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이 촉발한 금융 위기 쓰나미

2008년 금융위기의 데자뷔

2023-03-31     르노 랑베르 외

지난 3월 10일 파산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추락하는 주가, 냉정을 유지해달라는 호소, 모험적인 투자자들에 대한 구제책, 철저한 규명조사에 대한 약속... SVB의 파산은 경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까?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익숙한 풍경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가 “확실하다”라고 강조할수록, 불확실하다는 의혹은 강해진다. 지난 3월 13일 브루노 르 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미국 은행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계에서 구제책을 서둘러 준비했다. 그러니 프랑스 은행들은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 일어날 것을 미국은 3일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주거래 은행이다. 주말 동안 미국 정치 당국과 통화 당국이 뒷거래를 한 이후, 금융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모두의 시선이 금융계로 쏠렸다. 

카메라 앞에 선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신뢰와 평정을 보이려 애썼지만 입술이 떨리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진정하고 현실을 보라. 현실에서 프랑스 은행 시스템은 붕괴하지 않았다. 프랑스와 미국의 상황은 무관하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외쳤다. 그리고 불을 꺼야 할 장관은 결국 석유를 끼얹었다. “프랑스 은행계는 리스크가 전혀 없다.” 글로벌 주식 시장이 패닉 상태인데, 정치 지도자들은 의례적인 설명만을 늘어놓았다. 

 

금융위기의 위험, 항상 곁에 있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여타 은행들과는 달랐다. “SVB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은 채 무뚝뚝한 말투로 일하는 월스트리트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SVB에서 일한다는 것은 은행보다 기술기업들을 위해 일하는 느낌을 줬다”라고 SVB 전 직원이 <파이낸셜 타임즈>(1)지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즉 SVB는 일반 은행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SVB의 문제가 다른 기관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관련 기사가 실렸을 때, 이미 SVB의 파산으로 스위스 중앙은행은 유서 깊은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의 파산을 막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화된 위기의 두 번째 양상으로 아틀라스의 어깨만큼이나 어깨가 올라간 개인이 저지른 범법 행위에서 초래된 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중개인 제롬 케르비엘과 금융가 버나드 메이도프는 완전무결한 금융 시스템에서의 일탈을 언론 눈앞에서 보여줬다. 최근 SVB 파산 며칠 후 미국 법원은 은행 경영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연준이 어떻게 은행이 파산하도록 놔둘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성하겠다고 발표했다.(2)

상기 조사들의 결과는 그들의 발표만큼 잡음이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금융계에 미칠 파장과 2008년의 재현이라는 질문에 시달리는 사이, 미국과 유럽의 지도자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교묘히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가피하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금융위기가 내일 또는 향후에 닥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스템 주변의 기능장애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통상적인 기능이 가진 불균형 때문이다. 네모난 바퀴를 굴리는 임무를 맡은 운용자의 입장에서 시스템의 모든 위축을 결정짓는 상황 속에서 불균형이 발생한다. 

즉, 금융위기의 위험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은 우리가 지난 시간, 금융위기에서 멀어졌다고 생각(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

미국 내 16위 규모의 은행인 SVB는 은행 파산의 역사에서 뱅크런이라는 아주 시시한 사건으로 파산했다. 고객 대다수가 갑자기 대량 예금 인출을 시도했지만 은행은 대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은행 시스템들이 서로 촘촘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이런 작은 사건 하나가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시스템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은 SVB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기관이 예금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한 자금을 1,600억 달러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두 개의 특별 대책을 내놓았다. SVB 고객의 예금 전액(대개 고객 1인당 보증 한도는 25만 달러까지)을 보증해주고, 연준이 새로운 긴급금융기구인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ank Term Funding Program 또는 BTFP)을 설립한 것이다.

 

SVB가 당국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은 이유는?

리스크가 큰 스타트업 기업들이 주 고객이던 SVB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호황이던 기술기업들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SVB는 풍부해진 자금을 리스크가 적고 안정적인 미국 장기 국채에 투자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기술업계의 상황이 나빠졌고, 스타트업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자금난은 오랫동안 매우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했던 연준이 정책 기조를 바꾼 것에서 비롯됐다. 연준이 0%에서 4.75%까지 6번에 걸쳐 순차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유동성이 차츰 고갈됐다. 결국 스타트업 기업들은 SVB에서 예금을 인출할 수밖에 없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SVB는 쌓아둔 채권을 급매해야 했다. 문제는 금리상승과 함께 채권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신규채권들이 기존채권보다 비싸진다. 따라서 기존채권을 시장에 되팔 때면 시세가 떨어지게 된다. SVB는 채권을 팔면서 약 2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이에 은행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고객들이 서둘러 예금을 인출했고, 은행의 파산을 재촉했다.

2008년 금융위기 후 미국은 이미 한정적이던 은행에 대한 감독 범위를 더욱 축소하는 경솔한 짓을 범했다.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감독의 기준선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감독 받는 은행의 기준선이 500억에서 2,500억 달러로 높아졌다. SVB는 이런 기준선 아래에 위치한 은행이라서 당국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았다. 

