙련 노동력의 한계, 건설비용 증가, 테러, 핵확산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원전을 멈춰야 하고, 다른 방식의 발전 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있지만 원전은 불가능하고 폐쇄 비용이 엄청나다고 했다.

지난겨울 원전 17개 중 4개만 남기고 모두 작동을 멈췄지만 전기는 모자라지 않았고, 프랑스가 한파에 따른 전력 부족 사태를 겪자 전기를 수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원자력에너지법을 개정해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2050년까지 전체 전력 수요의 80%를 자연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며, 온실가스는 1990년 대비 80~95%를 감축할 로드맵도 있다고 했다. 원전을 포기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서 37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고, 이는 기존 에너지 생산 방식에 의한 일자리 수를 능가한 것이라고 했다.

독일연방의회로 이동해 녹색당 라이트 슈미트 브라브라 에너지 전문위원에게서 녹색당의 에너지 정책과 원전 관련 정책에 대해 듣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녹색당은 평화·탈핵을 기치로 정치적 목표를 제시해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일행을 안내한 염광희(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에너지 정책)씨에 따르면, 지난해 메르켈 총리의 탈원전 에너지 선언을 이끈 시민들이 탈핵 일정을 앞당기는 데 노력하지 않으며 녹색당마저 지탄한다.

원전 멈춰 세우고도 전기를 수출하다

"4년 전 태양광 전기 1kW가 40센트였는데 지금은 20센트다. 같은 돈으로 2배 많은 태양광발전을 할 수 있다. 2020년이면 2.2~2.8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다." 그는 에너지 전환은 기후정책일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태양광 전기는 1kW에 23센트 정도인데, 이는 태양광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10%(2.4센트) 정도 더 지급하는 것이다(재생가능에너지법). 또 자연에너지를 위한 투자 주체의 40%는 개인이라고 하니, 독일 녹색당이 지탄받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 만했다.

그런데 독일 녹색당이 환경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보다 약진하는 이유는 뭘까? 그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녹색당이 성공하기까지는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공헌했다. 그는 원전을 건설하고 로켓을 완성했다. 녹색당이 이를 줄기차게 반대하면서 그 노력을 인정받아 의회에 입성했고, 그 뒤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나는 불교생명윤리협회에 관여하면서 조계사 불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은 역행보살"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착한 일을 하는 보살만 있는 게 아니라 나쁜 일을 함으로써 다른 이에게 타산지석이 돼 결과적으로는 전체에 이로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보살도 있다는 뜻이다. 4대강의 '역행침식'과 뜻이 다르지만 '역행'이라는 표현에 무릎을 쳤는데, 독일에 와서 그와 비슷한 얘기를 들을 줄이야!

베를린 근교에 있는 ZEGG는 '실험적인 지속 가능한 생태공동체'라는 표현의 약자다. 이곳이 추구하는 바는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현재 12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토지와 건물은 사유할 수 없고, 일정한 생활비와 식비를 내야 한다. 마을에는 예술인이 많아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되며, 다양한 종교가 허용된다. 명상을 위한 방에는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방석이 놓였고, 방 한가운데 작은 피라미드가 있었다. 방석에 앉아 명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곳은 온수와 난방을 위한 에너지 공급 시설이었다. 태양열과 펠릿, 천연가스를 이용한 보일러인데, 2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한다고 했다. 샤워실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었고, 짓는 과정이 사진으로 소개돼 있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다양한 방식이 실현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어서 방문한 인구 5만 명의 하멜른시에서는 시민과 지방정부가 거버넌스를 구축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좋은 사례를 들었다. 시는 기후보호 콘셉트를 마련한 뒤, 시민 100여 명을 에너지 절약, 친환경적 교통 등에 관한 여러 워킹그룹에 참여시켰다. 가령 에너지 워킹그룹은 모두 5차례 회의를 열어 시민·학교·관청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최적화하고 재생에너지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버스 대합실 지붕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학부모의 의견에 따라 학교에 같은 시설을 설치했다. 특히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지역 주민의 건물 옥상에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가 적합한지 과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한 뒤, 그 결과를 웹사이트에 올려 주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튿날, 인구 32만 명의 빌레펠트시 에너지관리청에 도착했다. 후쿠시마 사태 뒤 빌레펠트 환경위원회는 2010년 현재 에너지 사용량의 50%를 감당하는 원전을 2018년까지, 17%를 감당하는 석탄에너지를 2020년까지 모두 없애고 풍력·태양광·가스열병합발전 등 다른 에너지로 대체해 온실가스를 40%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20% 확대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앞으로 6년 만에 원전 의존율을 '제로'로 할 수 있다니!

