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

2023-03-31     아리안 봉종 | 기자

2023년 10월 29일, 무스타파 케말이 세운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제2의 무스타파 케말’이 돼 기념식을 직접 거행할 꿈을 꾸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이런 야심찬 계획은 난항 중이다.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폭로와 2월 6일 두 차례의 지진 여파가 그의 입지를 계속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번 지진을 ‘세기의 재앙’이라 표현했다. 10개 지역이 피해를 입고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수천 명이 신원불명 상태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이 200만 명에 달하며, 그중 수백 명은 수일간 구조의 손길을 받지도 못했다. 수많은 인프라가 크게 훼손됐으며, 완전히 붕괴한 곳도 수두룩하다. 2월 6일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지진은 실로 대규모 재난이었다. 인도주의적 필요성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과 튀르키예의 향후 외교적 영향력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다가오는 대선과 총선이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에게 재선 패배는 ‘감옥행’을 의미한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으로 장기집권 중인 에르도안이 차기 대선 후보로 나선다. 그런 에르도안이 재선 패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패배할 경우, 우선 에르도안과 그의 측근 세력은 지난 10여년간 이 법치국가가 저지른 수많은 범법행위, 사기, 부패를 해명해야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떨어지면 부정행위와 공금횡령으로 법정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고 국제연구센터(CERI)의 바이람 발치 연구원은 설명했다.

2월 6일 이전, 에르도안 대통령이 공화인민당(CHP, 중도좌파, 세속주의)의 라이벌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여론이 꽤 강하긴 했으나, 에르도안에게 그리 상황이 불리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경제위기와 80%를 넘어선 연간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의 공약은 실패했다. 특히 튀르키예를 2023년까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리고, 1인당 GDP를 2만 5,000달러까지 끌어올린다는 약속도 처참히 실패했다. 1인당 GDP는 오히려 지난 10년간 약 1,903달러 감소해 9,327달러로 하락했다. 세계 경제 순위는 20위에 그쳤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야심찬 공약을 내걸었다. 2022년 9월, 에르도안은 공영주택 50만 채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최저임금 50% 인상을 약속하자, 여론조사 점수가 소폭 올랐다. 많은 인기를 끈 공약이 또 있다. 법정 퇴직 연령 폐지안이다. 튀르키예 근로자 약 200만 명은 연금을 충분히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년 제한 때문에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실정을 노린 것이다. 

서구의 비판을 샀던 캅카스와 아프리카에 대한 공격적인 대외정책은 쿠르드 분리주의 민병대가 장악한 시리아 북부를 폭격하고 튀르키예 인민민주당(HDP, 좌파, 쿠르드 분리주의)을 배척한 사건과 맞물리면서 튀르키예 내에서는 오히려 의견이 합치되는 분위기였다. 시리아 난민 수천 명을 환영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불청객 취급하며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의견에도 모두가 찬성했다.(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서도, 튀르키예는 러시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거부했다. 

즉, 선거가 까다로운 게임이긴 하나 지진 발생 전까지만 해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번의 지진은 튀르키예 사회를 처참히 무너뜨렸다. 지진 피해자는 1,300만 명에 육박했고, 전 국민이 24시간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구조작전이 계속되고 기부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진 발생 이틀 후,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는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의 영상을 내보냈다. 그는 영상에서 피해자에 대한 ‘연민’을 피력하고, 정권의 ‘무능함’과 ‘정보조작’ 행태를 비판했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큰 책임이 있다. 현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지진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면 공격은 급격한 변화였다. 테러, 대외 군사작전, 2016년 7월 15일 쿠데타(실패함), 인민민주당 쿠르드 의원 해임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도 공화인민당이 수년간 고수해온 국가통합 규정에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과연, 지진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까?

지리학자이자 튀르키예 전문가인 장프랑수아 페루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야당은 위기관리, 지나친 중앙집권화, 특혜, 군대파견 지연 등의 사안을 거론하며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에크렘 이마모글루 이스탄불 시장은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타이 지역에서는 공화인민당 지자체장들이 부상자들을 구조하는 등 효율적 대처의 모범적 사례를 보였으며, 정부를 대신해 구조계획을 세우고 인프라를 정상화했다.” 

5년 넘게 복역 중인 셀라하틴 데미르타시 인민민주당 공동대표도 이번 비극의 책임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2) 그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2007년 내진 설계 의무화 법을 위반한 위험천만한 도시화 정책을 은폐했다고 비난했다.

이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관건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모면하고, 나라를 구조하고 재건하는 ‘위대한 주관자’이자 ‘구원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이는 그가 이제껏 국가재정을 동원하기 위해 소통전쟁에서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현장을 방문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함들’을 인정하기에 앞서 “이런 재앙에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라며 운명의 손길,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운명 등을 거론했다. 그리고 비극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부동산업자와 건설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즉각 발부했다. 

