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시적인 것의 지리학적 재현

2012-03-13     알랭 그레슈

오늘날 세계 정세는 갈피를 잡기 힘들다. 활동과 권력의 중심지는 새로운 영토로 이동하고, 유례없던 연합관계가 형성되며, 지정학이 재편성되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지닌 모든 이데올로기적 해석의 틀을 수정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3월 6일에 발간하는 지정학 아틀라스 4판을 통해 야심차게 이에 도전한다. 200쪽이 넘는 이 책은 각계 전문가가 집필한 분석글과 참신한 카토그램을 조합해 역사적 변천을 명확하게 짚어준다.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국민이 자신과 자신의 세계적 입지에 대한 비전을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유럽은 그 전형이다. 그 누구도 유럽을 정의하거나 어디서 시작돼 어디서 끝나는지 분명히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채로 인한 위기인가, 위기로 인한 부채인가?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위기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각국 정부는 은행을 파산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금융업자들은 취약해진 유럽 국가들을 계속 쥐어짜고 있다. 독일의 실업률이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시끄럽다. 사실상 이 ‘기적’은 월급여 400유로 이하인 ‘미니잡’ 제도를 마련한 하르츠법에 의해 수백만 명의 구직자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동자가 된 수백만 명의 독일 실업자들이 구직자 명단에서 제명됐다.

그래픽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트크 아틀라스 2012>


"그러면 동쪽으로는 어디까지가 유럽인가요?" 서쪽으로는 바다가 있으니 분명하다. 그런데 동쪽은?

전문가들은 실재하지 않는 경계선을 설정했다. 유럽과 '기독교적 정체성', 유럽 대륙, 백인 유럽인들의 유럽, 문화적 유럽, 지리적 유럽, 행정적 유럽, 유럽과 '취약지', 유럽과 자연발생적 경계…, 유럽! 유럽! 유럽!

때는 1965년 12월이었다. 미셸 드로아 기자가 샤를 드골에게 물었다.

"자칭 유럽인이라는 사람들도 '조국들의 유럽'(Europe des patries·민족국가가 주체가 된 국가 간 협력 체계를 뜻하는 드골의 유럽 통합관)은 부족하다 하고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이르는 유럽은 지나치다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는 스스로 유럽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통령은 답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정치는 현실적인 겁니다. 물론 염소처럼 의자 위에 올라서서 '유럽! 유럽! 유럽!' 이렇게 외칠 수도 있겠지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실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렇지만 드골 장군은 1950년대 초, 유럽은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라고 좀더 분명히 말했다. 적어도 '백인'들의 러시아도 유럽에 포함된다는 말이다. 이 가상 유럽의 정의는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그저 드골이 주창하는 유럽 통합관의 바탕이 되는 틀이자, 독일에 맞서 러시아와 맺은 '훌륭하고 바람직한 동맹'의 범위였을 뿐이다.

유럽의 경계는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터키를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스라엘은? 또 아르메니아는? 루마니아와 크로아티아같이 솅겐협정 가입을 기다리는 국가들이 있다. 솅겐 조약 가입을 꿈꾸는 알바니아와 조지아 같은 나라도 있다. 그리스처럼 자신을 배신한 하나의 유럽에 의문을 품는 나라도 있다. 그리고 지극히 유럽다운 기구에서 정식 회원국으로 활동하는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 왕국'의 먼 이웃들도 있다. 이들 중에서 누가 가장 유럽인스러울까?

만약 그저 유럽이 동쪽으로 끝이 없는 것이라면? 만약 유럽이 아시아의 거대한 품 안으로 융합된 것이라면?


솅겐 조약의 두 얼굴

어디에서 왔느냐에 따라 유럽 입국 절차가 단순한 형식에 그칠 수도 있고(지도의 녹색 표시 국가), 때로는 치명적인 장애물의 연속일 수도 있다(적색 표시 국가).


지정학 아틀라스

정보가 이렇게 많은 적은 없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해 수백만 개의 통계 자료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정보의 자유가 역설적으로 장애물이 돼버릴 정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가장 적합한 통계 자료를 선택하는 일이 과제가 됐다. 자료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일은 차후의 문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970달러라는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토의 극히 일부만을 통치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GDP가 실제로 무엇을 나타내는가?

정보가 이렇게 신속히 보급된 적도 없었다. 각종 사건과 사태에 순위를 매겨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우선 제공한다는 구글 같은 거대 검색엔진이 있음에도 시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할 지경이다.

세상을 이렇게 읽기 힘든 적은 없었다. 넘치는 이미지와 숫자, 텍스트는 무질서를 바로잡지 못하고 사상보다는 대부분 유행, 심지어 금전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분류가 인터넷을 떠돈다. 게다가 지금은 활동·생산·권력·패권의 새로운 중심지가 등장하는 전환기이자, 변천과 변화의 시기다. 비물질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대신하지 않으나, 정보통신망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화물 운송용 컨테이너 수가 급증한 것처럼 전자는 후자와 동행한다.

기존 사고의 틀도 마찬가지로 동요한다. 이런 미로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틀라스 2012>는 위대한 화가 파울 클레의 예술에 대한 굳은 신념처럼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 한다.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경선은 시공간에 따라 이동한다. 역사가 급변하고 세상의 지리가 뒤바뀌면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1814~15년 빈 회의부터 1945년 얄타 회담에 이르기까지 현대와 같은 국경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외교관들은 때로는 복도에 쪼그려 앉아 어설프고 미흡한 스케치를 끼적거리며 구미에 맞는 국경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모든 국경이 정치적 의도로 설정되지는 않았다. 기존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이 인식된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국경도 있다. 이런 국경을 반영할 만한 시각적 표현 방법을 고안할 수 있을까?

지리와 역사의 점진적 변화는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적 해석의 틀을 그때마다 적응시키고, 수정하며, 더 나아가 전복하게 만든다. 세계의 무게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간, 18세기 상황으로의 역설적 회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1980년대 근동에서 이집트 세력이 약화된 일을, 또 유럽은 거부했지만 오스만제국의 손에 넘어간 역동적인 터키의 부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역사학자 장피에르 베르낭은 "국경은 내부인 동시에 외부다. 진정한 의미의 내부가 존재하려면 외부로 문을 열어 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환기시킨다. 일반 지도(내부)는 우리에게 세계의 일부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그 나머지(외부)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틀라스 2012>가 보여주고 싶은 바다.


글•알랭 그레슈 Alain Gresh

지도•필리프 레카세비츠 Philippe Rekacewicz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