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 없는 과도기, 마다가스카르의 유령들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정부가 전복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마다가스카르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2011년 9월 과도정부 종식을 위한 로드맵을 도입했는데도, 국가의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엘리트층의 탐욕과 해외 제휴업체가 도입한 발전정책에 희생돼 작동 불능 사태에 빠진 국가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네댓 명쯤 참석할 줄 알았다. 그런데 평소 노조회의 때 사용하는 나무 벤치에30여 명의 노동자들이 촘촘히 끼어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마다가스카르의 최대 노동자 단체인 마다가스카르노총(FISEMA) 회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 안타나나리보 남부 170km 지점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제3의 도시, 안치라베 면세지역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이다.
지난 20년 동안, 글로벌화된 이 섬의 수많은 견습공들은 임금으로 9만~11만 아리아리(30~40유로)를 받으며 유럽에서 유명 브랜드를 달고 팔리는 반바지, 청바지, 스웨터 등을 생산했다. FISEMA 현지 지부장 집 옆 마당에 놓인 검은색 칠판 앞에 모인 이들은 익명을 조건으로 우리에게 '위기'에 대해 다 털어놓겠다고 했다.
3년 전 쿠데타에 국제사회 제재
처음의 '위기'는 2009년 3월 안타나나리보 시장 안드리 라조엘리나가 반정부 거리시위를 유발하고, 군의 버림을 받은 대통령 마르크 라발로마나나를 권좌에서 축출했을 때 초래된 국정 마비였다. 이후 라조엘리나가 이끄는 과도정부 형태의 임시정부가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직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했지만, 라발로마나나는 경쟁자인 라조엘리나가 통치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망명 중이던 그는 본국으로 귀국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국제사회는 라조엘리나의 쿠데타를 비난하며 마다가스카르에 제공하던 대부분의 원조를 중단했다. 이런 사태는 체제의 심각한 구조적 장애를 들춰냈다. 이를테면 마다가스카르 엘리트들의 무능과 수십 년 동안 마다가스카르에서 작동된 발전 모델의 실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안치라베의 한 노동자는 "정치인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지겠지만, 고생은 우리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2008년 경제위기로 이미 타격을 입은 경제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며, 지난 10년 동안 마다가스카르의 방직산업을 증진시킨 미국의 '아프리카 성장기회법'(AGOA)의 폐기를 성토했다. 2009년 이 법안이 폐기된 뒤, 방직산업 노동자 10만 명 중 2만5천 명 이상이 해고됐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실업을 경험했다. 미국으로 전 생산량을 수출하던 음클렌 방직회사가 공장을 폐쇄하는 바람에, 직원 1200명은 날벼락 같은 해고를 당했다. 코튼라인, 코토나, 아콰렐 등 폐쇄를 면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음클렌 동료들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돌연 유령으로 둔갑한 듯했다. 일부는 인력거꾼이 되어 안치라베 거리를 누비고 다닐 테고, 또 다른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은 음클렌 본사가 운영하는 다른 방직공장이 있는 모리셔스와 요르단으로 파견되었을 것이다.
2010년 이후, 코튼라인처럼 AGOA의 영향을 조금 덜 받는 일부 기업은 채용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의 사장은 고용불안을 구실로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 아주 앳된 한 여성이 "사장들이 온갖 구실로 우리 월급을 삭감하고 있다. 저들은 단순히 누가 주인인지 보여주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일로 해고를 일삼는다"며 분개했다. 옆 벤치에 앉아 있던 남성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8년째 코튼라인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아프다'는 이유로 사전 통보 없이 해고당했다. 회사는 그녀에게 20만 아리아리(약 70유로)를 주고 해고했다. 마다가스카르 또한 국제원조의 동결로 그로기 상태였다. 2008년만 해도 마다가스카르의 국제원조 규모는 국가 예산의 절반에 달했다. 정부는 공무원에게 급여를 계속 지급해야 하는데 운영 예산이 없어 쩔쩔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감독국이나 국가 근로자복지공단(CNAPS)은 고용주들에게 아무런 압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CNAPS의 경영감시국장 마난랄라 아드리안살라마는 "공단에 소속된 2만 개 기업을 전부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순순히 그들의 무능을 인정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잔뜩 겁에 질려 있어, 감히 우리를 찾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통받는 건 노동자들뿐
1989년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면세지역 법률을 도입했지만, 그 뒤 국민에게 숱하게 약속한 것들은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 당시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면세지역의) 비교우위론'과 '파급효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국이 '선순환 성장궤도'에 진입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22년 동안 정부는 (면세지역) 프로그램의 일부만 단행했다. 이를테면 노동자들, 심지어 숙련공들에 대한 인위적인 저임금 정책과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세금과 관세 철폐만 단행했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의 (선순환 성장) 이론, 제약(저임금 정책 및 세금과 관세 철폐)의 성과물인 나선형 성장구조는 단 한 번도 '선순환'된 적 없이 붕괴됐다. 심지어 20년 전에도 이미 이론의 여지가 있던 이 발전 모델의 지지자들(정부 지도층)은 이것이 성과를 거두려면 "투자자들에게 호의적이면서 이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마련해줘야 한다"고 못박았다.