6개월 동안 진행된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서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인터넷 포럼이 열렸다. 포럼 결과에 따라 에너지관리청에 더 많은 풍력발전을 세우도록 요구했고, 에너지관리청의 지분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지방정부에는 학교와 공공기관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에너지 리모델링을 확대하도록 요구했다. 이 요구들은 모두 반영됐다.

에너지관리청의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위한 고민과 노력은 '기저부하'를 어떻게 감당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태양광발전은 햇빛에 의해 전력량이 변하고, 풍력발전은 바람 세기에 따라 전력량이 변한다. 화력발전은 세웠다 재가동하려면 8시간 남짓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저부하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스열병합발전이 선택됐다. 에너지관리청의 대규모 펠릿 및 가스 열병합발전 말고도 지역마다 중소 규모의 가스열병합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건물마다 초소형 가스열병합발전 시설을 설치해 기저부하를 감당하기로 했다. 또 하나 지방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부분은 시민과의 소통이었다. 자기 집 앞에 풍력발전 장치가 들어설 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시민들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녹색당조차 시민의 꾸지람을 듣는 나라

회의실에서 설명을 마친 에너지관리청장은 우리를 목재 펠릿을 이용한 열병합발전 시설로 안내했다. 그는 목재 펠릿은 나무를 잘라서 얻지 않는다고 했다. 고속도로변 나무의 가지치기를 통해 얻는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나무 자르는 일이 펄프와 목재를 얻기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했다. 40%의 수분을 머금고 있는 목재 펠릿은 천천히 연소하는 데 적합하며, 펠릿을 태워서 얻은 열로 실리콘 오일을 가열하고 증기가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한다고 했다. 오일을 냉각하는 과정에서 얻은 열은 180km 범위까지 수송관을 통해 전달돼 지역 난방에 이용된다.

에너지공급청을 나와 중소형 열병합발전 장치가 운영되는 쿠페르헤이드라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태양광발전 장치가 가정집 지붕마다 얹혀 있었는데, 마을 입구에는 작은 컨테이너 정도 크기의 가스열병합발전 장치의 작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전기와 온수가 만들어져 지역에 공급되고 있었다.

다음날, 브레멘에 가서 그 지역의 분트(BUND·독일 최대 환경단체 '자연보호연맹') 사람들을 만났다. 지난여름 베를린에서 분트 대표 바이거 뮌헨공대 교수(임학)와 만났을 때 들은, "독일은 2022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당장 원전을 전면 폐쇄해도 큰 문제 없다. 대안이 있다"는 말이 인상적인 터여서, 브레멘의 분트 사람들에게 그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마 충분히 근거가 있는 얘기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앞서 독일 국회에서 만난 녹색당 간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더니 "원전회사의 부도가 필연적인데, 국민 세금으로 보상해줘야 하므로 당장 전면 폐쇄는 어렵다"고 했다. 아마 바이거 교수의 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전면 중단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바이거 교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폐쇄된 원전인 운터베저(Unterweser)로 이동했다. 지역의 반핵 운동가들과 함께 원전을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는데, 원전에 의한 방사능으로 암에 걸려 사망한 아이의 부모가 왔다. 현수막을 펼치고 반핵 의사를 표현했고, 우리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를 위해 준비한 빵과 커피, 차를 먹어가며 그동안 이 지역에서 진행된 반핵 운동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들은 1970년대 원전이 들어설 때부터 '그로프 악티온(Groppe Aktion) Z'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해왔는데, 2011년 5월 열린 체르노빌 사고 추모 행사에서 원전 반경 100km 이내에 거주하는 4천 명이 참가해 축제 같은 분위기로 진행한 당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이 염려하는 것은 2011년 가동을 멈춘 원전이 재가동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곳이 방폐장으로 지정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또한 원전 시설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소송 중인데, 이야기 중 인상적인 부분은 독일 국회가 가진 권한으로도 전력회사의 권력을 넘어서지는 못하며 긴 호흡으로 대책을 준비하려 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전력회사가 독점적 이익을 거두는 것과 비교해 유사한 맥락이 있다. 민주화된 독일에서 전력 분야만은, 원전이 테러 대상이 된다는 핑계로 기초적 정보 공개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테러를 볼모 삼은 원전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존재다.

