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지옥이 된 칠레의 산티아고
엉망진창 서비스, 천정부지 요금
화재가 일어난 후, 그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칠레에서 일어난 불길의 원인, 불씨는 명백했다. 그것은 수도 산티아고의 전철요금이었다. 2019년 전철요금이 갑자기 인상되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시위는 상상 이상의 정치적 대변혁을 몰고 왔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 공간은 다양한 리듬, 무질서한 소음으로 가득하다. 바로 전철역 이야기다. 지하 32m에 위치한 바케다노 역에서는 하얗게 빛나는 조명 아래에 땅콩 볶는 냄새가 진동한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 유명 메이커의 운동화, 알록달록한 색깔의 샌들이 콘크리트 기둥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회색 타일 바닥 위를 걷는다. 러시아워다. 모든 이들이 산티아고 수도권 북동부의 도심으로 향한다. 지상에서는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자전거 몇 대와 행인들이 2019년 10월 시위로 크게 훼손된 바케다노 전철역 출구 앞을 지나간다.(1)
6시 45분, 산티아고 수도권 서부의 세로나비아 구. 54세의 에리카 몰리나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 대신, 전철을 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전철로 가면 너무 멀어요. 그리고 앉아서 갈 가능성이 적거든요.” 몰리나의 알람은 매일 아침 6시에 울린다. 몰리나는 고용주의 집으로 출근해 고용주의 자녀들을 챙기고, 식사 준비와 다림질 등 집안일을 한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산티아고의 35개 주들 중 7개를 지난다. 몰리나의 고용주는 세로나비아 구에서 30km 이상 떨어진 북동부의 부촌 라스콘데스 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 몰리나는 산티아고 수도권 내에서 일을 찾기를 원했다. 몰리나의 고향인 칠레 남부의 도시 트라이겐은 1990년대에 기차 노선이 없어지면서 역이 사실상 폐쇄됐다. 그러나 몰리나는 대도시의 편의시설들과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기를 원했다. “도심에서 이렇게 떨어진 곳에 살게 될 줄 몰랐어요.” 콘크리트로 거칠게 포장된 도로를 바라보며 몰리나가 말했다.
칠레 인구의 1/3 이상이 산티아고에 집중
농촌이탈 현상으로, 산티아고의 인구는 1900~1960년 3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2017년 조사 결과, 칠레 인구의 1/3이 넘는 710만 명이 산티아고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체증이 날로 심각해지자, 산티아고는 파리, 런던, 뉴욕 등 다른 대도시들을 따라 해결책을 선택했다.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전철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 대통령의 재임 기간(1964~1970) 중 1968년 10월 24일에 건설법령이 체결됐다. 그리고 7년 후 프랑스와 칠레의 컨소시엄이 전철 건설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프랑스의 뛰어난 기술력을 도입한 산티아고 전철이 과연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까?”(2) 1978년, 지리학자 자크 산티아고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애초 계획은 전철노선을 교외의 빈민거주지역까지 연장하는 것이었으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의 독재정권 시절, 이 계획은 수정됐다. 1975년 개통된 1호선 범위를 산티아고의 부유 지역에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전철요금은 버스요금의 3배로 책정됐다.
새롭게 건설된 전철역들은 산티아고의 주요 도로인 알라메다 대로를 따라 지어졌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이 전철노선은 산티아고가 어떻게 확장됐는지 보여준다. “1960년대에 건설된 범미 고속도로는 남미 대륙을 관통하며, 산티아고의 남부와 북부를 가로질렀습니다. 산티아고 중심가에 살던 재계 및 정계 기득권층들은 그때 모두 북동부로 이사했습니다.”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제나로 쿠아드로스가 설명했다. 당시 산티아고는 세계화 과정에 동참하기를 꿈꾸고 있었다. 전철에 이어 고속도로와 버스노선 프로젝트 역시 북동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비즈니스의 중심지인 북동부는 마천루와 사무실이 집중돼 있어, ‘산해튼(산티아고와 맨해튼의 합성어)’이라 불린다.