당시 마다가스카르 정국은 불안했다. 1972년 처음으로 혁명의 무대가 된 바 있는 마다가스카르는 정치위기로 끝없이 요동쳤다. 1991년, 국민들은 당시 16년째 권좌에 있던 독재자 디디에 라치라카를 축출하기 위해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후 2002년, 6년 전(1996) 탄핵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라치라카가 국민투표로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사업가 마르크 라발로마나나의 지지자들에게 축출되어 또다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이른바 '요구르트의 왕'이라 불리던 농산물 가공 그룹 회장 라발로마나나는 내전에 가까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2006년 (투표를 통해) 실질적인 대통령에 당선된 라발로마나나 역시, 2009년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와 아주 흡사한 행보를 보인 젊은 라조엘리나의 쿠데타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1)
해고된 사람들, 유령처럼 사라지고
거듭되는 위기(1972, 1991, 2002, 2009)로 삶이 갈수록 팍팍해진 것처럼 보인다. 인구는 1975년 760만 명에서 현재 2천만 명으로 증가했다. 1975~200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1.6%씩 감소했다. 예컨대 경기호황기인 2003~2008년에도 국민의 처지는 나아진 게 없었다. 마다가스카르 국민의 4분의 3(76.5%)은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의 1인당 연간소득은 46만8800아리아리(약 160유로)밖에 되지 않는다. 2010년 6월 발간된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는 '양극화의 나라', 정치와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소수 결정권자들과 이 서클에 합류하지 못한 다수 국민으로 나뉜 국가로 판명됐다.(2)
그래서 소수의 갑부들은 수도의 사유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철조망과 보안업체의 감시 아래에서 사는 반면, 그 밖의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다. 2009년 이후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사람들이 흔히 'PN'이라 부르는 생활필수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3월 이후(3) 일자리 20만 개가 사라져, 보잘것없지만 아직까지 급여를 받는 극소수의 공식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이 특권층 대접을 받고 있다.
4륜구동 디젤차를 몰고 안타나나리보 거리를 덜컹대며 가던 호세가 "우리는 익사하고 있다"고 했다. 섬유·관광과 함께 심한 타격을 입은 부문 중 하나인 건설업 분야에서 현장소장으로 일하던 그는 라조엘리나가 정권을 잡은 몇 주 뒤 해고됐다. 택시기사로 전업한 그가 쓰린 속내를 내비쳤다. "당시 난 150만 마다가스카르프랑(FMG·약 105유로)을 벌었지만,(4) 현재는 아내에게 얹혀살고 있다."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지나(30살)의 증언은 더욱 끔찍했다. 독신으로 살며 세탁부로 일하던 그녀는 조카 4명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두 여동생이 안타나나리보의 면세 기업에서 해고된 뒤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마치 안치라베의 음클렌 공장의 유령들처럼. 한편 안정적 직업을 찾다 지친 그녀의 오빠는 끔찍한 비공식부문(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는 게 싫어, 무급이지만 숙식이 제공되는 군에 자원입대했다. 조카 4명을 부양하느라 집주인에게 빚을 진 지나는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제학자들의 장밋빛 '선순환 성장' 이론이 불행을 낳고 있다. 유니세프(UNICEF)가 2006~2010년 안타나나리보에서 실시한 연구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는 이런 현실을 확인해줬다. "우리는 실업과 불완전고용의 증가를 확인했다. 특히 비공식부문의 생계형 노동자 수가 폭발하면서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붕괴되고, 불평등이 증가했다. 빈곤감축 정책으로 지난 몇 해 동안 쌓은 성과들은 물거품이 되었거나,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5)
순환 못하는 선순환 성장 프로그램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특별보고관 올리비에 드 쉬테르는 도시의 삶이 팍팍하지만 시골의 삶 또한 나은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농촌 인구의 35%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50% 정도는 식량 불안에 취약하다"고 경고했다.(6) 많은 옵서버들은 국제사회 제재의 부조리를 지적했다. 국제사회가 마다가스카르 지도층은 건드리지 않은 채 국민에게만 피해를 끼치며, 역설적으로 해외 후원자들에게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늘릴 것을 강요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건설회사의 현장소장이던 호세는 2009년 라발로마나나 정부를 전복한 '불순분자'들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는 "혁명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전 대통령이 거리를 두던 사업가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진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돈에 매수된 시위대가 동네를 옮겨 다니며 선동하고, 라발로마나나 산업제국의 상징인 티코그룹의 점포들을 불태웠다"고 진술했다. 그는 주변의 불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때 내 아내와 자식들은 라조엘리나를 지지했지만 현재는 그를 싫어한다"며 웃었다.