마지막 날 함부르크에 있는 그린피스본부의 테스케 국장에게서 보완 설명을 들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위로부터의 혁명

"확실한 탈핵을 위해서는 계절적 영향 등에 의해 수급량이 달라지지 않는 '기저부하'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여가는 게 중요하다. 잉여 에너지로 할 수 있는 게 4가지가 있다. 다른 지방에 수출하는 방법, 저장하는 방법, 꺼버리는 방법, 수요곡선을 이동해보는 방법(수요 시간을 늦추는 것) 등이다. 여기서는 기저부하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잉여되는 시간대에 기저부하를 돌리는 발전소를 꺼버려야 한다. 석탄과 원자력은 불가능하고, 가스는 가능하다. 순간순간 대응해야 하는 부분에 수력·지역·가스 발전 등을 이용해야 하는데 풍력을 기반으로 1초 만에 반응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작동하려면 좋은 예상도가 필요하다. 바람이나 태양을 언제 이용할 수 있는지는 이틀 전에 예상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를 통해서 인터넷 기술과 결합해 순간순간 다이내믹하게 배치할 수 있다. 즉 스마트그리드와 자연에너지(재생 가능 에너지), 가스화력발전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스마트그리드는 덴마크에서 시작됐는데, 될수록 도시 내에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가 작은 유닛 안에서 해결되도록 하고,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면 큰 유닛에서 끌어다 쓴다. 작은 유닛에서 충전할 수도 있다. 자동차 배터리에 충전하는 경우다. 독일에서도 100% 자연에너지로만 전기를 공급하는 마을이 있고, 전국적으로 스마트그리드 콘셉트를 가진 지역이 많이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프랑스는 에너지 자급률이 105%고 독일은 50%다. 이런 나라도 전력의 80%를 원전에 의지한다"며 "독일이 폐기한다고 하지만 경우가 다르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나온 전기를 갖다 쓰면 된다. 우리는 지금 전기요금이 싼 편인데 (원전을 폐기하면) 전기요금을 1년에 1인당 86만원 더 부담해야 한다"면서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이 있으려면 30~40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실상을 보자.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하는 독일의 에너지 자급률이 50%라는 주장도 황당하지만,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동 중이던 노후 원전 7기를 즉각 폐쇄하면서 재생 가능 에너지 전기 비중(20.4%)이 원자력 전기 비중(17.7%)을 앞지르고도 전기가 오히려 남아돌았다. 사실 독일은 재생가능에너지법(EEG)에 의한 자연(재생 가능)에너지 붐으로 2002년부터 전력 수출량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프랑스는 원전 비중이 75%나 되는데도 전기난방 등 전기 과소비 패턴이 고착화되는 바람에 그동안 폐기했던 중유발전소를 재가동했다. 겨울에는 주변국에서 전기를 수입하고도 부족해서 2009년에는 제한 송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허위사실을 유포하는가? 가령 독일이 핵원자로 8기를 정지시킨 뒤 9개월 동안 프랑스로부터 3억6천만 유로어치의 전기를 수입했다는 최근 프랑스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이걸 보고 정부에서 맹목적으로 인용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나 문제의 기사는 전제 오류에 의해 쓰였다. 박진희 동국대 교수(에너지정책)의 말을 들어보자.

현실성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독일의 <슈트롬뉴스>에 따르면, 2011년 프랑스 배전회사 RTE에서 독일로 10.8TWh를 송전하고 같은 기간 독일에서 8.4TWH를 수입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 수치에는 지난 2월 초 프랑스에 한파가 닥쳐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한 양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를 포함하면 수치가 역전된다. 원래 전기로 난방을 하는 프랑스는 10만500MW가 필요해, 독일의 5만MW보다 2배나 많다. 프랑스는 한파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해야 했고, 전력시장 거래 요금이 1KWh에 34센트로 독일의 3배에 이르게 되었다. 원전 중심 체계가 전력 난방을 부추겼고, 한파로 전기 공급량이 달리자, 원전 7기의 가동을 중단한 독일에 전력을 의존해야 했다."

이는 원전 중심 체계의 문제를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는 증거다. 자연에너지 발전 단가는 기술 발전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는 반면, 원전은 자원 고갈과 사고 위험으로 비용과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가 명약관화하다. 독일은 지난 한 해 전력거래소 전기 가격에 변동이 없은 반면,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향후 2년간 피해보상 비용만 6조엔에 이를 것이다. 방사능 제염 비용은 아직 계산조차 못하고 있지만,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이 예상된다. 이것이 원전 경제의 희망인가.

*이 글은 나와 함께 현지에서 인터뷰 등을 치밀하게 정리한 이창국 교사(초록교육연대)에게서 큰 도움을 받아 쓰였다.


글 / 사진•이원영
수원대 교수·도시계획, 수원대 국토미래연구소장, 대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 정책위원장,
탈핵에너지교수모임 총무. 저서로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한다>(2008)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