1975년 법령은 빈곤층을 전략적 도심에서 남부와 서부의 교외로 밀어냈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도심의 자산 가치를 높이고, 선진국 대도시의 면모를 보여줄 공간으로 개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쿠아드로스가 설명했다. “수도권을 확장하고, 독재정권 이후 교외 지역 중심으로 임대주택을 대거 건설하고, 북동부에 주요산업 분야를 집중시켰습니다. 그 결과, 산티아고 시민의 80%는 도시의 곳곳으로 이동하기 어려워졌습니다.”
7시 5분. 몰리나는 아침을 거른 채 아직도 버스를 기다린다. 그녀는 초조해진다. 일터에 9시까지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몰리나가 수도권의 서쪽 끝에 위치한 이 구를 벗어날 때는 출근할 때뿐이다. 버스 정류장에는 그녀를 포함해 10여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기다리신 거예요?” 한 60대 여성이 인도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버스가 오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갑자기 멀리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의 짙은 안개를 뚫고 곳곳에 녹슨 초록색 버스가 한 대 도착한다. 몰리나를 비롯해 사람들이 기다리던 버스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욱한 매연 속에 줄을 선다.
독재정권 이후, 철도 투자는 없었다
2019년 1월 전철 3호선 개통식에서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대통령은 “편리하고 현대적이고 안전하고 조용한 최신형 열차와 시민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노선”을 강조했다. 독재정권 시절, 전철은 재정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1990년까지 노선이 2개밖에 없었다. 칠레의 노후된 철도와 마찬가지였다.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고속도로와 항공 교통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철도는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총 8,883km의 연장에 1910년에는 북쪽의 사막지대부터 남쪽 끝의 푸에르토 몬트까지 이어지던 철도는 잊혀갔고, 결국 해체됐다. 1978년, 피노체트는 철도공사(EFE)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었다. 2019년에 교통부(MTT)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철도망은 839km만이 운영되고 있다.
전철과 달리, 철도는 독재정권 시절 이후 신규투자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전철은 공공교통부가 전적으로 관리하다가 1990년부터 공공자본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주주가 된 정부는 전철노선의 개발 및 건설에 교통정책을 집중했다. 현재 칠레의 전철은 멕시코를 제외하고(225km)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연장을 자랑하며, 총 140km에 달하는 6개 노선이 매일 24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른다. “칠레의 전철은 명품입니다. 전 세계 20대 전철에 속합니다.” 2019년 1월, 피녜라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이 ‘명품’은 많은 이들에게 장식품에 불과하다. 산티아고의 전철노선은 산티아고 수도권의 34개 구 가운데 23개 구만을 지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명품’ 전철역사는 대다수의 구에서 황폐한 주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풍경을 연출한다.
우리는 아침 출근 시간, 남부 교외 지역으로 향하는 전철에 한 번 타봤다. 이 방향의 열차는 거의 비어 있었다. 왼쪽 창문으로 안데스산맥과 파란 하늘, 그 사이로 솟아오른 20층짜리 아파트들이 보였다. 한편, 오른쪽 창문으로는 베스푸치오 수르 외곽 순환도로가 관통하는 서민구역 ‘그란자’가 보였다. 열차가 공중 승강장에서 멈추자, 우리는 지상으로 연결된 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역사 근처에 벤치도 나무도 없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금이 간 벽에 기대어 서있는 제라르도 브라보를 만났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그는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녹슨 집들은 방치, 전철역사만 리모델링
“여기에는 구멍가게밖에 없어요. 약국, 은행, 상점, 공원, 여가시설 등을 이용하려면 전철을 타야 합니다. 전부 중심가에 몰려 있으니까요.”
