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사주 맞선 노조, 오바마 지지로 '승리'

시카고 '리퍼블릭 윈도우'… 새 행정부 친노동정책 '시금석'오바마 '은행은 기업 대출, 기업은 해고 회피 의무' 공언

2009-02-01     피터 드레이어 | 경제학자

지난 12 월 초,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후, 시카고에 위치한 '리퍼블릭 윈도우 & 도어'의 노동자 240명은 그들의 공장을 6일 동안 점거했다. 이들이 속한 '미국 전기, 라디오 및 기계 노동자 아메리카 (UE, '유나이트 전기')'는 미국 좌파 노동운동에 속하는 작은 노조이지만 강성으로 유명하다.
 이들을 위한 기부와 지지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홍수를 이루었고,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도 그들을 지지했다. 이후 이들의 투쟁은 보상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요구한 60일의 휴업수당, 유급휴가, 그리고 두 달 동안의 건강 보험의 확장 등을 쟁취했다.
 
 레이건과 대조되는 오바마 '노조관'
 28 년 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초기에 사회분쟁은 완전히 다른 국면을 경험했다. 1만 3천명의 파일럿들이 파업을 단행한 며칠 후인 1981년 8월 3일, 이들 노조는 수천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게 된다. 지도부 72명이 기소되고, 즉각 일자리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1만 2천명의 관제사들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파일럿들은 파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로널드 레이건은 엄중한 경고를 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48시간 안에 일자리로 복귀하지 않으면,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니 해고될 것이다." 이 운동의 쓰라린 실패로 인해 파업의 수는 급감하게 되고, 오랜 기간 그 상태가 지속됐다. 1)
 물론 버락 오바마는 레이건처럼 공화당원이 아닌 민주당원이다. 하지만 그는 신속하게 파업 중인 근로자들을 지지하며 자신의 당원들에게 전례 없는 용기를 보여줬다. 이는 노조운동을 지지했던 제임스 카터와 빌 클린턴과도 대비된다. 이들 대통령은 정작 재임 시절 노조운동에 대해 무척 신중을 기했다. 심지어 미국 진보의 상징으로 저명한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실업률이 25%에 달했던 1933년 3월 당시, 자신의 취임 이후에야 비로소 근로자들의 요구에 답변을 했었다. 근심스러운 경제 상황 악화에 직면한 미국의 현실에서, '리퍼블릭 윈도우' 노동자들의 행동은, 대공황 때 노동자들이 주도한 투쟁이나 1960년대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주도한 투쟁을 연상시킨다.
 
