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좌파 정부, 엘살바도르

2012-03-13     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지난 2월 12일 베네수엘라 야권 통합 대통령 후보로 엔리케 카프릴레스가 선출됐다. 그는 오는 10월 선거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맞선다. 좌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 카프릴레스는 ‘브라질 모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09년 엘살바도르 대통령에 당선된 마우리시오 푸네스의 공약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남서쪽으로 86km 떨어진 태평양에 접한 아카후틀라 항구에는 엘살바도르의 역사적인 게릴라 출신 지도자 파라분도마르티해방전선(FMLN)의 샤픽 안달의 이름을 딴 연료저장소가 있다. 1980년대 무력투쟁 속에 창설된 정당인 FMLN 소속이 시장직을 맡고 있는 20여 개 시가 2006년 공동 출자해 베네수엘라석유공사(PDVSA)를 설립했다. 이는 엘살바도르에서 국가 간 자본출자가 아닌 에너지 분야의 첫 제휴협정이다. 이 공사의 시설은 중미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역내 국가들에 좀더 싼 가격에 연료와 윤활유 공급이 가능해 미국 석유기업들의 불만을 샀다. 지난해 5월 19일 공장 낙성식에 FMLN 당대표이기도 한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이 불참했고, 이로써 그의 입장은 더욱 빛을 발했다.

12년간에 걸친 혁명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1992년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FMLN은 자체 무력조직을 해체했다. 공식 정당으로 인정받은 뒤, 당은 1994년 실시된 국회 선거를 목표로 삼았다. 당 내부 조직화를 추진할 시간도 부족하고 경험이나 금전적 지원도 부족한 와중에, 경쟁 상대인 우파는 '애국심은 찬성, 공산당은 거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결국 극우파인 민족공화당연맹(Arena)이 승리했지만, FMLN은 21석을 확보해 엘살바도르 정치 무대의 2인자가 되었다.

옛 무장단체 대표가 된 <CNN> 특파원

FMLN의 최대 과제는 샤픽 안달이 출마한 2004년 대선이었다. 안달은 언론의 대대적인 반대 캠페인으로 대선에서 패배했다. 언론들은 안달이 미국 거주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에 대한 과세, 혹은 송금 금지를 추진할 것이라 보도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안달이 당선되면 임시체류자 신분의 엘살바도르인 60만 명이 추방될 것이라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하는 송금액이 없으면 엘살바도르 가구의 70%가 살길이 막막해질 것이기에 유권자들은 공포에 빠졌다. 이미 실업률이 8%에 달하고, 특히 청년층의 비정규직 취업률이 40%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추방돼 본국으로 돌아오면 어디서 일자리를 구하겠는가? '세뇌 작전'과 거짓, 애매모호함이 판치는 가운데 선거는 Arena의 안토니오 사카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FMLN은 2009년 1월 국회에서 84석 중 35석을 확보하며 여당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3월에 실시될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1월 안달이 서거하면서 당은 카리스마 넘치는 후보를 잃었다. 대선 후보로 지명된 인물은 <CNN> 스페인어 특파원 출신의 인기 언론인 마우리시오 푸네스였다. 게릴라 투쟁의 전적이 없는 푸네스는 우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엘살바도르 대선을 나흘 앞두고 열린 미 의회 회기에서 공화당 소속의 데이나 로라바커와 코르넬리우스 하비 매길커디는 이렇게 경고했다. "FMLN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엘살바도르는 베네수엘라, 러시아, 그리고 이란의 위성국가로 빠르게 전락할 것이다."(1) 3월 15일 FMLN은 51.3%의 지지율로 대선에서 승리했고, 6월 1일 푸네스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집권 뒤 남미 좌파 정권들에 등 돌려

그러나 푸네스 대통령과 FMLN의 관계는 이미 악화되고 있었다. 대선 기간에 푸네스의 주변에는 당 소속이 아닌, '마우리시오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일단의 '실용주의 노선' 측근이 포진해 있었다. 게릴라 출신인 산체스 세렌 부통령이 쿠바를 방문해 엘살바도르 정부의 미주볼리바르대안(ALBA) 가입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 발표한 직후, 푸네스 대통령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최소한 내가 집권하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2) 물론 푸네스 대통령은 50년간 단절된 쿠바와 외교관계를 재정립했지만, 정치 노선상 공통점은 극히 미약했다. 반면 2010년 3월 8일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의 접견을 받고 열흘 뒤, 푸네스 대통령은 온두라스의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 체제를 전복한 쿠데타 세력이 불법 선거를 거쳐 내세운 포르피리오 로보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해버렸다.(3)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노선 선택

또한 엘살바도르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2003∼2008년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는데, 이는 남미 국가들 가운데 유일했다. 언론인으로 활동할 당시 파병을 극구 비난했지만,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그는 마치 2010년 유엔 결의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했지만,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석 달 만에 푸네스 대통령이 직접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 폭로하자, 할 수 없이 힐러리 클린턴 국방장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미국과 엘살바도르는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4)

사회정책 면에서 지난 20년간 우파 정부가 보여줬던 것보다 푸네스 대통령 정부가 훨씬 나은 정치를 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노선은 FMLN 소속 마누엘 멜가르 공공치안부 장관의 사임으로 귀결됐다. 푸네스 대통령은 이에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좌파의 일부 부문은 아직 충분히 변화하지 못한 채 이데올로기적인 거미줄 안에 머물러 있다."(5) 그로부터 며칠 뒤인 2011년 11월 24일, 푸네스 대통령은 멜가르 장관의 '일부 정치 부문'을 미국이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또한 푸네스 대통령은 코스타리카의 라우라 친치야 대통령과 함께 지난해 12월 2~3일 개최된 중남미·카리브국가공동체(CELAC) 첫 정상회담에 불참했다. CELAC는 미국과 캐나다 없이 중남미 대륙의 사안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6)


글•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Hernando Calvo Ospina 언론인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BBCMundo.com, 2009년 3월 14일.
(2) <리브레 펜사미엔토>, 마드리드, 2009년 12월 9일.
(3) 모리스 르무안, ‘온두라스, 임박한 일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6월호.
(4) <엘파로>, 산살바도르, 2011년 8월 22일.
(5) ContraPunto.com.sv, 산살바도르, 2011년 11월 24일.
(6) 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도 불참했지만, 페루 내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