정치 불안, 성장커녕 생산 감소만
호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많은 주장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자는 사업가이자 반(反)라발로마나나 인사인 신문사 사장의 지시로 2009년 수도의 거리 '혁명'을 취재할 때 목격한 것을 상세히 털어놨다. "라조엘리나 진영에서 이른바 포콘타니(구역대표)에게 돈을 줘, 젊은이들이 시내 중심가에서 시위를 벌이도록 매수했다. 포콘타니는 시위대 1인당 일당 7만5천 아리아리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받은 돈을 다 풀지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도 사업이었으니까." 우리와 인터뷰한 기자는 결국 자신도 취재비조로 하루 2만 아리아리를 챙겼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친(親)라조엘리나 진영에 알리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이 되물었다. "당신들, 혹시 라발로마나나가 자신을 지지한 자들에게 돈을 살포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죠?"
비록 돈이 2009년의 (라발로마나나 축출) 시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맞지만, 라발로마나나가 축출되기 몇 달 전부터 이미 반정부 시위가 급증했다. 전직 대통령이 국익과 자기 기업의 이익을 혼돈한 채 자유주의 경제를 신봉하며 심복들만 챙기자, 국민의 지지를 받던 계파가 그와 등을 졌다.(7) 2007년 12월, 안타나나리보 시장으로 당선된 라조엘리나가 대선 후보(라발로마나나)와 대립각을 세운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티코그룹 회장인 라발로마나나는 정치적 실수를 거듭하며, 라조엘리나를 강력한 라이벌로 만들었다. 헌법 교수이자 안타나나리보대학의 부총장인 장에릭 라코토아리소아는 이런 말을 했다. "라발로마나나는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버렸고, 라조엘리나가 권력을 잡도록 놔뒀다."
라조엘리나가 비록 상대방의 정치적 실수, 이를테면 토지 130만ha를 한국의 대우그룹에 매각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토지 매각 프로젝트 사건들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했지만, 전임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 뒤로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의 지지들조차 그의 큰 치적이자 유일한 치적으로 라발로마나나의 축출을 꼽지 않던가. 마다가스카르 과도최고정부(HAT·Haute Autorité de la Transition)의 젊은 지도자(37살) 라조엘리나 대통령은 과거의 정치적 관행을 깰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라조엘리나와 그의 내각은 과거 정부가 시도한 (정책의) 혜택을 철저히 챙기고 있다. 2009년 후반, 마다가스카르 정부와 중국 기업 위스코(WISCO)가 서부 해안의 소아랄라 철광산 탐사를 목적으로 체결한 1억 달러 수주계약이 그런 경우다. 이 사업의 불투명성을 지적한 국제감시기구인 국제위기그룹(ICG·International Crisis Group)은 "그런 노다지를 어떻게 과도정부의 손아귀에 쥐어줄 수 있느냐"고 놀란다. "이처럼 큰돈이라면 국가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도 횡재나 다름없다."
ICG는 한발 더 나아가, HAT 배후에 "일각에서 마피아 시스템이라 규정한" 막후 권력이 들어선 이후 공익과 사익 간 '근친상간 관계'가 생겼다고 주장했다.(8)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값비싼 원목 밀수출 사건이다. 라조엘리나가 정권을 잡고 몇 달 뒤, 자단(紫檀)나무의 불법 밀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나무는 대부분 중국으로 보내졌다. 2009년 한 해에만 5만2천t, 즉 거의 10만 그루의 자단나무가 벌목됐는데 그중 절반이 보호구역 안에서 이루어졌다. ICG는 "자단나무 수익은 공식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수익이기에 그 일부는 구멍 난 국가 예산을 충당하는 데 쓰이고 있지만, 이 돈은 체제의 일부 실세들과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기는 원천"이라고 했다.
뒷돈 오가는 반정부 시위
국제사회의 좋지 않은 인식을 의식한 과도정부는 밀수출과의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거물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피라미들만 잡아들이는 이 전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아울러 국가가 주도하는 범죄들도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 연구원 마티유 펠르랭은 "금, 보석, 상어 지느러미 등을 밀거래하지 않는 주는 단 한 곳도 없다. 정부 당국과 세관의 감시 체계 붕괴가 점점 더 광범위한 밀거래 루트를 터주고 있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 중 일부는 이 상황을 철저히 이용한다"고 했다. 물론 HAT는 적어도 "밀거래가 어제 오늘의 일인가. 모든 체제가 경험한 일이다"라고 반박할 수 있다.