그러나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건설 허가에 대한 책임을 어느 선까지 지워야 하는지가 문제다. 튀르키예 전문가인 페루즈에 따르면, 2000년 이후에 지은 건물의 40%가 무너진 가운데 튀르키예 주택개발청(TOKI)이 지은 건물은 비교적 잘 버텼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체포영장 발부와 동시에 이재민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도 발표했다. 각 피해 가정에 1만 리라(약 69만원)를 지급하고, 집이 무너진 가정에게 ‘1년 이내’에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난 울겐 EDAM(이스탄불 싱크탱크) 대표를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들이, “1년 이내에 주택 25만 채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공영채널을 통해 국내 기부캠페인 조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속히 국제원조를 호소했다. 미국과 수많은 유럽 국가를 비롯한 48개국 이상이 이에 응답했으며, 여기에는 그리스, 아르메니아, 이스라엘 등 평소 관계가 껄끄러웠던 나라들도 동참했다. 팡테옹소르본 파리1대학의 질 도롱소로 정치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튀르키예 여론은 현재 심리적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를 소외시키고, 서구와 러시아의 중개자 역할을 했던 위풍당당한 튀르키예가 갑자기 국제원조에 기대는 처지가 됐으니 말이다.”

국제원조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2월 1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의 튀르키예 방문을 두고, 미셸 뒤클로 시리아 주재 전 프랑스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튀르키예는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튀르키예에 러시아 편을 들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다.” 또는 튀르키예에 아제르바이잔을 설득해,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연결하는 라친 회랑에 대한 엠바고를 철회하게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사실 리비아 문제, 에게해 문제 등 데프렘(지진) 외교와 그에 따른 새로운 역학관계는 수많은 쟁점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유럽연합은 원조국 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스웨덴이 주최국이다. 튀르키예는 러시아 때문에 스웨덴의 NATO 가입을 거부한 적이 있다. 푸틴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강요했던 사건도 여파가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가레스 젠킨스 애널리스트는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에르도안은 지진 때문에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중단했지만, 이것이 완전히 포기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베르트랑 바디 시앙스포 전 교수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에르도안이 ‘전통적인 외교혼’을 ‘사실혼’으로 대체하는 등 다중적 이해관계에 능숙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국제원조 정책을 관리하고, 설명하고, 방향을 결정할 수단을 갖고 있다.” 

 

땅과 함께 흔들리는 에르도안표 정책들

대규모 재난 때문에 이스라엘, 그리스와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따라서 ‘대선 캠페인은 국제사안보다 국내 문제에 치중될 것’이라고 울겐은 예상한다. 2023년 6월에 임기가 끝나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착하는 선거 결과도 여기에 달려있다. 대선은 대통령이 지진 전에 말한 대로 5월 14일에 일찍 치러질까? 아니면 원래 일정대로 6월 18일에 치러질까? 아니면 대통령 측근들이 권고하는 대로 1년 뒤로 미뤄질까? 

여당은 선거를 미루는데 결사코 반대한다. 헌법도 오직 전시에만 국회의 승인하에 선거를 미루도록 허용한다. 어쨌든 2017년 헌법 개정은 국회가 6월 전에 해산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의 3선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국회를 해산시키려면 360표가 필요한데, 에르도안이 확보한 것은 335표에 불과하다.

바이람 발치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거일을 과도하게 미루는 건 대통령에게도 불리하다. 몇 달 안에 우리는 위기관리 실패와 결점을 더 많이 목도할 것이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통감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더욱 그렇다. 튀르키예는 두 번의 지진으로 840억 달러의 피해를 보고, 경제성장률은 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르트랑 바디 교수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기할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은 이번 재난을 자기 홍보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배에 물이 샐 때는 선장을 바꾸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는 연민에 호소하고,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며, 죄인을 벌줌으로써 이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낼 것이다. 그러면 충실하고, 대중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에르도안의 지지자들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한편 도롱소로 교수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연설은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튀르키예는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 정부의 무능함, 건설업계와의 권력 결탁 등의 문제에 다시 봉착했다. 에르도안도, 그의 동맹인 민족운동당(MHP, 극우 민족주의)도 민족주의의 발흥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당 연합도 얼마든지 같은 수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비상사태임에도 선거를 강행할지도 모른다. 지진 피해자 수십만 명이 신분증을 잃어버려서 투표소에 가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사실 이를 위한 선거 장비도 이미 설치해놓은 상태다. 현재 망명 중인 아테네 대학의 젠기스 악카르 교수는 최고선거관리위원회(YSK)에 친정권 의원 11명과 친정부 성향의 행정관들이 임명된 점을 지적했다. 또한 막판에 후보 자격을 박탈해서 몇몇 선거구에 후보자가 아예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미 인민민주당은 정직당했고, 대통령의 최대 라이벌인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글루 이스탄불 시장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투표권을 뺏기 위해 국방산업체인 하벨산과 결탁했다. 그리고 선관위의 결정에 항소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다. 

이런 구조와 안보기관(군대보다는 경찰과 이슬람 민족주의 민병대)을 발판삼아 에르도안이 재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의 3대 정책(국가 신인도, 공격적인 대외 정책, 경제적 성공)도 지진 때문에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다. 

 

 

글·아리안 봉종 Ariane Bonzon
기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Ariane Bonzon, 
‘Ces indésirables réfugiés syriens(한국어판 제목: 튀르키예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시리아 난민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5월호, 한국어판 2020년 11월호
(2) Selahattin Demirtaş, ‘L’homme qui se prend pour un sultan(한국어판 제목: 술탄을 자처하는 에르도안의 권력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