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상품화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제국의 부록”으로 전락한 문학
쏟아지는 책의 양만 보면, 그만큼 독자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독자들의 선택권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출판하는 ‘브랜드(실제로 쓰이는 용어)'들은 다양해보이지만, 대부분 몇몇 대기업 소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브랜드’들이 독자에게 제안하는 책들은, 대개 소비자가 알아보기 쉬운 범주에 속한 것들이다.
이미 30년 전부터 포화상태였던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들은 흥행이 보장된 것들뿐이다. 유명 소설가의 작품이나 문학상 수상 띠지를 선물 포장지처럼 두른 소설책들을 말한다. 서가를 점령한 이 소설들은 비난과 개탄의 대상인 과잉생산의 징후다. 또한, 이들 간에 뚜렷한 유사성은 현재 문학계가 겪는 획일화를 잘 보여준다.
글쓰기 관행이 점점 표준화 및 상업화되면서, 문학작품과 다른 매체와의 호환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학작품은 점차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예상 가능한 내용과 매끄러운 문체는 진부한 아카데미즘에 속한다. 이런 집단적 표준화와 획일화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너무 충성스러운 고객인 대중의 잘못일까? 소위 ‘문학의 민주화’ 때문인가? 아니면 출판사의 방침 때문인가?
문학이 상징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서 경제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출판계는 산업 및 통신 대기업이 주도한 긴 구조조정을 거쳤다.(1) 과잉생산과 집중화, 이 두 가지 현상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프랑스 출판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현재 4대 출판기업(아셰트 리브르, 에디티스, 메디아 파르티시파시옹, 마드리갈)이 프랑스 출판시장의 3/4을 지배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출판사 인수 합병 움직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문학상을 받기 위한 조건은?
2022년 공쿠르상 심사위원단은 심사과정에서 딜레마에 맞닥뜨렸다. 그들은 브리지트 지로의 『빠른 생(Vivre vite)』과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크렘린의 마법사(Le Mage du Kremlin)』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최종 발표를 앞두고 두 작가는 긴장한 기색이었던 반면, 출판사들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로의 책을 펴낸 플라마리옹과 엠폴리의 책을 펴낸 갈리마르 모두 마드리갈 그룹의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이 두 경쟁작은 문학작품이 상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여실히 보여줬다.
두 작품은 자전소설(Autofiction)과 시사소설이라는 검증된 장르를 택했다. 『빠른 생』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편,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크렘린의 마법사』는 “푸틴 시대의 이면에 대한 폭로”다. 두 작품 모두 성공을 거뒀다. 엠폴리의 작품은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고, 지로의 작품은 공쿠르상을 차지하며 여러 영화사에서 각색 제안을 받았다.
물론 실뱅 테송의 극한 여행기들,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L’Élégance du hérisson)』 또는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나는 괜찮아(Je vais mieux)』처럼 위안을 주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작가의 작품이든 서점을 채운 책들은 앙드레 쉬프랭의 표현처럼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제국의 부록”에 불과하다.
문학의 소비영역에서도 또 다른 전투가 펼쳐졌다. 점점 더 많은 관심을 추구하는 문화산업은, 점점 더 분산되는 관심을 사로잡고자 SNS에서 자신들의 형식(스트림, 스레드, 스토리)을 확산시켰다. 이제 ‘픽션’으로 불리는 소설, 이야기 및 장편 영화는 정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통합돼 영화, 드라마, 게임 등에 연달아 활용된다.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공정에서 책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로 전락한 픽션은 강렬한 감동으로 무장하고 대부분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또한 넷플릭스 등 각종 플랫폼에서의 인기와 판로를 보장 받기 위해 각색 가능성을 염두에 둔 창작이 주를 이룬다.
‘민주화’라는 이름의 획일화
기술·경제 구조의 변화와 수익성 및 성공에 대한 압력은 (여전히 정치적인 주제, 형식, 문체 등) 문학의 관행 자체를 급속히 변화시켰다. 대형 출판사, 비평가, 미디어, 공공정책도 일조한 이런 변화는 반항적인 작가들조차 회유했다. 2013년, 반체제 성향의 펑크 작가로 분류되는 비르지니 데팡트는 루이뷔통의 홍보성 단편소설 모음집에 참여했다. 『더 트렁크(La Malle)』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당시 루이뷔통이 일정 지분을 인수한 갈리마르에서 출판됐다. 이후 데팡트는 2015년 페미나상 심사위원에 이어 2016년 공쿠르 아카데미의 회원이 됐다. 2022년, 데팡트의 『친애하는 나쁜 자식(Cher Connard)』이 발간됐을 때 출판사는 베스트셀러 못지않은 대규모 언론홍보 활동을 펼쳤다.
한층 넓게 보면, 시장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은 주류 혹은 비주류를 떠나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다양한 관점은 무력해졌다. 문학의 소비 영역에서도 기준점과 암묵적 범주가 희미해졌다.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좋은 감정(Les Bons sentiments)』은 (여전히 명성이 높은) 갈리마르의 블랑슈 총서에서 출판됐다. 장 도르메송의 통속적인 작품들은 클로드 시몽, 쥘 발레스, 앙드레 브르통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플레이아드 총서에서 출판됐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마르크 레비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미셸에두아르 르클레르가 경영하는 대형마트 체인 르클레르 매장에는 ‘문화공간’이 개설됐다. 하지만 민주화를 표방하는, 일명 ‘문화 민주화’로 명명된 이 현상은, 실제로는 다양성을 훼손하고 모든 것을 표준화한다.