밀거래 관행은 대통령 사이에 대물림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도층 전체를 지탄한다. 이런 케케묵은 경향은 경제위기를 틈타 디디에 라치라카(1975~93, 1996~2001), 알베르 자피(1993~96), 마르크 라발로마나나(2002~2009) 등 전직 대통령들이 정치무대에 복귀하고 안드리 라조엘리나(2009~)가 정권을 잡은 뒤 더욱 심화됐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이들에게 "경제위기 출구전략에 합의하라"고 촉구했다. 이 경제파탄 책임자들이 돈 되는 (정부기관) 핵심 부처의 자리 배분을 놓고 '협상'을 하는 동안, 정부가 2009년 치르기로 한 대선 약속을 지키지 않아,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안타나나리보 주민들은 거리에 나붙은 신문 1면 기사를 계속 주의 깊게 읽으며,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후원 아래 지속되는 릴레이 협상의 골자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주민들은 어느 정부가 체결한 '합의'인지 파악이 안 돼 삐걱거리는 '로드맵', 비정상적 서명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과 같은 기사를 읽으며, 정치인의 삶을 마치 레슬링 경기나 남미의 텔레노벨라(Telenovela·텔레비전 소설, 즉 일일연속극을 일컬음)를 시청하듯 지켜본다. 정치에 대한 (이들의)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이 열정이 갈수록 지배층에 대한 혐오감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1960년 마다가스카르 독립 이후, 국가를 통치해온 전통 귀족과 유력 인사 그리고 '권세가' 출신, 라발로마나나와 라조엘리나처럼 사업가에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가로 변신한 자들이 지배층을 이루고 있다.
해외 옵서버들 또한 앞다퉈 마다가스카르의 '엘리트들'을 비난했다. 세계은행은 비난의 화살을 임업과 광업 부문의 '거버넌스'에 집중해 지도층을 비판하며,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사적 인맥을 활용해 자원을 획득하거나 단기간에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협상이, 지도자들이 거듭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견고한 공공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9)
대통령들, 자원 밀거래 대물림
이런 비판은 분명 유익한 측면이 있지만, 중요한 것을 은폐하는 측면도 있다. 요컨대 중국을 비롯한 해외 '파트너'들의 지속적인 내정 간섭을 숨기는 측면이 있다. 만약 마다가스카르 엘리트들의 일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들이 옛 식민 강대국이자 지금도 여전히 마다가스카르의 내정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받는 프랑스가 가동시킨 첫 독립 정부에서 진화한 인물들이란 것을 망각하는 처사다. 1980년대 이후, 세계 금융기관들이 민간 기업에 해가 되는 면세지역의 튼튼한 공공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입한 거버넌스, 즉 경제자유화 예찬론의 효능은 과연 무엇일까?
라코토아리소아는 안타나나리보대학의 자기 사무실에서 사태를 이렇게 분석했다. "정치적 교착상태의 첫 번째 책임은 마다가스카르 엘리트들에게 있지만, 국제사회도 일부 책임이 있다. 프랑스, 미국, 남아공이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영향권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여러 거대 광산들이 개발되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유전의 존재를 점치고 있다." 사실 프랑스가 라조엘리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앵글로색슨족은 라발로마나나에게 열광한다는 것을 마다가스카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라코토아리소아는 (이 다툼에서) 누가 이기든 간에 (승자는) "끊임없이 호전적 행보를 보이는 상대인 중국과 사이좋게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글•토마 델통브 Thomas Deltombe 특파원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레미 카라욜, ‘쿠데타의 나라 마다가스카르, 빈곤과 횡령으로 얼룩진 사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호 참조.
(2) 아돌포 브리지, ‘바닥 시각을 활용해 상류층 돕는 사회단체’, <경제 부양책을 향해가는 마다가스카르>, 세계은행, 워싱턴, 2010년 6월.
(3) 그레고와르 프르티에, ‘정치적 위기로 고통받는 마다가스카르 중소기업들’, <AFP>, 2011년 11월 23일.
(4) 2003년, 마다가스카르프랑(FMG)은 아리아리(Ariary·5FMG=1Ar)로 대체됐다.
(5) <마다가스카르 아동 빈곤에 대한 분석>, 유니세프, 2011년 10월.
(6) 유엔식량농업기구 특별보고관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실시한 식량권에 대한 <예비 연구 결과> 보고서, 로마, 2011년, 7월 25일.
(7) 파니 피조, ‘경제시장과 성수채(Goupillon) 사이에 낀 마다가스카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3월.
(8)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전환기를 맞은 마다가스카르의 위기는 비관적인가?>, Rapport n°166, 브뤼셀, 2010년 11월 18일.
(9) <거버넌스와 개발 효과에 대한 검토>, 세계은행, 워싱턴, 2010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