 사주 공장폐쇄, 노조 '점거 농성'
 애초 이 회사의 공장 점거는 조심스럽게 준비됐다. 이보다 앞선 11월, 직원들은 장비 일부가 사라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들이 밤에 현장을 감시한 끝에, 인근 화물역으로 이송된 장비들을 되찾았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사진이 서둘러 회사를 폐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로자들이 아직 모르고 있던 것은, 사주들이 새 회사인 '에코 윈도우'를 세우고,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아이오와 주의 작은 마을 레드 오크의 창문 공장을 매입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유나이트 전기'의 구성원인 마크 마인스터는 '리퍼블릭 윈도우'에서 8년째 근무하면서, 지역 노조지부장을 지내고 있는 아르만도 로블 씨를 만나 돌파구를 모색했다.
 비록 위험 부담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 두 사람은 공장 점거를 염두에 두었다. 이들은 사유지 침입죄로 체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블 씨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료에게 제안했을 때, 모두가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지역 노조 지부 부회장 2) 이며 숙련 노동자인 멜빈 맥클린 씨는 "이미 완성된 창문들은 반출이 되지 못하도록 막고, 협상에서 구체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을 주장했다.
 12월 2일 배리 더빈 '리퍼블릭 윈도우' 회장은 사흘 후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회사의 자금줄을 차단해서, 직원들에게 법적인 배상을 할 수도 없고, 건강보험료를 지속적으로 낼 수도 없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공장 폐쇄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12월 5일 노조는 총회를 열었다. 로블 씨가 누가 공장을 점거하겠냐고 묻자, 모두 손을 들었다. 노동자들의 80%가 히스패닉이어서, 'Si, se puede!', 즉 'Yes, we can'을 스페인어로 연호했다. 'Yes, we can'은 1960년대 '유나이티드 농장 노동자 노조 연합'이 대중화 시킨 슬로건이다. 오바마는 이 슬로건을 선거 슬로건으로 사용해서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BOA' 노조 농성 직후 자금 차단
 이들은 침착하게 점거를 준비했다.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건물 청소와 경비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식당에는 알코올, 마약, 담배를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수십 년 전부터 공장에서 일해온 사람들을 비롯한 공장 점거 근로자들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리퍼블릭 윈도우'의 이사진이 해결책을 모색해 달라고 요구했다. 만약 그들의 수당과 유급휴가를 보장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그들 일부는 공장의 자체 운영 가능성도 내비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금융 시스템의 하나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점거 정보를 접하고, 자금줄을 차단했다. 이는 미국 건설 부문의 붕괴 이후 '리퍼블릭 윈도우'의 자금 흐름에 문제가 있어 촉발된 것이니, 은행은 정상적인 절차라고 주장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성명을 통해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기업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회사가 이러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채권자는 경영에 간섭할 수도 없고, 이런 저런 의무를 처리해달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그러한 결정들은 사주들과 이사진들의 몫이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시장의 법칙을 맹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의 법칙이 요즘 수많은 미국인들을 몰아붙여 국가가 다시 나서서 대기업, 특히 은행들의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아우성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15년 째 '리퍼블릭 윈도우'에서 근무해온 빈센트 란젤은 최근 주문 받은 창문 1천 개를 채우기 위해 유리를 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경영진이 그들을 불러 좋든 싫든 퇴사를 해야 한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3) 이 공장 직원의 한 시간 평균 임금은 14 달러다. 이들은 건강 보험과 퇴직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 비록 이들이 법을 위반하긴 했지만, 정치인 그 누구도 시카고 경찰의 개입을 요구하지 않았다. 점거가 시작된 12월 5일, 조지 부시가 "나라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동시에 노동부도 1974년 이래 최악의 상황을 나타낸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이 11월 한달 동안 53만3천개의 일자리를 감축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노조 지지에 '3자 협상' 시작
 언론들은 이 사건에 금세 관심을 보였다. 12월 7일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가 당시 오바마  당선자에게 자신의 '고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새 대통령은 "직원들이 그들이 받아야 할 수당을 요구할 때, 난 전적으로 그들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나라 전체가 겪는 어려움과 비슷하다. 금융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대출이 어려워져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해고를 한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이 단지 은행들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개인이나 기업대출로까지 이어지도록 보장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분쟁에 휘말린 기업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리퍼블릭 윈도우'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그러자 회사, 은행 그리고 노조 대표들은 협상을 시작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인 루이스 구티에레즈가 중재자 역할을 했다.
 곧 노조 대표와 선거 관계자들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최근에 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250억 달러의 연방 정부 지원을 받았음을 지적했다. 은행의 위선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다. 일리노이 주의 상원의원이자 오바마의 측근 자문위원인 딕 더빈은 노동자들을 방문해서 그들을 지지한다고 밝힌 후, 대형 은행들에게 지원한 돈이 "수장들의 배당금이나 보너스를 지불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면서 "그 돈은 '리퍼블릭 윈도우' 같은 회사가 직원들을 해고하는 대신, 지속적으로 그들이 일할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고 밝혔다.
 
 사측과 은행, 결국 굴복해
 심지어 일각에선 연방 정부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투자한 수억 달러를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위대가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 있는 이 은행 본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 있는 지점들 앞에서 시위를 했다.
 노조 및 사회단체들이 모여 '정의와 함께 하는 일자리'라는 조직을 결성해서 시카고 시청 앞 시위를 주도하며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보이콧 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회사 측에 고용주가 대량 해고를 하거나 공장을 폐쇄할 때는, 적어도 60일 전에는 고지해야 한다는 1988년 연방법 위반 소지를 주지시켰다. 시카고 시장도 '도시 재정비 프로젝트'라는 미명하에 할당된 1천만 달러의 지원금을 이 회사가 받았음을 상기시켰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돈, 음식, 의복, 담요 그리고 공감의 메시지들을 보내왔다. '유나이티드 전기'는 기부금을 내도록 독려하고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 웹사이트를 만들었다.4)
 노동자들의 의지, 그리고 오바마 차기 대통령 등의 노조 지지에 직면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이미지가 더 이상 실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승리 자체를 넘어, 이번 '리퍼블릭 윈도우' 노동자들의 행동은 오바마가 예정한 주요 정책 프로그램의 의미를 새삼 부각시켰다.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수백만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오바마의 정책은, 경제 위기로 약화된 미국 경제를 되살릴 뿐 아니라, 미국 샐러리맨들의 투지를 다시 불러 일으키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각주

1)1979 년부터 1999 년 사이, 직원이 적어도 1천명 이상인 회사의 노사 분규 수가 235건에서 17건으로 줄고, 파업 손실이 2천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로 준다. <월스트리트 저널>, 9월 4일.
2)마이클 루오와 캐런 앤 'Even Workers Surprised by Success of Factory Sit-In', Cullotta, <뉴욕 타임즈>, 2008년 12월 12일.
3)'Chicago factory sit-in offers a window onto hard times', <로스 앤젤레스 타임스>, 2008년 12월 9일.
4)'Pressure mounts in plant sit-in', Robert Mitchum & Deanese Williams-Harris, <시카고 트리뷴>, 시카고, 2008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