우리의 건너편에는 높이가 20m 정도 돼 보이는 벽이 있었다. 폴리에스터 지붕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라 그란자(La Granja) 역의 울타리였다. 역사의 분위기는 조용했고, 타일 상태는 완벽했으며, 크롬은 빛이 나도록 깨끗했다. 이런 여러 건축학적 요소들과 운영 품질을 인정받아 산티아고는 매년 열리는 ‘메트로 어워즈’ 행사에서 2012년 남미 최고의 전철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산티아고 중심지의 일부 전철역사 복도에는 상점은 물론, 우편 발송이 가능한 은행과 현금인출기가 있다. 어떤 곳에는 도서관도 있다. 전철역사가 도시 속의 도시이자, 지상의 모습을 반영하는 ‘지하의 거울’인 셈이다.
2019년 10월에 산티아고 수도권의 다른 24개 역과 함께 불에 탔던 라 그란자 역은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방화범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브라보가 말했다. “전철은 칠레의 기적에 내재된 불공정성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전철역에 불을 질렀던 것입니다.” 브라보는 외곽도로 건너편 쪽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산 그레고리오 빈민가를 가리키면서, 정부가 구역정비, 폐기물 처리, 도로관리 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브라보에 따르면, 정부는 더 이상 전철공사의 주주가 아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정부가 전철을 운영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쪽 구역의 사람들은 모두 녹슨 철로 만들어진 지붕 아래에서 삽니다. 저 구역은 완전히 방치됐어요. 그런데도 정부는 전철역만 리모델링했습니다. 정부의 관심사는 오로지 전철뿐인 것 같아요.”
브라보도 그의 이웃들처럼, 출근할 때 외에는 이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기에 농장밖에 없었어요. 전철이 들어온 후 인구가 늘었고, 중산층도 늘었지요. 하지만 여기는 베드타운이에요. 주민들은 이 동네에서 잠만 자고 일은 모두 시내에 나가서 해요.” 몇몇 전문가들은 2020년 1월 신문 논설에서 “산티아고의 도시개발 계획은 공공복지 증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므로, 결국 전철 등 주요 인프라가 불평등을 재생산했다”라고 주장했다.(3) 이들 전문가들은 “전철역 주변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정부가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리학자인 기욤 파뷔렐은 “또한, 대도시 집중 현상은 이동의 필요를 가중시켰다”라고 분석했다. 이제 시민들은 일하려면, 또는 여가를 즐기려면 주거지에서 장거리 이동을 해야만 한다.(4)
이런 ‘도시의 이동 불평등’은 피노체트 재임 기간에 심화됐다. 버스 운영이 불안정해지다가 결국 민영화됐기 때문이다. 버스는 1953~1981년 칠레 국영대중교통회사(ETCE)에서 관리했으나, 이제는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기업에 불과하다. 1980년 개정 헌법은 정부에 ‘보조적인 역할’을 부여해, 민간 분야에 정부가 진출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버스 운영업체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버스 회사와 기사들은 별도의 허가 없이 버스를 운영할 수 있고, 요금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1979년과 1988년 사이에 버스 대수는 2배로, 버스요금은 평균 1.5배로 인상됐습니다.”(5) 쿠아드로스가 설명했다.
“엉망진창인 서비스에 이렇게 비싼 요금을?”
기사의 월급은 버스표 매출에 따라 정해졌다. 폐차 직전의 버스가 승객들을 가득 태운 채 달렸고, 모든 버스가 도심지에 정차하기를 원했다. “리카르로 라고스 대통령(2000~2006)이 2002년에 이 시스템을 손보려고 하자, 노란 버스 회사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켜 도시를 마비시켰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의거해 민간이 계속 버스 운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07년에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2006~2010, 2014~2018)은 새로운 도시 교통계획 ‘트란산티아고(Transantiago)’를 발표했다. 후에 피녜라 대통령은 이 계획의 명칭을 ‘Red’로 수정했는데, 쿠아드로스는 이 계획이 ‘교통망을 정리했다’는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대중교통 통합 시스템(SITP)은 버스 회사를 10개로 제한했으며, 마그네틱 방식의 ‘Bip!’ 교통카드를 도입하면서 전철과 버스의 요금을 단일화했다.