파산은 중앙은행들의 책임 또한 부각시킨다.(3) 2021년 내내 인플레이션이 상승하자 중앙은행들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서브프라임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침체된 경제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오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이는 진단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의 주요 원인은 통화가 아니라, 가치 사슬의 재편, 에너지 가격 상승, 지정학적 상황에 따른 구조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서 통화 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은행과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통화정책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투자자들에게 더 큰 고충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투자자들은 몇 년 동안 이지머니로 큰돈을 벌었다.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은 시장의 유동성을 위태롭게 만들었고, 시장의 유동성은 의존적이 돼버렸다.(4) 2023년 3월 전까지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SVB의 파산은 연준이 가진 두 가지 옵션을 재고하게 할지 모른다. 하나는 불안정 리스크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긴축노선을 계속 추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금융기관이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거나 동결하는 것이다. 은행계에 드리운 먹구름들이 대안으로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연준은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채권을 매각하며 시작한 통화긴축의 핵심인 대차대조표 축소를 지금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연준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와 함께 SVB의 파산에 영향을 받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재개했다. 그 결과, 지난 3월 15일 연준은 1,648억 달러를 차용해줬다. 이는 2008년 9월 말의 1,110억 달러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4일 동안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은 118억 달러를 대출해줬다. JP모건에 따르면 BTFP가 공급한 유동성 총액은 2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5) 3월 15일 긴급대출로 이미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 절반가량이 백지화됐다. 

 

SVB의 파산… 폭발위험 커진 투기 거품

당국은 투자자들을 한 번 더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예전부터 경제계를 드리우던 위협 중 하나, 투기 거품이 폭발할 위험이 커졌다. 2015년부터 시행된 비관습적 통화 정책의 일환으로, 중앙은행이 주입한 유동성으로 불어난 거품이다.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왜곡을 거치며 모든 것이 불안해졌다. 정기만기일이 계속 도래하고, 지탱 불가능한 시스템의 생존을 조금 더 보장하기 위해 통화 당국과 정치 당국은 반복되는 위기의 해결책을 그들이 가진 도구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즉 정치적 활동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최상의 경제 기능을 보장하는 것처럼 주장하던 모든 원칙들을 비틀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은 금융계와 시장을 유동성으로 가득 채울 목적으로 비관습적 통화정책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경제학 메뉴얼에서는 금지된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위협받은 유로존의 응집력을 보장하기 위해서, 2021년부터 유럽중앙은행은 제도적으로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유럽 국채 금리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시장의 중립성’이라는 신조가 재고됐다.

SVB의 위기는 혁신을 가져왔다. 연준의 재정 지원 특혜를 받기 위해서 금융계는 통상 미국 국채나 대기업 채권과 같은 리스크가 적고 안전성이 높은 국채를 담보로 삼는다. 흔히 ‘담보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담보로 잡힌 채권의 시장가격에 맞는 유동성을 얻는다. 그러나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에 의해 규칙이 바뀌었다. 이번에 연준은 초기 매입가격(또는 액면가)으로 담보 채권을 수용했다. 통제경제보다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중앙은행들의 신조에 맞서는 일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국채 가격 하락의 진통을 해소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해야만 했다. 금리 인상이 SVB의 파산 원인이다. 그리고 SVB의 파산은 통화 긴축을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금융관계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의 폭발 전조인 미국 금융계의 위기는 유럽 금융계를 덮치며 주가 패닉으로 이어졌다. 초기의 우려대로 이미 어려움에 빠져있는 크레디트스위스는 일명 ‘Too big to fail’(大馬不死, 대마불사)이라는 은행 시스템 속에서 글로벌 금융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그러나 3월 16일 유럽중앙은행은 예정대로 금리 인상을 유지할 것이며, 다음 스텝은 미확정이라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 다음 스텝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설명했다.(6)

이런 모호한 말로는 전망에 대한 내부 갈등을 덮지 못했다. 연준과 마찬가지로 유럽중앙은행 내부에도 인플레이션 잡기에 열중하는 매파와, 금리 인상이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여파에 대해 신경을 쓰는 비둘기파가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목적이 통화 안전성과 재정 건전성 중에 무엇인지에 대한 갈등을 반영한다. 금리 인상을 지속하는 선택은 유럽은행 시스템의 안정성에 좋은 징조는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통화 당국은 갑작스런 SVB의 파산 앞에 도망을 선택한 듯하다. 그들은 리스크에 대한 보상 없는 보험과 금융 관계자들의 태만으로 야기된 손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항상 멀리 도망친다. 통상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시장의 신조는 저버렸다.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 케네스 그리핀 또한 패러독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자본주의 경제 국가다. 그런데 우리 눈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7) 유럽도 다를 바가 없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경제학자
프레데릭 르메르 Frédéric Lemaire 
소르본 파리노르 대학 명예교수
도미니크 플리옹 Dominique Plihon
금융거래과세 시민행동 협회 고문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Tabby Kinder, Antoine Gara, ‘It is not cut-throat like Goldman Sachs :SVB’s culture in focus’, <Financial Times>, London, 2023년 3월 16일.
(2) Brian Buarmby, ‘US Fed faces internal probe over Silicon Valley failure’, <Cointelegraph>, 2023년 3월 14일.
(3) Jean-Marie Harribey, Esther Jeffers, Pierre Khalfa, Dominique Plihon, Nicolas Thirion, 『Les Banques centrales, apprentis sorciers à la manœuvre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일으키는 중앙은행들』, Croquant, Paris,  2023년.
(4) Frédéric Lemaire, ‘Pouvoir d’achat, emploi... Faut-il craindre l’inflation? 구매력, 고용...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3월호.
(5) ‘Les banques américaines ont emprunté 165 milliards de dollars à la Fed en une semaine 한 주 동안 미국 은행들은 연준에게 1,650억 달러를 차용했다’, <Les Échos>, Paris, 2023년 3월 17일.
(6) ‘François Villeroy de Galhau écarte le spectre d’une crise financière en Europe 프랑수아 비유로이 드 갈루는 유럽의 금융위기 공포를 떨쳐냈다’ <La Tribune>, 2023년 3월 17일.
(7) Harriet Agnew, ‘US capitalism is ‘breaking down before our eyes’, says Ken Griffin’, <Financial Times>, 2023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