작가들도 후기 자본주의의 수익성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설가들이 글만 잘 쓰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얀 무아 또는 크리스틴 앙고처럼 로랑 뤼키에가 진행하는 <프랑스 2> TV의 토크쇼 ‘잠 못 드는 밤(On n’est pas couché)’에 출연해 인기 연예인 대접을 받으며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작가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월세 등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대부분의 신(新)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공공기관 및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에 얼굴을 비춰야 한다. 자신의 저서를 추천도서로 만들려면, 상을 많이 받아야 한다.
서평, 책팔이용 영상으로 전락하다
현재 프랑스에는 미디어, 서점, 독자가 수여하는 수많은(2022년 기준 수감자 선정 공쿠르상, U마트 독자상, RTL-Lire상 등 2,000개가 넘는) 상이 존재한다. 매우 전문적인 웹 마케팅도 뒤따른다. 요즘 유명한 ‘인스타 여성시인’ 루피 카우르 혹은 소설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는 온라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이자,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문학 비평은 ‘북튜브’, ‘북스타그램’ 혹은 ‘북톡’에 게재되는 2분짜리 도서 홍보영상으로 전락했다. 최소한의 서평도 없이 해시태그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기 드 모파상의 『벨아미(Bel-ami)』를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SNS를 정복해 나가는 스토리로 각색하는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것이 오늘날의 집필 환경이다. 이제 글쓰기 관행은 트렌드에 맞춰, 쉬운 문체를 채택하고 커뮤니케이션과 시사성을 중시한다. 독특한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표준화된 문체가 성공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근대 문학의 형식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작품들이 성행하고 있다. 거의 모방에 가까운 이런 작품들은 근대적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스타일을 베낀 폴린 들라브루아알라르의 『사라에 대한 모든 것(Ça raconte Sarah)』, 1830년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를 다룬 카미유 파스칼의 『네 왕의 여름(L’Été des quatre rois)』, 레일라 슬리마니의 예술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스릴러 소설 『달콤한 노래(Chanson douce)』, 오랜 기간 동안 연재된 에마뉘엘 카레르의 자전소설 『왕국(Le Royaume)』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오늘날 문학계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단연코 신자유주의적 어조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미셸 우엘베크와 에두아르 루이는 명제소설을 부활시켰다. 얼핏 보면 이 두 작가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 방식으로 욕망의 변화를 탐구하는 듯 보인다. 우엘베크는 멀티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뽐내며 무질서한 형식에 집중하고 서구의 쇠락을 투영하는 편집증적인 어투를 작품에 담아낸다. 반면, 루이는 『에디의 끝(En finir avec Eddy Bellegueule)』등에서 사회학 이론으로 담화를 풀어낸다.
인공지능 텍스트와 문학의 경계
책을 상품화하는 문화시장은, 취향을 획일화하고 시장 기준을 강요한다. 이는 문학의 진정한 민주화에 맞서는 현상이다. 문학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출판물과 시가 해방과 집단 여흥의 수단으로 떠오른 시기에 구체화됐다. 사회 변혁을 향한 긴장이 고조됐던 시기들이다. 그 예로 자크 랑시에르가 연구한 노동자들의 글과 매체가 올라온 1840년대(2)나, 매우 다르지만 반문화(Counterculture)가 도래했던 1960~1970년대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30년 후, 미적 체험으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려는 희망은 레저산업의 신자유주의적 경영에 가로막혔다. 알고리즘에 의한 관심 유도는 이런 추세를 강화한다.
많은 문학 주체들(작가, 출판사, 독립서점)은 문학의 상품화에서 해방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적 창작물을 소비재로 변질시킨 생산영역과 근본적이고 폭넓은 단절이 필요하다. 문학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대중이 마케팅이라는 필터와 조작을 통해 접하는 모든 작품에 적용된다. 마케팅은 문화를 엔터테인먼트, 최신 트렌드 혹은 사회의 ‘화두’로 포장하고 대중이 끊임없이 문화를 소비하도록 장려한다.
하지만 실용적이고 표준화된 언어에서 해방되려면, 언어의 시적 기능에 남아있는 ‘공상적 기층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공상적 기층 언어는 기호와 언어유희를 통해 가능성과 돌발성을 만들어 낸다. 지금처럼 문학을 상품으로 제작하는 공정 속에서는 인공지능이 ‘작성(계산)’한 글과 문학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이제 발터 벤야민의 주장(3)처럼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새 아침의 고요함과 함께 처음 느껴볼 수 있도록 하는” 단속적인 공상을 재창조해야 할 때다.
글·엘렌 링 Hélène Ling
이네스 솔 살라스 Inès Sol Salas
교사 및 작가. 『Le Fétiche et la plume. La littérature, nouveau produit du capitalisme 페티시와 펜, 자본주의의 새로운 상품』(Rivages, Paris, 2022) 공동 저술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André Schiffrin, 『L’Édition sans éditeurs 편집자 없는 출판사』, La Fabrique, Paris, 1999년. / Thierry Discepolo. 『La Trahison des éditeurs 편집자들의 배신』, 수정증보판, Agone, Marseille, 2023년. / Jean-Yves Mollier, ‘Édition, le tournis des concentrations 에디티스를 팔고 아셰트를 넘보는 비방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0월호.
(2) Jacques Rancière, 『La Nuit des prolétaires, Archives du rêve ouvrie 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자들의 꿈 아카이브』, (초판: 1981년) Fayard, Pluriel, 2017년.
(3) Walter Benjamin, 『Paris, capitale du XIXème siècle. Le Livre des passages 아케이드 프로젝트』, 독일어 원작, 장 라코스트 번역, Éditions du Cerf, Paris, 19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