그러나 이런 안정적인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전철의 재정은 상당 부분 전철요금에 의존할 수 있었지만, 민간 버스 회사는 여전히 지원금을 받는 형편이었다. 그 결과, 버스 기사들은 지방운행을 기피했다. 전철의 포화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버스 회사의 적자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2019년 8억 달러 적자). 2022년 11월에 교통부는 부정행위로 적발된 버스 회사의 비율이 40%를 넘었다면서, 규제와 벌금을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엉망진창인 서비스에 이렇게 비싼 요금을 내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많은 전철 이용자들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2019년 3월에 지속가능한도시계획센터(Cedeus)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동부의 7개 구에 거주하는 인구는 소득 5분위(상위 20%) 계층의 80%를 차지하며, 자동차 이용객의 50%에 해당하고, 교통 인프라 부문에서 공공 투자의 혜택을 2.5배 더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20m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이 버스의 창문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버스는 그냥 출발해버렸다. “항상 저런 식인 걸요.” 그는 떠나는 버스를 보며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승객 수와 급여가 무관해진 이후, 버스 기사들은 정류장이 아닌 곳에도 정차를 하거나,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곤 했다. 조금 떨어진 곳의 한 정류장에는 30세의 마르코 피자로가 서 있었다. 오후 한낮의 시간에 비쿠냐 마케나 거리에는 수많은 버스가 오가고 있었다. 창문 안을 보니 승객은 없었다.
“전부 다 비어 있어요. 저는 절대로 버스를 타지 않아요. 이곳 사람들은 차라리 전철을 타지요. 버스밖에 없거나, 거리 때문에 버스를 꼭 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그는 버스들이 전부 폐차 직전 상태인 데다가 제대로 운행되지도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버스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몇 시에 오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러시아워임에도, 시내에는 승객이 없는 ‘유령 버스’들이 즐비했다. “버스 기사들은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어쨌거나 받는 월급은 같으니까요.” 피자로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7시 35분. 버스 뒤쪽 찢어진 좌석에 앉은 몰리나의 몸은, 차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는 매월 5만 페소(2023년 3월 21일 환율 기준 1페소=1.59원, 즉 5만 페소는 약 7만 9,500원)를 교통비로 지출한다고 말했다. 투잡을 뛰는 몰리나의 월수입은 약 50만 페소(약 79만 5,000원)다. 즉, 매월 버는 돈의 10%를 교통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저는 양호한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교통비 비중은 더 높을 거예요.” 몰리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2019년 10월, 오전 7시~오후 5시 59분의 대중교통비 요금을 30페소(약 48원) 인상한다는 소식에 민심이 들끓었다. 칠레의 평균 월급은 40만 페소(약 63만 6,000원)다. “30페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30년의 결과다!” “투쟁을 위해 역사를 무단점거하고 요금을 내지 말자!” 시위 초반에 시위대가 외쳤다. 반면, 다른 시간대에서는 요금이 내려갔다. 새벽 6시~6시 59분, 그리고 저녁 8시 45분~11시의 요금은 30페소 인하된 것이다.
교통비를 줄이려면 잠을 줄여라?
당시 경제부 장관이었던 후안 안드레스 퐁텐은 요금 체계의 ‘유연성’을 내세우면서, 2019년 10월 8일에 CNN 칠레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전철을 타면,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얼리버드’ 혜택입니다.” 즉, 새로운 요금 체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잠을 줄이라는 뜻이다. 10일 뒤, 칠레 전역에서 분노의 시위가 시작됐다.
“토마토, 빵 등 다른 품목 인상 때는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위는 정치공작입니다.” 교통요금 인상을 제안한 전문가그룹의 대표 후안 엔리케 코이먼스는 이렇게 주장했다.(6) 1949년 8월에 일어난 ‘차우차(버스를 뜻함) 폭동’도 교통요금 인상이 발표된 후에 일어났다. 칠레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재정의 60%를 요금으로, 40%를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이 때문에 당국은 교통요금을 인상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는 말한다.
교통요금을 올리는 대신 정부의 지원금을 늘린다는 또 다른 해결책도 있기는 하다. 코이먼스에 이어 전문가 그룹의 대표가 된 후안 파블로 몬테로는 시위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렸다. “우리 그룹의 전문가들은 사회적인 문제는 잘 모르지만, 이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부뿐입니다. 자원을 더 확보하려면 교통요금을 인상하든 지원금을 추가하든 선택을 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교통요금을 인상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바로 정부이기 때문입니다.”(7)
한동안 다양한 해결책들이 제시됐다. 2022년 3월에는 산티아고를 ‘참을 수 없는 도시’로 만드는 자동차 통행량의 증가, 대기 오염, 교통 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한도시개발센터(Cedeus)의 전 센터장인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 아보가비르와 현 교통부 장관이 디젤 택시의 도입을 고려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시범 정책을 통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마련하고 그것을 시험 운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디젤 택시의 도입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교통부 장관의 제안만으로 실현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을 수립해야만 충분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8) 그는 덧붙였다.
이쯤에서 칠레의 가계경제를 살펴보자. 2019년 10월 디에고 포탈레스 대학교의 연구 결과, 산티아고는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세계 도시’ 10위권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스크바, 밴쿠버, 멕시코에 비해 2배에 달했다. 국립통계청(INE)이 2018년 6월에 발표한 가계에 관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교통비는 생활비 중 식비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2019년 7월에 실시된 칠레건설협회(CCHC)의 연구 결과, 대도시에 거주하는 3인 가구의 매월 필수 교통비는 약 15만 5천 페소(약 24만 6,450원, 1인당 약 8만 2,150원)로 나타났다. 필수 교통비라 함은, 통근 또는 통학을 위한 교통비를 말한다. 여기에 여가생활 등을 위한 교통비까지 포함하면 월평균 약 25만 페소(약 39만 7,500원, 1인당 약 13만 2,500원)를 대중교통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 아보가비르는 교통요금 이야기가 나오자 입술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2022년 7월 19일, 그는 <라디오 우니베르소(Radio Universo)>에 출연해 “시민들이 교통요금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라면서 “앞으로 더 인상될 수 있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공식 발표는 칠레에서 첫 번째 시위가 일어난 시점으로부터 3년 뒤인 2022년 10월 19일에 이뤄졌다.
“2023년부터는 서서히 교통요금을 올릴 겁니다. 교통요금은 코로나 팬데믹이 초래한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3년 전부터 동결된 상태입니다. 시위대는 요금의 5%도 안 되는 인상분을 문제 삼아 교통체계 전체를 훼손하려 합니다.” 현재 칠레의 교통요금 할인 혜택은 학생과 고령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실업자에게는 혜택이 없다. “실업자 할인 혜택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아보가비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은 아닐 것이다. 가브리엘 보리치 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대기오염 물질 배출도, 승객들의 부담도 없는 ‘더블 제로 교통’ 시범 계획은 사실상 실행이 요원한 상태다. 일단 교통요금의 동결 여부부터 결정해야 한다. 보리치 대통령은 2022년 11월 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좌파 연대(Apruebo Dignidad)가 최소한 2023년 말까지 교통요금을 동결하겠다고 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3년 연속 동결은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정부 동맹입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정당과 의회에, 정부 동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9)
매일 3시간 출근길, 아침을 거른 채 일해
교통부 장관은 “고도로 도시화된 국가에서는 교통이 중요한 주제”라며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노선을 신설 및 연장하고, 새로운 버스를 구입하고, 서비스를 개선하고, 교통체계를 정비하려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시민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칠레 정부는 전철 7호선의 신설공사, 2~3호선의 연장공사를 장기간 인연을 맺어온 프랑스 그룹 알스톰에 맡겼다. 정부는 또한 현재 운행 중인 버스의 33%를 새 버스로 교체하고, 중국의 전기자동차 회사인 BYD가 생산한 전기 버스를 800대에서 2,200대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철과 버스노선의 확장과 현대화는 반드시 도시계획 작업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산티아고의 전철은 남미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전철역도 130여 개나 되지만, 이동 거리가 굉장히 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러시아워에는 통근, 통학 또는 여가를 위해 도심지와 산티아고 북동부로 향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정부는 산티아고 북동부에 집중된 도시의 기능을, 곳곳으로 분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거주지 근처에서 일을 구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무뇨스 아보가비르가 말했다.
8시 5분. 만원 버스에는 여성들이 많았다. “이 여성들은 저처럼 라스콘데스 구로 출근해 가사도우미로 일해요. 예전에 저는 일터에서 숙식을 해결했어요. 그렇게 하니 출퇴근 시간과 요금은 절약됐지만, 사생활이 아예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잠깐이라도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려고 해요.” 몰리나는 자신이 출퇴근에 쏟아붓는 4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반나절의 근무시간임을 깨닫자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는 이미 적응이 됐어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출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근무시간에 반영해줄 수 있는지 고용주에게 물어봤지만 거절당했어요.”
버스가 멈춘다. 퀸타노르말 구에는 집 없는 개들이 도로 위에서 누워 자고 있었다. 앞으로 5개 구를 더 지나, 50분은 더 가야 한다. 잠시 후 먼지가 뽀얀 버스 창문 너머 프로비덴시아 구와 라스콘데스 구의 주택단지들이 보일 것이다. “산티아고 구에 들어서면, 여기가 저희 동네와 같은 시에 속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몰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2022년 9월 4일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칠레의 헌법 개정안에는 정부가 “기본적인 서비스, 공공재, 공공 공간에 대한 보호와 평등한 접근,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이동성, 도로의 연결성과 안전성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제52.4조)(10) 진보적 조항들이 대거 삭제될 것으로 우려되는, ‘전문가 위원회’가 주도할 차기 헌법 초안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포함될까?
이제 8시 50분이다. 외곽도로로 500m만 더 가면 몰리나는 고용주의 건물 앞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기상 알람이 울린 지 3시간 만에 몰리나의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될 것이다. 늘 그렇듯, 아침식사는 거른 채 말이다.
글·기욤 볼랑드 Guillaume Beauland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La Bataille pour le Chili 칠레를 위한 투쟁, <Manière de voir>, n°185, 2022년 10~11월호.
(2) Jacques Santiago, ‘Les transports en commun à Santiago du Chili : problèmes et perspectives 칠레 산티아고의 대중교통 : 문제점과 전망’, <Les Cahiers d’Outre-Mer>, Bordeaux, 1978년 4~6월.
(3) Francisco Perucih Vergara, Juan Correa Parra et Carlos Aguirre Nuñez, ‘Contra el urbanismo de la desigualdad : Propuestas para el futuro de nuestras ciudades’, 2020년 1월 3일, www.ciperchile.cl
(4) Guillaume Faburel, ‘Les métropoles barbares 야만적인 대도시’, <Passager clandestin>, Paris, 2019.
(5) Oscar Figueroa, ‘Transporte urbano y globalización : Politicas y efectos en America latina, Eure-Revista latinoamericana de estudios urbanos regionales’, Santiago, 2005년 12월.
(6) Edison Ortiz, ‘Los signos de un posible nuevo estallido’, <El Mostrador>, Santiago, 2021년 10월 18일.
(7) Oriana Fernandez, ‘Si no hubieran estallado las protestas con el precio del metro, lo habrían hecho con la Apec o la Cop25’, <La Tercera>, Santiago, 2020년 3월 9일.
(8) Constanza Calderón, ‘Transporte público gratuito ?’, <La Hora>, Santiago,2022년 3월 21일.
(9) Daniela Ruiz-Tagle,
‘Boric y alza en el transporte público’, 2022년 11월 17일, www.biobiochile.cl
(10) Renaud Lambert, Au Chili, la gauche déçue par le peuple 좌파에 실망한 칠레 국민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